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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겸 한라그룹 회장 

아이스하키로 꽃피운 스포츠 경영 23년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꿈을 꾸고, 꿈을 믿고, 그 꿈을 실현하라.’(Dream it, believe it, and just do it.) 한라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인영 회장이 늘 강조하던 말이다. 정몽원(62) 한라그룹 회장 겸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 선친의 뜻을 받들어 큰일을 해냈다. 등록선수가 233명뿐인 한국의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세계 16강이 겨루는 ‘월드 챔피언십(1부리그)’에 진출한 것이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23년 동안 준비하고 투자해온 정 회장의 뜨거운 열정과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아이스하키를 통해 큰 성취를 경험하고 한라그룹 임직원들을 하나로 묶어낸 정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도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하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한국아이스하키팀의 1부리그 진출에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23년 동안 준비하고 투자해온 정 회장의 뜨거운 열정과 아이디어가 있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2부리그인 디비전1 그룹A 소속이었다. 2부리그 소속 6개국이 지난 4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모였다. 풀리그를 벌여 상위 두 팀이 1부리그로 올라가는 대회가 열렸다. 5개국은 모두 한국보다 세계랭킹이 높았다. 한국은 폴란드·카자흐스탄·헝가리를 연파했지만 오스트리아에 덜미를 잡혔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인 정몽원 회장도 이번 대회 전 일정을 선수단과 함께했다. 선수들이 묵는 3성급 호텔에서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었다. 경기 당일에는 벤치에서 선수들이 마실 물을 미리 손수 준비하기도 했다.

운명의 그날,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 걸린 우크라이나와의 마지막 경기는 4월29일에 열렸다. 정 회장은 평소보다 세 배 많은(액수는 모른다) 팁을 침대에 놓아두고 호텔 방을 나섰다.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주위의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갔다. 큰일을 앞두고 주위에 덕을 쌓고, 원망 들을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정 회장은 대회 기간에는 면(麵)류를 절대 먹지 않는다. 국수가 뚝뚝 끊어지듯이 경기 흐름이 끊어지면 안 되고, 경기를 ‘말아먹어도’ 안 되기 때문이란다.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에서 파생한 일종의 징크스인데, 그만큼 정 회장이 간절하고 절박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1-1로 비긴 뒤 축구의 승부차기와 비슷한 슛아웃(1명씩 퍽을 몰고 나가 슈팅을 하는 것)에서 2-0으로 극적으로 승리했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이 떠들썩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5월12일, 서울 잠실의 한라그룹 사옥에서 정몽원 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기업 경영과 관련해서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스하키 얘기만 한다’는 합의 하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사옥 입구에는 ‘축 한국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 진출!’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부리그 승격 순간 펑펑 울었어요”


▎정몽원 회장이 인천공항에서 1부리그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했다.
우크라이나를 꺾고 톱 디비전(1부리그)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부터 물었다. “감격이죠 뭐.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어요. 옛날 생각도 좍 나고. 첫 경기인 폴란드전을 앞두고 백지선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시라고 했어요. 선수들이 빙 둘러선 링크에서 ‘이번 대회 출전 팀 중에 올림픽에 나가는 건 우리밖에 없다. 겁내지 말고, 두려움 없이 너희 하던 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한번 해 보자’ 그 얘기만 했어요. 모두가 똘똘 뭉쳐 기적을 만든 거죠. 특히 백지선 감독과 박용수 코치 역할이 컸습니다. 그 카리스마 넘치는 백 감독도 마지막 슛아웃 장면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승격 확정 순간에 저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정 회장은 한국의 톱 디비전 진출을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르네 파젤 IIHF 회장이었다.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연주된 뒤 파젤 회장은 빙판을 가로질러 한국 팀 벤치로 달려와서는 정 회장에게 “정말 축하합니다. 내 체면을 세워줘서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했다.

파젤 회장은 한국 아이스하키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받은 이탈리아가 큰 스코어 차로 전패했다. 그 이후 IIHF는 올림픽 개최국일지라도 자동 출전권을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한국이 2014년 4월에 경기도 고양에서 2부리그 대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그만 한국이 5전 전패로 꼴찌를 해 3부리그로 강등됐다. 당시 파젤 회장은 ‘(한국팀에 대한) 마지막 충고’라며 세 가지를 말했다.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라. 외국인 선수 7명을 데려와라. 골리(골키퍼) 1명, 수비수 3명, 공격수 3명이다. 그리고 아이스하키에 얼마나 투자할지 계획서를 내라.”

