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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맏형' 4인의 특별한 송년 

그래도 우리는 웃는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송구영신(送舊迎新)엔 소망이 깃들어 있다. 힘들었던 옛 것을 이젠 잊고, 새롭고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포브스코리아는 새해엔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동력을 찾고 좋은 일자리도 마구 넘치길 희망한다. 지갑이 두둑해야 얼굴 표정이 좋아지는 법이다. 한 국가의 경제가 힘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량 기업이 늘어나는 일이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며 대기업 채용이 감소세에 접 어들었다. 공공분야 채용만으론 한계와 부담이 크다. 답은 벤처에 있다. 혁신 기술과 도전 정신 가득찬 벤처인들이 필요하다. 이들 이 마음껏 창업과 도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포브스코리아는 송년을 맞아 벤처 업계의 큰형 네 분을 모셨다. 이민화 카 이스트 교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 안건준 크루셀텍 대표다. 험난한 길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온 벤처인들이다. 이들로부터 각자의 성공과 실패담, 한국 벤처 기업의 현황과 위기, 그리고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왼쪽부터)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 벤처기업협회 회장,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
이민화 | 카이스트 교수


이민화는 한국 벤처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던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 조치법’, 코스닥 설립, 기술담보제, 스톡옵션제를 도입·정착시킨 주역이다.

대한민국 벤처 성공 신화 1호로 메디슨을 꼽는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가 1985년 설립한 초음파 진단기기 회사다.

회사는 말 그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국내 병원을 대상으로 시장을 확장하며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1990년에는 미국 FDA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1992년 미국을 비롯해 독일·러시아·중국에 해외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1995년 국내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의 70%, 세계 시장의 17% 이상을 점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액도 1989년 25억원에서 1994년에는 20배 가까이 성장한 476억원으로, 1995년에는 8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국 벤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 교수는 한국형 벤처 생태계를 구상했다. 다양한 분야의 벤처기업을 모아 ‘벤처 연방제’를 실현하겠다는 비전이었다. 하지만 기업 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데다 벤처 버블 붕괴가 시작된다. 결국 2001년 메디슨 연방은 무너진다.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이 교수는 2001년 10월 회사를 떠난다. 비록 메디슨 연방은 벤처 버블 붕괴로 무너졌지만 젊은 창업가들은 ‘제2의 이민화’가 되길 원했다.

그는 단순한 경영인이 아니었다. 그에게 ‘벤처 대부’ ‘벤처 선구자’ ‘벤처의 씨앗을 뿌린 인물’ 같은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있다.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의 기반을 닦았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 설립을 주도하며 초대 협회장을 역임했다. 국내 벤처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던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 조치법’을 비롯해 창업지원정책을 담은 벤처기업특별법은 세계 최초다. 한국 벤처산업이 나아갈 청사진을 그가 만들어 냈다. 2009년에는 초대 기업호민관을 맡아 중소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해소를 주도했다. 초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으로, 유라시안 네트워크와 디지털병원 수출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민화를 한국 벤처의 개척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2009년부터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벤처기업 육성과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아 고민하는 중이다. 이 교수에게 ‘메디슨 같은 기업을 다시 창업해 도전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회사는 만들지 않겠다”면서 “나는 더 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주도하고 있는 기관 중 하나가 창조경제연구회다. 이 교수는 이곳에서 한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과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아젠다를 제시하고 있다.

황철주 |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도전할 때 성취가 있다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항상 강조해 온 기업인이다.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에게 물었다. 사업하기도 바쁜데 왜 벤처기업을 위한 대외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서다. 그는 벤처기업협회장, 청년기업가정신재단과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황 대표는 “우리나라에 기업가 정신이 자리 잡고 확산되길 바라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무게가 대기업에서 중소벤처기업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6년 이후 11년째 2만 달러에 머물러 있는 ‘중진국 덫’에 갇힌 한국의 해답도 벤처기업 육성에 있다고 본다. 황 대표는 “지금은 사람도, 생각도, 시장도 바뀌었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의 수가 늘며 글로벌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주성 엔지니어링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다. 외국 제품들이 주를 이뤘던 반도체 장비 시장을 국산화하는 데 기여했다. 황 대표는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1986년 외국계 반도체 장비 회사에 입사한다. 엔지니어로 10년 가까이 반도체 장비 연구와 함께 노하우를 쌓았다. 그리고 세계 1등 반도체 장비 회사를 목표로 1995년 주성 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공급하며 신뢰를 쌓은 덕에 삼성전자와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1년 관계가 갑작스레 끊기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의 주성 엔지니어링을 구한 것은 기술이었다. 반도체 장비기술을 응용해 액정표시장치(LCD) 장비인 플라즈마 화학증착장비(PE CVD)를 개발해 2003년부터 LG디스플레이에 납품을 성사시킨다.

