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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북한군 1인자 총정치국장 경질 미스터리 - ‘ 2인자’ 최룡해 건재하나 김정은의 대안 가능성은 낮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당뇨 악화로 해임됐지만 김정은의 신임 불변…새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실무형으로, 카리스마와 리더십 검증 안돼

▎2013년 6월 6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소년단 제7차 대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전성기를 구가했던 최용해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



지난 4월 하순 북한 군부의 제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총정치국장이 최룡해에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을 맡고 있던 황병서로 교체됐다.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가 개최될 때까지만 해도 최룡해는 북한 노동당의 최고정책결정기구인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3명의 최고위 인사로 구성된 상무위원회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최고군사정책결정기구인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인 김정은 바로 밑의 부위원장을 맡아 다른 군 간부들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에도 선출돼 핵심 3대 권력기관(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게 됐다.

이처럼 당과 국가기구, 군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면서 김정은 체제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부상했다고 평가받던 최룡해가 갑자기 북한군 총정치국장 직에서 해임되자 다양한 억측이 제기됐다. 다수의 전문가는 최룡해의 해임이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따른 문책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석했고,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최룡해가 당중앙위원회 비서직에 임명된 것이 나중에 확인되자 또다시 다수의 전문가는 이를 ‘좌천’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들은 모두 북한 매체의 보도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과 북한 권력체계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하는 것이다. 북한의 2인자로 간주됐던 최룡해가 갑자기 총정치국장 직에서 조용하게 해임된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최룡해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과연 ‘좌천’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는가?

최룡해 실각·감금설은 오보로 판명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갑작스러운 교체는 무엇보다도 최룡해의 건강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최룡해는 지난해에 북한의 파워 엘리트 중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가장 많이 동행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당뇨가 악화되면서 주요 행사에 불참한 경우가 잦았다. 올해 1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대한 파워 엘리트들의 동행 횟수를 분석해보면, 황병서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33회로 1위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이 26회로 2위를 차지했고, 최룡해는 21회로 3위로 밀려났다.

특히 최룡해는, 2월 16일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방문에 동행한 이후 한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일부 언론은 최룡해가 ‘실각’했고 ‘감금’됐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룡해는 공개활동 중단 기간에도 김정은의 기록영화에 계속 등장해 그의 정치적 지위에 특별한 문제가 없음이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3월 6일 북한 조선중앙 TV가 방영한 기록영화에서 최룡해가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이 포착됨으로써 최룡해의 공개활동 중단이 건강상의 문제 때문임이 확인됐다.

이후 최룡해는 3월 6일부터 다시 공개활동을 재개했지만 그의 활동은 대부분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수동적으로 동행하는 것이었다. 지난해에 여러 차례 실시했던 현지요해는 올해에는 3월 22일 단 한 차례만 실시했고 공식행사의 연설도 없었다. 그런 그가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요직에 선출됐고, 4월 13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기념한 군장병 예식에서는 김정은에게 충정을 맹세하는 연설도 했다.

이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에는 김정은 제1비서와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했지만, 4월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1차 비행사대회 등 주요 행사에 계속 불참했다. 그는 4월 21일, 김정은의 ‘1월 8일 수산사업소’ 시찰에 빠졌고, 같은 날 항공 및 반항공군 제188군부대에 대한 김정은의 시찰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4월 23일, 제851군부대 관하 여성 방사포병 구분대(대대나 그 아래의 부대 조직 단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한 김정은의 지도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4월 24일 개최된 인민군 창건 82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와 같이 총정치국장으로서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에도 불참했다. 4월 15일 이후 약 10일간 최룡해의 공개활동이 전무했던 것은 그의 당뇨 악화 및 요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 제1비서는 최룡해에게 삼지연에 가서 쉬라고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룡해는 4월 25일, 제681군부대 관하 포병구분대 포사격 훈련에 대한 김정은의 지도에도 동행하지 않았고, 같은 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정일군사연구원 준공식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4월 26일 개최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북한군 주요 간부들과 함께 제일 앞줄에 앉아 그가 거동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상태는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최근 완공된 김정숙평양 방직공장의 노동자합숙소를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4월 30일 보도했다. 이날 시찰엔 4월 26일 차수로 진급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오른쪽 끝) 등이 김정은을 수행했다.
마침내 4월 27일자 북한 로동신문은 장거리포병구분대 포사격훈련에 대한 전날 김정은의 지도를 보도하면서 황병서 전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의 이름을 리영길 총참모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보다 먼저 호명함으로써 그가 최룡해를 대신해 총정치국장에 임명됐음을 시사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 임명은 ‘좌천’ 아니다