정 회장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 짐 팩(백지선) 감독을 영입했다. 서울 태생으로 미국 국적인 백 감독은 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린 세계적인 수비수였다. NHL 공격수 출신인 박용수 코치도 모셔왔다. 캐나다·미국 등에서 7명의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켰고, 2500만 달러 규모의 예산 계획서를 냈다. 그러자 IIHF는 2014년 9월에 한국의 올림픽 출전을 최종 승인했다. 파젤 회장으로서는 자신의 충고와 제안을 100% 수용한 뒤 전력이 급상승해 1부리그까지 승격한 한국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라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만도다. 아이스하키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라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부품’이 들어갔는지 물었다. 정 회장은 “저희가 제조업체인데, 제조업에는 ‘4M’(Man·Machine·Method·Meterial)이란 게 있어요. 이번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놓고 보면 Man(사람)은 감독과 코치, Meterial(원료)은 선수들, Machine(기계)은 그 중에서도 귀화한 외국 선수들, Method(공정)는 팀워크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전문성과 디테일이 리더십의 요체


▎백지선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하는 정몽원 회장.
정 회장은 르네 파젤 회장의 조언 외에도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관철시켰다. 대표적인 게 핀란드 아이스하키 2부리그 구단 키에코 완타를 사들여 유망주를 현지에서 조련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마지막 슛아웃을 성공시킨 신상훈(24)과 이번 대회 2골을 넣은 안진휘(25)가 핀란드에서 기량이 급상승한 선수들이다. 이처럼 정 회장의 열정과 결단력은 탁월한 성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기업 경영에 접목할 수 있을까. 정 회장은 ‘경영의 개방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공통의 목표와 공감’이라는 세가지 주제로 설명했다.

첫 번째로 경영의 개방성이다. “NHL 스타 출신 감독-코치와 선수를 영입해 선진 아이스하키를 접목시킨 게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과 자신감이 짧은 시간에 급속히 올라갔죠. 이번 대회에 귀화 선수 7명 중 2명은 불참, 1명은 부상으로 공백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한국이 넣은 14골 중에 11골을 국내 선수들이 해 줬어요. 조직은 폐쇄적이 되면 발전할 수 없죠.”


▎정몽원 회장은 아이스하키를 통한 스포츠경영으로 한라그룹 임직원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두 번째 요소인 리더십에 대해 정 회장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백지선-박용수 리더십은 세계 최고 아이스하키 무대를 경험한 전문성에 바탕한 점이 특징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걸 가르치니 입이 딱 벌어지죠. ‘상대 선수가 이렇게 나올 거니까 너는 이렇게 막아라’ 식으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가르칩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시킨 대로 해 보니까 되더라는 거죠. 백 감독은 이를 ‘마이크로 매니징’이라고 표현했어요. 뭔가를 많이 했는데도 성과가 안 나면 디테일에 문제가 있다고 백 감독이 말하더라고요. 제가 선수들에게 ‘오늘 게임 어떻게 돼?’ 물으면 ‘이깁니다’고 대답합니다. ‘왜 이겨?’라고 다시 물으면 ‘감독님이 이긴대요’라고 태연하게 답합니다. 전문성을 앞세운 리더십이 확실히 먹히는 거죠.”

동석한 양승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전무가 보충 설명을 했다. “우리 대표팀 전력분석관은 보스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아이스하키 선수로도 뛰었던 사무엘 김입니다. 그는 하루 종일 영상으로 상대 전력을 분석하고 그 정보를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합니다. 코칭스태프는 그걸 바탕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선수들에게 전달하죠. 선수들이 그걸 실행에 옮기면 그날 게임은 이기고, 실행에 못 옮기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그걸 실행에 옮기는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다음은 배려에 입각한 서번트(Servant) 리더십이다. 정 회장은 “선수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지도자의 리더십이죠. 선수들은 게임에만 전념해야 한다며 가방도 들어주고, 라커룸 정리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백 감독은 대표선수 명단 발표할 때 아쉽게 떨어진 친구를 먼저 부릅니다. ‘넌 참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 이게 좀 부족해. 이것만 보완하면 다음에 꼭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다독입니다. 희망을 주면서 동기를 끌어올리는 거죠.”

‘나를 따르라’ 식의 일방적인 리더십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조직원을 꼼짝 못하게 묶어둘 전문성, 세세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배려에 바탕한 리더십을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통해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 리더십을 그룹 경영에 접목하려 노력한다.

