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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취재 | 그들은 왜 北으로 되돌아갔나? - 방황하는 탈북자들의 항변 “이유 없는 재입북은 없죠” 

한국생활 부적응으로 재입북 시도하는 사례 늘어나… 탈북자 관리·감독 시스템 재점검해야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한국에 정착해서 살다 2012년 말 가족과 함께 재입북한 뒤, 다시 6개월여 만에 탈북을 결행한 김광호 씨는 국내에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 16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재탈북을 하다 중국 공안에 억류된 김씨 가족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3년 1월 24일, 북한 조선중앙TV는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자) 출신 재입북 탈북자 4명의 합동 기자회견을 방영해 충격을 줬다. 한동안 한국에 정착해서 살던 김광호·김옥실 부부와 그들의 10개월 된 딸, 또 다른 탈북자 고경희 씨로 확인됐다. 김광호 씨는 이 자리에서 “남조선에 가야 돈도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다는 놈들의 꾀임에 쉽게 넘어가게 됐다…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치는 험악한 세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고 한국 사회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우리 정부의 탈북자 관리·감독 체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김씨 가족이 북한으로 들어간 지 6개월여 만인 지난해 7월 중국으로 재탈북을 감행했다가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져 허술한 탈북자 관리체계의 심각성을 더해줬다. 김씨 가족의 조선중앙 TV의 보도 당시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북자의 재입북이나 재입북 시도 사례는 그 뒤로도 꼬리를 문다. 같은 해 5월 17일에도 탈북자인 리혁철·김경옥·강경숙 씨가 재입북 후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남한 사회를 비판했다. 그들은 자신의 탈북이 “강제적이었다”는 주장까지 폈다. 리씨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남조선으로 끌려갔으며 남한 생활이 비참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북한 당국이 공개한 재입북 탈북자 수는 모두 13명에 이른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회를 비난하고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의도로 재입북 탈북자들을 연이어 방송에 내보낸 것으로 분석한다. 통일연구원 통일학술정보센터 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추가 탈북을 억제할 목적으로 남한의 부적응 사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이를 사상교육 자료로 쓰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에 정착해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수는 대략 2만6천 명. 이들 탈북자 수는 1999년까지만 해도 1천 명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들어와 급증했다. 2007년에 1만 명을 넘었고, 2010년에는 2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10년 새 탈북자가 급증한 것은 북한 내부사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극심한 기근을 겪은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식량을 구하러 중국에 나왔다가 문호를 개방한 중국의 발전상과 남한 사회의 실상을 알게 되자 북한 주민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정치적 망명’ 성격의 탈북자가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생계형’ 탈북자가 대다수인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대다수의 탈북자는 고향과 가깝고 북한의 가족과 접촉하기 쉬운 중국보다 오히려 남한을 정착지로 선택한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냉대를 받기보다 한 핏줄인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게 적응하기가 쉬우리라는 판단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 구성원 중 경제활동 능력이 있는 일부가 먼저 남한에 내려와 돈을 모은 뒤 나머지 가족을 데려오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기대보다 못한 소득, ‘2등국민’ 불만 증가