5월 3일자 북한 <로동신문>은 전날 있었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을 보도하면서 최룡해를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소개했다. 최룡해의 이름이 김기남 선전선동 담당 비서와 최태복 과학·교육담당 비서 다음에 호명됐고, 그가 북한의 근로단체 중 가장 큰 조직인 청년동맹의 지도하에 있는 소년단과 관련 있는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준공식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 및 준공사(竣工辭)를 한 점에 비춰볼 때 2012년 4월 총정치국장 직에 임명되기 전에 맡았던 당중앙위원회 근로단체 비서직에 복귀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민군 총정치국장 직에서 해임돼 당중앙위원회 근로단체담당 비서에 임명되자 일각에서는 최룡해가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했고 ‘좌천’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북한 권력체계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차지하는 위상과 최룡해가 과거 북한에서 차지했던 위상 및 현재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를 무시하는 부적절한 평가다.

탈북한 엘리트 중 최고위급 인사인 황장엽은 북한을 움직이는 실세들은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고지도자가 결재할 모든 서류가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을 통해 올라가고 최고지도자가 주로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해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은 최고지도자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면서 한국의 정부 부처와 유사한 당중앙위원회 전문부서들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과 장관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2013년 남북장관급회담 추진 과정에서 북한이 김양건 당중앙위원회 대남 비서의 ‘급’이 한국의 통일부장관보다 높다고 주장했던 것은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현재 군대에 대한 당의 정치적 통제뿐만 아니라 군 건설노동자를 동원해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건물과 휴양 시설, 발전소, 도로 등을 건설해야 하는 등 매우 중요한 과제를 맡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건강문제로 더 이상 총정치국장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된 최룡해를 해임 후 은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업무 부담이 적은 당중앙위원회 근로단체 담당 비서직에 임명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둔 것은 그에 대한 김 제1비서의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5월 3일자 <로동신문>은 5면에 전국소년축구경기대회 결승경기를 관람하는 김정은과 최룡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이날 <로동신문>에서 김정은과 다른 간부 단 둘이 찍힌 사진은 이것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이 사진은 최룡해에 대한 김정은의 특별한 신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5월 10일자 <로동신문>은 북한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에 대한 김정은의 지도를 보도하면서 김정은의 바로 좌측에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앉아 있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김정은의 우측에는 그의 부인 리설주가 앉았고, 그 옆에 황병서 신임 총정치국장이 앉았으므로 최룡해가 황병서보다 김정은에게 더 가까운 위치에 앉은 셈이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주요 군 간부들을 제치고 그를 군 관련행사인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바로 자신의 옆에 앉힌 것은 그에 대한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새로 임명된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왼쪽)이 5월 2일 ‘5·1절 경축노동자연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 총애받는 황병서, 초고속 승진 주목

필자가 <월간중앙> 2013년 7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명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최룡해는 북한의 파워 엘리트 중 김일성과 김정일에게서 모두 총애를 받았고, 김정은 시대에도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으며, 군대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었던 장성택과는 달리 당과 군대를 모두 지도한 경력이 있는 특별한 인물이다.

