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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증여법, 93조 달러가 움직인다 

 

미국 가계 재산 중 3분의 2는 베이비부머와 그 이전 세대가 쥐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최고 부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 재산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왔다. 포브스 400대 부자 순위에 포함된 77~87세 억만장자 4명에게서 그 방법을 들어본다. 재산을 정부에 빼앗기지 않고 자선활동과 자녀들에게 온전히 건네주기 위한 전문가 클래스로 생각하면 되겠다.

▎필 나이트(왼쪽)와 트래비스 나이트 / 사진:PHOTOGRAPH BY ETHAN PINES FOR FORBES
“오리건주에는 사계절이 있죠.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연기입니다.” 나이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Phil Knight, 85)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리건주 중부에 자리한 그의 저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8월, 창문 너머 90m 밖에는 뿌연 연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서 산불이 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이렇게 연기로 망가지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돈을 써서 조사를 해봤더니, 서부 해안가를 따라 발생하는 산불은 통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산불과 달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도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바로 395억 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것이다. “영리한 자선활동 방식를 찾아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지 못하면 제 후임이나 자문이 할 일이 아주 많아지겠죠.” 그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급하지는 않습니다.”

나이트는 세무당국이 아니라 가족과 자선기관이 자신의 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이론적으로 상속세는 40%에 달한다. 그러나 포브스 400대 부자에 속한 다른 억만장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세금에 그렇게 많은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술과도 비슷합니다. 재정 담당 자문과 이 주제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가 말했다. “제대로 하기만 하면, 자선기관이 정부보다 훨씬 더 제 돈을 잘 써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 없이 기부를 하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34억 달러를 기부했고, 이 금액의 대부분은 오리건대학교(과학센터와 농구장), 오리건보건과학대학교(암연구센터)와 스탠퍼드대학(석박사 유학생 장학 지원금, 경영대학원 빌딩 건립, 인지능력 저하 연구)으로 향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와 그 전 세대 중 아직 생존해 있는 억만장자들은 지금 역대급 부의 이전을 진행하는 중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가계 총재산 141조 달러 중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무려 75조 달러를, 그 윗세대는 18조 달러를 차지한다. 물론, 중산층 은퇴자라면 모아둔 돈을 다 쓰고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부의 집중 현상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에 현재 미국에서는 상위 1%가 순재산의 31%를 쥐고 있다. 순재산이 1000만 달러 이상인 상위 1%의 대다수는 상당 금액의 돈을 자녀와 손주, 자신이 지지하는 자선기구에 남기고 떠날 것이다.

이런 경향은 최상위층으로 갈수록 강해진다. 1965년 이전에 태어난 미국 인구 8800만 명 중 포브스가 파악한 억만장자는 572명으로, 미 전체 인구의 0.000007%다. 이들이 유산으로 남기고 갈 돈의 순가치는 3조9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럼 상속세는 얼마나 될까?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바보밖에 없습니다.” 골드만삭스 사장이었던 개리 콘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최고경제자 문을 맡았을 때 농담으로 한 말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과거에는 상속세가 세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규제·사법 당국은 지난 25년 동안 상속세를 없애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억만장자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들이 창의적으로 갖가지 방식을 고안한 것도 한몫했다. 의회에서는 부부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상속세나 증여세가 적용되지 않는 면세 범위를 2000년 135만 달러에서 올해 2600만 달러에 가깝게 증액했다. 이제 26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 억만장자 제국의 신탁 기금으로 들어가 손주나 그 이후 세대로 이전될 수 있다. 이 돈은 금액이 아무리 늘어나도 상속세나 증여세를 추가로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사망 시까지 보유한 자산이 있을 경우 기준가가 시가로 상향 조정되어 실제 자산 매입 시기부터 사망 시점까지 상승한 자산 가치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가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2020년 사망 건수 중 상속세를 납부한 경우는 0.04%밖에 되지 않는다. 2000년만 해도 이 비중은 2.18%였다. 물론, 현행법에 따라 2026년에는 상속세 면제 비중이 절반으로 감소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단행했던 일시적 감세 정책이 2026년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국세청은 이 경우 더 면세 폭이 큰 규정을 활용해 생전에 이전된 재산에는 세율을 소급 적용해서 과세하지 않겠다고 동의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건 불명예와 마찬가지”


