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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빅 4’의 미래] 최태원 SK 회장 

가야 할 길 먼 글로벌 진출과 혁신 

최영진 기자
최태원 SK 회장은 20년 전 38세에 그룹 총수에 올랐다. 당시 그는 재계에서 가장 어린 3대 경영인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재계 1세대와 3~4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진 경영인의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삼성, 현대차,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SK 브랜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재계 자산 순위 3위 그룹이지만 여전히 ‘내수 기업’ 이미지가 강하다. 최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8월 2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고 최종현 전 SK 회장 20주기 추모행사에서 최태원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Deep Change’,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경영 슬로건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고민이 엿보인다. 최 회장은 20년 동안 SK그룹의 성장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행동과 성과로 ‘Deep Change’를 일궈내야 할 때다.

성장 스토리 | 전직 대통령 사위로 재계에 화려하게 등장

재계 3위 SK그룹은 1953년 적산기업인 선경직물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최태원 회장의 큰아버지인 고 최종건 회장은 선경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1973년 워커힐 호텔 인수에 성공했지만 그해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당시 선경그룹 사장이었던 친동생 최종현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고 최종현 회장은 당시 재계에서 보기 드문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1962년 선경직물에서 기업 활동을 시작한 그는 2대 총수로서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을 인수해 화학·에너지·통신이라는 현 SK그룹의 3각 편대를 완성하며 그룹의 뼈대를 구축했다.

1960년생인 최태원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유학 시절 만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씨와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해다. 정관계 혼맥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최 회장이 화려하게 재계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결혼 후 1991년 선경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SK그룹에 합류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선경아메리카 이사대우, 1996년 선경 상무이사, 1997년 1월 유공 사업개발팀장 상무이사를 거쳐 1997년 12월부터 SK그룹 종합기획 실장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으면서 전면에 나섰다.

최 회장은 1998년 8월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면서 부사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SK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0대 젊은 나이에 SK그룹 총수에 올랐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연속된 고난이었다. 2003년 SK글로벌의 1조원대 주식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2013년에도 SK그룹 계열사 출자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사건은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 자산운영과의 경영권 분쟁이다. 소버린 자산운용이 2003년 3월 SK주식회사의 주식 14.99%를 매입해 1대 주주가 되면서 경영 참여를 요구했다. 소버린은 최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며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사건을 겪은 후 최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해 그룹의 면모를 바꿔나가면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성공과 실패 |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규모 키워

“요즘 최태원 회장만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기업인도 없을 것이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인수할 것은 인수하는 결단이 돋보인다.”(이영달 한국기업가정신기술원 원장) 이 원장의 평가처럼 한국 대기업에서 SK그룹만큼 해외기업 투자와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는 기업은 드물었다. SK그룹 DNA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정답은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이다. 워커힐 호텔 인수(1973년), 대한석유공사 인수(1980년), 한국이동통신 인수(1994년) 등은 SK그룹의 덩치를 크게 키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시비로 몸살을 앓았다.

최 회장도 취임 후 M&A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2015년 1월 전기 발전 기업 당진에코파워(1700억원), 2017년 6월 에틸렌 아크릴산 사업을 펼치는 다우케미칼 EAA 부문(4200억원), 2018년 7월 의약품 생산 기업 미국 암팩(5100억원), 2018년 10월 물리 보안 기업 ADT 캡스(7000억원) 등으로 이어졌다. 2012년 3월부터 10월까지 SK그룹이 M&A에 투자한 금액만 7조3600억원이다.

해외 투자도 적극적이었다. 2014년 10월 미국 우드포드 셰일가스전에 40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미국 TURO(400억원), 미국 유레카 미드스트림(1200억원), 말레이시아 그랩(800억원), 일본 도시바 메모리 부문(4조원) 등 2014년 10월부터 지난 9월까지 총 5조 4400억원이 투입됐다. 최 회장이 추진한 M&A는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하이닉스 인수는 ‘신의 한 수’라고 극찬을 받을 정도다.

글로벌 경쟁 | 10년 넘게 진행된 중국 도전은 실패?


