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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에서 배우는 경영학 - 베이브 루스, 배리 본즈는 ‘삼진왕’이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시계제로 상황에서 한 방으로 역전할 수 있으나 삼진당할 확률도 높아…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진짜 실패

▎삼성 채태인이 지난해 10월 3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 6회말 역전 2점 홈런을 날리자 두산 선발투수 니퍼트가 허탈한 듯 마운드에 주저앉아 있다.



야구에서 홈런으로 이기려는 작전은 ‘사양산업’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다이아몬드 위에서 감독이 그리는 그림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장타보다는 단타, 즉 안타를 여러 번 쳐서 주자를 많이 내보낸 후 번트나 도루 등 주루플레이에 의해 점수를 차곡차곡 내고, 건실한 수비를 통해 실점을 최소화하는 야구인 ‘스몰볼’.

둘째는 각종 통계자료를 근간으로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효율의 야구인 ‘머니볼’, 마지막은 실점할 때 하더라도 큰 것 한방으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는 큰 그림의 야구인 ‘빅볼’이다. 이 세 가지 전략 중 최근의 야구에서 가장 각광받고 많이 활용되는 것은 스몰볼과 머니볼이다. ‘방망이는 믿을 수 없다’는 야구의 속설처럼 홈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빅볼의 경우 안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제는 점수를 적게 내주고 적시에 점수를 짜낼 줄 아는 작은 야구가 야구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홈런이다. 화려하면서 아름다운, 모두에게 사랑받는 꽃. 팀과 팬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 홈런이다.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홈런은 팀 승리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홈런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법 같은 것이라 하겠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은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왔다. 그해 한국이 올림픽으로 뜨거웠다면 태평양 건너 미국은 LA 다저스의 한 영웅 때문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커크 깁슨이다. 현재 애리조나 감독으로 있는 그는 현역 시절 다저스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는데, 특히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8년 다저스는 100승 60패(승률 0.625)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올라온 뉴욕 메츠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맞붙어 어렵게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에서 맞닥뜨렸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팀. 설상가상 연속된 경기로 깁슨이 두 다리를 모두 다쳐 월드시리즈에서 뛸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1차전 9회말 4대 3에서 오클랜드는 마무리투수 데니스 에커슬리를 마운드에 올린다. 그는 200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 당시 최고의 마무리투수였다. 에커슬리는 마이크 소시아를 유격수 플라이, 제프 해밀턴을 삼진으로 손쉽게 처리, 아웃카운트 두 개를 적립했다. 그리고 맞이한 대타 마이크 데이비스에게 볼넷을 내줘 2사 1루의 상황.

여기서 토미 라소다 다저스 감독이 깁슨을 대타로 기용하는 강수를 둔다. 다저스 팬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타석으로 걸어 나온 깁슨은 풀카운트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마지막 승부구로 마구와도 같은 에커슬리의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려는 찰나, 깁슨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홈런.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기막힌 홈런이었다.

기업에서 홈런을 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대박을 치는 것이다. 그냥 대박이 아니라 시계제로의 상황에서 한 방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극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에디슨이 그랬고, 잡스가 그랬고, 이 사람이 그랬다. 1950년 뉴욕 태생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대학 중퇴 후 24세 때 파라마운트의 젊은 사장 배리 딜러의 조수로 들어가면서 영화계에 발을 내디뎠다.

1982년 제작담당 이사가 된 카젠버그는 일중독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레이더스> <사관과 신사> <48시간>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파라마운트의 전성기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상사이자 파트너인 아이스너가 디즈니 회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자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 디즈니로 자리를 옮긴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1 현재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인 커크 깁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2 <슈렉>으로 드림웍스를 일으켜세운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살린 카젠버그의 장외홈런

당시 디즈니는 쇠락해가는 왕국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천재 디즈니의 비밀>이란 책에서 한 직원은 “외부인이 들어와 우리의 뺨이라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디즈니 전통에 매달렸다.