▎찰스 코크(왼쪽)와 체이스 코크 / 사진:CHARLES AND CHASE KOCH BY GUERIN BLASK FOR FORBES
10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와 10억 달러 미만의 억만장자들은 각종 알파벳으로 조합된 상속 기법을 활용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GRAT, FLP, IDGT, GST, CLT, ILIT, IDF처럼 알파벳 조합은 점점 창의적이고 공격적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 간 대출 형태로 추가 면세를 받아내는 기법도 있다. 매각 가능성이나 지배지분 부족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증여 재산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방법도 많다. 버락 오바마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매년 부자 과세 정책을 들고 나올 때 이런 꼼수를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런 일은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일 때도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말도 못 꺼낸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부자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사용한 방법 중 오래전부터 칭송을 받아온 것이 바로 기부 활동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다. 기업가 앤드루 카네기는 상속세 현대화를 위한 운동을 펼치면서 1919년 사망하기 전까지 재산의 90% 가까이를 기부했고, 사후 남은 금액은 비영리재단 카네기코퍼레이션으로 이전됐다. 그가 기부한 돈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60억 달러에 달한다. 그는 1889년 발간한 수필집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에서 “부자인 채로 죽는 건 불명예와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네기의 믿음을 현시대에 맞게 순화한 버전이 바로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2010년 시작한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다. 기빙 플레지에 서명한 억만장자는 생전 혹은 사망 후 자기 재산의 과반 이상을 자선활동에 기부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빙 플레지에 서명한 미국 억만장자는 총 104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재산가치는 1조5000억 달러다. 1965년 이전에 출생한 억만장자 77명이 보유한 9500억 달러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모든 기부 행위가 순수한 자선활동은 아니다. 최근에는 소위 ‘사회복지’를 위한다는 비영리기구들이 만들어져 진정한 자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 비영리단체들은 전통적 자선 활동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로비 활동이나 정치색이 짙은 정치 활동에 얼마든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포브스 400대 부자에 속한 억만장자 4명에게서 어떻게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있는지, 또 재산을 가족 아니면 자신이 믿는 명분에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지 들어본다. 이들보다 재산이 적은 사람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나이가 77~87세로, 베이비붐 세대 이전 ‘침묵의 세대(Silent Generation)’에 속한 4명은 자신의 유산을 논할 때면 입이 더 무거워진다. 독자에게 지식 나눔을 해줄 교수진은 나이키의 필 나이트(Phil Knight), 545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자유시장·자유의지론자 찰스 코크(Charles Koch), 트럭 운전수였다가 ‘프랙킹의 왕’이 되어 252억 달러 재산을 일군 해럴드 햄(Harold Hamm), 재산은 41억 달러로 이들 중 가장 소박하지만 TV와 인터넷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배리 딜러(Barry Diller)다. 딜러는 넷 중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원이기도 하다. 딜러는 자신이 좋지 않다고 비난한 정책을 이용해 절세한 것을 솔직히 공유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세법을 위반하지 않고 그 안의 내용을 따르는 겁니다. 이런저런 걸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폭넓게 사용하는 방식인데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다른 길을 갈 이유가 있을까요?”

캔자스주 위치타에서 날이 밝기 전, 찰스 코크가 계단을 올라 코크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 본사 3층 사무실에 왔다. 그가 회장이자 공동 CEO를 맡고 있는 코크 인더스트리는 다양한 사업을 하는 재벌 기업으로, 매출 규모는 1250억 달러다. 사무실에서는 그의 아버지이자 회사 창업주인 프레드 코크의 흉상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프레드 코크는 1967년 6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찰스는 32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 경영을 맡았다.

