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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신 글래드 호텔&리조트 대표 

MZ 사로잡은 글래드의 성공 전략 

신윤애 기자
팬데믹으로 많은 호텔이 문을 닫고 움츠려 있을 때 가장 큰 성장을 이뤄낸 호텔이 있다. 여의도, 마포, 강남 코엑스센터, 제주에 지점을 보유한 글래드 호텔&리조트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글래드의 성장을 이끈 박명신 대표를 만났다.

▎글래드의 콘셉트 ‘젊음’을 반영해 청바지를 입고 인터뷰에 나선 박명신 글래드 대표.
“글래드 호텔로 가달라고 했더니 콘래드 호텔에 내려주더라고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7년. 글래드 호텔&리조트(이하 글래드) 부사장 자리로 거처를 옮기기 직전이었던 박명신 대표는 잊지 못할 일이었다며 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날 택시 기사의 우연한 실수(?)로 박 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했다. “무명 브랜드를 유명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었죠.” 박 대표가 그날을 떠올리며 웃었다.

당시 오픈 4년 차에 불과했던 글래드는 100살이 훌쩍 넘은 기라성 같은 외국계 호텔들과 토종 호텔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글래드가 내세웠던 콘셉트의 키워드는 뉴욕, 스마트, 비즈니스, 트래블. 박 대표는 좀 더 명확한 키워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글래드의 타깃층은 누구여야 할까?’, ‘2~3년 후 글래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로비에 어떤 고객으로 가득하면 좋을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그의 머릿속에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걸맞은 키워드가 떠올랐다. 신생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그것. 바로 ‘젊음’이었다.

연간 200개 넘는 패키지 출시


▎박명신 대표는 글래드를 ‘지속적으로 강한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다.
시대적인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2030세대의 소비 트렌드로 꼽히는 키워드가 가성비였는데, 좋은 입지와 가격경쟁력이 강점인 글래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박 대표는 여기에 ‘꿀맛(F&B), 꿀잼(엔터테인먼트), 꿀잠(스테이)’이라는 요소들을 더해 패키지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숙면을 돕는 패키지, 한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와 연계한 패키지, 세끼 풍족한 식사가 제공되는 패키지, 독서 패키지 등 한 분기에 50~60개씩 꾸준히 출시했다. 박 대표는 “젊은 고객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맞추기 위해 지금도 연간 200개 넘는 상품을 내놓는다”면서 “이젠 트렌드를 맞추는 것을 넘어 선도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상품이지만 모두 인기가 좋지는 않다. 그중 10%가 전체 판매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다수의 선택을 받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박 대표는 이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경영학에 나오는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가 핵심이 되는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롱테일법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히트 치지 못한 상품이어도 ‘글래드는 모두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그는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실패”라는 소신도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타자의 타율이 3할대예요. 우리도 성공률이 3할, 4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호텔업은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산업인데 심사숙고하느라 결정을 미루다 보면 그 유행은 지난 것이 돼버려요.”

한두 해가 지나자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는 글래드의 전략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박 대표가 글래드에 투입된 초기엔 데모그래피(고객 데이터)를 살펴보면 고객의 70%가 4050세대였는데 지금은 2030세대가 70%를 차지한다.

