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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은 “공론(公論)”, 남의 편은 “당론”당쟁에 생사 걸려 양보 못해 

노론 집안 연암 박지원은 ‘당론’ 풍자… 성호 이익은 ‘타협의 상생’ 묘책 제시
프리즘 | ‘추미애 사태’로 본 조선의 당론(黨論)
숨쉬는 역사 

프리즘 | ‘추미애 사태’로 본 조선의 당론(黨論)
민주당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자기 당 소속 추미애 의원이 노동관계법 처리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당론을 거슬러 해당행위를 했다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의 독립적 판단과 의사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가 얽혀 그렇지 못하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당론이 무엇이관대?
연암 박지원(1737~1805)과 성호 이익(1681~ 1763)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개혁사상가다. 연암은 노론 출신이고, 성호는 남인 출신이다.



그들의 개혁사상 중 상당부분은 그 시대의 당론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젊었을 때 연암은 노론 골수파로 그 누구 못지않게 당론을 추종했다. 그는 선천적인 노론 골수파이자 당론 추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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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호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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