87세에도 계속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코크는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가장 높은 욕구가 바로 자아실현이라고 답하고는 좀 더 현실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팜스프링스에서 제가 다니는 클럽에는 은퇴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매일 아침에 와서 9홀을 돌고,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 내내 카드 게임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사느니 그냥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마 괴로워서 6개월도 못 버티고 죽을 테니까 자살을 시도할 필요도 없겠군요. 그건 사는 게 아니에요.” 코크의 아들 체이스(Chase, 46세)는 사업과 사회 변화에 대한 열정이 아버지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일주일에 6일은 운동을 하십니다. 경솔하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아주 건강하세요.”

사회복지기구 기부금은 증여세 면제


▎배리 딜러(왼쪽)와 알렉스 폰 퍼스텐버그 / 사진:BARRY DILLER AND ALEX VON FURSTENBERG BY GUERIN BLASK FOR FORBES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계획을 거의 끝마쳤다.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코크 인더스트리의 의결권 없는 보유 지분과 동일한 금액을 이미 체이스와 딸 엘리자베스(47)에게 증여한 상태다. 찰스가 사망한 후에는 체이스가 아버지의 의결권 전부를 상속받아 42%의 지배지분을 갖게 된다. (2019년 사망한 찰스의 동생 데이비드도 42% 지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올 3월에는 코크 인더스트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데이브 로버트슨(61)이 찰스와 함께 공동 CEO로 임명됐다. 아들 체이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전 과도기를 로버트슨에게 맡긴 걸까?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 않다”고 같은 시기 부사장으로 승진한 체이스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창투 자회사인 코크 디스럽티브 테크놀로지(Kock Disruptive Technologies)를 총괄하는 자신의 자리가 현재로서는 “회사에 가장 많은 가치를 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저희는 우리 회사를 가업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할은 당연히 가족 누구한테 줘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는 힘들어질 겁니다.”

찰스 코크는 자신이 보유한 비의결권 주식 전부를 자식들한테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남은 일부는 아내 리즈(78세)에게 필요한 생활비를 제하고 나서 그가 운영하는 자선재단과 사회 활동에 기부될 것이다. 그는 기빙 플레지에 참여하지 않았고, 가족과 재단의 상속 비중을 어떻게 나눴는지는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과감한 행보임은 분명하다. 지난해 그는 의결권 없는 코크 인더스트리 주식 43억 달러어치를 위치타에 본부를 둔 빌리브 인 피플(Believe in People)에 기부했다. 국내법 501©(4)항에 따라 창립되어 ‘사회복지기구’로 분류되는 비영리기관이다. 사회복지기구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소방기관부터 전미총기협회, 시민자유연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관이 속할 정도로 범위가 넓다. 기존 501©(3)항에 따른 전통적 자선기구와 정반대로, C4에 따라 설립된 사회복지기구는 전체 지분을 무기한 보유할 수 있고, 주요 설립 목적에 부합하기만 하면 무제한 로비 활동을 펼치거나 정치에 직접 관여하거나 특정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활동도 할 수 있다.

C3와 달리 C4에 기부하는 돈은 소득세, 상속세만 면제됐었는데, 2015년 의회에서 코크 가문의 로비스트들이 추진한 주요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C4로 이전한 재산은 증여세도 면제받게 됐다. 따라서 억만장자나 다른 누구라도 생전에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보유 주식을 C4에 대량 이전하면 증여세나 양도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C4는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고 이 주식을 매각하여 수익을 실현하거나 무기한으로 보유하며 배당금을 받아갈 수 있다.

