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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그대를 경멸하는 자들과 단호히 결별하라!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스피노자가 분류한 인간의 48개 감정을 화두로 삼아…자기감정의 회복이 자아와 행복을 찾는 비밀의 문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언젠가는 꼭 읽고 싶었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인데, 그렇게 유보했던 이유는 그 책의 ‘악명 높은 난해함’ 때문이다.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증명방식의 구성, 철학적인 개념의 자아류의 해석,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난해한 서술방식이다. 그래서 ‘읽을 수 없는 텍스트’라 불린다.

지난여름 해설서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을 펴낸 인문학자 이수영은 “우연히 들뢰즈를 통해 스피노자를 알게 되면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했고, 다시 <에티카>를 읽으며 ‘읽기의 혁명성’을 경험했다”고 쓰고 있다.

역시 대단한 ‘포스’가 있는 책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수영의 책 출간 이후에도 <에티카>는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강신주의 달콤한 책이 나왔다.

요즘 장안의 지가를 올리는 철학자 강신주가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시도한 스피노자 읽기는 독특하고, 창조적이다. 우선 파워 라이터 강신주의 2013년 성적표를 살펴보자. 인문학 책은 1천 부를 팔기 힘들다는 출판계 현실 속에서도 강신주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 VS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한 해 동안에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다상담> 등 무려 6종의 신간을 쏟아냈다. 이 어마어마한 라이팅 파워 자체가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강점은 특유의 기획력에 있다. 사물과 현상을 종합·분석하고 합종연횡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비틀어보기에도 능한데, 그 비틀어보기가 경박하지 않다. 그의 최대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학에 대한 관심과 소양이다. 그의 문학적 소양은 2012년 발간된 <김수영을 위하여>를 통해 입증됐거니와, 그는 그 책에서 시인 김수영의 삶에 대한 꼼꼼한 취재능력까지 과시한 바 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는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성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 전통을 살짝 비껴서 ‘감정의 윤리학자’ 스피노자에 천착했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감정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자신의 지론을 설파하기 위해 스피노자를 선택한 것이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분류한 인간의 48개 감정을 화두로 삼은 것은 아이디어다. 그러나 그 화두를 풀어낼 때는 문학작품과 명화를 동원한다. 가령,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에게 ‘탐욕’의 코드를 읽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는 ‘대담함’을 사랑과 관련시킨다.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묘약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음주욕’을 어떻게 보는가? 술에 대한 욕망은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발버둥’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해부한다. 술자리에서의 끊임없는 넋두리가 이 희곡의 처절함이란 점은 읽은 이들이 알 것이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데도 이별을 고하지 못하는 이들, 나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단호히 결별하라!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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