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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29) 물의 도시 베네치아, 동서양 경계를 넘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운하인 카날 그란데 양쪽에는 고색창연한 건물과 곤돌라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뿜어낸다. 고풍스러운 건물을 손 조형물이 붙잡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
뱃사공이 멋진 유니폼에 모자를 쓰고 곤돌라 노를 젓는 모습이 운하 양옆에 있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건물들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베네치아는 지구상 도시 중 정말 독특하게 조성된 곳이다. 오랜 역사와 함께 물 위에 세운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난다.

육지에 펼쳐진 도로만 다니다가 물이 지나는 통로인 운하나 수로에서 배를 이용해 이동하며 마주하는 풍광은 분명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다. 평범한 도시들과 완전히 다른, 특별한 물의 도시를 방문하며 그 완벽한 ‘다름(Difference)’을 마음껏 느껴본다. 운하의 도시이자 수상도시인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동북부에 있는 베네토주의 주도(州都)이고, 아드리아해에 접한 항구도시다. 베네치아를 방문할 때면 사업상 일을 보기 위해서, 또 교통도 편리하기 때문에 베네치아 옆에 있는 도시 파도바(Padova)에 여장을 풀곤 한다. 그리고는 수상버스를 이용해 베네치아를 찾기도 하고, 또 더러는 자유롭게 다니며 사진을 찍으려고 개인 수상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긴 운하로 이동하면 수많은 수상버스와 택시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이로 곤돌라가 왕래하고 이들의 정착장들도 보인다. 수상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는 운하인 카날 그란데(Canal Grande)를 통해서 움직이다 보면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아치 밑을 지나게 된다. 리알토다리는 카날 그란데를 연결하는 다리 네 개 중 가장 오래된 다리로, 삿갓을 쓴 듯한 독특한 디자인에 눈길을 빼앗긴다. 관광객들도 주변에 있는 많은 카페에서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휴식을 즐기고 곤돌라도 탈 수도 있다. 운하 좌우로 늘어선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들을 보면 그 특이함에 정녕 베네치아스러움을 느낀다. 베네치아는 유명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작가 마르코 폴로와 자코모 카사노바의 고향이다.

물과 예술의 성지 베네치아


▎개구리를 들고 있는 소년상 건너편에 산마르코 성당의 돔과 종탑, 두칼레 궁전이 보인다.
#1. 베네치아 중심에는 디자인이 아주 특이한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 있다. 대성당의 첫인상은 외양을 보나 내부를 보나 유럽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무척 화려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골격은 1060년부터 1100년까지 대부분 완성됐다. 13세기에는 원래의 돔 위에 철골로 새로운 돔을 만들어 씌웠다. 당시 이탈리아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비잔틴양식과 이슬람양식을 섞어서 건축하는 게 유행이었다. 이곳 역시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대성당 내부는 황금 모자이크로 천장과 벽을 장식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베네치아는 유리 산업이 발전한 덕분에 이곳 역시 많은 부분을 유리로 장식했다. 따라서 다른 이탈리아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가 이곳 산마르코 대성당에는 그리 많지 않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 내부 황금 모자이크 장식 등으로 인해 산마르코 대성당은 11세기에 ‘황금교회’라고도 불렸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규모 약탈이 일어났을 때, 베네치아 군대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예술품들을 약탈해 와 산마르코 대성당에 전시했다. 그 예로 대성당 남서쪽 모서리에는 약탈해 가져온 로마시대 ‘사두정’의 황제 동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사두정은 3세기경 로마제국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당시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네 명을 세워 각자 제국을 통치하는 새로운 정치형태였다. 이 조각은 그 사두정을 이루었던 네 황제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베네치아 예술가들은 비잔틴 예술품들에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시도했다.

#2. 대성당 정면에는 산마르코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큰 광장을 회랑(아케이드)으로 된 ㄷ자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광장에는 비둘기 떼가 날아다니고 아케이드 건물 앞에는 날씨가 좋으면 식당과 카페에서 야외에 의자를 내놓는다. 광장 남쪽에는 1720년에 개업해 현재까지 이탈리아에서 운영되고 있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이 있다. 이 카페는 괴테, 찰스 디킨스 같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한 곳으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카사노바가 당시 플로리안이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카페란 점을 이용해 이곳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카페 플로리안에는 저명인사의 방, 원로원의 방, 계절의 방 혹은 거울의 방, 동양의 방 등이 있다. 이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고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시작된 방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멋진 여행 일정이 될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은 가끔 홍수나 아드리아해에서 밀려 들어오는 조수의 위협을 받는다. 언젠가 겨울에 방문했을 때는 광장에 물이 많이 차서 물 위에 패널과 파이프를 설치해 만든 임시 보행로로 다닌 적도 있다. 대성당 옆에는 두칼레 궁전이 있고 건너편에는 아주 높은 종탑이 있다. 광장에서 산마르코 대성당을 정면으로 보면서 오른쪽에 있는 두칼레 궁전을 지나가면 바다와 만나게 된다. 바다를 따라서 핑크빛 가로등이 늘어선, 운치 있는 해변 보행로를 산책할 수 있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호텔 다니엘리(Hotel Danieli)를 만난다. 이곳 식당의 테라스에서는 보행로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음식도 아주 맛있으니 꼭 들러서 휴식도 하고 식사도 하길 추천한다.