자신의 회사 전체를 C4 카테고리에 넣어버린 억만장자가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코크가 빌리브 인 피플에 증여한 43억 달러는 C4에 이전된 재산 중 최대 금액이다. 코크의 C4는 체이스와 데이브 로버트슨, 브라이언 훅스가 운영 중이다. 훅스(45세)는 찰스 코크가 2020년 출간한 네 번째 저서 『빌리브 인 피플: 하향식 세상에 제안하는 상향식 솔루션(Believe in People: Bottom-Up Solutions for a Top-Down World)』의 공동 저자이고, 코크가 예산을 지원하는 자선기구와 정치단체 네트워크 스탠드 투게더(Stand Together)의 대표직도 함께 맡고 있다. 코크는 2020년에도 9억7500만 달러 가치를 가진 비의결권 주식을 체이스가 운영하는 또 다른 C4 기구 CCKC4에 기부했다. 새롭게 예산을 받은 두 C4 기구는 코크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대로 인류 진보를 앞당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와 별개로 존재하는 스탠드 투게더 산하에는 20년 전 설립된 C4 기구 ‘번영을 위한 미국인(AFP, Americans for Prosperity)’도 있다. 민중을 위한 시민기구를 천명하며 매년 수천만 달러를 투입해 정치·정책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 재선을 반대하는 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다. AFP와 관련된 정치행동위원회는 현재 바이든과 트럼프 당선 모두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확고한 자유의지론자인 코크는 감세, 규제 완화, 사법정의 개혁, 마리화나 합법화 등 여러 정책을 지원해왔다. 코크는 AFP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여당과 야당 모두가 권위주의 정부를 지향하는 기조는 나라를 위협하고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미디어 대기업 IAC 창업주이자 회장인 배리 딜러는 요트를 타고 지중해를 누비는 여름휴가를 보낸 후 9월에 맨해튼 사무실로 복귀해 요트를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세법의 불공정한 면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본은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근로자의 급여를 보호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81세인 딜러가 특히 싫어하는 부자용 편의가 바로 양도인 보유 연금신탁(GRAT, Grantor Retained Annuity Trust)이다. 자산의 가치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상속인에게 양도할 수 있어서 인기가 좋은 기구다. 그래서 딜러는 “GRAT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GRAT가 필요한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주류로 자리 잡은 방법이기 때문에 딜러 자신도 GRAT를 이용한 적이 있다. (IAC에서 분사한) 익스피디아의 4억 달러어치 주식을 GRAT로 이전해서 보유하는 중이고, GRAT를 통해 상속자를 위한 다수 신탁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송금하기도 했다. 그는 “중도적 입장입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사를 통해 새로운 허점을 찾아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어떻게든 더 이용해보려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살짝 변형된 GRAT도 있다. ‘월튼 GRAT’이라 불리는 유형으로, 세금을 거의 0%까지 줄여주기 때문에 ‘제로드-아웃(zeroed-out)’으로 불리기도 한다. 월마트 공동 창업자 버드 월튼의 전처 오드리 월튼이 2000년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이용할 수 있게 된 방식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한 신탁에 주식 등 자산을 넣어두고, 이 신탁에서 해당 자산의 현재 가치에 맞춰 연금으로 돈을 지급받는 방법이다. 자산은 ‘7520 금리’로 알려진 아주 낮은 법정금리보다 높게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2022년 2월 연준이 금리인상을 하기 전 GRAT에 적용된 금리는 연 1.6%로 터무니없이 낮다. 만약 GRAT에 이전한 자산이 1.6%보다 빠르게 증액되면, 그만큼의 차액은 자녀를 위한 신탁금으로 저장된다. (부모가 GRAT에 넣어둔 돈을 연금 형태로 빼간 뒤에도) 적립금은 자녀에게 증여세 없이 지급될 수 있다. 부모가 GRAT에서 설정한 기간보다 오래 살아야 혜택을 볼 수 있게 설계됐기 때문에 보통 GRAT은 2~10년 단위로 설정되어 하나가 만기될 때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식으로 구조화된다. 덤으로 얻게 되는 혜택도 있다. 부모가 GRAT에서 발생한 배당금이나 자본이익에 대해 소득세를 납부할 경우 자녀에게 지급되는 차액은 실질적으로 더 많아진다.