▎지난 10월 4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에서 열린 ‘M15’ 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최태원 SK 회장 등 참석자들과 공장 가동을 축하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왼쪽).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는 고 최종현 회장의 생전 모습. SK그룹이 고 최종현 회장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공개한 사진이다. / 사진:연합뉴스, SK그룹 제공
20년 전 SK그룹과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그룹 규모가 커졌다. 재계 5위에서 재계 3위로 도약했다. 1998년 취임 당시 SK그룹의 총자산은 34조1000억원, 매출은 37조4000억원이었다. 2017년 말 그룹의 총자산은 192조6000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고, 매출은 158조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최 회장은 내수 위주의 그룹 체질을 수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20년 전 SK그룹의 총수출 액은 8조3000억원, 지난해 말에는 75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중심에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이 있다. 2017년 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매출액은 30조1094억원, 영업이익은 13조7213억원이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75% 성장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19% 늘었다.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도 해외 수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엔 매출 46조1600억원을 올렸다. 이 중 수출 비중이 70%다.

문제는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중국 시장에서 성과가 미미한 것도 최 회장에게 뼈아픈 일이다. “2015년까지 중국 내 매출 860억 위안(약 14조6000억원)을 달성하겠다.” 2011년 6월 SK차이나 출범 1주년을 맞아 당시 박영호 SK차이나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포부다. SK차이나는 중국 진출을 위한 SK그룹의 중국 지주사다. 최태원 회장의 ‘차이나 인사이더(완벽한 현지화 추구)’라는 전략 프로젝트 일환으로 2000년 11월 자본금 150여억원으로 설립됐다.

용두사미였다. 시작은 화려했지만 해가 갈수록 위상이 쪼그라들고 있다. 최 회장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2010년 당시 박영호 SK(주) 부회장에게 SK차이나를 맡기며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단행했다. 투자는 계속됐다. 2012년 1900억원에서 지난해 7000여 억원으로 투자 규모가 껑충 뛰었다. SK차이나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우선 사업 방향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2010년대 초반에는 신에너지, 석유화학, ICT, 도시개발, 환경사업 등을 중점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SK차이나의 현재 모습은 4900여 대 차량을 보유하고 20개 지역(베이징, 선양, 광저우 등)에서 ‘렌터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도다. 국내에서 렌터카 사업자 2위 SK네트웍스는 렌터카 9만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보다 적은 차량으로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렌터카 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지난 8월 싱가포르에 동남아시아 시장 투자를 전담하는 ‘SK 동남아 투자회사’를 설립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SK(주),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5개 계열사가 각 1억 달러씩 총 5억 달러(1133억원)를 출자한 이 회사는 지난 9월 베트남 마산 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고, 올해 초에는 쏘카와 합작법인 ‘쏘카 말레이시아’ 출범식을 열었다. 지난 3월에는 말레이시아의 승차 공유 서비스 그랩에 800억원을 투자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재계에서는 “오랫동안 도전해온 중국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경험’이 없는 SK가 동남아 시장에 무리하게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수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들의 역량도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SK그룹은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임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임원역량진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10여 년 동안 진행한 바 있다”면서 “임원들의 자세나 경영 철학이 시간이 지나면서 글로벌화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이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됐다. 최 회장은 왜 이런 중요한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는지 아쉽기만 하다”고 꼬집었다.

비전 | 장치산업 위주 체질 바꾸는 게 숙제

최 회장의 비전은 ‘Deep Change(근본적인 혁신)’와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는 게 최 회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룹의 외형이 여전히 장치산업, 즉 하드웨어에 치중되어 있다는 한계는 변함이 없다. SK그룹이 비록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이오, 모빌리티, LNG를 꼽고 있지만 다른 대기업만큼 과감하고 혁신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LG, 현대차 등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는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SK그룹의 행보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통신사인 SK텔레콤이 소프트웨어에 집중하지만 무게중심은 여전히 내수 시장에 두고 있다.

