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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바스프 

현대 인류의 삶을 바꿔온 화학 솔루션 기업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독일의 기술 전통은 화학제품 개발과 더불어 시작했다. 제조업 재료의 자재 중심 산업으로 대다수는 기계, 섬유, 건설, 포장재, 자동차 제조 분야와 연계돼 있다. 매출 기준으로 독일 화학산업은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4대 규모를 자랑하며 주요 수출국 중 하나다. 153년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화학소재 기업 BASF(이하 바스프)는 근현대산업의 격동기에 인류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업 중 하나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공장 전경. 규모만 10㎢에 이른다. / 사진:바스프
“화학산업은 보수적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실은 과학에 기반한 매우 현대적인 산업입니다.” 1월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가 운을 뗐다. 그는 “바스프의 핵심 소비재 기술은 인류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며 “사회의 동향과 요구 사항을 때에 따라 파악하고 연구 및 개발을 통한 솔루션을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1865년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서 시작한 바스프는 세계 1위 화학 소재 기업이다. 석유, 가스뿐만 아니라 스티로폼, 자외선 차단제의 피부보호 필터, 배기가스 정화 촉매, 기저귀 수분 흡수재 등을 생산한다. 5개 사업 분야와 13개 사업 부문으로 바스프는 전 세계 직원만 약 11만 4000여 명, 80여 개의 자회사가 있다. 2016년 한해 순매출 575억 5000만 유로, 영업이익(EBIT)은 62억 7500만 유로를 달성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바스프의 첫 도약은 합성 염료(인디고)를 대량 생산하면서였다. 합성 인디고는 청바지의 파란색을 내는 염료다. 당시 천연물감은 비싸서 소수의 사람들만 살 수 있었다. 바스프는 합성염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디고 색소를 수입하던 독일은 바스프의 대량생산 6년 후 동일한 규모의 합성 인디고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이 덕분에 바스프는 1900년대 전후 최대 화학 제조사로 부상했다. 현대에 이른 바스프 솔루션 제품들은 이런 맥락에서 혁신적이다.

단열재 부문도 바스프가 단연 으뜸이다. 1951년 발포성 폴리스티렌(EPS)인 스티로폼의 최초 개발은 바스프였다. 바스프 제품의 고유명사인 스티로폼은 사람들에게 관련 소재를 표현하는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다. 1998년 개발된 슈퍼 단열재 네오폴은 스티로폼을 친환경 고성능으로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특수 그라파이트(흑연) 입자를 포함하고 있어 은회색을 띠는 네오폴은 기존 단열재보다 20% 이상 향상된 단열 성능을 자랑한다. 연료 절감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

1960년대 경량화 제품으로 자동차 산업에 변화


▎바스프는 환경과 안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제시한다. 바스프 군산 공장 엔지니어가 식용 건조기에서 계측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 사진:바스프
바소텍(Basotect)은 탁월한 흡음력과 단열로 각종 건축물 및 운송 수단에 쓰이는 첨단 소재다. 콘서트 홀, 호텔 로비 등 소음 차단이 필요한 곳에 미관상으로도 뛰어난 설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2017년에는 ‘고요함’을 주제로 바소텍을 활용한 설치작품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아디다스의 러닝화 부스트(Boost) 시리즈는 바스프와 협업해 탄생했다. 바스프의 풋웨어(footwear) 솔루션인 인피너지(Infinergy)는 열가소성 폴리우레탄을 고온에서 발포시킨 ‘폼’으로 러닝화의 신발 창에 사용됐다. 이 제품은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란 슬로건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신축성과 탄력성이 뛰어난 폴리우레탄 폼 알갱이들이 운동할 때 수천 개의 에너지 캡슐로 작용해 발이 지면에 닿을 때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강한 탄력으로 더 가볍고 빠르게 뛰는 데 도움을 준다.