복수의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해 남한까지 오는데 보통 500만~1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빠져나올 때 브로커에게 일부 비용을 지불하고, 남한에 도착한 뒤 정착지원금을 받아 나머지를 지불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탈북자 이삼민(가명·56) 씨는 “탈북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뿐더러, 실패 과정에서 돈이 이중삼중으로 들다 보니 요즘은 브로커들이 현지에서 모든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이씨는 “탈북자의 입장에서도 한국에 와서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을 브로커에게 비용으로 지불하고 나면 당장 생활비가 없어 곤란을 겪게 된다”며 “브로커들 중에는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출소 일자에 맞춰 탈북자를 찾아가 비용을 받아내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탈북자의 집으로 매일 찾아가 돈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낯선 한국사회에서 정착하는 데 필요한 돈을 브로커 비용으로 모두 지불해버리고 나면,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생활은 처음부터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 돈을 벌려고 발버둥치다가 현실이 여의치 않자 결국 ‘북한이나 다시 갈까’ 하는 생각에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우리 정부의 탈북자 처우 기준도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졌다. 한때 정부는 탈북자 1인당 3500만여 원(2001~2005년)의 비교적 많은 정착금을 지원했지만,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해부터는 탈북자 1인 가구 기준으로 기본정착금 700만 원과 주거 지원비 13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주거비와 정착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었지만, 요즘은 직업 훈련·자격증 취득 등 취업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들의 소득이 남한 출신의 일반 국민에 비해 적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남북하나재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시기, 일반 국민 월평균 소득 218만 원의 64%에 불과한 수준이다. 통일부는 내년부터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래행복통장’ 사업을 새로 시행하기로 했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 제도는 탈북자들이 근로소득을 저축하면 매월 최대 50만 원까지 같은 금액을 적립해주는 방식이다. 정부의 방안대로 탈북자 한 사람이 매달 50만 원씩 4년 동안 적립하게 되면 5천만 원 정도의 목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식 경제관념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탈북자들로서는 돈을 버는 것과 모으는 것 모두 어려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2등국민’이란 자조 섞인 불만이 터져 나온다.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부적응으로 인해 재입북자가 급증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차원에서 외부 공개를 꺼려 공식적인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탈북자 관련단체들은 현재 밖으로 드러난 수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2012년 국회에서 “올해만 재입북 탈북자 수가 1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후 탈북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재입북 회유공작이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볼모로 삼아 재입북할 수밖에 없게끔 ‘자수’를 종용한다. 이에 대해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재입북자 통계를 공개하는 것은 북한의 심리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막노동이나 단순 서비스 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자신을 남한 사회의 ‘2등국민’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유다.



“처벌 안 하면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목소리도”

실제로 최근 들어 탈북자들 사이에는 재입북을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북한이탈주민네트워크 손정훈 대표는 “지금까지 탈북자들을 상담하며 만난 사람들 중, 북한이 처벌만 안 하면 재입북을 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50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탈북자의 친인척 등 연락 채널을 통해 월남한 죄를 묻지 않고 새집과 직장을 주겠다며 탈북자들의 재입북을 부추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김모(56) 씨는 억대의 사기대출을 받아 재입북을 하려다 지난해 12월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2007년 탈북한 김씨가 재입북을 추진한 이유는 북에 두고 온 딸 때문으로 드러났다. 20대인 딸을 북한에 혼자 남겨 두고 탈북한 그는 한국에 정착해서 트럭 운전수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딸을 북한에서 빼내오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더 큰돈이 필요하다는 브로커의 말에 1억2천만 원을 대출받아 덤프트럭을 구입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인맥이 없고 사교성이 부족한 터라 일감이 거의 없었다.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생활비는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김씨가 선택한 것이 사기대출을 통한 재입북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일단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허위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쓴 뒤 은행에서 2억6천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는 이 같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경찰에 의해 공항에서 붙잡혔다. 김씨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탈북에 실패한 딸이 북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데다 남한에서도 거액의 빚을 지게 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의 재입북 시도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 많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가진 경력은 대개 남한 생활에서 활용 가치가 낮다. 남한 사회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버티려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탈북자 대부분은 나이가 중년 이상이어서 이런 경쟁사회를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중등교사로 일했던 조명희(가명·50대)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로는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조씨는 “북에서 괜찮은 직업을 가졌다 해도 한국에선 거의 다쓸모가 없고 허드렛일밖에 할 게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탈북자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거나 식당 종업원, 장거리 화물차 운전수, 택배기사 등 보수가 낮고 노동강도가 높은 직종으로 내몰리는 신세다. 지난해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고용률은 51.4% 수준에 머물렀다.

그들의 직종은 단순노무와 서비스 종사자가 각각 28.2%와 21.4%로 절반을 차지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성재 책임연구원이 탈북자 67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서도 탈북자들은 한 직장에 머물러 있는 근속기간이 평균 10개월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이직률은 68.6%에 이르렀고, 77.6%는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겼다.


▎하나원에서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기본적인 사회적응 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이 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복수의 탈북자에 따르면 한국 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다. 하나원에서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교육받지만 현실에서는 ‘탈북자’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김용선(가명·33) 씨는 “출발선부터가 남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며 “죽을 힘을 다해 일해야만 남한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탈북자 중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손에 꼽는다”며 “남한 사람들도 취업이 힘들다고 하는 판에, 학력이나 자격증 등 온갖 스펙 면에서 뒤떨어지는 탈북자가 낄 자리는 더더욱 없다”고 주장했다.

