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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창간 100주년 기념] 독일 장수 기업 DNA 

오래 사는 데엔 이유가 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독일에선 정부와 중소 기업이 호흡을 맞추며 전문 분야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기술 경쟁력이 높고 직원 재교육도 활발하다. 길드 문화 전통을 이어가며 새 것을 준비하고, 후계자 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독일 중소 기업의 모습에서 100년 기업의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독일산(Made in Germany)’이라는 원산지 표시는 1887년 등장한다. 품질이 떨어지는 독일산 제품을 구별하기 위해 영국 당국이 도입했다. 당시 독일은 후발 산업국이었다. 다양한 장인이 제품을 만들었지만 산업화 도입 시기가 영국보다 늦었다. 허술한 공장에서 나온 제품엔 불량품이 많았다. 독일산인지 모르고 구입한 소비자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나선 것이다. 130년이 지났다. 지금 독일산은 전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표시로 꼽힌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직원 10명 일하는 중소기업 제품도 존중 받는다. 독일 중소기업연구소 미하엘휘터 소장은 “지난 100년간 독일 산업계는 품질이 곧 생존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제품을 생산해왔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경제 대국이다. 유럽연합(EU)의 최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3위 수출국이다. 독일 산업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꼽히는 핵심동력이 있다. ‘미텔슈탄트’라고 불리는 중소기업군이다. 독일에는 400만 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전체 고용의 70%를 담당하는데, 기술력과 임금 수준, 복지 정도가 대기업에 버금간다. 미텔슈탄트는 독일이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하는 탄탄한 기반이다. 독일의 글로벌 마케팅 기업인 지몬-쿠어 & 파트너스의 헤르만 지몬 대표는 그 중에서도 탁월한 기업을 따로 뽑아 ‘히든 챔피언’으로 구분했다. 그는 독일 히든챔피언들은 특정 아이템에 대한 집중력, 혁신 노력, 리더의 목표의식, 글로벌 경영과 마케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의 첫 단추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팔려야 효자다. 독일 중소기업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깊은 노하우가 있다. 산업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독일은 지방 제후국들의 연합체다. 군소 국가 집단에서 시작했다. 헤르만 지몬 대표는 저서 ‘히든 챔피언 글로벌 원정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이에른 기업이 작센이나 뷔르템베르크와 거래하는 과정은 지금 이웃나라와의 무역과 유사했다. 관세와 현지 업체, 다른 유통 구조를 뚫어야 했다. 개방성과 국제화 역량이 수백년에 걸쳐 생성됐을 것이다.’

한국 중소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할때, 종종 범하는 실수가 있다. 시장 분석이다. 공대 출신 최고경영자(CEO)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만 집중한다. 품질에만 몰두하다 보니 하지만 누구에게 어떻게 팔것인지 예측과 전략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결국 재고가 쌓이며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독일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이 과정을 수백년간 몸에 익히며 기업을 이끌어온 전문가들이다.

기업 가치와 가족 경영에 대한 이해도 깊다. 독일 기업 중 헤르만 지몬이 말한 히든 챔피언은 1300개에 달한다. 대부분 100년 넘은 장수 기업이다. 대를 이어 가업을 이끌는 사례도 전체의 70%에 달한다. 독일 길드에선 할아버지의 공구를 물려 받는 전통이 있다. 처음부터 가업 참여를 운명이라고 보는 문화가 강하다. 히든 챔피언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수 가족기업들은 가족기업을 소유한 가문의 일원인 가족 구성원과 주주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를 철저하게 함으로써, 소유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왔다. 250년 전통의 필기구 기업 파버카스텔이 좋은 예다. 차기 CEO 희망자에게 3년의 기회를 준다. 외부 심사 위원회를 구성해 경영 능력을 평가한다. 불합격을 받으면 다음 후보자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헤르만 지몬은 독일 히든챔피언들은 특정 아이템에 대한 집중력, 혁신 노력, 리더의 목표의식, 글로벌 경영과 마케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동시에 형제들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경영 경쟁을 시킨다. 회사 내에 파벌이 생기고 법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까지 벌어지는 일이 있다. 공정한 기회를 주구 납득할 수 있느 방법으로 평가하는 문화가 한국에도 필요하다.

