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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시대, 푸드에 테크를 입히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 

“냉장고에 들어갈 모든 식재료, 초신선 상태로 팔겠다” 

농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갓 도축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앱으로 주문하면 7시간 안에 집 앞까지 총알 배송된다. 돼지고기는 도축한 지 최대 4일, 닭고기는 당일로 ‘초신선’하다. 이 온라인 정육점은 설립 초기 캡스톤파트너스로에서 4억원을 투자받았고, 지금까지 벤처캐피털(VC) 업체들로부터 60억원 넘게 투자받은 유망한 스타트업이다.

▎정육각은 공장에서 작업 지시 라인을 자동화해 초신선 고기 공급에 성공했다.
정육각은 갓 도축한 돼지고기·닭고기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정육점이다. 공장의 생산 시스템을 직접 개발해 고기를 ‘초신선’ 상태로 당일 배송한다. 스피드와 신선함을 선호하는 요즘 소비자를 제대로 겨냥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70억원.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서비스가 더욱 각광받으며 매출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2월 매출이 1월에 비해 3배나 늘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모든 식재료를 초신선 상태로 판매하는 게 목표”라는 김재연(30) 정육각 대표를 인터뷰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정육점을 차렸다. 계기가 궁금하다.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이 예정돼 있었다. 평소 돼지고기를 좋아해 도축장에서 신선한 고기를 사다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남은 고기를 썰어서 친구들에게 팔았더니 다들 맛있다며 더 구할 수 없냐는 반응을 보였다. 유학 전까지 8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 고기를 떼다 팔면 용돈벌이가 될 것 같았다. 그땐 고기를 손질하는 방법도 몰랐는데 무슨 배짱으로 돈을 받고 팔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돈도 꽤 벌었다. 이때 신선한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봤고 사업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유학 계획을 접고 이 길로 들어섰다.

축산업계는 텃세 심하기로 유명하다. 힘든 점은 없었나.

보수적인 집단이라 낯선 이에게 배타적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내도 지인을 통할 때보다 품질 좋은 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 축산업에 지식도 지인도 없으니 젊은 패기로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집 근처 안양에 있는 한 도축장을 찾아가 조합장을 만나 내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니 돼지고기를 납품해달라고 했다. ‘젊은이가 축산업에 뛰어들다니 용기도 좋다’며 흔쾌히 거래를 해줬고 그때부터 그분들에게 축산 시장의 생태계, 뒷이야기 등 현실적인 부분을 빠르게 배웠다. 이후 2016년 정육각을 론칭했다. 지금은 하림 같은 대기업이 앞다퉈 고기를 대주겠다고 한다.

정육각의 고기는 얼마나 신선한가.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푸드테크는 규제 측면에서 보수적인 식품산업과 진보적인 IT산업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미리 사업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돼지고기로 따지면 일반 마트에 비해 10배 정도?(웃음) 대부분 마트에선 돼지고기 유통기한을 도축 이후 45일까지로 정한다. 하지만 정육각은 도축 후 4일 이내의 돼지고기만 판매한다. 5일이 넘은 건 모두 폐기한다. 닭의 경우 마트에서는 빨라도 도계한 지 5~7일째부터 팔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당일 도계한 닭만 판매한다..갓 도축, 도계한 고기는 맛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부패가 빠른 닭은 신선할수록 맛이 좋은데 갓 도계한 닭의 가슴살은 퍽퍽하기는커녕 닭다리보다 부드럽다.

