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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8) 

무역인이 본 해상왕 장보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육상 실크로드보다 해상 실크로드가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유라시아의 역사 기록과 설화를 보면 육지 상인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기록보다 장보고나 신드바드 같은 바다 상인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훨씬 더 많다.

▎완도의 장보고기념관 앞에서 장보고라는 인물을 생각해본다.
15세기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육상 실크로드의 물동량은 제한적이었다. 낙타나 말이 실어 나르는 화물의 양은 배가 실어 나르는 화물의 양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낙타로 200~300kg 단위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육상의 실크로드 상인들보다 배로 수십 톤, 수백 톤에 달하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해상 바다 상인들이 돈 벌기가 더 수월했을 것이다. 30t짜리 배 한 척이면 낙타 100마리가 나르는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당나라 전반기와 몽골제국 시기를 제외하면 육상 실크로드는 경제적 의미보다는 문명 교류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00년 전까지만 해도 비단, 금, 은, 향료, 보석, 자기, 모피, 약품처럼 비싼 물건들만 유라시아를 횡단해서 교역됐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육상 실크로드보다 해상 실크로드가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도 광저우시에 적재량 30t짜리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세웠으며 동남아시아 지역과 물소 뿔, 상아, 비취, 진주 등 다양한 상품을 무역했다. 한나라는 기원전 202년 건국 이후 60여 년 동안 유목민족인 흉노에게 기를 못 펴다가 한무제가 등장해 40여 년 동안 공격한 끝에 흉노를 분할 지배(devide and rule)하는 데 성공했다. 또 남쪽으로는 기원전 112년에 양복에게 수군 10만 명을 줘 광둥(廣東), 광시(廣西), 베트남 북부지역인 남월(南越)을 멸망시킨 후 동남아시아와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무역망을 구축했다.

해상 실크로드는 서쪽의 로마에서 동쪽의 중국 남부, 한반도, 일본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바닷길을 말한다. 중국의 도자기와 동남아·인도의 향신료가 많이 무역되면서 ‘도자기의 길’ 또는 ‘향신료의 길’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8~9세기에 이르러 육상 실크로드가 쇠퇴하고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로 대량 수송이 유리한 해상 실크로드가 더욱 번성했다. 팍스 로마나와 한나라 시대의 안정적 국제 무역 시스템이 로마와 중국 간 장거리 무역을 활성화했듯이 7~9세기에는 이슬람 제국과 당나라가 위세를 떨치면서 더 직접적으로 무역을 확대했다. 특히 8세기 이후 상인의 나라 이슬람 제국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동서 간 해양 교역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8세기에는 장보고의 해상 세력이 중국, 한반도~일본을 잇는 동북아 경제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의 유행이 신라 경주까지 전파되는 데는 6개월이면 가능했다고 한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무역활동을 장악했던 8세기 말~ 9세기 초, 유라시아의 바다는 지중해에서 홍해·아라비아해를 지나 인도양·서태평양을 거쳐 황해까지 연결됐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연결돼 시리아~페르시아~중앙아시아~신장위구르~돈황~장안~낙양~개봉~대운하~양주~동지나해~천주~광둥~점성~말레이~스리랑카~아라비아해~홍해~시리아로 이어지는 세계적인 육상·해상 순환교통로가 완성된 것이다. 비단은 육상 실크로드에서 주로 운송됐고, 도자기와 향료는 ‘세라믹로드(Ceramic Road)’ 또는 ‘차이나로드(China Road)’라 불렸던 해상 실크로드로 운송됐다. 8세기에 들어서는 서해 횡단로, 동지나해 사단항로 등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동북아의 바닷길은 해상 실크로드와 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8세기 중반에 일어난 안록산의 난으로 육로가 끊기면서 해상 실크로드가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뻗은 육상 실크로드 경영에 주력했던 중국은 전통적으로 해상 활동에 취약했다. 바다에 취약한 점은 섬나라인 일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까운 바다를 돌아다니는 것은 몰라도, 조금만 먼 바다로 나오면 일본은 약했다. 그래서 일본도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 국적을 가진 가야, 백제 유민들이 동아시아 바다를 쉽게 장악했다. 옛 백제 땅 완도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이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 한반도, 일본과 연결되는 한반도 서남해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보고기념관의 흥덕왕릉비편. 흥덕왕릉비에 새겨져 있는 ‘貿易之人間’은 ‘무역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흥덕왕이 장보고 대사를 지칭하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당나라의 해상 상권은 페르시아·아라비아 상인과 더불어 신라 상인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양주·천주·광주의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들과 긴밀하게 교류했을 것이다. 양주 이북의 해상 상권은 대운하·화이허강·산둥반도 일대에 신라방 또는 신라촌을 형성한 신라 상인들이 동북아의 여러 항로를 활용하여 신라와 일본까지 동북아 무역 상권을 지배했다.