“2017년엔 수도권에 있는 글래드 지점이 여의도뿐이었습니다. 국회와 금융가 덕분에 고객층의 나이대가 높은 편이었는데 ‘MZ 프렌들리’로 방향을 바꾸자 젊은 세대가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이후 추가로 오픈한 마포, 강남 코엑스센터 지점까지 모두 합해 데모그래피를 도출하면 이제 2030세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글래드의 거침없는 성장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모두 알다시피 코로나19로 수많은 호텔이 위기를 맞았다. 정부 지침으로 객실 가동률이 50%를 밑돌 때도 있었다. 손해를 줄이기 위한 최선책이 문을 닫는 것이었고 실제 문을 닫는 호텔이 늘기 시작했다. 글래드는 추세를 거슬러 손해가 나도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24(시간), 365(일)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호텔이 문을 닫는 건 업의 본질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직원들에게 “매일 아침 소식을 전해야 하는 신문이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고 1년간 윤전기를 멈추면 이를 과연 신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도 매일 문을 열어야 호텔인 것”이라고 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팬데믹 초창기, 흑자를 냈다는 호텔은 없다. 글래드도 처음 1년은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했다. 사태가 짧고 굵게 끝날 거란 희망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출구 없는 긴 터널에 갇힌 듯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박 대표가 아니었다. 되레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팬데믹이 끝나는 순간 퀀텀점프를 할 수 있도록 이 시간을 성장하는 데 써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호텔의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디지털전환이었다.

호텔업계에서 디지털전환은 늘 고민거리였다. 고객의 눈을 보며 웃어주는, 즉 환대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업의 특성을 거스르는 일처럼 느꼈다. 게다가 모든 예약이 온라인으로 이뤄지면 통화를 하며 이 상품 저상품을 연계해 추천해주던 호텔만의 세일즈 전략도 펼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편리함은 물론이거니와 안전문제까지 직결되자 디지털 세상이 앞당겨 열렸고, 고객들은 호텔에도 비대면 서비스를 요청했다. 늘 “투자 없이 돈 벌겠다는 건 도둑 심보”라고 말하던 박 대표는 미래를 위해 디지털전환에 크게 투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용하기에 불편했던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했고 모바일앱을 론칭했다. 그는 “웹과 모바일에 결제기능까지 얹히려면 안전문제, 보안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게 많아 생각보다도 큰 투자가 필요했다”면서 “덕분에 이제는 내외국인 모두가 편리하게 우리 호텔을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또 고객의 얼굴을 마주하진 않지만 여전히 환대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SNS를 활용했다. 마케팅 대행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원들에게 지원을 받아 SNS 담당 팀을 꾸려 계정을 운영한다. 박 대표는 “호텔 소식을 전하고 고객과 소통하며 더 가깝고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통 큰 결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팬데믹으로 ‘호캉스’를 즐기는 고객이 많아지자 그는 사람들이 객실에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혹시 불편한 점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문을 받았다. 그 결과 많은 응답자가 스마트TV 도입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OTT로 프로그램을 몰아보는 일이 많은데 호텔 TV로는 연결이 되지 않아 아쉽다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망설임 없이 마포, 여의도, 강남 코엑스센터, 제주에 있는 글래드의 전 지점, 전 객실에 스마트TV를 도입했다. 정말 큰돈이 들었다.

박 대표의 바람대로 글래드는 팬데믹 기간 많은 무기를 장착했다. 디지털 프렌들리와 같은 체질 개선도 있었지만 시대적인 흐름에 맞는 상품들도 고객의 눈에 들었다. ‘호텔로 출근해’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됐지만 사정상 집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다. 회사에 출근하듯 호텔에 체크 인하고 일과 시간을 보낸 후 체크아웃하는 하는 상품이다. 이 패키지는 프리랜서, 직장인 등에게 각광받으며 글래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했다.

2021년부터 흑자전환

글래드의 성과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래드는 코로나19 기간 도심 호텔의 투숙률을 70% 가까이 끌어올려 주목받았다. 주요 특급 호텔도 50%에 못 미치는 투숙률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또 팬데믹 1년 차였던 2020년에 적자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인 2021년 곧바로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글래드호텔은 2021년 매출 679억원(영업이익 67억원), 2022년 매출 928억원(영업이익 176억원)을 기록했다.

부사장 자리에서 모든 성과를 올렸던 박 대표는 결국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대표직에 올랐다. 위기에 움츠리지 않고 글래드를 더 강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놀라운 점은 박 대표가 호텔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온 호텔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래드가 그에겐 첫 호텔이다.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석사 출신인 그는 199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카드, 삼성인력개발원을 거쳤고 그 이후에는 현대카드에서 영업기획을 맡았다. 직전엔 ADT캡스에 몸담고 있었다.

