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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 이명우 동원산업 대표 

교감 속에 존경이 싹텄고 존경은 동행으로 이어졌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5살 차이지만 대화에서 존경심이 배어나온다. 서로의 장점을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한 지 어느덧 20년 세월이다. 김종훈(70) 한미글로벌 회장과 이명우(65) 동원산업 대표는 “이젠 굳이 ‘튜닝(주파수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동행자”라고 말했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왼쪽)과 이명우 동원산업 대표는 20년 지기다. CEO 모임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장점에 반한 두 사람은 교감하고 존경하며 경영뿐 아니라 재능기부에도 동행한다.
첫 만남은 삼성전자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이명우 대표가 2001년 소니코리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다. 한국CEO포럼에서 대면한 두 사람은 이후 SERI CEO 뮤직&컬처 소모임, 삼목회(서울 강남지역 CEO 모임) 등을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대학(서울대) 선후배 사이에 삼성그룹 근무까지 겹치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늘었다. 그러나 교류 초기엔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많은 CEO 중 한 명, 즉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우정은 2009년 11월 ‘CEO 지식 나눔’ 설립에 발기인으로 함께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사회 각 분야 리더들이 축적한 노하우를 학교·기업에 나누는 일종의 사회공헌 단체이다. 당시 큰 후원자였던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이 대표를 적극 추천해 합류시켰다. 이후 부부 동반으로 음악회도 가고, 골프도 치면서 우정은 결이 쌓였다.

지난 2월 13일 서울 강남의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볼매남(볼수록 매력 있는 남자)’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성장 과정도, 사업 분야도 달랐지만 서로 말이 잘 통한다. 이 대표는 네트워크 형성, 소통 능력이 좋아 주변에서 신뢰가 두텁고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저와 달리 김 회장은 몇 수를 먼저 내다본다. 최근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 기업 승계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기업가의 롤 모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소통에 주력

두 사람은 만남이 잦아질수록 ‘비슷함’을 느꼈다고 한다. 가장 큰 공통점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소통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미글로벌이 꾸준한 매출 상승을 보이는 것은 직원·시장을 향한 김 회장의 소통 능력 덕분”이라며 “그는 저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 제목처럼 직원들에게 천국과 같은 직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사업 파트너와 주주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국내 CM(건설사업관리) 사업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CM이란 건설사업의 기획·설계 단계에서부터 발주·시공·유지·관리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분야다. 서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지켜본 그는 1996년 삼성물산에서 나와 한미건설기술(현 한미 글로벌)을 설립했다. 2017년 말 기준 아프리카와 중동에 이르기까지 54개국에 진출했고 수행한 국내외 프로젝트만 2000개가 넘는다. 건설사 등 공급자 위주의 한국 건설산업이 발주자 위주로 재편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김 회장이 기업가의 롤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는 사세 확장뿐 아니라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한 구성원이 탁월한 기업을 만든다’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소통 채널, 탄력근무제, 육아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소통은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고, 한미글로벌의 기업가치도 꾸준히 올려놓았다.

이어지는 극찬에 손사래를 치던 김 회장은 “요즘엔 오히려 이 대표에게서 소통에 대한 CEO의 의지와 열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산업 대표 취임 후 이어지고 있는 ‘명절 출장’ 이야기다. 이 대표는 설·추석 명절이면 자신의 연휴를 반납하고 선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태평양·대서양·인도양 등으로 출장을 떠난다. 이번에도 인터뷰 직후 7박 8일 일정으로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인 동원선단을 찾는다.

이 대표는 “동원산업 비즈니스는 크게 원양어업과 식품유통, 물류 세 분야로 나뉘는데 원양어업이 우리 사업의 시작이자 본류”라며 “원양선단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 또한 15년 동안 해외주재원으로 있으면서 명절 때마다 어머니와 고향을 생각했다. 우리 선원들도 똑같을 것”이라며 “결국 모든 비즈니스의 출발과 끝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소통이 실적보다 우선’이라는 게 두 사람의 공통 인식이다. 이 대표는 “경영에서 숫자는 열심히 하면 따라온다. 정해놓고 거기에 목메는 게 아니다”라며 “한 번 정도는 그 숫자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파이프라인(프로젝트)을 만드는 것이다. 그 파이프라인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직원·파트너들과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창업자·전문경영인의 교학상장(敎學相長)