대성당에서 두칼레 궁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매우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과 수로로 연결되어 있는 베네치아 도심에 닿는다. 맛집들과 유명한 베네치아의 유리공예품이나 가면을 파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눈길을 끈다.

#3. 대성당 바로 옆에는 고딕양식 건물로 지어져 조형미가 무척 뛰어난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 있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 도제(국가원수)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다. 산마르코 대성당에 면한 쪽의 문 위에 보이는 날개 달린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두칼레 궁전에서는 산마르코 광장과 베네치아 석호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고딕양식의 조형미가 뛰어난 두칼레 궁전. 입구 위의 날개 달린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궁전 내부에서는 두 곳이 관심을 끈다. 먼저 16세기에 궁전과 감옥을 연결한 ‘탄식의 다리’다. 죄인들이 한 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하여 이름 붙은 이 ‘탄식의 다리’에서 바깥세상의 수로와 사람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모습을 내다보며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는 14세기에 재구축돼 시의회가 열리던 체임버다. 두칼레 궁전에서 제일 큰 방이자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방으로 손꼽혔던 이곳에서는 틴토레토 등 르네상스 시대의 베니스 화가들이 그린 초대형 벽화와 천장화를 감상할 수 있다.

#4.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특산물이 있는데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유리공예품과 레이스다. 모터보트를 타고 무라노섬을 방문하면 무라노 유리(Murano Glass)공예품 공장과 상점을 돌아볼 수 있다. 장인이 유리를 엿가락같이 녹여 마음 가는 대로 멋진 모양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조각 작품도 있고 샹들리에 같은 각종 생활용품이나 장식품 등 다양한 상품을 보면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샘솟는다.

레이스로 유명한 부라노섬도 찾았다. 이곳은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집들로 유명하다.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수려하고 아름다운 부라노 레이스(Burano Lace)를 보았다. 수공으로 만든 식탁보, 커튼, 각종 장식용 레이스들이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 이런 레이스를 사용해 장식하면 내 품격도 올라갈 것만 같다. 재미있는 추억이 떠오른다. 무라노섬과 부라노섬을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모터보트가 고장나서 바다 한가운데서 잠깐 표류한 적이 있다. 다행히 배가 지나다니는 길목을 따라서 곤돌라 정착장에 있는 것과 같은 큰 통나무들이 바다에 줄지어 박혀 있어서 걱정을 덜었다. 약간의 긴장과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짧은 시간에 수리를 마치고 무사히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동서양의 만남이 이뤄진 공간


▎베네치아 중심에 있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화려한 정면 모습.
#5. 카날 그란데(Canal Grande)를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미술관 두 곳을 방문할 수 있다. 먼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을 소장하고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a)’이다. 나체의 남자가 팔과 다리를 벌리고 원과 사각형 안에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한 비트루비안 맨은 이상적인 인체 비율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개념을 나타낸 것으로, 평소 책이나 교육 과정에서 많이 봐온 그림이다.

그림의 원본은 특별전에서나 가끔 볼 수 있고 평소에는 전시하지 않아서 포스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1750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아체타가 설립한 미술학교로, 현재는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베네치아파 회화를 중심으로 수집하고 있다. 특히 베네치아파의 첫 세대를 대표하는 조반니 벨리니, 티치아노, 틴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의 대표작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파올로 베로네세의 유화 작품 ‘Levi 집안의 잔치’는 560×1309cm 크기로, 16세기 작품 중 가장 큰 캔버스에 전시돼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나오면 카날 그란데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다리 위는 카날 그란데 운하 좌우의 풍광을 촬영하기 좋은 장소다. 두 번째 장소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미술품 수집가이자 사교계 명사인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은 1912년 타이타닉호와 함께 침몰한 벤저민 구겐하임의 딸이자 솔로몬R.구겐하임재단을 설립한 솔로몬 R. 구겐하임의 조카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1938년부터 1946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미술품을 수집했고, 1949년에 베네치아에 정착해 평생 수집품을 전시했다. 이 미술관은 그녀가 30년간 머물렀던 저택을 개조한 곳으로, 피카소, 샤갈,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미술관 바깥쪽 벽에 네온사인으로 아래와 같은 표어가 붙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CHANGING PLACE(장소를 바꾸어라)

CHANGING TIME(시간을 바꾸어라)

CHANGING THOUGHTS(생각을 바꾸어라)

CHANGING FUTURE(미래를 바꾸어라)


중국 철학자 장자가 2000년 전에 『장자』 추수 편에서 비유하여 이야기했던 우물 안 개구리의 ‘공간’, 여름 벌레의 ‘시간’, 비뚤어진 선비의 ‘인간’과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동양과 서양에서 어쩌면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베네치아 출신인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집필하며 전해주었을까? 이곳에서 동서양의 경계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미국 뉴욕,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장소’를 바꾸고, 근대와 현대의 작품을 통해서 ‘시간’의 경계를 넘고, ‘인간’의 사고를 바꾸어서 ‘미래’를 바꾸는 중일까? 이제 시대는 바야흐로 지역적·공간적 경계가 없는 ‘글로벌 시대’이고, 시간적 경계가 없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이며, 인간의 지식 또한 어디에서도 순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가 아닌가? 이러한 사실이 작금의 현실인데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의 리딩 그룹은 아직도 작은 공간, 과거 지향적 시간, 편협한 인간의 경계에 갇혀 있는 듯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동서양의 공간적 경계를 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경계를 넘어, 우리 인간, 특히 한국인의 미래를 크게 그리고 진취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때이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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