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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포브스코리아 휴브리스 포럼] 지상중계(4) 히딩크의 오만과 박항서의 리더십 

‘오만의 시기’ 넘어 명장으로 성장 

대한민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선 교수는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만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오만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고려했을 때, 현재 ‘베트남의 히딩크’라 칭송받는 박항서 감독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히딩크와 박항서의 리더십을 비교해 설명하고 있는 신문선 교수.
1981년 네덜란드 데그라샤프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기 시작한 거스 히딩크(Guss Hiddink·73) 감독은 1987년부터 PSV 에인트호번을 4년간 이끌며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안컵 우승(1988)을 거머쥐었다. 모든 유럽 축구 구단의 꿈이라 불리는 트레블(1988~1989 시즌)도 달성했다. 유럽 축구에서는 1년 동안 정규리그, 챔피언스리그, FA(축구협회)컵, 프로컵 대회 등이 열리는데, 그중 3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경우를 트레블(treble)이라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으로 각광받게 됐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위에 올려놓은 뒤 스페인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러나 이때 히딩크 감독에게 암흑기가 찾아온다. 히딩크 감독은 1998년 7월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임한 뒤, 부임 기간 동안 19승4무11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라이벌인 FC바르셀로나와 치른 엘 클라시코에서 3-0으로 완패하면서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겪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부임 7개월 만에 경질된다. 그다음 정착지인 레알 베티스에서도 1승6무6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고 경질당한다. 이 시기가 히딩크에게는 이른바 ‘오만의 시기’였던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그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면 유럽에서 활동을 이어갔을 테니 대한민국 축구 감독으로 부임할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A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먼저 스타 선수였던 이동국을 과감하게 제외하고 설기현을 발탁했으며, 부상으로 하차한 고종수를 대신해 박지성과 송종국을 발탁했다. 또 홍명보를 국가 대표팀에 발탁하면서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감독과 선수 간 ‘종속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기 시작했다. 축구감독은 선수 23명 중에 11명을 선발해서 경기에 내보내기 때문에 그동안 감독들이 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맡으면서 유머감각과 배려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또 한국 특유의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비판하면서 그라운드에서는 나이와 위계질서에 관계 없이 반말을 쓰게 했다. 이처럼 권위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로 당시 20대 초반의 박지성, 이천수 같은 선수들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기죽지 않고 활약할 수 있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그는 당시 경기에서 제외된 선수들을 철저하게 배려하는 리더십을 선보이며 한국 축구팀의 팀워크를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그가 성공에 취해 오만에 빠져 실패했던 과거가 없었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기회였을 것이다.

박항서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면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박 감독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U-23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3위에 머무는 성적을 거뒀다. 당시 월드컵의 후광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대표팀이 동메달에 그치자 경질된다. 박 감독은 이때를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히딩크의 팀 장악력과 훈련방식,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다혈질 기질을 억누르고 소통하는 리더로 변화해간다. 이후 그는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감독 등을 거쳐 2017년 9월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베트남 U-23 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한다. 그는 “내가 베트남에서 한 일은 단지 편견을 깨부수고 잠들어 있던 그들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질책보다 격려를 우선시하고, 선수들의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는 등 친밀한 스킨십으로 베트남 선수들과 국민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됐다.

박 감독은 2018년 AFCU-23 선수권 대회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이변을 일으키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56년 만에 4강에 올려놓았으며, 2018년 AFF스즈키컵에서는 베트남을 10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히딩크와 박항서의 공통점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끊임없이 선수들을 배려하고 동기부여를 하면서 개개인의 잠재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현재 박 감독은 베트남축구협회와 재계약 협상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당분간 협상을 접어두고 대표팀 감독으로서 맡은 임무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다. 베트남 축구를 계속 이끌면서 아시아의 선진국팀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비전이 또 한번 모두에게 꿈이 되기를 바란다.

- 신문선 명지대 교수(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 신문선은… ‘한국 축구의 목소리’라 불리는 신문선 교수는 1979년 국가대표, 1986년 프로축구 1세대를 거쳐 연세대에서 체육학 석사과정, 세종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 1988년 MBC에서 축구해설을 시작했다. 현재 축구 해설을 하며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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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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