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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하스 ARM IP그룹 총괄책임자 겸 수석부사장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ARM 

김영문 기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50수 앞을 미리 보고 던진 승부수”라며 투자를 자화자찬한 회사가 있다. 영국 모바일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다. 다들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만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이 회사는 순전히 ‘머리(?)’로만 먹고산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또 다른 혁신을 꾀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 6월 르네 하스 ARM IP그룹 총괄책임자 겸 수석부사장이 대만 컴퓨텍스 행사에서 발표자로 나섰다. / 사진:ARM 제공
삼성전자가 고민에 빠졌다. 모바일용 그래픽처리장치(GPU) 계약 연장 여부 탓이다. 지난 2015년 삼성전자는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과 GPU 설계도 활용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ARM의 그래픽 칩 브랜드 말리(Mali)의 설계도를 갤럭시 스마트폰에 적용하고 있다. ARM과 계약 연장을 고민하고 있다지만, 사실 갤럭시가 세상에 나오려면 ARM 없이는 불가능하다.

ARM은 이미 전 세계 모바일 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거의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가 이 회사의 칩 설계도를 가져다 쓴다. 삼성전자는 물론 애플, 퀄컴, 화웨이, 샤오미 등 예외는 없다. ARM의 기본 설계도를 사서 자사 제품에 맞게 반도체를 개발하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2016년 7월 가치를 알아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234억 파운드(약 34조원)나 들여 ARM을 사들였다.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이하 IP)의 힘이었다. 삼성전자도 2010년부터 유명 반도체 인력을 스카우트해 관련 부서에 배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ARM은 삼성전자의 ‘독립’ 의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앞으로도 IP로 전 세계 모바일 시장을 주무를 수 있을까. 지난 7월 현재 ARM IP그룹 총괄책임자 겸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는 르네 하스가 답해줬다. 그는 세계 최대 그래픽카드 생산 업체인 엔비디아에서 7년간 부사장으로서 기술 분야를 총괄했던 베테랑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IT 기업이 독자 개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ARM에도 도움이 된다. 컴퓨팅에 필요한 표준 아키텍처 생태계 구축에 힘이 될 수 있다. 독자개발 의지를 다지는 이들 모두 현재 ARM의 고객이기도 하다. 개발 과정에서 ARM은 고객이 실험에 나서거나 혁신을 꾀하고자 할 때 도움을 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뿐 아니라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사운드, 컨트롤러 등 시스템온칩(SoC) 등 사실 회사마다 완제품의 형태가 다르다. 업계가 변화하고 또 다른 혁신을 꾀하겠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셋으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모뎀, 비디오처리장치(VPU) 등이 하나로 통합된, 모바일 기기의 ‘두뇌’에 해당한다.

ARM의 역할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지 않나?

ARM의 기술은 이미 전 세계 시장의 70% 이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35년까지 1조 개 커넥티드 디바이스를 구현하겠다는 ARM의 비전도 이런 사실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다. 단순히 칩 설계도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세상을 좀 더 쉽게 열고, 여기서 얻는 데이터로 사업도 벌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담당 업무를 자세히 설명해달라.


IP그룹은 자사 제품인 코어텍스(Cortex) CPU, 말리 GPU, 비디오 및 디스플레이 프로세서, 트러스트존(TrustZone), 크립토셀(Cryptocell), 카이겐(Kigen) 등 각종 보안 IP, 코어링크(CoreLink)와 같은 시스템 IP 등을 개발해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반도체 회사에 제공한다. 더불어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각종 소프트웨어도 개발해주고, 비영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기업인 리나로(Linaro)와 함께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한 각종 서비스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그간 파트너사가 ARM의 기술을 활용해 내놓은 제품만 1200억 개(누계)가 넘는다.

사업 모델은 이렇다. 이런 반도체 IP를 라이선스(인증) 형태로 파트너사에 제공하고, 그 IP를 사용한 완제품 반도체가 시장에 나오면 그때 로열티를 받는 식이다. 단순히 기술만 넘겼다고 돈을 받는 게 아니다. 실제 시장에 완제품이 성공적으로 출시돼야 하기에 ‘윈-윈(win-win)’ 형태의 비즈니스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기술을 공유한다는 얘기인데, 어떤 식인가?