돈을 물려주면 삶에서 야망이 없어진다?


▎해럴드 햄 / 사진:HAROLD HAMM BY ETHAN PINES FOR FORBES
딜러는 ‘기빙 플레지’에 참여하긴 했지만, 자녀들에게도 상당한 금액을 남겨주고 떠날 계획이다. 딜러는 “자녀에게 많은 돈을 물려주면 삶에서 야망이 없어진다는 워런 버핏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베벌리힐스의 중상위층 가정에서 자라났고, 대학을 중퇴한 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 우편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야망도 성격입니다. 돈이 야망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젊은 나이에 CEO로 승진했고, 이후 폭스로 옮겼다가 50세에 사업을 시작하며 지금의 자리로 올라왔다.

그는 자녀들이 자신의 자선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기빙 플레지가) 공개되기 전 워런 버핏이 전화를 해서 첫 번째 서명자 그룹에 들어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이 결정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아들의 의향을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답했습니다.” 그가 말한 아들은 아내가 독일 왕자와 첫 결혼에서 얻은 두 자녀 중 한 명인 알렉스 폰 퍼스텐버그 왕자다. 딜러는 2000년 유명 패션 디자이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와 결혼했다. “아들은 투자에 관해서라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몰라요.” 딜러가 알렉스에 대해 말했다. 알렉스는 지금 딜러-폰 퍼스텐버그 가문 자산관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딜러에게 기부 서약에 참가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지금까지 딜러는 자선재단에 총 4억3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중 3억 달러는 맨해튼 허드슨강에 조성한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 공립 공원을 개발하는 데 사용됐다. 리틀 아일랜드에는 길이 난 정원과 원형극장도 함께 있다. 법적 난항과 예산 초과로 인한 재정난을 수년간 이어간 끝에 2021년 개장했다. 이 공원은 딜러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공공 예술과 공간을 오래전부터 사랑해왔다”고 말했다. 알렉스와 그의 여동생 타티아나 폰 퍼스텐버그(52세) 공주는 어머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와 함께 가족의 자선재단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주요 지출 사안에 대해서는 이들 모두가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고 딜러는 주장한다. 그의 자녀들은 자선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알렉스는 빈곤층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이미 자기 돈 수억 달러를 지출했다. “불평등 해소에 정말 관심이 많더군요.” 딜러가 말했다.

“상속세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필 나이트가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야 다른 방법보다 제 재산의 효용가치를 더 늘릴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다른 방법이란 상속세나 증여세 형태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오리건주 최고 부자인 나이트는 오리건주 상속세 16%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러나 그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추진하는 자선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도 바로 오리건주다.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은 기관은 바로 나이트의 모교 오리건대학이다. 나이트는 오리건대학 육상선수로 활동했고, 군대에서 1년을 복무한 후 스탠퍼드 MBA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면서 백과사전을 판매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러닝화 수입권을 확보했고 CPA로도 활동하다가 1964년 대학 시절 달리기 코치와 함께 나이키를 창업했다. 나이트가 오리건대학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귀를 닫은 것은 아니어서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기빙 플레지에 서명하지 않았다. “지역 언론에서 바로 비난을 하고 나설 겁니다. 이번에는 ‘기부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트집을 잡겠죠.” 그가 말했다.

“서두르고 싶지 않습니다. 효과가 큰 자선 활동에 선택적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의 전처) 맥켄지 스콧처럼 빠르게 수백 개 자선기관에 거액을 쾌척하는 것과 반대되는 방식이죠. 덕분에 좋은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너무 서둘러 집행된 것도 많습니다.” 그가 죽은 후 자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책임은 55년간 결혼 생활을 함께한 아내 페니가 맡게 된다. “저보다 10살 어리고 건강 상태도 더 좋지요.” 나이트가 말했다. 그다음으로 책임질 사람은 아들 트래비스(50세)다. 활동명 칠리 티로 무대에 서기도 했던 전직 래퍼 트래비스는 아버지가 2002년 지배권을 인수한 오리건주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라이카(Laika)를 운영하고 있다.