최룡해가 북한에서 김일성 가계 다음으로 중요한 ‘항일빨치산 혁명가계’에 속한다는 점, 그가 다른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달리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비서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모두에 소속되어 있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그의 공식 서열만 가지고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했다’고 평가하거나 ‘좌천됐다’고 성급하게 결론짓는 것은 부적절하다.

최룡해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만약 거의 완전히 회복된다면 그에 대한 김정은의 신임을 고려할 때 다시 총정치국장 직에 임명되거나 그보다 더 영향력 있는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 직에 임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부의 1인자 직책에 임명된 황병서는 김정은의 신임을 배경으로 2010년부터 초고속 승진을 했다. 김정은이 대외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인 2010년 9월 27일, 김정은이 대장 계급을 받을 때 황병서도 함께 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 계급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황병서가 비록 위상은 낮았지만 그때에도 김정은의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황병서는 중장 계급을 받은 지 6개월여가 지난 2011년 4월 12일, 다시 상장(우리의 중장에 해당) 계급으로 초고속 승진함으로써 김정은의 측근임을 과시했다. 황병서는 2013년 김정은 제1비서의 공개활동에 북한 파워 엘리트 중 최룡해에 이어 둘째로 많이 동행했고, 올해에는 최룡해를 제치고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가장 빈번하게 동행한 최측근 인사다.

그런 그가 2014년 3월경,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비로소 인민군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북한군 수뇌부 핵심인사들과 같은 대장 계급으로 승진했다. 그런 그가 4월 하순엔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또다시 차수 계급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최룡해에서 황병서로 바뀜에 따라 2012년 4월 김정은 체제의 공식 출범 이후 2년 만에 군부의 3대 핵심 실세, 즉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이 모두 바뀌게 됐다. 황병서는 과거에 인민군 총정치국에서 일하다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겨 오랫동안 군부를 정치적으로 지도해왔기 때문에 그가 당장 총정치국장 직을 수행하는 데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건강문제로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난 최룡해는 아직 실권한 것은 아니나 군의 대한 영향력은 현저히 축소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황병서가 최근 북한 군부의 제1인자 지위인 총정치국장 직에까지 오르게 된 데에는 최룡해의 건강 문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황병서의 충성도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서의 업무 수행능력은 검증되었지만 그의 군부 1인자로서의 리더십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과연 오랫동안 총정치국장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룡해 교체로 김정은 체제 더욱 공고화

2009년부터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 크게 기여했던 김정각은 2012년 4월 우리의 제1차관급인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장관급인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리더십 부족으로 인해 새로운 직책을 오래 수행하지 못하고 같은 해 10월 상대적으로 위상이 떨어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마찬가지로 황병서도 총정치국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아 충분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다면 조만간 중도하차할 수 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최룡해에서 황병서로 교체됨에 따라 김정은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이 군부를 강력하게 장악하고 군대를 동원해 각종 대규모 건설을 추진하는데 그동안 최룡해가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떠받드는 ‘충신’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룡해는 그의 부친 최현이 북한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높게 평가받는 항일빨치산이라는 점과 그가 가진 카리스마와 리더십에 비춰볼 때 만약 북한에서 김정은의 권력이 불안정해질 경우 김정은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할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최룡해가 건강 문제로 인민군을 관장하는 총정치국장 직에서 물러나 근로단체를 담당하는 당중앙위원회 비서직으로 옮겨가게 됨에 따라 군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현저히 축소되고 그가 미래에 김정은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이에 비해 새로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황병서는 최룡해와 같은 카리스마와 화려한 가족 배경을 가지지 못한 실무형 인사에 가깝다. 그러므로 향후 설령 김정은의 권력이 불안정해지더라도 그가 대안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처럼 지난해 12월,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에서 김정은의 권력은 불안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염두에 둔 성급한 통일 준비보다 김정은 정권과의 당국간 대화와 협력의 확대 및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가는 전략적인 행보를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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