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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채율 대표 

전통 수공예 제품으로 글로벌 명품시장 도전 

노유선 기자
최근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진 선물은 ‘채율’의 서안(좌식 책상)이었다. 채율은 한국 전통 수공예 브랜드 중 명품으로 손꼽힌다. 이정은 대표는 명품이란, “귀하고 희소성 있는 것, 그 대물림의 가치”라고 말했다.

2010년대 초반 당시 20대였던 이정은 채율 대표는 수공예 장인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과거 부흥했던 한국 전통공예는 해외 명품 브랜드에 밀려 소비자의 시야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의 눈에 한국 수공예품은 글로벌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명품’이었다. 문제는 수공예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무엇보다 장인들을 어떻게 ‘채율의 장인들’로 모실 수 있을지였다. 이 대표는 그들을 한 분 한 분 찾아가 “한국 수공예 기술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대표의 공약 이행률은 100%에 가깝다. 이 대표는 “채율은 해외 귀빈들께 한국을 대표하는 선물 역할을 해왔다”며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과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에게도 채율의 제품이 선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7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채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국 전통 수공예와 브랜드에 대한 이 대표의 철학을 들어봤다.

전통공예의 가치, 브랜드로 재탄생


▎도라지꽃 주칠 보석함. ‘함’은 채율의 시그니처 제품이다.
2008년에 시작한 한국 전통 수공예 브랜드 채율은 사명부터 남다르다. ‘색을 다스리다’라는 뜻의 채율(彩律). 이 대표는 “전통 색채들은 정말 다채롭다. 실제 고려불화나 민화를 보면 놀랍게도 핫핑크와 같은 아주 진하고 선명한 분홍색이 자주 사용됐다”며 “이는 오방색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의 색감들을 그대로 나타내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율도 선조들의 뒤를 이어 최대한 다양한 색감을 표현해내겠다는 의미다.

이 대표에게 한국 문화가 창업 아이템으로 다가온 건 대학생 때였다. 대학에서 전통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한 이 대표는 “창업 당시 해외 명품 브랜드 중에는 자국의 전통문화를 브랜드에 녹여낸 경우가 많은데 국내 브랜드에서는 그런 예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오천 년 역사가 있는 한국, 우리 뿌리에도 내세울 수 있는 문화가 얼마든지 있고 이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수많은 전통문화 중 그녀의 브랜드로 낙점된 것은 수공예. 아버지가 수공예품을 수집했던 영향도 있었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중후반 해외 명품들이 국내 유통망을 통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안타깝게도 전통공예의 가치가 외면받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전통공예의 가치에 주목할 수 있었고, 수공예는 ‘박물관 유물’에 그칠 게 아니라 ‘브랜드’로 재탄생돼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칭 타칭 ‘한국 문화 홍보대사’가 됐다. 채율 제품을 본 외국인이 ‘아시아에 있는 한국이란 국가에 이렇게 고귀한 문화가 있었어?’라고 놀라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채율 제품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적 가치가 높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채율의 제품군은 작디작은 보석에서부터 이를 담을 수 있는 함(보석함·예단함), 집 안에서 포인트 가구가 되는 서랍장에 이르기까지 라인업이 다양하다. 전통가구인 머릿장과 약장도 있지만 콘솔처럼 현시대에 어울릴 만한 가구도 채율의 제품군에 속한다. 돌반지뿐 아니라 화병, 항아리 같은 인테리어 소품들은 20~40대 고객층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공예는 ‘올드하다’는 편견에 대해 이 대표는 “요즘은 수공예 특유의 희소성 때문에 젊은 고객들의 발걸음이 늘었다”며 “고가구나 그림에 매력을 느껴 채율을 찾는 젊은 컬렉터도 많다”고 말했다.