카젠버그는 사랑스럽지만 모던하고 자기 주장적인 새로운 여성 캐릭터와 뮤지컬적인 요소를 최대한 살린, 흥겨운 디즈니의 전통을 결합한 애니메이션들, <인어공주>를 비롯해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을 통해 디즈니의 명성을 회복하고, 디즈니 왕국을 재건했다. 그러나 카젠버그가 영화계에서 승승장구할수록 역설적으로 아이스너 회장에게는 점점 위협적인 인물이 돼갔다. 아이스너와 카젠버그 사이에 긴장은 날로 높아갔고, 19년의 파트너십을 깨고 아이스너는 마침내 카젠버그를 해고해버린다.

1994년, 카젠버그는 자신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젠버그는 디즈니에서 해고당한지 8일 후 스필버그와 힘을 합쳐 자신의 회사인 드림웍스를 설립했다. 스필버그가 실사영화의 제작을, 카젠버그가 애니메이션 부분을 맡기로 전격 합의하고 제작사를 차린 것이다. <타임지>의 리처드 콜린스는 “1920년 이후 디즈니에 대항할 메이저 제작사는 없었지만, 이제 그 대항마가 나온다면 그것은 바로 드림웍스”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드림웍스의 초기작품인 <엘도라도> <개미> <이집트 왕자> <치킨 런> 등은 줄줄이 실패를 했거나 디즈니 시절의 위업에 비하면 왜소한 성공만을 거뒀다. 게다가 <개미>는 <벅스 라이프>라는 디즈니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의구심이 들 만큼 두 애니메이션의 곤충 콘셉트는 유사했고, 드림웍스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1위 배리 본즈(왼쪽 사진)와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삼진왕으로도 유명하다.



팀 성적이 밑바닥이어도 관중을 끌어들이는 힘

이러한 상황에서 마침내 카젠버그가 빅카드를 내밀었다. 장외홈런이었다. 영원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아이콘이 될 작품,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 <슈렉>의 탄생이다. <슈렉>은 어느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뚱뚱한 통짜 몸매에 녹색에다 대머리인 남자 주인공. 디즈니의 동화 규칙을 모두 깨버린 이 작품은 칸에 초청되기까지 했다.

2001년 회사를 만든 지 7년 만에 카젠버그는 <슈렉>이라는 홈런을 통해 드림웍스에서 입지를 굳혔고, 그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당시는 아주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큰 실수나 고통이 있고 난 뒤 아름다운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를 휩쓰는 것보다 칸 경쟁에 진출한 게 훨씬 영광스럽다.”

팬들은 홈런을 사랑할수밖에 없다. 특히 역전 홈런은 끔찍한 일 뒤에 생겨나는 아름다운 일이다. 팀 또한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는 각 구단마다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전담 캐스터가 경기를 중계한다. 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그들은 홈팀의 타자가 홈런을 기록할 때마다 특별한 코멘트로 축하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전담 캐스터 켄 해럴슨은 다음과 같이 소리 지른다. “stretch~ you can put it on the board~~~ yi~ yes!!” 이런 소리를 듣고, 외치고, 부르짖는 구장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타자가 끝내기 홈런으로 이긴 날은 다음날 지구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금은 마음껏 홈런을 축하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홈런이 나오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가 따른다. 삼진이라는 이름의 시행착오는 홈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마치 경제나 철학, 화학 등에서 쓰이는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 가치에 준하는 것을 잃어야 하는 게 홈런과 삼진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홈런타자는 누구보다도 삼진을 많이 당한다. 통산 3위의 홈런기록을 가지고 있는 베이브 루스의 경우 71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동안 삼진 1330개를 당했다. 시즌으로 환산해 보면 평균적으로 46개 홈런을 치는 동안 86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다. 2위 행크 애런은 755개의 통산 홈런과 1383개의 삼진으로 한 시즌 37개의 홈런과 68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1위 배리 본즈는 762개의 홈런, 1539개의 삼진, 한 시즌 41개의 홈런, 83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결국 이러한 통계의 의미를 헤아려보면, 홈런 수 대비 두 배가량의 삼진은 필연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현역 타자로 통산 홈런 39위에 빛나는 메이저리그 대표 ‘공갈포’ 애덤 던은 통산 440개 홈런을 기록하는 동안 무려 2220개의 삼진을 당했다. 한 시즌 평균 38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192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다. 1대 5의 홈런 대비 삼진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그는 그라운드의 공갈포가 아니라 어쩌면 그라운드의 호랑이일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사냥감을 표적으로 사냥에 성공한 비율이 5%, 즉 배경에는 95%의 사냥 실패를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팀은 왜 자기 선수가 삼진 192개를 당하는데도 라인업에서 빼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생산성 때문이다. 과거 애리조나의 주전 3루수 마크 레이놀즈는 2009년 중요한 순간 삼진을 당해 팀의 공격 흐름을 꺾어놓기는 했지만 홈런 44개 102타점으로 OWAR(Offensive Wins Above Replacement) 4.4를 기록했다. OWAR는 공격에서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나타낸다. 말 그대로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선수보다 레이놀즈는 팀에 4.4승을 더 챙겨준 것이다.

