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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 “‘통일대박론’은 승자와 패자 전제한 느낌 들어 거부감”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순회특파원
▒ 김정은, 육성으로 세계에 북한 변화 청사진 밝혀야 ▒ 박근혜, 한국의 네 번째 걸출한 대통령 될 수 있어 ▒ (한반도에서) 독일식 흡수통일 가능성은 없다 ▒ 북한은 미 역사상 최악·최장의 정보실패 사례 ▒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시간 낭비일 뿐 ▒ 팀스피릿 훈련 재개는 가장 안타까운 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1951년 윌리엄스 대학 졸업. 31년간 CIA 근무. CIA 한국지부장(73~75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외교안보보좌관. 주한미대사(89~93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93~2009년). 2002년 첫 방북. 현재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



도널드 그레그 전 미국대사는 김대중 납치에서 천안함사건까지 때론 주역으로, 때론 목격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지난 2월 중순, 6번째로 북한 방문한 그레그 전 대사를 만나 남북문제에 대한 해법과 40여 년에 걸친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들었다.

존 무초에서 캐슬린 스티븐스까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스무 명의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을 거쳐갔다. 이들 중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도널드 그레그(86) 전 주한 미국대사만큼이나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서울을 떠나고 나면 대부분 잊혀졌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한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한국과 엮여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레그 전 대사의 한국과의 인연은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그레그는 막 신설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신분으로 극동 지역에 파견된다. 태평양의 사이판섬에서 북한 출신 젊은이들을 첩보원으로 훈련시켜 적진에 침투시키는 것이 그가 맡은 임무였다. 20여 년 후 그레그는 CIA 한국지부장으로 서울에 와 한국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과 주한미대사를 거치며 때로는 주역으로, 때로는 목격자로 한국 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했다.

두 번에 걸친 미국 정부의 김대중 구명(救命) 활동에 참여한 것을 비롯,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 저지, 노태우 정부의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팀스피릿 훈련 중단 결정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과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으로 남북한을 오가며 서울과 평양, 평양과 워싱턴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6번째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그 대사를 지난 4월 뉴욕 아몽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나이에 비해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인다. 건강 비결은?

“아내가 요리를 잘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해준다. 건강을 위해 가끔 골프도 친다. 친가와 외가 쪽 조부가 모두 98세까지 사셨다.”

요즘 하루 일과는?

“최근 2년 간은 회고록을 쓰느라 좀 바빴다. 평소엔 PCI와 관련된 일을 한다. 원고도 쓰고, 강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뉴스도 열심히 본다.”

한국 소식은 어떻게 전해 듣나?

“인터넷도 보고, 신문도 읽는다. 또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알려오기도 한다.”

뉴욕 유엔본부에 나와 있는 북한 대표부 사람들과도 접촉하나?

“그렇다. 맨해튼에 갈 일이 있으면 종종 연락한다. 같이 식사도 하고 그런다. ”

“할아버지 닮은 (김정은의) 개방적 성격 활용할 필요”

미국 정부의 허가는 필요 없나?

“필요 없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활동은?

“그쪽은 끝났다. 지금은 PCI 일만 하고 있다.”

6년 만의 방북이었는데 전과 비교해서 평양은 어떻던가?

“훨씬 발전한 느낌이 들었다. 4박5일간 평양 보통강 호텔에 머물렀는데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고, 차도 많아졌다. 도로 포장 상태도 나아졌다.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200만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어디서나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북 경위가 궁금하다.

“PCI 회장 자격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방북을 희망하는 편지를 썼다. 12년 전에도 그의 아버지(김정일)에게 편지를 썼고, 그걸 계기로 2002년 처음 평양에 갔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논의를 해야 하지만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방북하고 싶다고 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편지가 김정은에게 전달돼 북한 외무성 초청으로 지난 2월 평양에 가게 됐다.”

북한에 가면서 혹시 김정은에게 선물 같은 것을 준비했나?

“미국 영화 DVD를 가져갔다.”

어떤 것인가?

“멜 깁슨 주연의 <패트리어트(Patriot)>, 덴절 워싱턴 주연의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로닌(Ronin)> 등 3편이다.”

영화광은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 아닌가? 김정은도 영화를 좋아하나?

“농구를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영화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른다. 솔직히 우리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왜 가져갔나?

“기념품으로 가져갔다. 김정은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에 김정일은 만난 적이 있나?

“없다.”

이번엔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나?