신라는 백제, 고구려, 가야가 멸망한 뒤에도 한반도 해역을 장악하지 못했다. 멸망한 나라들의 해상 세력이 신라에 협력하지도 흡수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 동남해안에는 신라방이니 신라소가 많이 설치됐다. 특히 동지나해와 양쯔강이 만나는 주산군도(舟山群島, 저우산군도) 쪽에 이런 곳이 많았다. 이것은 신라인들이 한반도 해역과 동지나해를 장악하지 못했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바다에 약한 신라가 어떻게 저 멀리 양쯔강 입구까지 장악할 수 있었을까?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자 그 유민들은 당나라와 일본으로 흩어졌고 신라에서는 해상 강국이었던 백제와 가야의 해상 능력을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발해, 신라와의 무역 창구로 성장한 이정기 왕국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출신의 유민들이 신라방으로 불리는 동네에 모여 살면서 강력한 해상 세력을 형성해 이정기 왕국을 지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중국 동해안의 신라방과 같은 해상 세력들이 이정기 왕국이 멸망하자 그 대안으로 장보고를 지원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대대적으로 위협 세력 토벌작전에 나서야 했던 당나라는 이를 위해 대규모 모군(募軍)을 실시했다. 장보고(張保皐)와 정년(鄭年)도 당에 건너가 군대 모집에 응했다. 장보고는 반란 세력 진압작전에 참여하면서 세계의 큰 변화와 흐름에 눈을 뜨게 됐다. 그의 눈에는 확대된 바닷길과 사무역의 가능성이 보였을 것이다. 당나라 군대에서 이정기 군대와 싸우면서 1000명 대원을 이끄는 장수의 자리까지 올랐던 장보고는 이정기 왕국의 무역 시스템을 온몸으로 보고 배웠을 것이다. 완도의 청해진은 산둥반도 이정기 왕국을 벤치마킹하지 않았을까?

동아시아 해상 제국 건설한 무역왕 장보고


▎8세기 남북국 시대의 교역로. [사진 우리역사넷]
장보고는 한국의 역사 인물 중에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한국 역사에서 장보고만큼 국제적인 인물이 별로 없다. 이미 1200년 전에 당나라와 일본에 흩어져 살고 있던 신라 유민들을 하나로 모아 청해진을 동아시아의 허브로 만들었다. 9세기에 세계는 더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가 유라시아대륙을 더 촘촘하게 연결했다. 장보고는 이런 세계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군사력, 상업력, 정치력을 결합하여 동아시아 초유의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

장보고에 대한 인물평은 필자가 역사 학자가 아닌지라 난삽할 수 있지만 기록에 없는 부분을 기업인의 상상력으로 채워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소년 장보고는 성도 없는, 완도의 상놈 궁복이었다. 청년 장보고는 미래가 없는 신분제 사회 신라를 떠나 능력만 있으면 출세할 수 있는 당나라 용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그 시대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평로군 이정기 왕국이 황해의 상권을 장악해 당나라의 위협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에게서 배운다. 장보고도 싸우면서 이정기 왕국의 해상 경영을 배웠을 것이다. 청해진 시스템은 산둥반도 이정기 왕국의 황해 무역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짐작된다. 819년 이정기 왕국이 진압되고 828년 신라로 귀국할 때까지 장보고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나라 해변가에 자리 잡은 고구려, 백제, 신라 유민들의 강력한 무장 상인 집단의 리더로 떠올랐을 것이다. 귀국하기 전에 그는 동아시아 해상 경영 전략을 이미 다 짰을 것이고 ‘해적 퇴치’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신라 흥덕왕에게 매력적인 금전적 제안을 했을 것이다. 돈이 필요했던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군대 1만 명을 허락해주고 ‘대사(大使, 당의 번진(藩鎭) 절도사(節度使)에 대한 별칭으로 쓰이는 명칭)’라는 전례 없는 직함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장보고는 신라 조정과 딜을 하기 전에 이미 완도를 중심으로 한반도 서남해의 해양 세력을 규합해놓았을 것이다. 탁월한 장수인 장보고에게는 해적을 때려잡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가장 신경 썼던 일은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동아시아 전체에 해상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군사력으로, 때로는 이익공유 시스템으로, 때로는 대정부 로비로 당나라, 신라, 일본, 발해의 정부와 기존의 해상 세력, 해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장보고는 신라방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장보고를 암살당한 해상 영웅으로 박하게 평가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용맹하고 고귀한 인물로 묘사돼 그의 인품과 더불어 뛰어난 네트워킹 능력을 보여준다.


▎청해진의 망루라고 할 수 있는 굴립주 자리에서 완도 앞바다를 내려다봤다.
장보고는 우리에게 고려청자라는 선물도 남겼다. 장보고가 만든 해남 화원면 일대의 초기 청자 생산지를 고려청자의 기원으로 본다. 화원면의 초기 청자 생산지는 중국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벽돌을 쌓는 중국식 자기요(磁器窯)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도기요(陶器窯)를 계승해 흙을 쌓아서 만든 토축요(土築窯)다. 아마 장보고는 해남이나 강진에서 자기를 만들면 중국 오리지널 자기에 뒤지지 않는 품질을 가지면서도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라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체 대표들 중에는 외국 제품이나 기계를 수입하다가 기술과 시장에 익숙해지면서 국산화해서 만들어낸 사례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보고도 당나라에서 청자를 사다가 신라와 일본에 팔면서 기술과 시장을 배우고 청해진을 세울 때쯤에는 사업계획에 청자 국산화를 포함했을 것이다. 장보고 덕분에 한반도는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600여 년간 전 세계에서 중국과 더불어 당대의 첨단 제품인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두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14세기 신안 해저선에서 발견된 화물 중 대부분인 2만5000점이 도자기였는데, 당시 고려는 스스로 고려자기를 생산하고 수출까지 했기 때문에 이 도자기들은 원나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팔려 나가는 도자기였다고 한다. 한반도의 도자기 생산은 장보고 이후 임진왜란 때까지 600년간 고려와 조선의 경제력과 무역수지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고 덕분에 고려와 조선 사람들의 삶의 질이 많이 높아졌을 것이다.

2002년부터 대규모로 열리는 세계한상 대회는 장보고가 1200년 전에 구축한 재외 신라인 네트워크를 벤치마킹했다. 장보고는 국경을 초월한 한민족 최초의 글로벌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다. 1200년 전 그가 주창했던 불굴의 개척 정신, 개방과 포용의 정신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세계가 고립되어가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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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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