초신선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유통 단계가 마트에 비해 복잡하지 않다는 점, 공장의 SCM(공급망 관리)에 빈틈을 없앴다는 점이다. 생산 과정에서 실수를 줄이고 작업 시간을 줄여야 고기가 신선한 상태에서 작업을 완료하고 배송할 수 있다. 그런데 수작업이 많이 필요한 축산 공장은 공장 자동화가 어려워 실수와 작업 시간을 줄이기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발골 작업인데 동물마다 뼈·근육의 구조가 달라 모두 사람이 작업해야 한다. 작업반장이 작업자를 둘러보며 시간마다 삼겹살, 등심 등의 부위를 분리하라고 알려주면 그때그때 작업을 해나간다. 부위를 혼동하기라도 하면 금전적, 시간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생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축산 공장도 비슷한 구조다. 우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작업반장 역할을 기계에 맡겼다. 직접 개발한 기계다. 작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 지시 모니터를 보고 작업을 해나간다. 초신선 고기의 또 다른 비결은 하루 발주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작업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이 엑셀을 활용해 발주량을 계산하는 반면 우리는 축적된 구매 데이터를 활용해 기계가 예측한다. 정확하게 하루 발주량만 작업할 수 있어 미리 작업해둔 고기를 판매할 일이 없다.

이 외에도 공장에 적용한 신기술 덕분에 대기업에서 인수합병 제안이 많다던데. 어떤 기술인가.

축산 공장은 원재료의 특성상 정확한 재고관리가 어렵다. 1000kg이었던 원재료가 작업해서 나오면 950kg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분이 증발하고 장비에 묻어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축산업체에서도 재고관리를 한 달에 한 번 대략적으로만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축산 제품은 식품이기 때문에 재고가 쌓이면 손해가 막심하다. 시간이 갈수록 값어치가 떨어지고 오랫동안 안 팔리면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육각은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선입선출을 관리한다. 재고관리가 수월하니 손실을 줄일 수 있었고, 고기 가격 또한 낮출 수 있었다. 일반적인 마트의 고기 가격과 비교하면 15% 정도 저렴하다. 또 모든 제품에 시리얼 넘버를 입력해 무게와 어떤 농장에서 출하됐는지 등의 정보를 저장해둔다. 만약 A농장에서 나온 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사례가 발생한다면 시리얼 넘버로 추적해 A농장의 제품을 빠르게 수거할 수 있다. IT기술로 돌아가는 정육각의 공장을 본 축산 MD들은 200억원을 들여도 구현할 수 없을 거라고 하더라. 우리 개발자들이 직접 공장에서 고기를 썰고 담으며 느낀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기술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축산업체, 유통사 등에서 인수합병하고 싶다는 제안도 많이 받았다.

주문할 때가 아니라 배송이 시작될 때 정확한 금액이 정해지는 결제 방식도 독특하다.

자체 개발한 ‘신선페이’라는 기능이다. 온라인 정육점은 ‘정확한 금액을 받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600g을 주문하면 일반 정육점에선 그 자리에서 양을 맞춰주거나 무게에 맞게 돈을 지불하면 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580g과 620g이 같은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축산 공장에선 저울 없이도 신속하게 양을 맞추는 경력자한텐 임금을 2~3배가량 더 줄 정도로 정확한 계량은 매출에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리는 무게에 따라 정확한 금액을 부과할 수 있도록 결제 방식을 바꿨다. 주문 이후 배송될 상품이 정해지면 무게에 따른 요금이 결제된다. 다만 주문한 무게에서 오차범위가 10%를 넘지 않도록 했다. 고기 600g을 주문하면 540~660g이 배송된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많이 늘었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마켓이 더 활성화될 것 같다.

매출도 늘었지만 유의미한 성과가 있다. 소비자의 연령대가 30~40대에서 50~60대까지 확대됐다는 점이다. 50~60대 고객에게서 나오는 매출만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동안 직접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찔러본 다음에야 육류를 구매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외출이 꺼려지니까 자녀들 도움을 받아 주문한 것 같다. 최근엔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 70대 고객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나는 인터넷을 못 하니 전화로 주문하고 싶다’고 하더라. 원래 전화주문은 받지 않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진행해드렸다. 그랬더니 입소문이 났는지 ‘나도 전화주문 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한동안 빗발쳤다.

푸드테크 사업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식품과 IT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식품은 오프라인, IT는 온라인 중심이기 때문에 규제 측면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무조건 규제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했을 때 리스크가 있는지 먼저 따져보길 바란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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