“강석주 노동당 비서와 이용호 외무성 제1부상 등 북한의 넘버 3나 넘버 4급 인사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도자가 가진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내성적인 성격의 아버지보다는 개방적인 성격의 할아버지(김일성)를 많이 닮았다. 편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안다. 이 점을 활용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바꿔나갈 생각인지 본인의 육성으로 외부세계에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2006년 평양에 갔던 ABC 뉴스의 메인앵커인 다이앤 소여를 다시 보내 김정은과의 인터뷰를 주선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계속해서 세상은 그를 ‘악마’로 여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눈을 반짝이며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하더라.”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예컨대 이런 거다. 얼마 전 유엔에서 북한인권보고서가 나왔다. 부인하고 화를 내기만 할 게 아니라 정면으로 대응하란 것이다. 세상이 뻔히 알고 있는데 무조건 부인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또 북한 인권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다 김정은 탓인 것처럼 비난하면 그로서도 억울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김정은 스스로 외부세계에 ‘그렇다.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바꾸려고 한다’는 식으로 직접 말을 하란 것이다.”

북측 “오바마 대화할 생각 없어, 다음정권 기다릴 것”

김정은이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바뀌는 것은 변화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을 때뿐이다. 미국이 내민 손을 중국이 잡은 것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1900만~2천만 명의 목숨을 잃고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걸 마오쩌둥(毛澤東)이 깨달았을 때였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소련도 변화를 택했다. 반면에 우리가 변화를 억지로 강요했을 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쿠바와 이란이 그렇고, 과테말라와 베트남이 그렇다.”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대변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는데.

“북한 체제의 붕괴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적 사고(hopeful thinking)’가 반영된 부정확한 분석일 뿐이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결코 중국이 그런 사태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서른 살밖에 안 된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확보했다고 봐야 하나. 아니면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봐야 하나?

“권력이양 절차는 끝났다고 본다. 그가 조언을 구하는 원로 그룹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북한은 미국 역사상 최악·최장의 정보 실패사례다. 위성으로 북한을 손바닥처럼 관찰하고, 정밀 감청을 해도 우리는 그들의 내부를 알지 못한다.”

올 들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등 대남 유화책을 폈던 북한이 최근에는 미사일을 쏘고, 제4차 핵실험을 위협하는 등 또다시 도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평양에 갔을 때 이용호는 내게 ‘오바마는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정권을 기다리겠다. 일단 남한과 먼저 대화할 테니 미국은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의 진심이라고 본다. 북한이 도발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한·미 연합훈련 때문이다. 그들은 한·미 연합훈련을 극도로 싫어해서 보복적인 대응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미동맹 차원의 연합훈련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한국 방위를 위해서는 미군의 지원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합훈련이 중요하다고 보는 한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모든 종류의 긍정적 에너지가 분출했던 1991년 시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방북 결과를 미 정부에 보고했나?

“물론이다. 아주 상세하게 보고했다. 고맙다, 참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40년 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그레그 전 대사는 최근에도 서울과 평양·워싱턴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레그 전 대사와 인터뷰하는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 대통령, 적극성 보이면 2~3년 내 남북관계 급진전”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본 게 언제였나?

“CIA 한국지부장으로 있을 때 아주 잠깐 본 게 처음이었다. 아마 그가 서강대에 다니는 학생 때였을 것이다.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그가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귀하는 박근혜는 아버지의 머리와 어머니의 가슴을 동시에 물려받았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를 표명한 바 있다. 대통령에 취임한지 1년이 지났는데 박 대통령은 귀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한국 현대사에는 3명의 걸출한 대통령이 있었다.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이다. 노태우는 한국에서 너무나 저평가돼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의 업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북한에 손을 내민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대북 신뢰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최근 독일 방문 중 드레스덴 연설에서 여러 가지 좋은 제안을 했는데 그걸 실천으로 보여줬으면 한다. 박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2~3년 안에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 들어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외치며 통일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적절한 드라이브라고 보는가?

“나는 ‘잭팟(jackpot)’이니 ‘보난자(bonanza)’니 하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통일은 서로 윈-윈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급격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면 한쪽은 졌다고 느끼고, 다른 한 쪽은 이겼다고 느낄 것이다. 서로 이익이라고 느끼려면 상호합의에 의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밖에 없다.”

20여 년 전 독일이 통일될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반도도 독일처럼 갑자기 통일될 가능성은 없나?