세 번째는 공감이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공통의 목표와 마음가짐이 성과로 이어졌다. 함께 바라보는 곳은 바로 ‘평창’이다. “2018년 2월9일 부터 25일까지 평창올림픽이 열립니다. 이게 제일 크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선수들에게 ‘우리 롤은 올림픽 잘 치르고, 성적 잘 내고, 올림픽 이후 한국이 아이스하키 강국·선진국이 되는 거다. 너희는 올림픽 때 몸값 올려서 끝나면 해외 가라. 많이 배우고, 축구 스타 박지성처럼 돈도 벌고, 청소년의 롤모델도 되어라. 대신 은퇴는 여기서 하고, 지도자가 되어서 가르쳐라’ 이렇게 말합니다. 선수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면서 몸도 마음도 달라졌지요.”

창업자의 뚝심과 검소한 성품 물려받아


▎정몽원 회장은 체육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지난해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했다. 왼쪽은 홍인화 여사.
정몽원 회장은 한라그룹을 일으킨 고(故) 정인영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선친이 현대양행을 설립하고 ‘중공업을 일으켜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새벽 3시부터 현장을 뛰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뿐만 아니라 정권을 가진 자들의 횡포와 일방적인 정책의 희생양으로 현대양행이 공중분해 되는 쓰라린 역사도 지켜봤다.

정인영 회장은 피땀을 쏟아 일군 현대양행 창원기계 공장을 신군부에게 빼앗기고도 현대양행 안양공장에서 다시 시작해 만도기계를 일으킨 오뚝이였다. 뿐만 아니라 1989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도 초인적인 재활 노력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휠체어를 타고 전 세계 사업장을 누빈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이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선친의 뚝심과 검소한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정 회장은 만도기계 사장이던 1994년 실업 아이스하키 팀 ‘만도 위니아(현 안양 한라)’를 창단한다. 사내 과장·대리 등으로 구성된 영 보드(young board)가 주력 제품인 에어컨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며 아이스하키 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정 회장도 찬성했다. 선친이 ‘찬바람 나오는 건 뭐든지 다 하라!’고 한 말씀도 작용했다고 한다.

솔직히 회사 수지만 놓고 본다면 답이 없는 팀이었다. 1997년 1월 한라그룹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에게 그해 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눈물을 머금고 알짜 계열사들을 줄줄이 매각해야 했다. 당시 실업 아이스하키 4개 팀 중 한라를 제외한 3곳이 팀을 해체했다. 정 회장은 “솔직히 팀을 해체할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죠. 그런데 팀이 해체 위기에 몰리니까 이 친구들이 우승을 막 하는 겁니다. 어려운 시기에 아이스하키 팀을 통해 큰 희망과 기쁨을 얻었어요. 나름대로 스트레스도 풀고, 구성원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도 됐죠”라고 회고했다.