채율은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까지 일괄적 시스템을 갖췄다. 본사 디자인팀이 총괄하는 가운데 분업화된 공방에서 생산이 이뤄진다. 직영 공방도 있고 외주 협력업체 공방도 있다. 완성된 제품은 주요 백화점과 호텔 등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된다. 이 대표는 “수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 시스템 방식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장인을 발굴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녔던 이 대표의 고집 덕분에 채율에서는 분야별로 전통 기술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장인들이 20대부터 70대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60대였던 인간문화재 선생님께서 어느새 70대가 되셨다”며 “메타버스 시대에도 장인정신은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에르메스를 꿈꾸다


▎나비국화당초 투톤 서안.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진 선물과 유사한 제품이다.
최근 채율은 유명 인사의 선물로 연이어 낙점 받으며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채율의 ‘나비국화당초’ 서안(좌식 책상)을 선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예인 부부가 예단으로 채율 제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앞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채율 제품이 선물로 전해졌다.

물론 채율이 항상 순항했던 건 아니었다. 2008년 론칭 후 채율은 ‘고가 수공예품’이란 편견 때문에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좋은 브랜드는 결국 잘 팔리는 브랜드”라며 “브랜딩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채율이란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고 회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토종 명품 브랜드의 탄생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는 “한국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주목을 받은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라고 토로했다. ‘한국 문화·예술을 담은 명품 브랜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당시 업계의 주된 시각이었다는 설명이다.

채율은 수공예 ‘명품’ 브랜드를 표방한다. 하지만 흔히 쓰이는 명품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르다. 이 대표는 “누군가에게는 테슬라 같은 전기차가, 누군가에게는 애플 제품이, 또 누군가에게는 에르메스와 샤넬 같은 전통 유럽 브랜드가 명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채율이 말하는 명품은 귀하고 희소성 있는 것, 그 대물림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채율은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의 가치 있는 헤리티지를 파는 명품 브랜드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글로벌시장에서 채율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봤다. 그녀는 “시기가 왔다”고 단언했다. 한국 오천 년 문화·예술의 뿌리가 재조명받기에 적기라는 설명이다. 또 그녀는 채율 제품의 재료들이 글로벌시장에서 결코 낯선 재료들이 아니라며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금, 은, 옻칠, 자개, 칠보 등은 모두 글로벌 재료들”이라며 “자개는 유럽 명품 브랜드 시계와 보석의 핵심 재료”라고 설명했다. 채율은 2~3년 안에 해외 유통망을 본격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통공예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의문에 이 대표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전통공예가 사장돼가고 있는 것이 현주소”라며 “IT 첨단 시대에 전통 수공예품의 실용성이 떨어질 수는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기술력과 디자인을 혁신한다면 수공예품의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녀는 “기술력과 디자인, 두 측면에서 혁신한다면 실용성 있는 고가 수입가구와 동떨어지지 않는 수공예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율은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트렌드를 좇으면서 전통을 지켜나가는 가운데 다양한 연령층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론칭 15주년을 앞두고 리브랜딩을 하고 있다. 여느 명품시장처럼 MZ세대를 겨냥한 엔트리라인도 제작하고 있다”며 “잠재적 구매력이 있는 X세대와 이미 브랜드 로열티가 있는 6070세대, 각각의 수요에 맞게 제품들을 전략적으로 구상 중이다”라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채율의 롤 모델은 에르메스다. 이 대표는 에르메스 그룹이 2007년 설립한 ‘샹시아(上下)’를 예로 들었다. 샹시아는 중국 전통 장인정신을 담은 명품만 다루는 브랜드다. 이 대표는 “채율을 에르메스와 같은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며 “중국 전통문화를 녹여낸 샹시아라는 브랜드가 있듯이, 조만간 채율도 한국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브랜드로서 글로벌시장에 선보일 날이 올 것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보석 같은 귀한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 이 대표가 인터뷰 중 여러 번 한 말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헤리티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귀함이 더해진다”며 “이처럼 귀한 한국의 헤리티지를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의식주를 모두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한국의 헤리티지를 세련되게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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