▎김종훈 회장과 이명우 대표가 서울 강남 한미글로벌 본사의 소원나무에 소망카드를 걸었다. 김 회장은 행복경영 전도사답게 ‘올해는 더욱 행복합시다’를, 이 대표는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개듯이 사회의 어려운 일들이 말끔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운권천청(雲捲天晴)’을 썼다.
두 사람의 이력만 보면 궤적은 상당히 다르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의 김 회장은 한라건설·삼성물산에서 경험을 쌓은 후 1996년 창업에 나섰다. 40년 넘게 ‘건설’이라는 한 분야에만 천착했다. 반면 2001년 미주통합법인 가전부문장을 끝으로 삼성전자에서 퇴사한 이 대표는 소니코리아(전자)·한국코카콜라보틀링(식음료)을 거쳐 2014년 동원산업(수산·유통) 대표로 취임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경영인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파는 제품이 무엇이든 경영자의 ‘일 머리’는 같다고 본다”며 “업의 개념을 파악하고 나의 고객·경쟁자가 누구인지 조사하며, 남과 다른 혁신 마인드를 갖추려 노력하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조직 관리와 비전 제시에 나서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대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운다”고 말했다. 이른바 교학상장(敎學相長),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학생이 되는 관계라는 뜻이다. 김 회장은 “이 대표가 삼성전자 미주법인에 있다가 소니코리아 대표로 옮긴 것은 당시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를 ‘도전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다양한 기업에서 ‘콜’이 올 때마다 이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잠시 교수생활을 하던 이 대표는 동원산업의 제의에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안주하지 않는 자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김 회장은 업의 개념을 잘 파악해 기업을 키웠고, 오너 일가 소유가 아닌 전문경영인 승계를 고민하고 있으며,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사회에 나눌 줄 아는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2010년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을 설립하고 국내외에서 장애인 거주 공간을 개선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 김 회장의 나눔 DNA는 이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전파됐다. 이 대표는 서점가에서 화제를 모았던 저서 『적의 칼로 싸워라』의 인세를 몸담았던 한양대에 기부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실천하고 있는 것도 김 회장에게 배울 점이다. 이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나 설악산 가서 몇 달 있다 오겠습니다’라는 김 대표의 전화가 왔다. 자신에게도 안식년을 준 것”이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도 부럽지만 이를 직원들과 함께 누리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했다.

배움을 향한 열정도 서로를 자극한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이 대표는 199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 진학해 MBA를 취득했다. 이어 2010년부터 3년 반 동안 한양대 경영대에서 풀타임으로 강의했고, 포스코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철강 산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김 회장도 지지 않는다. 서강대에서 MBA를 마친 그는 지난해 서울대 공과대학원에서 최고령 건축학 박사를 받았다. 최근엔 블록체인 공부에 빠져 있다.

일흔 나이에도 늘 초심 떠올려

최근 두 기업의 비즈니스는 확실한 상승세를 탔다.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11월 사우디 국영 부동산 개발회사 아카리아와 합작 투자해 설립한 ‘아카리아한미’의 성과가 눈에 띈다. 지난 연말과 올 초 연달아 수주에 성공하면서 리야드·제다 지역에서 총 13개 프로젝트의 건설 사업관리를 담당하게 됐다. 김 회장은 “한국 정부가 사우디 원전을 수주하게 되면 우리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3건의 인수합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산업도 글로벌화에 속도가 붙었다. 수산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혁신을 앞세운 전문경영인을 대표로 영입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과감한 투자로 최신 장비를 갖춘 어선을 도입하고 조업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며 매출과 영업이익을 끌어올렸다. 동원산업은 지난해 매출 2조4110억원을 올리며 전년 대비 52%나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232억원으로 47% 늘었다. 지난해 동부익스프레스를 자회사로 인수하면서 물류 사업이 성장한 것도 매출과 이익증가를 뒷받침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들은 겸손하려고 노력한다. 이 대표는 “요즘도 출근길에 ‘내가 이 회사 사장으로 일하면서 다른 분이 사장으로 있는 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초심을 다지곤 한다”며 “50대 초반만 해도 ‘다음엔 어떤 자리에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요즘엔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가 화두”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안달하는 직장, 구성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창업 초기를 늘 되새긴다”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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