호텔 관련 경험이 전무한 박 대표는 어떻게 글래드를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또 경험이 없던 호텔업을 선택했던 개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 이유를 내놨다.

“호텔을 선택했던 이유는 호텔이야말로 ‘B2C 산업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1996년부터 B2C 업종에서 일했습니다. 금융, 보안 등은 탠저블(Tangible)한 영역이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죠. 그 부분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이에 비해 호텔은 무한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것저것 조합해볼 수 있고 오늘 판매한 객실이 내일이면 다시 새 상품이 되잖아요. 제게 주어진 2000여 개 객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글래드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서는 ‘열공’이라고 귀띔했다. MZ세대가 아닌 그가 젊은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공부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전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호텔 직원의 70~80%가 MZ세대”라며 “MZ위원회라는 팀을 꾸려서 직원들과 같이 백화점, 핫 플레이스 등으로 답사를 다니고 서로 보고 느낀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지식에 경험이 합쳐져야 지혜가 된다고 생각해 이 모두를 얻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젊은 직원들이 대표를 어려워하진 않을까. 박 대표는 이 물음에 자신 있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글래드 직원들의 제보에 따르면, 박 대표는 400명에 가까운 임직원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별명까지 붙여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또 그들의 불편사항을 직접 듣고 곧바로 시정하는 진정한 리더라는 칭찬도 덧붙였다.

“처음 글래드에 와서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살폈는데 많이 열악해 놀랐습니다. 햇살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층에서 업무를 보고 사물함도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았어요. 게다가 샤워장에는 파티션조차 없었죠. 더 마음이 아픈 건 직원들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거예요. 기업 인사팀의 가장 큰 KPI(핵심성과지표)가 ESI(직원만족도)인데, 그간 아무도 직원들의 안녕을 묻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직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부터 개선해줬습니다. 제가 글래드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요?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불편한 점 없냐’는 말을 인사처럼 건넵니다.”

게다가 직원들의 업무적인 이야기도 좀 더 듣기 위해 대표직에 오르자마자 집무실의 명칭을 ‘대표실’에서 ‘디시전 룸’으로 바꾸었다. 고객을 가장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만큼 호텔의 장단점, 개선사항을 제대로 파악할 사람도 직원들이라는 생각에서다. F&B 업장 담당자의 아이디어로 만든 가정간편식 상품이 공전의 히트를 친성과를 낸 일이 있었다며 박 대표가 자랑했다.

박 대표의 남다른 경영 철학과 리더십이 빠르게 소문난 것일까. 최고경영자가 된 지 2년 차인 그에게 지난달 영광스러운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소비자브랜드 위원회가 주최한 ‘2023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최고경영자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박 대표는 ‘정말 여러 번 고사했다’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수상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더라고요. 해당 어워즈에서 글래드가 5년 연속 ‘라이프스타일 호텔’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이번엔 ‘고객 충성도’ 부문에도 선정됐다는 겁니다. 택시 기사님의 실수 덕분에 ‘글래드 호텔을 인지도 높은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잖아요. 충성도라는 건 인지도를 넘어 고객에게 깊이 스며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뿌듯한 성취였고 앞으로도 잘하라며 주는 ‘선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박 대표의 다음 목표도 명확하다. ‘크고 강한’ 글래드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엔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작은 상태에 머물면 경쟁자에게 잡아먹히고 말아요. 덩치를 키우고 계속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글래드는 계속 외연을 확장해나갈 것입니다. 지점을 늘리는 수평적 확장, 서비스를 확장하는 수직적 확장 모두 이뤄야 하죠. 인프라, 마케팅, 콘텐트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글래드를 ‘크고 강한’ 호텔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202310호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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