바스프는 현대 산업의 주축이 된 자동차 발전과도 역사를 함께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가장 많이 타기 시작한 1920년대, 추운 날씨에 차량 냉각수가 자꾸 얼어붙자 1929년 부동액인 글리산틴을 시장에 출시했다. 오늘날 유럽의 가장 잘 팔리는 엔진 냉각수다. 이 외에도 바스프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스페셜티 폼, 코팅제, 안료, 촉매, 차축 및 연료 첨가제, 배출 유연제, 냉각수, 브레이크액, 배터리 소재 등 자동차 관련 업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학 제품을 공급한 회사이기도 하다.

가벼움. 바스프는 제품 경량화에 크게 기여한 기업이다. 플라스틱은 소비자들에게 제품 개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왔다. 바스프는 1960년대 이후 플라스틱을 경량화의 구성 요소로 자동차 내, 외관에 활용하며 자동차 산업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 차체 경량을 위해 플라스틱 소재를 쓰려는 회사에 50년 전에 개발된 폴리아마이드(나일론, 기모 원단의 재료)의 강도를 높여 공급하기도 했다.

경제 실적은 환경 이슈를 앞설 수 없다


▎바스프는 캡슐 커피가 폐기물로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썩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를 개발했다. 바스프의 이코비오(ecovio)로 만든 세계 최초 커피 캡슐.
바스프는 지금 자동차 산업의 미래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배기가스 감소, 열관리, 전자동, 경량화, 연료 효율성을 위한 혁신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현대자동차나 BMW 등 전 세계 자동차 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선진국들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바스프는 앞으로 글로벌 이차전지 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2008년부터 배터리 소재 기술을 확보하며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스프는 이 분야에 4억 유로(약 5228억원)를 투자, 유럽에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음극재는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4대 구성 요소 중 하나다.

“바스프는 현대 산업화에 기여하면서도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사회적 책임을 위한 친환경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신우성 대표는 환경에 대한 ‘타협’은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바스프는 경제, 사회, 환경적 측면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지원하고 있다.

20세기 전반 연기가 자욱한 굴뚝은 경제적 성장을 의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각성이 전반적으로 일었다. 화학산업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바스프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바스프는 일련의 조치들을 단행했다. 1964년 잔여물 소각을 위한 회전로, 1974년 폐수 처리 공장, 1988년엔 중앙 발전소의 연도 가스 탈황 시설을 설립했다. 1985년 바스프는 처음으로 환경 가이드라인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는 전 세계 바스프 회사에 적용된다. 경제적 실적보다 환경 보호가 먼저였다.

에너지 효율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10년부터 증기 보일러를 시작으로 열 회수를 사용했다. 방출된 공정열을 증기로 변환하고 이를 에너지로 공장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을 더해 갔다. 1997년부터는 고효율의 열병합 발전소에서 가스 및 증기 터빈을 사용했다. 증기 수요의 약 50%가 잔여물 소각으로 인한 폐열과 에너지로 충당된다.

비용이 편리한 캡슐 커피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로 남는다. 바스프는 자연에서 스스로 썩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인 이코비오(ecovio)를 제시했다. 이코비오 원료의 커피 캡슐은 세계 최초 생분해성 커피 캡슐로 인증 받았다. 또 해안과 하천 주변에 있는 자연제방의 침식을 막기 위해 고안된 해안보호 솔루션(엘라스토코스트, Elastocoast)도 친환경 솔루션 연구의 결과물이다.

생산 과정에서도 환경을 고려했다. 2014년 버지니아 서폭의 공장을 포함, 2016년 영국 브래드포드에 신설한 공장 모두 생산공정을 현대적인 효소 기반의 공정으로 전환했다.

바스프는 R&D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기업 중 하나다. 신우성 대표는 바스프의 성장은 ‘점진적인 혁신’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것을 개선해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며 “연구 결과로 이뤄진 점진적 혁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크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혁신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화학산업은 이미 독일의 3대 혁신 분야다. 독일 화학기업의 평균 연구비용 지출 규모가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연간 R&D 투자규모만 90억 유로에 이른다. 바스프는 매출의 15%가량을 R&D에 투자한다.

