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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39) 말과 함께한 인류 역사 

 

말은 인류 역사를 가장 획기적으로 바꾼 동물이다. 원래 말은 5000만 년 이전에 출현했고 2만~3만 년 전부터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었다. 원래 말은 크기가 작아서 사람을 태우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걸어 다니며 유목을 했던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말이었다. 말과 인류의 역사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 사이에 우크라이나 초원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말을 길러 아기들에게 먹일 젖을 얻고 겨울철 식량으로도 사용했다. 야생의 말이 인간의 동반자로 바뀐 것은 기원전 3500년경 시베리아 초원 전역으로 확대된 유목민들의 공이 컸다. 말이 끄는 전차가 나오자 인류는 격동의 민족이동을 맞이했다. 원래 말은 덩치가 작아 사람이 타기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그 후 종자개량을 통하여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사람이 탈 수 있는 덩치 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말을 타기 시작한 이후 헝가리 초원부터 만주까지의 북방초원은 유목민족의 고속도로가 되었고 유목민족들은 무시무시한 약탈자의 모습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속한 이동이 생명인 초원에서 수많은 가축을 관리했던 목동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탈것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말을 잘 다루는 자가 초원을 지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목민족들에게는 공자 왈 맹자 왈보다 말 잘 타서 양을 잘 키우고 사냥감 많이 가져오는 남자가 1등 신랑감이었다. 말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마구가 필수적이다. 마구의 발전이 인류 역사를 좌지우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장에선 조금 더 앞선 마구 기술이 승패를 좌우했다. 선진 마구 기술은 전차와 기마병, 운송수단에 적용되면서 수많은 제국과 인류의 역사를 흔들어놨다.

인류학자 공원국은 현대문명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와 인터넷은 초원에서 발명된 표준적인 속도와 힘에 영감을 얻어 생겨났다고 한다. 인간이 말에 올라탐으로써 마력(Horse Power, HP) 같은 힘과 속도를 얻은 것이다. 말이라는 예측가능한 벡터(Vector)는 초원 공간을 좌표로 전환했다. 말은 겁이 많고 민감해서 다루기 힘들지만 사람과 가장 교감이 잘되는 동물이라 한다. 워낙 민감한 동물이다 보니 거의 자식 키우는 정성으로 키워야 말이 제대로 큰다. 유목민들은 말을 손발로 때리지 않는다. 심지어 “말 나이 여섯이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라는 속담이 있어 다 자란 말 앞에서는 흉도 안 봤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착한 사람의 말이 살이 찐다”고 이야기했다. 필자도 여행 중에 말을 이틀간 계속 타면서 따뜻하게 말을 걸고 쓰다듬어 주었더니, 둘째 날 이 말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칭기즈칸은 말의 얼굴을 때리는 사람은 사형을 시켰다. 멀고 힘든 원정을 다녀온 노쇠한 말은 초원에 방목했다. 몽골제국의 역사를 읽다 보면 몽골 군인들은 이민족들은 잔인하게 다루었지만, 말은 전쟁터의 동료 수준으로 대접했다. 몽골초원에서는 500달러면 말을 살 수 있는데, 유럽 배낭여행족 한 명은 1000달러에 말 두 필을 사서 일주일 동안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600달러에 현지 사람들에게 되팔아서, 단 400달러로 몽골초원을 마음껏 여행했다고 한다. 말이 많이 쓰였던 유럽의 중세와 근대에 말 가격은 중형 승용차 수준이었고, 최상급 전투마들은 고급 스포츠 가격이었다. 요즘 한국에서 경주마의 평균 가격도 4000만원대이고, 아주 잘 달리는 경주마들은 3억원대에 이른다.

말은 아이큐가 70~80 정도여서 돌고래와 원숭이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5~6세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고 한다. 학습능력과 기억력 뛰어나 사람과 보조를 맞추어 행동한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유대감이 깊고 강한 기수와 합쳐지면 호랑이 사냥에서 주인을 믿고 호랑이를 몸통으로 박치기하거나 말발굽으로 밟아 죽이기도 한다. 기마병들 간의 전투에서 말은 말발굽으로 상대를 치거나 물어뜯고 박치기하며 주인과 똑같이 싸운다고 한다. 역사상 수많은 전투에서 말발굽에 밝혀 죽은 군사들도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적토마같이 인간들은 이런 명마들의 이름을 장군들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남겼다. 동서양의 황제들은 자기 무덤에 자기가 타던 말들을 같이 묻었다.

