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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전시 - 응답하라, 1980년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다큐멘터리 사진 30년 경력 권태균 작가 연작시리즈 ... 한 세대 전 한국인의 삶에 대한 기록

▎<집으로 가는 길, 1983년 경남 의령> 희뿌연 하늘이 눈을 쏟았다. 꽤 추울 것 같은데 그래도 중학생들은 씩씩하기만 하다. 외투도 없이 검은 교복만 입은 채 카메라 앞에서 어설픈 폼을 잡는다.

▎<다리 위의 아이들, 1986년 전남 진도> 시멘트 다리 위에서 손자를 업은 할머니와 그 건너편 홍예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진돗개 한 마리가 조용히 할머니를 따른다.



기억은 세월의 따스한 어루만짐 속에서 추억이란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억은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피로회복제다. 이젠 추억 속에서조차 아련해진 1980년대. 그 시절을 추억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여행’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린다면 ‘응답하라! 1980’이라고 해야 할까!

권태균(58) 사진작가의 사진전 ‘노마드(Nomad)-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이 2013년 12월 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룩스에서 열렸다. ‘노마드’는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3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의 연작시리즈로 2010년 이후 이번이 4번째다.

‘노마드’는 작가가 특히 사랑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유목민이나 유랑자쯤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다리품을 팔며 전국을 누볐다. 그의 사진은 추억이자 역사다.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에서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뒤 현재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지난 세월 작품활동 자체가 노마드였다”고 말했다.

자연 상태에서 사물은 모두 컬러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을 때는 컬러나 흑백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 그중 작가는 흑백을 고집한다. “흑백은 흑백 나름대로 맛이 있어요. 편안한 느낌이랄까. 감정 전달도 컬러보다 더 진솔한 것 같고요.”


▎<차로와 수로, 1989년 경북 청송> 차로 위로 농수로가 지나간다. 농수로 아래 집 안에는 꽤 큰 소나무가 있다. 신작로를 낼 때 집이 헐리다 보니 그렇게 됐나 보다.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 21점의 ‘모델’은 한 세대 전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우리 이웃들이다. 검은색 교복에 책가방을 삐딱하게 옆구리에 낀 중학생, 시장 한 켠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코흘리개 동생을 등에 업은 여자아이, 막걸리 두어 잔 들이키고 흥에 못 이겨 춤을 추는 할머니, 버스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잔뜩 성이 난 청년이 사진 속의 모델들이다.

미루나무길, 홍예교, 과수원집

작품 중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풍경도 등장한다. 지금은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기억 속에만 아련히 남은 풍경들이다. 미루나무길, 홍예교(虹霓橋·무지개다리)가 놓인 마을 앞, 차로(車路) 위를 가로질러 가는 농수로, TV 안테나가 걸린 사과나무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작품 설명에 열중하던 작가가 말없이 전시회장 한 켠을 가리켰다. 1983년 겨울, 경남 의령의 중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남학생 4명이 귀갓길에 카메라를 보고 멈춰 섰다. 그중 한 명이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는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됐을 사진 속의 중학생들은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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