유언 지정에 따른 자선우선신탁

나이트 또한 GRAT을 활용해 트래비스 이름으로 된 신탁에 38억 달러를 이전했다. 가족재산 관리를 위한 유한회사 스우시(Swoosh)를 설립하여 이를 통해 상속 신탁으로도 주식을 이전했다. 증권감독기관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과 세무 변호사이면서 부자세 인상을 지지하는 백만장자 애국자들(Patriotic Millionaires) 선임고문 밥 로드의 분석에 따르면, 나이트가 다양한 방식으로 상속인 신탁에 이전한 총 주식 가치는 44억 달러에 달한다.

트래비스의 신탁은 가족이 보유한 나이키 지분 20%(현금 가치 약 298억 달러)에 대해 의결권을 가지고 있지만, 해당 주식 중 85%를 실질적으로 보유한 사람은 바로 필 나이트다. 로드는 나이트가 ‘유언 지정에 따른 자선우선신탁(CLAT, Charitable Lead Annuity Trust)’이라는 잘 정립된 옵션을 활용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월튼 GRAT과 마찬가지로, CLAT 또한 세금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자선단체에서 CLAT에 이전한 자산의 현재 가치를 정해진 기간 동안 다 쓸 수 있게 연금 지급액을 정하고, 이때 해당 자금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아주 낮은 ‘7520 이자율’을 넘어가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실제 이자가 이 기준선보다 높게 쌓이면, 추가 금액은 신탁 만료 후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상속인에게 지불된다. 나이트의 대변인은 CLAT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그런 계획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이트가 지분을 아내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배우자에게는 면세 금액이 무제한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은 아내의 몫이 된다. 재산 중 어느 정도의 금액을 자선기관에 기부할지 묻자 나이트는 이렇게 답했다. “확실히 51% 이상은 될 겁니다. 90%까지는 당연히 아니고요. 그 사이쯤 되겠죠. 결국 최종 결정은 제가 떠난 후에 내려질 겁니다.”

“아버지는 돈 때문에 움직이는 분이 아니에요.” 콘티넨털 리소시즈(Continental Resources)의 최고 문화 및 행정 책임자 셰리 램버츠가 77세가 된 아버지 해럴드 햄(Harold Hamm)에 대해 말했다. 햄은 콘티넨털 리소시즈의 창업주다.

지금 햄의 최우선순위는 지난 11월 기업가치 270억 달러에 콘티넨털 회사를 차입매수(LBO)하려고 빌렸던 자금 43억 달러를 상환하기 위한 현금 창출이다. 그때쯤이면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콘티넨털 지분(현재 250억 달러로 추산)은 5명의 자녀를 위한 신탁에 이전될 것이다. 이렇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그는 25년간 다수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신탁에 대출 형식으로 자금을 이전하거나 기업가치를 할인하는 등 가족 유한회사가 관여하는 일련의 복잡한 거래를 진행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빨리 시작하는 겁니다. 회사가 작을 때 해야 좋습니다. 성장을 시작하기 전, 가치가 창출되기 전이니까요.” 그가 말했다. “제가 죽은 후 상속자가 회사를 팔아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사태는 최소한 막아야죠.” 단, 비상장회사로 전환한 것은 상속세 때문이 아니라 시장이 “2020년 이후 석유 가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굴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판단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햄은 2억 달러가량을 기부했다. 그의 재산에서 1%도 차지하지 않는 금액이다. 돈이 향한 곳은 당뇨병 연구와 에너지 연구소 등 다양하다. 2011년에 그는 기빙 플레지에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서명했고, 3년 뒤 아내에게 합의금 9억7500만 달러를 주고 이혼한 후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당연히 국세청과도 재산을 공유할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미국이 건네준 돈을 정부가 잘 썼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를 본 적이 없어서요.”

- MATT DUROT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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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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