한라그룹 특유의 정도경영·개척정신도 23년간 아이스하키 팀을 유지하는 바탕이었다. “우리는 남이 안 하는 걸 하고, 해야 할 일이면 끝까지 한다는 정신이 있어요. 선친께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학여역수행주 부진즉퇴(學如逆水行舟 不進卽退)’ 즉 ‘학문하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다.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과 같다’ 입니다. 선친께선 ‘학(學) 대신에 사업(事業)을 넣어도 똑같다. 한번 하면 끝을 봐야지. 책임이 있지 않나’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선수들을 위해 직접 물을 준비하는 정몽원 회장. 서번트리더십을 실천하는 경영자다.
얼추 계산해도 23년간 한라그룹이 아이스하키에 투입한 비용을 합하면 1000억 원을 넘는다. 정 회장이 사재를 털어넣은 것도 적지 않다. 직원들은 오너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아이스하키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정 회장은 “아직도 그게 궁금해요”라며 껄껄 웃은 뒤 말을 이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오는 직원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 정말 하키가 좋아서 오는 걸까. 나한테 눈도장 찍으려고 저러는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어요.(웃음) 사실 숫자로만 계산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제 한라그룹 임직원들에게 아이스하키는 우리 회사 주가(株價)와 함께 두 개의 공통 관심사가 됐어요. 직원들을 결속시키는 큰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 회사만의 언어가 생겼다고 할까요! 많은 직원들이 ‘이번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월드챔피언십 진출은 한라그룹의 뚝심이 만든 쾌거’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그렇다면 아이스하키의 기적 같은 성과가 임직원들의 사기 앙양이라는 무형의 과실 외에 기업 성장에 실제적인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까. 정 회장은 “큰 기운이 느껴집니다. 반드시 한라그룹도 아이스하키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고 힘줘 말했다. “한라그룹은 건설과 자동차, 딱 두 개입니다. 그 동안 건설업이 워낙 어려웠는데 작년에 흑자 전환이 됐어요. 자동차는 메가 트렌드가 분명하고, 누가 선두주자라는 게 없어요. 우리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이쪽 분야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신시장을 개척해야죠.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네시아·파키스탄·이란·베트남 쪽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만도는 체인이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번 대선에서도 화두가 됐던 게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아닙니까. 어떤 식으로든 근로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보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는 레저 스포츠를 찾는 트렌드가 뚜렷해졌죠. 전기자전거를 포함해 레저 스포츠 쪽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세인트 포 등 골프장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 기준 만도는 1분기에 1조4300억원의 매출액과 60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5%, 영업이익은 8% 늘어났다. 한라의 올 1분기 매출은 420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6%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77억원으로 12.6%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16% 증가한 83억원을 기록했다. 주택사업 매출 확대와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실적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2013년 1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취임했다. 안양 한라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실업 아이스하키를 살리기 위해 아시아 리그를 만들었다. 지금은 한국 3팀(한라·하이원·대명), 일본 4팀, 러시아와 중국 각 1팀씩 모두 9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상무팀 유지, 전용경기장 설립 필요”


▎정몽원 회장은 “남북교류에 가장 좋은 종목이 아이스하키”라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4월 강릉 2017 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4차전 때 북한 선수들과 기념촬영 장면. / 사진제공·한라그룹
정 회장은 아시아 리그를 북미와 유럽이라는 양대 리그에 필적할 만한 제3의 시장으로 키우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내년 평창에 이어 2022 겨울올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립니다. 일본은 이미 두 번이나 겨울 올림픽을 개최했고요.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촉매 역할인데, 이번에 톱 디비전에 올라가면서 그 역할을 한 거죠. 파젤 IIHF 회장이 제게 ‘올 6월 아이스하키광(狂) 푸틴과 시진핑의 러·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아이스하키 수준 향상 아젠다가 논의된답니다. 미스터 정, 분명히 한국의 역할이 있을 겁니다’고 귀띔해 줬어요. 제 소망은 아시아 리그가 북미·유럽에 못지않는 새로운 리그로 발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떠오르는 게 북한이다. 정 회장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입장에서’ 말한다며 “남북교류에 가장 좋은 종목이 아이스하키입니다. 얼마 전에 강릉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경기가 열렸죠. 두 팀 수준이 비슷합니다. 남자는 우리가 좀 앞섭니다.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한·중·일 젊은이들이 모여 팀당 48경기를 하는 건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가 유일합니다. 거기 당연히 북한이 와야죠”라고 희망을 전했다.

정 회장은 마지막으로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역시 아이스하키 얘기였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가 발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상무팀 유지와 전용경기장 확보입니다. 우리는 일본에 비해 선수 숫자가 턱없이 적은데, 그나마 우수 자원들이 군 복무 기간에 스틱을 놓아버리면 참 힘들어집니다. 이번 국가대표 대부분이 상무에서 선수 생활을 유지했던 선수들입니다. 인프라 확충도 과제지요. 대표팀이 안양 한라 아이스링크에 훈련을 하러 갔는데 그 시간에 중학생들이 연습하고 있어서 기다린 적도 있어요. 정부가 상무팀 유지와 전용경기장 건립에 의지를 갖고 힘을 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몽원 회장은 끊임없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뤄 나갔다. 양승준 전무는 “이름에 꿈 몽(夢)자가 있어서인지 회장님은 꿈을 잘 꾸시는데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 쫓아가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꿈이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거죠”라며 웃었다.

한라그룹의 재계 순위는 36위(2016년 기준)다.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23위에서 16위로 올랐다. 한라그룹은 정몽원 회장의 ‘스포츠 경영’으로 큰 성과와 자신감을 얻었다. 정 회장 자신도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함께 하며 경영과 리더십의 영감을 얻었다. 내년 평창 올림픽과 월드 챔피언십을 통해 한라그룹이 글로벌 홍보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정몽원 회장이 이끄는 한라그룹의 순위는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706호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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