히든 챔피온에선 CEO의 평균 수명이 길다는 특징도 있다. 부즈&컴퍼니는 세계 증시에 상장된 기업 2500곳의 CEO 재직 기간을 조사한 바 있다. 평균 6.6년이 나왔다. 독일 히든 쳄피언 평균 근속 기간은 20년에 달한다. 한번 시키면 믿고 끝까지 함께 가는 문화가 강하다. 단기 실적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업을 바라 볼 수 있게 해준다. 돌다리를 두드려 가며 기업의 이익을 착실히 챙기기에 장수 기업으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독일 중소기업들은 지금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1위가 세계 1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중소기업이 시장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경영자, 자본, 기술력)의 경쟁자를 넘어 서야 한다. 마이클 포터는 다이아몬드 이론에서 “한 업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국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 기업의 발전을 이끈다”고 설명한다. 맥주 산업이 좋은 예다. 500년 전 바이에른 공국엔 1000곳이 넘는 양조장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더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경쟁 했다. 신기한 맛을 내기 위해 엽기적인 제조법까지 등장했다. 새의 깃털이나 소뼈, 쥐꼬리를 사용하는 곳까지 나왔다. 맥주 마시고 탈나는 사람이 늘자 바이에른 왕이 ‘물, 보리, 밀 이외의 재료는 불법’이라는 칙령을 내린다. 3가지 재료로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맛이 풍부한 독일산 밀맥주가 등장한 배경이다. 이때 살아 남은 맥주 업체들은 지금도 매년 10월이면 바이에른 뮌헨에 모여 축제를 연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다.

헤르만 지몬은 히든챔피언의 핵심 생존 전략으로 ‘집중과 깊이’를 여러번 강조했다. 협소한 시장에 집중해 깊이를 만들어 낸 기업은 경쟁자가 따라하기 어려운 유일무이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산업의 흐름을 살펴 다음 산업 단계에서 필수품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목표를 정하면 모든 역량을 집중해 파고든다. 한번의 기회를 살리면 장수 기업으로,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부품 하나만 만들어서는 회사를 키우기 어렵다. 가내 수공업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기술력 확보 다음 단계로 해외시장 진출이 꼽힌다. 먼저 독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다음 해외에 나가서 글로벌 기업들에게 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다.


▎독일 중소기업이 보유한 강력한 기술경쟁력의 뒷심은 체계적인 기술인력 육성제도에서 나온다.
이과정에서 독일 히든 챔피언의 또 다른 특징이 나온다. 이들은 제 3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영업 활동을 한다. 헤르만 지몬 대표는 “독일 히든챔피언의 고객친화성은 대기업의 5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에게는 놓칠 고객이 하나도 없다. 자주 만나 생각을 나눠야 산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이해해야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잇다. 이렇게 만족도를 높여야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좋은 예다. 벤츠나 BMW 같은 기업의 핵심 부품은 보쉬에서 개발한다. 보쉬는 수 많은 부품 기업에 제품을 주문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중소 기업은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벤츠를 같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유럽 최대 전략 컨설팅 회사인 롤랜드버거의 버커드 셴커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독일은 동종 업계 사람들끼리 서로 동업자라 생각하는 길드 정신이 강하다”며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연구 쪽은 대기업이, 실제 개발은 중소기업이 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이 필요하다. 독일 기업은 정부와 함께 탁월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은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강력한 기술경쟁력의 뒷심은 체계적인 기술인력 육성제도에서 나온다. 독일 전체 직업훈련생의 82.4%가 중소기업을 통해 훈련받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본격적인 재교육이 시작된다. 본인이 원하는 교육 기관에서 신기술을 배울 길도 열려 있다.

수 천가지 자격증, 그리고 장인을 우대하는 마이스터 제도도 독일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격증과 경력이 오를수록 임금도 올라간다. 한국 정부가 2014년 도입한 일학습병행제는 독일 직장인 교육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독일에 장수기업이 많은 마지막 이유는 합리적인 승계 제도다. 예컨대 2008년 개정된 독일의 상속세제는 중소기업의 가업상속 부담을 크게 낮췄다. 가업상속 후 경영기간과 고용유지 규모에 따라 가업상속자산의 85~100%를 한도 제한 없이 공제한다. 가업상속 후 5년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 지급액의 400% 이상이면 85%를 공제하고, 7년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지급액의 700% 이상이면 100%를 공제하는 식이다. 기업의 역할은 지역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정부와 기업이 호흡을 맞추며 전문 분야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기술 경쟁력이 높고 직원 재교육도 활발하다. 길드 문화 전통을 이어가며 새 것을 준비하는 독일 중소 기업의 모습에서 100년 기업의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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