21세기에도 자동차 엔진이나 동력장치의 파워를 마력으로 측정한다. 18세기 산업혁명 때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간들은 말의 힘에 많이 의존했다. 소는 힘이 세지만 빠르지 않았고, 낙타는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말은 사람을 태우거나 수레를 끌면서 초원과 사막, 열대우림을 누비고 다녔다.

말은 지구력이 약하고 거칠어서 다루기 쉽지 않지만 초원의 어떤 동물보다 빠르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말이 가축이 된 것은 기원전 5000년 전쯤에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식용으로 길러졌던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유목민들은 말과 전차, 활 등 강력한 무기와 기동력을 바탕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2000년경 러시아 남부의 유목민들은 전차를 만들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에 보급하고 인도 등의 농경민들을 정복하기도 했다. 기원전 8세기 스키타이의 황금전사들이 초원을 휩쓸고 다녔고 기원전 4세기 중국 북방에서는 흉노가 나타나 거대한 유목제국을 세웠다. 그 후 유라시아는 훈족, 돌궐, 거란, 몽골, 만주족 등 유목민의 발흥에 따라 세계의 역사가 움직였다. 유목민이 적은 인구로도 세계사의 절반을 휘둘렀던 이유는 말을 이용한 탁월한 기동력과 전투력 덕분이었다.


▎몽골초원에서 승마를 즐기는 필자와 일행. 말은 생각보다 유순하고 겁이 많다. 한국에서는 승마를 하려면 일정 훈련을 해야 하지만, 탁 트인 초원에서는 말의 뒷발질만 조심하라는 주의 한마디만 듣고 바로 말을 탈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을 탄 기병은 근대까지 지금의 탱크와 견줄 만큼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기원전 20세기 아리안족이 러시아 남부의 초원에서 전차를 끌고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고 스키타이가 발흥한 기원전 8세기경부터 만주족의 청나라가 세워진 서기 17세기까지 유목민들은 ‘말’ 덕분에 동서양을 통틀어 최강의 무력 집단이 되었다. 대부분의 유목민이 그 당시 전쟁의 필살기였던 기마술과 궁술, 투창술 등을 갈고닦은 타고난 기마전사였다. 흉노의 대표적인 생활신조는 “활이 느슨해서는 안 되고 말의 굴레가 풀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목민의 아기는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웠다고 한다. 일등 신랑감을 고르는 기준도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말 타는 실력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타기는 유목민 삶에서 기본이며 말은 유목민의 발이자 무기이자 생존수단이었다. 농사가 주업인 정주민들이 일부러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서 기마술과 궁술을 배워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유목민은 처음부터 강력한 기병전력을 갖추고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농경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기마술을 훈련해봐야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 유목민들과의 수준을 좁히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농경민들이 가까이 있는 유목민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유목민들을 견제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중국의 통일 왕조 중에 농경민 출신의 순수 한족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한나라와 송나라, 명나라 등 세 나라에 불과하다. 진, 수, 당, 원, 청 등 통일 왕조들은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거나 북방 유목민이 세운 나라들이다. 유목민족이 국가적인 규모로 역사에 등장하고 중국을 위협한 것은 기원전 3세기 흉노족 시대 부터이다. 흉노족이 급성장한 것은 단순히 투만(頭曼)이나 묵특과 같은 뛰어난 지도자(선우)가 출현했기도 했지만, 이 무렵 재갈이 흉노에게 전래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재갈은 고삐를 장착하기 위해 말에 물리는 쇠 장식인데, 서방의 스키타이로부터 전해진 재갈로 기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유목민의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흉노는 재갈에 물린 고삐로 말을 자유롭게 다루었고, 이는 기마 전투력의 급상승을 가져와 농경민족 침공을 더욱 쉽게 만들어줬다. 흉노의 인구는 30만~60만 명, 기마병력도 10만 명 이하로 추정되나, 인구 3000만~4000만 명의 한나라를 가뿐히 제압했다. 묵특선우가 백등산에서 30만 기병을 동원하여 한고조 유방을 포위했다는 것은 심한 과장으로 보인다. 진나라도 서융이라는 유목민 후예들이 세운 나라였고, 수나라, 당나라를 세운 것은 탁발선비족 계열의 유목민이 주축을 이루었다는 것은 고대 군사력에서 말과 활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흉노에게 치욕적인 패배와 수모를 겪었던 한나라 무제는 서역을 다녀온 장건에게 한혈마에 관한 정보를 듣고 한혈마를 얻는 데 총력을 쏟았다. 고대 중국의 말들은 키가 작고 느려서 유목민족의 말들에 비해 현저하게 전투능력이 떨어졌다. 한나라의 전차는 말 네 마리가 끌고 세 명이 타는 구조였는데, 전차가 너무 무거워 평지가 아닌 길에서는 제대로 다닐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말 한 마리만 있으면 되는 기마병에 비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흉노족은 날렵한 기마병을 내세워 무겁고 느린 전차를 몰고 다니는 한나라 군사들을 우롱하면서 마음껏 노략질을 일삼았다. 한혈마를 이용해 중국의 말을 개량해 흉노와의 굴욕적 관계를 개선하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페르가나의 말은 고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가나산 말의 우수성을 기록했고, 중국인들은 페르가나산 말이 반은 용이라고 믿었다. 투르크산 말이 있었지만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서역을 다녀온 특사 장건을 통하여 페르가나산 한혈마의 존재를 알게 된 한무제는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계곡에서 한혈마 수십 마리를 가져오기 위해 대완국과 싸우며 병력 7만 명을 희생시켰다. 한혈마를 얻기 위해 대완국 원정에서 큰 피해를 입은 이광리를 처벌하기는커녕 한혈마를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소릉에 있는 당 태종릉에서 발굴된 육준마·소릉육준은 태종이 천하 통일을 하는 데 직접 탔던 여섯 필의 준마고 모두가 이민족 말이다.
결국 한무제는 7만 병력을 희생시키면서도 한혈마로 불리는 우수한 말을 페르가나 계곡에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한나라는 지속적으로 중앙아시아 등에서 대량으로 말을 공급받았고 기마병을 양성했다. 서역에서 수입한 말은 주로 전투용으로이용했고 중국말을 개량하는 데도 이용했다. 유목민들의 말들이 중국에 도착하면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민첩하지, 어떤 용도를 쓸지를 나타내는 도장을 찍었다. 한나라 무제 때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말이 40만 필에 달했다.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돈을 명마 확보에 쏟아부은 것이다. 이 한혈마를 탈 수십만 기병이 양성되자 한나라는 흉노족을 몰아내고 동아시아를 제패했다.

