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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이상이 모이면 발생하는 권력 다툼영국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8년에 출간한 저서 『권력(Power)』에서 “물리학의 기본 개념이 에너지이듯이, 사회과학의 기본 개념은 권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권력욕, 사회 혁신, 개혁 등 ‘힘’이라는 요인을 빼고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파워’란 본인이 가진 자원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의 상대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는 즉, 둘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힘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명 이상의 관계에서 권력은 상대적인 요소가 되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온 아동학대 문제도 이 같은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20여 년 이상 권력 연구에 매진해온 미국 UC버클리 대학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파워풀(powerful)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상(rewards)에 민감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approach) 경향이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파워리스, powerless) 사람은 보상보다 위협에 민감하기 때문에 행동하기보다 억제하는 성향, 즉 나서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또 파워풀한 사람은 힘 또는 권력을 갖게 되면 내적 욕구에 충실한 상태가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파워풀한 사람은 내적 욕구를 충실하게 따르기 때문에 배고플 때 밥을 더 많이 먹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추론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파워풀한 사람의 특징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자신의 기질과 태도, 신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아울러 파워풀한 사람들은 훨씬 더 목표지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를 세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는 능력이 파워리스한 사람보다 강력하다.
주변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우리는 평소 자신의 욕구와 소속된 환경의 욕구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고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갖게 되면 이 같은 환경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Adam Galinsky)는 “권력(power)은 외부적인 영향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즉, 권력을 가질수록 외부 요인에서 해방되면서 자신의 욕구에 집중하게 된다.일반적으로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권력자들은 이 제한된 에너지를 외부보다 내부로 돌린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 환경을 간과하게 된다. 그 결과 권력자를 둘러싼 환경에는 서서히 리스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권력자는 이를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주변 환경을 모니터링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로열티를 대체로 높게 평가하고,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더 큰 리스크를 부르는 토대가 된다. 즉, 인간이 권력을 갖게 되면 외부 환경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연스레 내적 욕구에 집중하게 되면서 외부 리스크를 간과하게 되는데, 자신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면서 더 큰 위험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권력자는 본인이 가진 권력이 불안정할수록 주변과의 경쟁심리에 휩싸인다.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성과주의 노선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윤리적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도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디젤게이트 사태를 초래한 폴크스바겐 그룹 내 권력 다툼도 이 같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폴크스바겐을 창업한 포르셰 가문과 사위인 피에히 가문은 이사회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며 수십 년간 권력 다툼을 벌여왔다. 폴크스바겐과 포르셰를 세운 고(故) 페르디난트 포르셰 회장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와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일화는 유명하다. 피에히는 치열한 경영권 쟁탈전 끝에 1993년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포르셰는 호시탐탐 경영권을 노렸고 2005년 몸집이 훨씬 큰 폴크스바겐 그룹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4년여간 경영권 다툼을 이어갔다. 2008년 도래한 금융위기로 포르셰가 반대로 폴크스바겐에 인수합병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다시 그룹을 장악한 피에히 체제하에서 배기가스 조작이 시작됐다. 경영권이 또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실적에만 골몰한 결과, 환경 규제 등을 등한시한 것이다. 2015년 디젤게이트 사태가 터진 후, 폴크스바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너들이 경영권 장악에 눈이 멀어 환경 규정 준수보다 실적 향상만 좇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권력자의 오만, 경영 위기 차원에서 접근하라
- 정은경 강원대학교 교수(심리학과)·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정은경은… 연세대에서 임상심리학 석사과정, 산업 및 조직심리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뒤 강원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학교 신경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 마인드프리즘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