한편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담론을 강조해왔다. 자신이 직접 쓴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에서 “사회적 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해줄 수 있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주 유효한 방법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16년 말에는 그룹이 추구해야 할 주요 목표 중 하나로 ‘SKMS(SK Management System)’를 명시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계열사 정관에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지향을 비판하는 이들은 드물다. 다만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에만 매몰되면 기업이 본래 추구해야 할 이익 창출이 더욱 더뎌지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배구조 | 최신원 회장의 계열분리와 이혼소송

전문가들에게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의 리스크가 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사촌 형제의 계열분리 이슈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건을 든다.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아들인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과 막내인 최창원 SK 케미칼 부회장의 계열 분리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화학 분야는 현재 SK 디스커버리라는 중간지주회사 아래 SK케미칼·SK가스·SK D&D 등 관계사를 두고 있다. 언제든 계열분리를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준비가 잘되어 있다. SK 관계자는 “계열분리를 하는 게 기업에 더 도움이 되는지, 효과가 있는지를 검토한 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사촌 형 최신원 회장은 창업주인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선경직물을 모태로 하는 종합상사 SK네트웍스에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지분상으로 분리할만한 여건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최 회장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 건이다. 비록 사적인 일이지만 재계는 이혼소송 결과 생길 수 있는 SK그룹 지배구조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혼소송 중 재산분할 논의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M&A가 이뤄진 탓에 노 관장이 SK텔레콤의 일정 부분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SK 관계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스기사] 최태원 회장의 말·말·말

“더 이상 SK주식회사가 정유사업으로만 먹고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변화해야 살 수 있다.”
(1998년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취임사)

“하이닉스 인수는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간의 시너지 효과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기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있다. 현재 반도체 시황이 어렵지만 하이닉스의 우수한 기술력과 SK의 강한 기업문화로 합심해 글로벌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2011년 11월 하이닉스 주식 매매계약 체결을 앞두고)

“향후 10년 안에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 경제규모를 GDP의 3% 수준으로 키우고, 이를 위해 사회적 기업 10만 개를 육성하자. 이렇게 되면 사회적 기업들의 혁신이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다.”
(2017년 6월 사회적 기업 국제포럼 기조연설 중)

“SK가 지난 20년간 그룹 이익이 200배 성장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여전히 ‘올드비즈니스’를 열심히 운영하거나 개선하는 수준에 안주하고 있다.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서든 데스(Sudden Death) 시대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딥 체인지(Deep Change)가 반드시 필요하다.”
(2018년 1월 2일 신년사 중)

“기업들이 주주, 고객 등 직접적 이해관계자를 위한 경제적 가치 외에 일반 대중,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내야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2018년 4월 보아오포럼 연설 중)

[박스기사] SK그룹의 핵심 경영인


최태원 회장이 믿고 경영을 맡기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SK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 부재 시 그룹의 중요한 결정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하기 때문이다.

2016년 말 수펙스추구협의회 수장이 된 조대식 의장은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1960년생으로 최 회장과 동갑이자 초등학교와 고려대 동기다. 2007년까지 삼성에서 일했지만 최 회장이 재무담당 임원으로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SK 사장으로 일할 때 SK와 SK C&C의 합병을 주도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김준(56)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최 회장이 신임하는 경영진 중 한 명이다. 대한석유공사를 모태로 하는 SK이노베이션은 그룹에서 중간지주사 역할을 한다.

김 총괄사장은 유공에 입사해 2005년까지 석유와 에너지 관련 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Comm 위원장을 맡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에너지화학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정준(55) SK E&S 사장도 최 회장의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최 회장과 고려대 동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딜로이트앤터치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맥킨지를 거쳐 LG건설에 입사했고 35세에 임원이 됐다. 1988년 SK그룹으로 옮겼다. 8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정호(54) SK텔레콤 사장도 최 회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최 회장이 어렵거나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회장을 보좌한 인사다.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치를 때 박 사장은 회장의 비서실장이었고, 2011년 내부 반발이 심했던 하이닉스 인수 과정에서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팀장을 맡았다. 최 회장의 오른팔로 불린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ICT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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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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