“없다고 본다. 6년 만에 평양에 가서 느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사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동독인들은 서독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고 느꼈지만 그걸 타개할 지도자가 없었다. 이 점에서 북한은 동독과 다르다. 일단 물꼬가 터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되면 핵 포기할 것”

북한은 동독처럼 남한에 흡수통일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에는 우리는 좋은 편이고, 너희는 나쁜 편이기 때문에 너희가 변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변화는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각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김정은 스스로 외부세계에 먼저 밝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고모부를 죽인 살인자이고,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 독재자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을 수밖에 없다.”

통일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은 하지만 통일보다는 현상유지가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지 않을까?

“중국은 내폭(內爆)에 의해서든 외폭(外爆)에 의해서든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중국이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체제의 존속을 돕고 있는 이유다. 중국 고위인사는 내게 ‘한국전쟁 때처럼 미국이 우리 국경까지 군대를 이동시키는 실수를 되풀이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분단도 좋고, 통일도 좋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바마는 지금 북한에 손을 내밀기 어려운 처지다. 정치적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 공화당은 즉각 ‘또 나쁜 놈들에게 손을 내민다’고 비난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존 케리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로 정신이 없다. 그렇다 보니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얘기보다 같은 말(馬)을 두 번 살 수 없느니 대화를 하는 것은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하는 것이니 하는 말만 들린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시간낭비다. 그걸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오히려 핵무기고를 늘릴 시간만 북한에 주고 있다.”

북한은 다종화하고 소형화한 새로운 형태의 제4차 핵실험을 예고하고 있다. 4차 핵실험까지 마치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미국인도 질문 받고 싶어하지 않고,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문제가 그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보장 수단이다. 방어적 성격의 억지력이다. 미국과의 핵전쟁은 북한의 절멸을 의미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만난 북한 관리들은 미국과 진정한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억지력은 필요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통일이란 주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건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을 보라. 150년 전 우리는 노예해방을 위해 엄청난 내전을 겪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주의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인종적 편견이 남아 있다. 북한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거나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발상이다. 한마디로 미친 생각이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뭔가?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다. 우리가 그쪽으로 진지하게 움직이면 북·미 간 불신이 줄어들면서 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것이다.”

과거사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일본에 매우 단호한 입장인데.

“잘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분노할 문제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라는 게 있다. 섬 사람들의 편견 같은 것이다. 그것 때문에 과거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귀하는 때로는 목격자로, 때로는 주역으로 한국 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귀하와 한국의 인연은 운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운명에 만족하는가?

“만족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한반도 문제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1905년 체결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한국인들에게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인으로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분단됐다. 6·25전쟁 때 내가 훈련시켜 북한에 첩보원으로 침투시킨 많은 북한 출신 청년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미국과 북한이 신뢰를 쌓고,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방향으로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은 이유다.”

한국 정보기관의 대북정보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가 CIA 한국지부장이었을 때 중앙정보부의 대북정보력은 신통치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기를 바란다.”

한국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나는 일본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일본어도 잘한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에게는 외국인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들의 진심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인은 다르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인들은 항상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했다. 그래서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한국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점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천암함 소신발언, 변명하거나 반박할 생각 없어”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일을 하나 든다면?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가 주한 미대사로 있으면서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시킨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가 나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이를 재개시켰다. 그로 인해 1991년을 전후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성과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팀스피릿 훈련 재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남북한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뭐라고 보나?

“분단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강했다. 그걸 역전시킨 최대 공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뛰어난 경제관료와 기업가를 발탁해 일할 수 있는 여지를 줬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북한은 달랐다. 북한에는 공포와 1인통치 개념만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의 차이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사회와 전체주의에 묶여 있는 사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귀하가 염원하는 한국의 모습은?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자동차로 서울과 평양을 오갈 수 있고, 남한 학자들이 북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남북 화해가 이루어지면 한국은 아주 파워풀한 나라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귀하는 ‘논란의 인물’이 된 걸 알고 있는가? 천안함 사건에서 북한 편을 들고, 평양을 들락거리며 북한 대변인 노릇을 하고,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에는 눈감는 종북 인사란 비판이 있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일일이 변명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대학에서 정보 분야를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CIA 요원이 되지 않더라도 CIA 요원처럼 생각할 필요는 있다는 말이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느낄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진실은 힘있는 사람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힘있는 사람은 종종 진실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실은 힘있는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거리낄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당신도 수고 많았다. 훌륭한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한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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