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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JNG 코리아 대표 | 패션업계 미다스의 손 

토종 화장품 브랜드로 제2의 승부수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춘식 기자
JNG 코리아 김성민 대표는 손대는 브랜드마다 대박 신화를 만들어온 패션업계 미다스의 손이다. 그가 자신이 직접 만든 화장품으로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웠다.

▎김성민 대표가 JNG 코리아 본사의 시에로 코스메틱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탈리아어로 ‘세럼(serum)’을 의미하는 시에로 코스메틱의 모든 제품에는 세럼 성분이 함유돼 있으며, 탁월한 제품력을 자랑한다. / 중앙포토
JNG 코리아는 침체된 패션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이다. JNG 코리아가 운영하는 지프·지프 스피릿·시에로·존화이트·홀하우스 등 5개 브랜드는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뿜어내며 지난 5년간 평균 1100억원대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2016년도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난 1550억원 매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 12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김성민(54) 대표는 “각 브랜드의 가치와 품질,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JNG 코리아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김 대표는 업계에선 보기 드문 패션 디자이너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의 사업가다. 후배 디자이너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로 꼽을 만큼 경영인과 디자이너로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특히 패션업계에서 고사 직전의 브랜드를 맡아 히트 브랜드로 부활시킨 사례가 수두룩하다.

김 대표의 예술적인 기질은 유년 시절부터 남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려 먹고 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다. 각종 미술대회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갔고, 대회에 나가 상을 못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교 시절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패션 분야로 방향을 돌렸지만 자식의 그림 재능이 아까웠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만 했다. 김 대표는 “미술대학 시절 내내 패션 자료를 찾아가며 혼자 공부했고, 졸업과 동시에 패션 아카데미에 등록해 디자인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또 “군 복무를 마치고 디자이너의 꿈을 계속 키워가던 중에 패션쇼 무대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며 “이를 위해 메이크업과 헤어도 함께 공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대표의 첫 직업은 패션이 아닌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이 처음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는데 그 멤버 중 한 명이 김 대표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유일한 남성으로 2년 6개월 근무하던 기간에도 김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1989년 김 대표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패션의 본고장에 도착한 김 대표는 부푼 꿈을 안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이탈리아 방송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이미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던 그의 재능은 이탈리아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 대표의 컬러 선택과 피부 표현, 빠른 손놀림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고, 유명 모델들과 연예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며 돈도 제법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크업은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메이크업 일을 하면서도 ‘마랑고니 패션스쿨’과 ‘뷰티 센터 밀라노’에서 관련 분야를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다져갔다.

1993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표는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자신의 대중성을 확인하기 위해 기성복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1994년 미니멀한 스타일의 골프웨어 브랜드 ‘레노마스포츠’를 론칭한 김 대표는 당시 기세가 대단했던 잭니클라우스·아놀드파마 등을 누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다시 쓰러져가는 캐주얼 브랜드 ‘폴윌러’, 여성복 브랜드 ‘나인식스뉴욕’ 등을 맡아 큰 성공을 거뒀다.

패션업계 히트 브랜드 제조기


“이때부터 시쳇말로 산소 호흡기 떼어내기 일보 직전의 브랜드를 맡아 달라는 요청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제게 남과 다른 장점이 있다면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인데요. 저는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브랜드를 맡으면 어느 부서가 저에게 가장 비협조적인지 살펴보고 거기부터 공격합니다. 그것도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요.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디자인실 청소인데요. 이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인간적인 호응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놓은 작업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브랜드에 임팩트를 주는 작업을 순식간에 마칩니다.”

김 대표는 탄탄한 팀워크를 통해 목표를 설정하고 짧은 시간에 브랜드의 미래를 보여줬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00년에 등장한 캐주얼 브랜드 ‘쿨독’은 업계 1위 ‘닉스’를 눌렀다. 또 2002년에는 국내에 숫자 마케팅을 처음 도입한 ‘콕스’로 또 한번 역사를 썼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드라마에 먼저 PPL을 했는데 그게 적중을 한 거예요.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었죠. 1년도 안 돼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2003년 리얼컴퍼니, 2006년 세정과 미래의 전문경영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김 대표는 2008년 드디어 독립을 결심했다. 자신만의 캔버스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설립한 김 대표는 대표 브랜드로 미국 크라이슬러의 ‘지프’를 선택, 두 달 만에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오프로드를 마음껏 질주하는 지프의 강인한 브랜드 이미지에 김 대표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이 결합된 캐주얼 브랜드 지프는 출시 3년 만에 10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선스 브랜드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김 대표는 2014년 토종 패션 브랜드 ‘시에로’에 이어 최근 화장품 브랜드 ‘시에로 코스메틱’을 야심차게 선보였다. 자신이 직접 만든 K-패션 브랜드에 이어 K-뷰티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패션업계에 진출한 후 지금까지 수많은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이 주특기인 만큼 화장품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사업으로 구현하고 싶다는 김 대표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호텔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김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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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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