앞서 전 세계의 1조 개 디바이스가 ARM의 기술 기반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새로운 목표라고 했다. 말이 그렇지 1조 개 디바이스가 연결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CPU IP만 있다고 해서 SoC 개발이 뚝딱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기업이 호스트, 메모리 컨트롤러 등 다양한 ARM의 IP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최근 주력해 추진하는 게 IP 온라인 포털 ‘디자인스타트’ 프로그램이다. ‘디자인스타트’는 지난 2010년 이전부터 ARM의 IP 온라인 액세스 포털로 썼다. 이곳에선 전자기기, 차량, 가전제품 등에 폭넓게 쓰이는 프로세서 코어인 코어텍스(Cortex) M0뿐 아니라 M3 등의 라이선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어떤 개발자가 접속해도 수천 개 이상의 물리적 IP 데이터를 꺼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칩 생산 기업들이 시장 진입에 앞서 리스크를 줄이고, 라이선스 비용 부담을 줄여주면 시장 자체가 더 커질 수 있다.

IoT 세상, 현재 반도체 산업엔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어보자. 회의실의 전화기는 회의 내용을 알아서 듣고 음성을 구별해 실시간으로 회의록을 작성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날씨에 따라 맞춤형 경로를 스스로 정해서 운행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전부 정교한 사물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시대를 맞기 위해선 기존의 반도체 설계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ARM은 곧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용으로 개발한 머신러닝 프로세서(NPU)를 공개한다. 스마트폰, IoT 기기, 클라우드까지 확장성을 키운 기술개발에 더 주력하고 있다. 더불어 머신러닝 프로세서와 2세대 객체탐지프로세서(ODP), 소프트웨어 등을 포괄하는 ‘프로젝트 트릴리엄(1조)’으로 머신러닝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 트릴리엄’이 뭔가?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18’ 행사에서 새로운 CPU, GPU, VPU 등과 함께 머신러닝 플랫폼 ‘프로젝트 트릴리엄’을 내가 직접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머신러닝과 AI 애플리케이션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플랫폼이다.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차에서도 GPU의 역할이 크지만, 크기가 크고 전력을 많이 쓴다는 점이 문제다. ARM은 머신러닝과 AI가 모든 프로세서의 활용범위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기술이라 믿는다. 그래서 ARM이 가진 모든 IP에 머신러닝과 AI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IoT 서버, 기업 활용 기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중국 기업에도 기술을 이전한다고 들었다.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넘기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건 시장에 익히 알려진 바다. 일각에선 기술이 유출되거나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우린 생각이 좀 다르다. 오히려 시장 규모를 키울 기회라고 생각한다.

실제 지난 몇 년간 중국 반도체 시장 규모는 빠르게 확대됐고, 기술개발 능력도 급격히 성장했다. 동시에 경쟁 구도를 형성한 기업도 필사적으로 기술혁신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마치 점차 덩치를 키우려는 중국 시장이 세계 반도체 산업의 혁신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반도체 호황이 또 올 수 있다는 얘기인가?

AI와 사물인터넷 같은 새로운 수요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이미 ARM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과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개발과 맞춤형 반도체 개발을 위해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AI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제조) 같은 차세대 분야에도 투자를 더 늘릴 것으로 보인다. ARM은 이들과 협력하는 동시에 기술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 더 많은 투자를 끌어내고자 한다.

물론 ARM이 모바일 분야에서 모든 기술을 가진 건 아니다. 애플이나 퀄컴은 ARM과 계약을 맺고 있지만, 자체 GPU 기술도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이 같은 중요성을 인지하고 2010년부터 유명 반도체 인력을 스카우트하고, 관련 부서를 키웠다. 중국 IT전문매체 기즈모차이나에 따르면 삼성 GPU팀은 엑시노스 칩에 사용하는 ARM의 그래픽 코어인 말리(Mali)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코어를 개발 중이고, 이르면 내년부터 저가형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탑재한다. 하지만 당장 삼성전자엔 ARM이 꼭 필요하다. 르네 하스 부사장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부심’보다 재차 ‘개방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ARM은 모바일 반도체 설계의 핵심인 ‘코어’만 설계했을 뿐이다. 칩 개발과 생산ㆍ판매는 생태계 내 반도체 회사들이 맡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생각에 그쳤을 기술들이다. 한 기업의 창의성이나 독창성만으로 좇기엔 변화가 너무 빠르다. 더 멀리 내다볼 힘은 이제 ‘개방형 생태계’ 속에 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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