바스프 내에만 전체 인원의 10%에 해당하는 1만여 명의 R&D 인력이 있고, 600여 개 대학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경쟁사보다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신규 시장을 창출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설립 당시부터 바스프는 각 대학과 연구소를 찾아가 실험실에서 발명된 기술을 어떻게 상용화할지 고민했다. 신 대표가 덧붙였다. “R&D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DNA가 일찍이 기업에 정착되어 있는 것이죠.”

점진적 혁신은 R&D에서 시작됐다


▎바스프가 만든 솔루션 제품 앞에 선 신우성 한국바스프 대표. / 사진:전민규 기자
바스프의 아시아 지역 전략도 연구에 대한 투자로 확산됐다. 5년 동안 바스프는 한국과 중국, 인도, 일본에 주요 R&D센터를 설립했고 2016년 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만 약 1100명의 R&D역량을 보유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바스프 R&D 센터는 자원 효율성, 식량 및 영양, 삶의 질과 관련된 당면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솔루션 개발을 연구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2013년 바스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자 소재 사업본부를 서울에 설립했다. 2014년엔 경기도 수원에 아태지역 전자소재 R&D센터를 개소했다. 2017년 초 글로벌 디스플레이 조직을 서울로 이전한 데 이어 제조역량까지 갖춰 전자 업계를 위한 통합 허브를 구축했다.

2016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바스프 매출은 122억 유로였고, 영업이익은 전해에 비해 147% 증가한 10억 9800만 유로를 기록했다.

한국바스프는 1954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래 국내 ‘톱10’ 화학기업으로 성장했다. 여수, 울산, 군산, 안산, 예산에 7개의 세계적인 규모의 생산시설과 수원의 전자소재 R&D센터, 동탄, 안산, 시흥에 4곳의 테크놀로지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유일 여수 울트라손 공장에서만 연간 생산량 6천 톤 규모의 고내열 고기능성 특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한다. 중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에 주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바스프는 2017년 9억불 수출탑을 수상 했다. 신 대표는 “7억불 수출탑 수상 이후 1년 만에 경신한 것으로 한국 내 바스프에 의미 있는 성과”라고 했다.

바스프는 한국에 진출한 이래 꾸준한 투자로 국내외 시장에서 고품질의 안정적인 공급을 인정받고, IMF 금융위기나 세계경제 위기에도 투자를 유지 혹은 확대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불안한 경제 여건에서도 자동차, 건설 및 전자산업 등 한국 산업 성장에 따른 수요에 대응해왔고,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6년 한국바스프는 매출 1조7609억원을 기록했다.

경쟁력 뒤처지면 과감히 접어

바스프는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연하다. 때론 과감하게 접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협업했다. 바스프의 시도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신우성 대표는 “바스프는 변화와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제품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지, 시장이 원하는지, 적용 가능한 더 좋은 기술은 없는지 끊임없이 묻는다”며 “이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뒤처질 것으로 보이는 제품은 과감히 정리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들이 등장한 1990년대에는 관련 소비재 산업을 정리했다. 2012년 화학비료 사업을 매각한 뒤로 인디고 염료 제품도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환경의 변화와 시대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화장품·기저귀의 기초 원료, 전기차용 2차 전지 산업 등 신산업에 진출했고, 세계적 소비재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내수와 수출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바스프 기업 내부적으론 이미 혁신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바스프 4.0 프로젝트팀’을 조직해 디지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집약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효율적이며 안전한 생산을 목표로 바스프 생산공장에 디지털 기술과 응용 프로그램을 구현한 ‘증강현실’ 프로젝트는 현장 근무 직원들이 업무 시 언제든 태블릿 장비를 이용해 디지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신우성 대표는 화학산업에서 트렌드의 답은 ‘솔루션’에 있다고 답했다.

“세계 인구 증가와 물자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겠지만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습니다.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100억 명에 달하고, 그중 70%는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되지요. 바스프는 거시적인 변화가 가져올 도전 과제들을 화학산업 분야의 또 다른 기회로 인식해왔습니다. 식량과 농업, 에너지와 자원부터 건설 및 주택, 교통과 전지 전자 분야까지 최첨단 화학기술을 통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계속 매진할 것입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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