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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파워리더 | IT-CONSUMER]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고객과 가이드 매칭으로 여행 플랫폼의 수장이 되다 

쇼핑센터만 돌다 왔다는 푸념은 마이리얼트립에 없다. 대신 테마와 목적이 분명한 여행지와 투어 가이드, 여행자가 있을 뿐이다. 여행의 본질에 충실했던 청년 CEO의 선택은 국내 최대 여행 플랫폼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마이리얼트립은 지난해 거래액 3600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 대비 3배 성장한 수준이다.
지난해 7월 전격 발표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는 국내 제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 등으로 위기의 파도를 넘고 있다지만, 경제보복 단행 직후엔 충격파가 상당했다. 직접 타격을 받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모든 우려의 시선이 쏠렸지만, 막상 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며 전전긍긍한 곳은 따로 있었다. 여행업계다. 그간 일본은 저렴한 항공료, 가까운 거리, 문화적 유사성 등으로 국내 해외여행 수요를 대거 빨아들였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수가 급감할수록 여행사들은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 감소와 수익 급감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업계 1위 하나투어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액은 전년(2018년) 같은 기간 대비 5.5% 이상 쪼그라들었다.

기존 여행업 강자들이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호소할 때 ‘나 홀로’ 성장을 이뤄낸 이도 있다. 이동건(34) 마이리얼트립 대표다. 지난 2012년 창업에 나선 이 대표는 7년 만에 국내 최대 여행 플랫폼 수장이 됐다. 2019년 마이리얼트립이 기록한 거래액 3600억원은 2018년 대비 3배나 뛰어오른 실적이다. 창업 첫해 1억원 수준이었던 거래액이 불과 7년 사이 3600배 폭등한 셈이다.

핵심 서비스는 가이드투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가이드가 동선과 방문지 등을 직접 제안하고, 이를 고객이 일대일로 선택하는 구조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현지 가이드 중에는 전업 가이드도 있고 셰프, 박물관 큐레이터 등 본업을 가진 채 부업에 나선 이 등 다양하다.

여행을 원하는 고객과 가이드를 직접 연결하는 사업 구조는 매우 심플하다. 하지만 이 대표가 마이리얼트립을 창업하기 전까지 국내 여행업계에 이 같은 모델은 전무했다. 누구라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을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여행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산업 규모와 정반대다. 현지 가이드는 최소한의 페이도 받지 못하는 소위 ‘노빵투어’를 감수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여행은 쇼핑투어로 전락하고 만다. 계획에도 없던 쇼핑몰을 몇 곳씩 둘러봐야 하는 여행자들의 심사도 좋을 리 만무하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버는 건 먹이사슬 상단에 있는 여행사뿐이다. 결국 여행 주체인 가이드와 여행자가 소외받는 현실이 기존 여행업의 유통구조였다.

“뒷돈을 받는 가이드가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까요? 여행 유통구조의 끝단에 있는 가이드와 여행자를 다이렉트로 묶어보자고 생각했죠. 가이드는 정당한 가격으로 좋은 상품을 올리고, 여행자는 가격과 코스를 보고 선택하면 되는 거죠. 마이리얼트립이 여행업계에서 이뤄낸 가장 큰 변화라 자부해요.”

사실 이 같은 구조는 여행업을 뺀 수많은 업종에선 이미 일반화된 모델이다. 음식점 전단지를 모바일로 끌어온 배달의민족, 유통 패러다임을 바꾼 지마켓과 쿠팡, 숙박업의 전형을 깬 에어비앤비 등이 좋은 예다. 이 대표는 “여행업은 무형의 상품을 파는 유통업이 본질”이라며 “지난 20년간 유독 여행업만 변화와 혁신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산업구조 끝단에 서 있던 이들(가이드와 여행자)이 주체로 나서자 이전엔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현재 마이리얼트립에 등록된 상품 수는 무려 2만1000여 개에 달한다. 후기만 해도 80만 개다. 국내 여행 플랫폼 중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규모다. 폭발적 성장은 2015년부터 시작한 티켓패스 사업이 결정적이었다.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 티켓, 프리미어리그 축구 티켓, 유레일패스, 싱가포르 유니버셜스튜디오 티켓 등을 함께 판매하는 상품이다. 여행과 티켓을 함께 묶는 ‘투어앤드액티비티’ 카테고리나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에선 이미 마이리얼트립이 기존 여행사들을 앞서며 1등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대표는 2017년 숙박, 2018년 항공권, 지난해에는 패키지 상품까지 도입하며 종합 여행 플랫폼을 완성했다. 특히 지난해 가을 도입한 프리미엄 패키지가 눈에 띈다. 기존 패키지 여행상품과 차별화하기 위한 독특한 실험이다. 가령 인디밴드 멤버가 가이드로 나서 비틀스의 발자취를 좇는 영국 여행에 나서는 식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만의 여행은 패키지라는 어감이 주던 천편일률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최근 유사 서비스를 내세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결국 고객에게 답이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파리 에펠탑을 보는 것만으로 감격했다면, 이제는 파리를 2~3번 넘게 찾은 사람이 수둑룩하다. 유적지 같은 명소 대신 그림, 음식, 역사 같은 개인 취향에 철저히 부응하는 게 마이리얼트립이 내세운 여행 원칙이다.