중국 사람들의 말에 대한 판타지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적토마에도 이어진다. 3세기 초를 무대로 하는 삼국지연의에는 ‘붉은 몸체에 토끼처럼 날쌘 말’이란 뜻의 ‘적토마(赤兎馬)’가 나온다. 이 말은 원래 동탁 소유였는데 부하 여포에게 하사한다. 그 뒤 여포가 살해되자 조조의 손에 넘어가는데, 조조는 항복한 관우에게 선물로 준다. 고락을 같이한 관우가 죽자 오나라의 마충이 가져가지만 먹이를 거부해 며칠 뒤 굶어 죽는다. 그러나 정작 정사 삼국지에는 여포가 원소 밑에서 적토마로 적 장연을 격파했다는 짧은 기록만 남아 있다.

당태종 이세민은 16살 때부터 장군으로 맹활약했다. 고구려로 출병을 하면서 “내 말은 내가 묶는다. 하인은 두 명만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한다. 원래 기병 한 명에 두 명의 보조는 기본이니 다른 기병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출전했다. 반면에 수양제는 고구려 침공할 때 수십 마리 소가 끄는 집채만 한 가마를 타고 출정했다 한다. 이러한 당태종의 솔선수범 리더십은 그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 이유이며, 신생국 당나라를 자리 잡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당태종의 육준마는 당태종과 같이 맞서던 적을 쓰러뜨리고 당 왕조의 기초를 쌓은 말들이다. 이 말들의 모습과 활약은 문학이나 회화 작품으로 많이 남아 있다. 당태종도 이 육준마를 총애하고 각각의 말에 관해 짧은 글과 찬미하는 시도 지었다.

그는 명장 이정을 발탁하여, 중국의 전통적 보병과 유목민족의 장기인 기병전술을 결합하여 천하무적 기보병 연합전술을 창안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병전술을 기보병 연합전술로 보완하여 토번, 돌궐, 그의 아들인 고종 때는 고구려를 정복했다.

※ 김정웅 -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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