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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파워] 딥테크 스타트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더는 미룰 수 없어 보인다. 말로만 ‘4차 산업혁명’, ‘파괴적 혁신’을 외쳐선 정체기를 벗어날 수 없다. 한국 제조업은 그렇게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이런 상황에서 애물단지 취급받던 ‘딥테크 스타트업’이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쿠팡, 블루홀, 우아한형제들, L&P 코스메틱, 비바리퍼블리카, 야놀자.’ 외국인이 흔히 꼽는 한국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들이다. 스타트업이었지만,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에서 콘텐트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분야를 융합해 단기간에 성장한 주역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온오프라인 연계(O2O)나 이커머스 영역에 안주하고 있다.

딥테크(Deep Tech, 기저 기술) 스타트업에선 한국 유니콘이 없다. 딥테크는 고사하고 일반 테크 스타트업 현실도 녹록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1300여 개 스타트업에 3조5000억원 넘게 지원됐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제조, 전기·기계·장비, 화학·소재 등 분야에 속하는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된 비중은 3500억원으로 10%를 겨우 넘겼다. 투자받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국내 벤처캐피털(VC)도 테크 스타트업 하면 일단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대기업 반도체개발팀에서 일하다 창업한 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대표는 “투자 설명회에 가도 테크 스타트업은 피벗(사업 전환) 비용이 많이 든다며 꺼리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도 “스타트업이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업 방향을 바꿔보는 건 당연하다”며 “테크 스타트업은 초기에 투자금 상당수를 기술 투자에 쓰기에 피벗에 따른 매몰 비용이 많이 들어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상황이 좀 다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스타트업계로 흘러간 자금 1200억 달러(약 148조원) 중 80%를 미국과 중국 스타트업이 유치했다. 그중에서 90억 달러 정도가 미국과 중국의 딥테크 스타트업 25곳에 유입됐다. 한 업체당 3억6000만 달러가량 투자받은 셈이다.

최근 한국 업계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정체되면서 새로운 기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창조적 혁신’이다. 먼저 대기업이 대대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현대차그룹이 전통적인 내연기관 사업에서 벗어나 2025년까지 60조원 넘게 투자해 ‘지능형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발표에 앞서 지난해 9월 현대차는 약 2조4000억원을 들여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미국 모빌리티 플랫폼 ‘미고’, 이스라엘 AI 개발업체 ‘알레그로’, 동남아 승차공유 업체 ‘그랩’ 등과도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삼성도 올해 들어 삼성벤처투자와 삼성넥스트를 통해 13군데 넘는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지난 1월엔 미국 5G·4G 통신망 설계 전문기업인 텔레월드솔루션즈를 인수했고, AI 기반 고객 대응 플랫폼 ‘다이렉틀리’, 이스라엘 AI 로봇 스타트업 ‘인튜이션’ 등에 투자했다.

한화시스템도 지난해 12월 미국 에어택시 개발업체 오버에어에 25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투자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기업인 플러그 앤 플레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을 가진 딥테크 스타트업을 함께 발굴하기로 했다.

딥테크 스타트업에만 집중하는 투자자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2015년 딥테크 특화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한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2017년 한국벤처투자, 삼성 벤처투자를 거친 김용민 대표와 대성창업투자 출신 박문수 대표가 차린 인라이트벤처스가 있다.

블루포인트파트너가 현재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130여 곳이 넘는다. 성공 사례로는 지난해 국내 뷰티 디바이스 전문업체 셀리턴에 인수된 인공지능 기반 피부암 진단 분석업체 스페클립스, 세계 최초로 개발한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 기술로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한 토모큐브 등이 있다.

인라이트벤처스도 270여 곳에 달하는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기술벤처 육성 프로그램 ‘팁스(TIPS)’의 운용사로,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아웃사이드 C랩’의 유일한 파트너 투자사이기도 하다.

특히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올해 2월 DB금융투자, IBK기업은행, 소프트뱅크벤처스, 퀀텀벤처스코리아, 키움투자자산운용,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총 11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까지 이들이 받은 누적 투자금액은 260억원. 이용관 대표는 “그간 VC 중심으로 이뤄졌던 딥테크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앞으로 한국 제조업에 딥테크 스타트업을 매개로 한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존 제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 발굴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산업 간 영역이 점점 더 붕괴될 것이고, 지분투자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기존 기업으로선 오픈이노베이션으로 핵심 부품을 아웃소싱하고 플랫폼을 통해 조직화할 수 있다면 좋은 기회”라며 “앞으로는 대기업에서 일감을 따 오는 전쟁이 아니라 원천기술을 확보한 기업 간 협업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과 중국보단 한 발 늦었지만, 한국도 딥테크 분야를 활용할 여지는 분명 있어 보였다. 취재차 만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변성현 스페클립스 대표, 장혁 폴라리언트 대표, 홍기현·박용근 토모큐브 대표 등도 공감했다. 그들의 생각을 좀 더 들어봤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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