주성 엔지니어링은 2015년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반도체 호황으로 기업 설비 투자가 늘었다. 그리고 OLED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황 대표가 앞을 내다보고 준비한 투자가 들어맞은 셈이다. 주성 엔지니어링의 매출은 2015년 1700억원에서 2016년 2600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도체와 OLED 투자가 늘고 있어 당분간 회사는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황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누가 더 빨리, 새로운 것을 효율적으로 잘 만들어 시장에 내놓느냐가 관건”이라며 “창업자로서 힘들고 외롭고 두려워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속적인 R&D 투자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민우 | 다산 네트웍스 대표


남민우 대표는 자신을 4전 5기의 기업인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여러 번 회사 문을 닫을 뻔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부도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는 성공한 벤처인이 업계에서 해야할 일을 가장 잘하는 벤처인으로 꼽힌다. 사내 창업 제도를 통해 ‘파이어넷’과 같은 직원 창업을 도와주고 있다. 핸디소프트, 디엠씨, DYTS 등 외부 기업 M&A도 적극적이다. 출구가 없는 답답한 한국 벤처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몇 안되는 기업인이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와 현장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선도벤처연계지원사업을 통해 2011년부터 매년 2명 이상의 창업자와 연계해 창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장 시절엔 창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였고, 청년위원회 위원장 당시엔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기 위해 1만7000㎞를 이동하며 현장에서 1만3000명, 온라인에서 31만5000명의 의견을 들었다. 남 대표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산 네트웍스는 매출 7000억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이다. 1991년 사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남 대표는 자신을 4전5기의 기업인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만큼 여러 번 회사 문을 닫을 뻔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매번 그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부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대우자동차에 엔지니어로 지내다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1991년 ‘코리아레디시스템’을 세웠고 2년 후 사명을 다산 네트웍스의 전신인 ‘다산기연’으로 바꾼다. 이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자동차 부품, 엔지니어링, 소재 등 기업 간 거래(B2B)를 기반으로 다산 네트웍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남 대표는 “기업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배웠다”며 “우리가 사업 다각화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산 네트웍스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핸디소프트, 자동차 부품업체 디엠씨, 전자 소재 업체 솔루에타를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16년엔 글로벌 통신회사인 존테크놀로지를 사들였다. 한국의 코스닥 상장 기업이 미국 나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첫 사례다. 최근엔 람보르기니 설립자의 아들인 토니노 람보르기니와 함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내놨다. 11월 7일엔 중국에서 출시 행사도 열었다. 남 대표는 “기존 프리미엄 폰으로 만족 못하는 중국, 중동, 러시아 부호가 우리 고객이 될 것”이라며 “계속 변하며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건준 | 크루셜텍 대표 & 벤처기업협회 회장


안건준 회장은 1994년 크루셜텍을 창업했다. 두 번의 결정적 위기를 넘기고 연매출 3000억원대의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는 2001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하다 ‘삼성전자와 같은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며 일을 벌였다. 지난해 크루셜텍의 매출은 3200억원이다. 설립 15년 만에 굴지의 중견기업을 일으켜 세웠다. 2017년 2월에는 벤처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2년간 한국 벤처업계를 책임지게 됐다. 그는 벤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제안을 새로운 정부에 내놓고 있는 중이다. 그는 “매출 1000억원 하는 기업이 100개만 생겨도 나라 매출 10조원이 늘어난다”며 “일자리와 세금 등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고 말한다.

부산대 기계과를 졸업한 안 대표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1990년 입사해 1997년 퇴사를 택한 그는 ‘럭스텍’이라는 광통신 부품 기업의 최고기술경영자(CTO)로 근무했다. 4년 뒤 꿈을 이루기 위해 크루셜텍을 설립했다. 안 대표는 “창업했을 때부터 가장 큰 목표는 굿 컴퍼니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모든 임직원이 기업문화에 만족하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번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변신하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기업을 키웠다. 크루셜텍은 광통신으로 시작해 초소형 광마우스로 업종을 바꿨다. 기술 흐름에 맞춰 항상 융통성 있게 변신하며 살아남았다. 지금은 모바일 지문인식 모듈인 BTP(Biometric TrackPad)가 주력 제품이다. BTP가 스마트폰 핵심기술이 되자 2014년 734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32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삼성전자, 애플처럼 관련 기술을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업체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16개 고객사 83개 스마트폰에는 크루셜텍의 기술이 담겨 있다.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다. 지금도 다음 기술 트렌드를 읽으며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안 대표는 “2018년이면 우리 회사에서 주목할 만한 제품들이 나오는데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벤처기업협회장으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양한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이 당당하게 가치를 인정받고, 자본 회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원한다. 안 대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맞지 않고 한국 경제에 실익도 없다”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벤처 활성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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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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