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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혁신 돕는 딥테크 강자들] 김제우 와이파워원 대표 

충전하는 도로, 달리는 전기차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미래 도로 구상이 화제다. 도로가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며 미세먼지까지 걸러주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충전 플러그와 충전소가 필요 없는 전기차.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 중이다.

▎와이파워원은 대용량의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안전하게 전달하는 ‘무선충전 SMFIR(자기공진 형상화 기술) 방식’의 전력전송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김제우 대표는 “해외 유수 연구기관과 기업이 개발한 기술보다 충전 효율, 거리, 용량 면에서 월등히 앞선다”고 강조했다.
‘고속으로 달리는 전기차, 무선으로 충전되는 도로, 미세먼지를 흡수해 분해하는 도로.’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밝힌 2030년 미래 한국의 도로상이다. 국토교통부는 “‘도로 기술개발 전략안’(2021∼2030)을 수립했다”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미래 도로상을 구현하기 위해 도로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2030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뜬구름 잡는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국토교통부도 믿는 구석이 있다.

“충전 플러그와 충전소가 필요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유무선 충전하는 중에도 쓸 수 있는데 기존 전기차는 완충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운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로를 달리면서 충전할 수 있다면 운행시간도 길어지고, 배터리 용량을 무작정 키울 필요도 없습니다. 2012년부터 카이스트가 도입한 무선충전버스 두 대가 아직도 큰 문제 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4일 대전 유성의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내 무선충전버스 정류소에서 만난 김제우 와이파워원 대표(카이스트 초빙교수)가 한 말이다. 정류소엔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무선충전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김 대표는 무전 전기장치(급전선로)가 매설된 파랗게 표시된 도로를 가리키며 “이곳에서 무전충전버스가 5분 정도 충전한 뒤 카이스트 캠퍼스 내 5㎞ 구간을 왕복한다”며 “2012년 카이스트가 도입한 이후 무선충전 솔루션이 문제를 일으켜 버스 운행을 멈춘 적은 없다”고 말했다.

무선충전버스는 2012년 카이스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김 대표 말대로 이 버스는 땅속에 급전선로를 묻은 도로를 달리면서 차량 아래쪽의 집전판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식이다. 같은 해 10월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실험한 결과, 평균 75%의 전력 전송 효율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금은 안정적으로 90% 이상 효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와이파워원은 2018년 카이스트에서 무선전력전송기기 관련 기술 54건을 이전받고 분사 창업(스핀오프)한 교원 창업 회사다. 김 대표 이전엔 조동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무선전력전송 연구센터장을 맡아 진두지휘해왔다. 2011년 세계 최초로 무선충전 전기자동차(OLEV·Open Leading Electric Vehicle)를 상용화하며 유명해졌다.

세계적으로 기술의 우수성과 경쟁력도 인정받았다. 2010년 미국 타임지의 세계 50대 발명품에 이름을 올렸고,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선정한 세계 10대 유망기술에 선정, 2014년 미국 기계학회(ASME)에도 소개, 영국 교통연구원 기술성숙도(TRL 9단계)를 인정받은 바 있다. 와이파워원은 이 OLEV 기술을 대중교통 수단에 탑재해 실용화를 앞당겨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조 교수는 삼성전자를 거쳐 미국 퀄컴 부사장을 역임했던 김 대표에게 바통을 넘겼다. 김 대표는 한국 무선통신(3G·4G LTE) 개발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와이파워원을 맡자마자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돌며 무선충전 파일럿 시범 사업에 돌입했다. 실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신도심인 실리콘 오아시스에 테스트용 도로도 만들었다. 김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두바이에 무선충전 도로가 생긴 건가.

비록 60m 테스트 구간이지만 맞다. 올해 두바이 실리콘 오아시스에 순환도로 10㎞ 구간(급선전로 매설 구간 1㎞)에 무선충전 파일럿 시스템 시범 사업을 구현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업 진행이 좀 늦어질 수는 있어도 두바이 당국자들과 협의가 상당히 진척돼 진행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영국·프랑스·싱가포르·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정부와도 지난해부터 기술 접목을 위한 협의를 했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진전이 없나.