“아마존과 쿠팡이 성공한 건 고객이 원하는 그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떤 물건을 원하든 아마존에 다 있는 거죠. 마이리얼트립도 그 단계에 집중해요. 여행자가 원하는 어떤 상품이든 우리 플랫폼에 모두 담겨 있어야 해요. 그다음이 가격입니다. 업계 최대 플랫폼이라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설사와 직계약을 맺어 가장 낮은 원가를 유지하고 있어요.”

‘트레블테크’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여행지 추천이다. 파리만 해도 상품 수가 1300개가 넘는 상황이라 고객 입장에선 이를 일일이 탐색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적절한 추천 기능이다. 마이리얼트립은 항공권 분석을 통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맞춤상품을 추천한다. 항공권에 표시된 인원, 기간, 목적지, 성인·아동 수, 좌석 종류, 국내항공사·해외항공사 등을 토대로 한 분석이다. 가령 LA 공항을 이용하는 성인 2명, 아동 2명 티켓이라면 디즈니랜드 같은 가족 여행지를 추천한다. 반면 에어프랑스 이코노미석을 끊은 성인 1명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의 여행지를 추천하는 식이다.

업계 판도 바꾸며 플랫폼 비즈니스 안착


▎회사 성장과 직원 성장이 함께 발을 맞추는 건 이동건 대표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경영 원칙이다.
이 대표는 “전체 여행산업 규모에서 마이리얼트립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비즈니스 포텐셜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기술보증기금이 선정하는 예비 유니콘에 뽑혀 투자금 100억원을 유치하는 큰 성과도 올렸다.

2015년 파리에서 터진 IS 테러,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 등 매크로적 위기는 여행사라면 어디든 피할 수 없는 리스크다. 실제로 마이리얼트립도 지난 2015년 벌어진 파리 테러 여파로 주력이었던 유럽 예약이 한때 0건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CEO가 주의해야 할 위기를 밖이 아닌 안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특히 CEO를 비롯한 구성원 전체가 사업 경험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 내부 위기 때문에 좌절하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조언이다.

“대표 직함만 달고 있을 뿐, 경영 초짜인 건 CEO나 사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일이 늘어 기존 인력에 부하가 걸리면 사람만 새로 채용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늘어도 일은 줄지 않는 마법이 일어나더군요. 조직 미션이나 비전을 제대로 수립하기까지 3~4년간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과중한 업무 원인이 적은 직원 수가 아니라 비효율적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는 게 이 대표의 고백이다. 창업 8년 차에 접어들며 이 대표가 깨달은 경영자의 몫은 ‘적절한 위임’이다. 자신이 대표가 아닌 실무자로서 일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창업 후 4년여가 지나서였다.

“새벽 2시가 넘어 모니터 앞에서 마케팅 문구를 수정하는 게 CEO 몫은 아니었어요. 마이크로 매니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퇴근 시간이 당겨졌을 땐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까지 느꼈죠.”

위기일수록 본질에 충실하자는 원칙은 사업 방향뿐 아니라 기업의 비전과 미래를 설계하는 데도 적용됐다. 이 대표는 “좋은 인재들과 함께 출근해 세상에 큰 임팩트를 주는 것”이 사업의 최종 목표라고 말한다. 그럴수록 어려운 과제를 빨리 풀 수 있기 때문이다. 3년이면 장기근속자 취급을 받는 스타트업 문화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회사의 성장과 직원의 성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인재일수록 회사 발전 못지않게 자기 성장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외한 모든 경영 정보도 직급에 관계없이 전 직원에게 공개했다. 정보가 비대칭으로 흐르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원칙이다. 사내 호칭도 직함 대신 이름에 ‘님’을 붙이고, CEO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서로 존댓말을 쓴다. 직급에 관계없이 반말을 사용하면 강력하게 경고한다. 어렵게 구축해온 문화와 룰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높은 연차나 직급의 어드밴티지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에요. 연차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발언권이 줄어들면 안 되죠. 소수정예로 출발하는 스타트업일수록 회사 경쟁력과 수평적 문화가 직결되게 마련이에요.”

※ 파워리더 선정 이렇게 했습니다

IT-컨슈머 부문 2030 유망주는 2019년 12월 30일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약 2주에 걸쳐 심사위원 9명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IT업계 CEO와 관계자, 벤처캐피털(VC) 대표와 심사역 등으로 구성했다. 각 심사위원이 최대 5명의 유망주를 추천했고, 이 과정을 거쳐 총 40여 명이 후보자로 올랐다. 이 중 중복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순으로 올해의 유망주를 선정했다.

심사위원 :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김준호 딜리셔스 대표, 송진영 본엔젤스 수석심사역,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이유진 레이니스트 법무총괄, 이혜민 핀다 대표, 장동욱 카오벤처스 수석팀장, 천세희 클래스101 부대표, 최경희 전 마켓디자이너스 CCO·튜터링 공동대표(가나다순)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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