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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마이크로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의 생각은 어떻게 기업을 살리나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을 제시한다’는 디자인의 대전제는 바뀌지 않겠지만, ‘더 나은 삶’에 대한 정의는 분명 바뀌고 있다.” 글로벌 디자인 혁신 최전선에 서 있는 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생각이다.

▎이상인 M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인은 아름다움보다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라 말한다. / 사진: 가나출판사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해 있는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이다.

디자인 매니저로서 디자인 시스템이 어떤 상황과 플랫폼을 만나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관리하고, 프로덕트의 변화에 맞추어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일이 그와 그가 이끄는 팀의 목표다. 포브스코리아가 이 디렉터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며 “단순한 ‘아름다움’보다 ‘창의성’에 집중하는 게 최신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ICT 기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느낀 디자인은 과거와 달리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디자인업계는 산업의 변화 및 발전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분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를 외치며 스마트폰 시장의 발전에 맞추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발전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클라우드, AI, 가상·증강 현실 등이 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가는 키워드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발맞춰 가야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새로운 기술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바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경험의 연속성을 디자인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혹은 인공지능 처리 명령어를 일반인이 생성하는데 필요한 디자인적 접근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이 요즘 화두다.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IT 기업부터 딜로이트, 맥킨지 같은 컨설팅 기업까지 디자인 에이전시 인수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거대 IT 기업과 컨설팅 기업이 디자인 회사를 인수한 배경은 시대 변화에 맞는 체질 개선에 대한 요구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아직 디자인 하면 ‘아름다움(Beautiful)’이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는데, 미국에서는 ‘창의성(Creativity)’을 먼저 떠올린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창의성이 생각의 축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라면, 아름다움의 추구는 같은 방향성 안에서 시각적인 면을 개선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IT 기업에 디자인 회사의 창의성은 탐나고 필요한 역량이었을 것이다.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실제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컨설팅 기업들도 디자인 회사 인수 후 창의적 전략, 또 그것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풀 패키지로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루이비통에 매각된 티파니의 글로벌 디지털 전략과 웹사이트 작업을 딜로이트 디지털이 디자인 에이전시 강자들을 물리치고 수주한 것이 좋은 예다.

에이전시 단위나 협업 파트너 정도로 인식되던 디자인이 경영과 매니지먼트, 조직관리, 기업문화로 확대된 배경은 무엇인가.

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혁신은 많은 분야와 조직에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었다. 아마존 같은 기업은 인류의 상거래 패턴을 바꿔놓았을 정도다. 이제 창의적인 시각으로 더 나은 경험을 제시할 수 있는 디자인적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은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다. 기업은 여전히 에이전시를 통해 필요한 부분만 필요할 때마다(On-demand) 취할 수 있고, 때로는 외주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 서비스 혹은 플랫폼 중심 업계에서는 승자 독식 게임인 경우도 많다. 상황에 따라 옷만 갈아입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서 체력을 기르고 체질을 바꿔야 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만큼 디자인의 힘을 조직에 수혈함으로써 시대에 맞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카카오의 조수용 대표,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등 디자이너 출신 CEO들이 능력을 발휘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디자인적 능력이 성공적인 경영 성과로 이어진 배경은 무엇인가.


▎이상인 디렉터는 디자이너는 반드시 공감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과 시대에 대한 공감이다.
두 분 모두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임팩트를 만드는 경영자다. 하지만 디테일적인 면에서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수용 대표의 경우 직관적 감이 정말 좋은 분이 아닌가 한다. 대중이 무엇을 좋아할지를 파악하는 동물적(?)인 감각이다. 조 대표는 ‘나음’이 아닌 ‘다름’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이는 창의적으로 판을 바꾸는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김봉진 대표는 브랜딩의 천재다. 배달 앱만 놓고 보자면 편한 서비스임이 분명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열광할 필요는 없는 서비스다. 김 대표는 엉뚱해 보이지만 공감 가는 커뮤니케이션을 여러 채널에서 꾸준히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들에겐 ‘재미’가 가장 큰 무기인 듯하다. 브랜드의 방향을 설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 충성스러운 팬덤을 형성한 배달의민족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 디자이너의 접근법이 성공적으로 비즈니스에 접목된 사례다.

디자이너와 경영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경영의 영역에 들어선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CEO는 다양한 분야를 모두 조율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자리다. 그런 만큼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은 그들이 디자이너로서 가진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축구에 비유하면 골잡이와 감독의 차이라고 할까. 직접 뛰어 골을 넣는 사람이 골잡이(디자이너)라면, 감독(경영자)은 팀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전략을 짜고 팀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경영자는 회사의 재정적·행정적인 부분, 인사적인 부분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반면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시각과 빠른 실천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현대 경영에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디자이너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질이 공감(empathy) 능력이다. 대중과 시대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디자인 프로세스의 강점을 잘 활용한다면 아마 디자이너가 CEO 반열에 오르는 경우를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최근 ICT 분야를 비롯해 기술 중심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경향은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어떤 관계가 있나.

요즘 시대의 천연자원은 데이터라 생각한다. 생산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천연자원을 많이 보유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 중심의 경제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데이터다. 그런 만큼 어떤 나라, 어떤 회사가 더 빨리 양질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회사의 이윤과 결부돼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 경제 및 안보와도 직결된 중요한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데이터를 모아 진화시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각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는 인간적인 면모가 많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해오던 것이 일정한 패턴으로 진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효율성이라는 잣대 이외에도 기계는 볼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 다양한 부분이 결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떤 것을 새롭게 개선할 때,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적인 부분을 무조건 걷어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새로운 프로세스 혹은 기술을 사용하고 수혜를 받는 대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고 알맞은 방향으로 인간과 디지털의 선을 잇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여러 기술 중심 기업에서 디자이너의 활약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배달의민족이 내놓은 폰트가 화제였다. 저서에서도 전용 서체가 디자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기준이라 평가했다.

문자는 물리적인 힘(Force)을 정보(Information)로 바꿔주는 마법의 도구다. 생각을 문자에 담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디자인의 시발점이다. 문자를 어떠한 서체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메시지는 다채로워질 수 있고 전달 효과도 다양해진다. 적용된 선의 굵기와 곡선의 정도에 따라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고,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서체는 데스크톱 스크린, 스마트폰 스크린, 증강현실 안경 등 경계를 넘나들며 사용자와 소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플랫폼에 빠르게 적용되고 알맞은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업이 전용 서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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