우리가 너무 빨랐던 게 아닐까. 카이스트가 이 버스를 도입한 게 2012년이다. 당시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모델S’를 내놓을 때였다. 한국에선 2020년 이후에 본격화될 거라는 얘기만 있었을 뿐 전기차 자체가 생소했다. 그런데 우린 전기차 충전 시스템을 무선 형태로 바꿔보겠다고 나섰으니 도입이 늦을 수밖에. 다행인 건 한국에도 전기차 붐이 일었고, 국토교통부도 ‘도로 기술개발 전략안’을 내놓고 2030년까지 무선충전 도로를 만들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그간 사업화 노력도 했고, 국가 연구비도 800억원 가까이 썼다.

맞다. 2009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미래창조기획부 등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2015년 동원건설산업에 인수됐던 ‘㈜올레브’(카이스트와 동원이 공동출자한 기술협력회사)도 폐업했고, 국내에 상용화된 사례도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열차 6대와 구미시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라 업체 쪽에서도 관련 부품을 제조해본 경험이 없어 모든 부품은 설계부터 제작까지 전부 새로 해야 했다. 차량에 장착하는 집전판 하나도 차종에 맞춰, 충전방식에 따라 수십 가지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야 했다. 돈이 많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한일이다. 전기차 무선충전 국제 표준화 논의도 지난해부터 시작됐는데 8년이나 앞서 기존 충전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에 많은 시간과 자금이 들이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전기차의 기술개발에도 기회가 많을 텐데, 왜 충전 기술인가.

자동차, 배터리 등 모든 기술은 기존 대규모 제조 대기업이 쥔 사업을 바탕에 두고 있다. 자금력과 인력이 풍부한 기업들이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요즘 배터리 기술개발로 400㎞ 이상 달리는 전기차가 등장했다. 한 번 충전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사람들이 구매를 꺼리는 건 충전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충전할 기회를 늘려주면 지금의 배터리 기술로도 충분히 수천㎞를 내달릴 수 있다. 주차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존엔 플러그당 인버터를 설치해야 하지만, 무선충전 기술을 활용하면 인버터 한 대로 주차장 한 면쯤은 커버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관심 없나.

관심이 있다. 하지만 당장 협력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곳은 없다. 사람이 타는 자동차의 경우 부품 하나를 개조해 장착하거나 바꿔도 인증받아야 할 게 많다. 전기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설치 시설부터 부품 등 거의 모든 과정이 전기안전 인증과 맞닿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도로망 개선도 함께 진행해야 하는 사회 인프라 구축 사업이라 민간기업이 주도하기도 쉽지 않다.

일각에선 경제성과 기술 수준이 낮은 것 아니냐고 한다.

그렇지 않다. 경제성 문제는 다른 사례를 보면 풀린다. 2016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가 20kW 전기차 무선충전 시스템을 개발했고, 시스코, 에바트란, 클렘슨대, 일본 도요타 등도 참여했다. 볼보는 2011년에 무선충전 시스템을 개발해 ‘C30’ 모델에 적용했고, BMW는 최고급 하이브리드 차량인 ‘i8’에 무선충전 기능을 옵션으로 넣었다. 미국 퀄컴도 무선충전 기술인 ‘헤일로(HALO)’를 개발했다. 2013년부턴 현대차까지 뛰어들고 있다. 자동차 구동 방식 전환에 일대 혁명이 일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거의 모든 자동차 기업과 연구소가 뛰어드는 이유다.

기술 수준만 놓고 보면 우리가 최고다. 캐나다 봄바디어, 미국 전기차 무선충전 전문기업 모멘텀 다이내믹스, 이스라엘 일렉트론, 미국 퀄컴보다 충전 효율이나 거리, 충전 용량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선다.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이다. 물론 해외 기업들은 수년째 기술 고도화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린 2012년 이후 별도의 개량사업을 펼치지 못했다.

김 대표는 카이스트 내 무선충전 시설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참 더 이어갔다. 그가 강조한 ‘무선충전’이란 단어 자체엔 진한 아쉬움과 기대감이 묻어났다. 김제우 와이파워원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납품한 무선충전 버스 앞에 선 김제우 대표. 그는 “향후 자율 무인주행, 드론, 스마트 도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려면 정부와 지자체,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무선충전버스 기술은 기존 유선충전 방식, 충전기 설치 공간, 충전 대기 시간 등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죠. 이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한국형 미래모빌리티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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