실패한 직원에게 포상하는 혼다와 에버랜드

이렇듯 홈런타자는 팀 또는 팬들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팀에서 홈런타자를 육성해내면 그를 보기 위해 관중이 늘어난다. 이를 통한 티켓 수입으로 팀은 재정적으로 넉넉해지고 여유로운 지갑 사정을 기반으로 자유계약선수(FA)시장 또는 유망주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와 계약한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팀은 강팀이 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한다. 우승하면 관중은 더욱 늘어나고 기존 팬들의 충성도는 높아진다. 이러한 선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홈런타자인 것이다.

그리고 선수 본인의 입장에서도 명예의 전당,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라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꼭 자기스타일을 유지해 홈런을 쳐내야 한다. 그에 따른 삼진은 홈런 타자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삼진을 두려워해서는 홈런타자가 될 수 없다. 통산 삼진횟수 1위부터 10위까지 선수 모두는 명예의 전당 입회자 또는 입회 예정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홈런의 스타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경영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은 거의 모두가 직원의 실패를 용인하고 지지하고 변용하고 성공의 디딤돌로 여긴다. 혼다에는 아예 ‘올해의 실패왕’ 제도가 있을 정도라 한다. 혼다에서는 매년 가장 큰 실패를 한 연구원을 뽑아서 실패왕으로 삼고, 100만 엔,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1천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실패왕 제도는 혼다 소이치로가 내 건 ‘꿈의 경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실패를 용서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꿈에 도전하라는 상징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삼성에버랜드에는 ‘실패파티’라는 제도가 있다. 에버랜드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실패파티를 여는데, 케이크를 앞에 놓고 팀원들이 모여 실패한 사람이 실패 사례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팀원들이 함께 마음을 다지는 노래를 합창한 후, 콜라를 한 잔씩 돌린다고 한다. 이 파티는 해당직원을 질책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인사상의 불이익도 없다. 실패 사례는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전 직원이 공유하게 된다. 또 큰 성공을 했을 때는 성공파티를 여는데 이때는 콜라 대신 샴페인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전략 경영의 대가로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인 리타 건터 맥그래스의 지적처럼 ‘계획적으로 실패하기(failing by design)’는 홈런을 치기 위한 최상의 실패 혹은 실패 계획을 의미한다. 일단 기업은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부서간 성공에 대한 기준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초기에 세웠던 가정을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면서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확실한 가정이나 추측을 기정사실인 양 착각하고 일을 추진하다가는 큰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초기에 빨리 실패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른 실패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자원 투입을 막아주고 문제 발생의 원인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똑똑한 실패를 수용하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실패를 통해 배운 내용을 문서화하고 공유하는 작업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한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실패를 다 경험해본 사람이라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진짜 실패일 뿐이다. 게다가 그것이 어떤 상황이 됐든 간에, 홈런을 쳐버리면 타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가볼까 하는 계산이 필요 없어진다. 1루에 멈춰야 할 이유도, 허겁지겁 홈으로 되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러니 ‘펜스를 향해 스윙하라(Swing for the fence)’. 홈런을 위해 삼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삼진을 당해도 홈런을 꿈꾸며, 오늘도 배트를 힘차게 휘두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야구 기술, 삶의 기술은 아닐까.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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