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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90년 가족경영 비결 

 

지난 8월 10일은 레고 그룹이 창립 90주년을 맞이한 날이었다. 1932년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기업에서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장난감 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100년 이상을 바라보게 된 레고 파워 배경에는 성공적인 가족경영이 자리한다.

▎ 사진:레고 브랜드 웹페이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레고 블록은 진기한 숫자 기록들을 갖고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팔리는 레고 블록은 약 750억 개라고 한다.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매년 레고 블록 10개를 사는 셈이다. 아이들은 블록 몇 개로 자기만의 독특한 장난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로 4개 세로 2개의 ‘스터드(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가 있는 레고 블록 6개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양은 무려 9억1500만 가지라고 한다. 이 기묘한 플라스틱 블록들로 세계 최고의 장난감 회사가 된 레고는 어떤 기업일까?

레고(lego)는 1932년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 1891~1958)이 덴마크의 시골 마을 빌룬트에 설립한 사업체에서 출발했다. 목수였던 올레는 나무로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 나무 사다리와 다리미질 판 등을 제작하는 사업을 했다. 당시 미국 대공황의 여파가 유럽에까지 미치며 일감이 줄자, 올레는 요요 등 나무 장난감을 제작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1934년 그는 나무 장난감 생산에 집중하면서 덴마크어로 ‘잘 놀자’라는 뜻의 두 단어 ‘leg godt’를 합친 ‘Lego’라는 회사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라틴어로 ‘lego’는 ‘내가 함께 놓는다’, ‘내가 조립한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그에게서 레고 블록이 탄생하게 된 것이 마치 예견된 일처럼 느껴진다.

레고 그룹의 2021년 매출액은 553억 덴마크 크로네(약 10조500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70억 크로네로 영업이익률은 무려 30.7%에 이른다.

레고는 비상장기업으로 지분의 75%는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족 소유의 투자지주회사인 커크비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25%는 또 다른 투자지주회사 빌룬트 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빌룬트는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족이 설립한 레고 재단의 100% 자회사인데, 레고 지분 25% 등 재단 소유 재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창업주 이후 현재 4세대를 걸쳐 레고의 가족경영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난 90년 동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족이 지분 100%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성장해온 비결은 무엇인가?

창업주 올레는 불굴의 의지로 레고의 성장 기반을 닦았지만 1942년 큰 화재로 공장과 장난감 재고가 모두 소실됐다. 목수로 일했던 1924년 이미 그의 작업장과 집이 화재로 전소된 적이 있었지만 올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해 1944년 조립 라인을 갖춘 공장을 완성했다. 2차대전 이후 목재 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그는 1947년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사출 몰딩 기계를 도입했다. 그리고 1949년에는 ‘자동결합벽돌’이라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출시했다. 이 제품의 판매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올레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과 함께 이 플라스틱 블록에 대한 개선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ABS 플라스틱 수지를 원료로 사용하면서 블록 사이의 결합력을 확보하고, 여기에 세 개의 클러치 튜브(내부 안쪽 기둥)를 아이디어로 한 레고 블록 디자인이 1958년 특허로 등록됐다. 창업주 올레는 레고 블록이 본격적으로 판매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특허등록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2세대 경영권은 고트프레드(Godtfred, 1920~1995)에게 돌아갔다. 그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최고가 가능한 장난감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다”는 레고의 경영 철학을 정립했다. 그는 10대 초반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면 작업장에서 아버지를 도왔고, 17세에 장난감을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대학 재학 중에도 신제품 디자인 스케치를 아버지에게 보낼 정도로 장난감에 관심이 많았다. 회장이 되어서도 밤늦게 일하는 회사 디자이너들을 찾아가 아이들 눈높이에서 놀이를 바라보며 레고의 다양한 디자인 콘셉트를 함께 고민했다. 회사가 레고 블록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레고로 변신한 것도 고트프레드의 결정에서 비롯됐다. 1960년 레고의 나무 장난감 공장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자 고트프레드는 나무 장난감 제조를 중단하고 레고 블록에만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함께 사업을 하던 다른 두 형제는 이 결정에 반대했고, 결국 자신들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레고 지분을 모두 고트프레드에게 매각하고 회사를 떠났다. 레고 블록의 미래(놀이의 시스템화)를 확신한 고트프레드는 단독으로 레고를 소유하게 됐고 이후 레고 블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회사는 급성장했다.

고트프레드는 1973년 이사회 회장직만 유지하고 전문경영인 반 홀크 안데르센을 CEO로 임명했다. 안데르센은 IMD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입사한 고트프레드의 아들 3세대 크엘드(Kjeld, 1947~)가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통해 최고경영자로 준비되기까지 6년 동안 일했다. 1979년 크엘드는 31살 나이에 레고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크엘드는 레고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레고 블록에 대한 특허권이 만료되고 디지털 게임이 큰 인기를 누리며 레고의 실적은 내림세로 돌아섰다. 급기야 1998년에는 창립 이후 최초로 손실을 기록했다. 2003년 크엘드는 이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불타는 플랫폼에 있다”고 외친 멕킨지 출신의 젊은 직원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를 눈여겨봤다. 크엘드는 2004년 33세의 예르겐을 레고의 최고경영자로 임명했다. 이후 예르겐은 레고를 완전히 변화시키며 취임 후 10년이 되기도 전에 매출을 4배로 끌어올렸다. 예르겐은 크엘드의 아들 4세대 토마스(Thomas, 1979~)가 2020년 레고 이사회 회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회장 겸 CEO로서 레고의 경쟁력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현재도 가족 투자지주회사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크엘드는 1986년 레고 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에는 커크비도 설립해 레고의 안정적 가족경영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특히 2007년에는 레고 지분을 함께 상속한 누나 군힐트(Gunhild)가 보유한 지분을 약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커크비와 레고 재단을 통해 현재 크엘드는 토마스 등 세 자녀와 함께 레고 그룹을 100% 지배하고 있다. 레고 재단에 25% 지분을 출연해 레고 그룹에서 창출되는 이익의 25%는 아동 교육, 특히 놀이 활동을 통한 배움을 증진하는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로 환원된다. 올해로 창업 90주년이 된 레고를 지금에 이르게 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문은 레고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안정적이며 효과적인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디지털전환 등 대변혁의 시기에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성공적 가족경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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