비자발적 탈북자 늘면서 부적응 사례도 증가

한국 사회에 쉽게 뿌리내리지 못한 탈북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같은 고향 출신이나 비슷한 연령대끼리 모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들 탈북자 모임은 기댈 곳 없는 탈북자들에게 힘이 돼주기도 하지만, 거꾸로 남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차단하는 부작용도 낳게 된다. 탈북자 박은아(25) 씨는 “남한 사람을 새로 사귀려고 하기보다 북쪽 사람들끼리만 지내면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더 고립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 중에는 북쪽에 남은 가족의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재입북을 결행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지난해 11월 재입북을 계획하다 붙잡힌 ‘엘리트’ 탈북자 이은실(가명·50대) 씨의 경우도 그랬다. 이씨는 북한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다. 한국에서도 탈북자 관련 학교의 사감을 지내면서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북에 남겨놓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늘 이씨를 괴롭혔다.

그는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지원금 2천여 만원과 신용카드 대출금 1100여 만원을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한 뒤 중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에 붙들렸다. 검거 당시 그의 가방에는 직접 제작한 인공기 그림과 김일성 배지 두 개, ‘죽어서도 영원할 나의 조국’ 등의 북한을 찬양하는 메모가 여러 장이 발견돼 여러 가지 억측을 낳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수사과정에서 “남한에 좋아서 온 게 아니다. 가족이 있는 북한에 죽어서라도 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탈북자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의 신미녀 대표는 “탈북자 대부분은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산다”며 “그 죄책감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힘들게 넘어온 남한일지라도 탈북자에겐 무용지물이 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늘어나는 ‘비자발적인 탈북자’들의 경우, 과거의 자발적인 탈북자들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의 정착 의지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탈북자 김은주(28) 씨는 “탈북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초반에 입국한 사람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인데, 최근의 탈북자들은 남한에 정착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입국하는 사람이 많다”며 “남한에서 가족들이 보내준 돈으로 북한에서 생활하던 이들이 1세대 탈북자만큼이나 남한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간절할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재입북 루트에 대해 뚜렷이 밝혀진 바 없지만, 대부분 탈북을 위해 접촉했던 중국 브로커들을 활용한다고 알려진다.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에 뇌물을 주고 북한을 찬양하는 선전물을 제시하면 재입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브로커 비용은 탈북할 당시의 비용보다 두세 배 정도 많은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입북을 시도하려다 적발된 탈북자 가운데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거액의 돈을 소지한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한국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간 뒤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 중의 일부도 북한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국군포로 자녀로 남한에서 적지 않은 부와 명예를 가졌던 탈북자 박민용 씨는 2008년 중국으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박씨가 북한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가 평소에 “공안국 사람을 끼고 안전하게 북한에 가겠다”는 말을 자주했기 때문이다. 박씨의 한 지인은 “박씨는 남한에 와서 억대에 이르는 포상금을 받는 등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다”며 “하지만 나중에 사기에 휘말려 생활이 어려워지자 수중에 남은 돈을 뇌물 비용으로 마련해서 재입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 7월에 열린 하나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교육원생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수는 2만6천 명을 넘어섰다.



북한에 충성맹세로 탈북자 정보 유출하기도

탈북자들의 재입북 시도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국보법 제6조·7조에 의해 ‘잠입탈출죄’와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려되는 건 재입북 시도자들이 국내 주요 보안관련 자료를 유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공안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 사회의 정보를 입수하는 주요 경로 중의 하나로 재입북 탈북자들을 꼽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재입북자가 한국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하면 탈북자들을 회유해 정보를 제공받을 개연성이 많다. 또 재입북자를 통해 파악한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를 토대로 암살 등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정보를 소지하고 재입북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재입북 혐의로 실형을 받은 김모(60)씨는 북에 있는 아내로부터 ‘자수하고 돌아오라’는 권유를 받고 재입북을 결심했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의 대학 간부와 지도원으로 엘리트에 속했지만, 1998년 동생이 간첩 혐의로 처형당하면서 이듬해 북한을 빠져 나와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는 수 차례 아내와 아들을 탈출시키려다 실패하자 스스로 재입북을 결심했다. 그는 북한 당국에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탈북자 50명의 연락처와 하나원 동기 21명과 촬영한 사진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탈북자 관련단체의 관계자는 하나원의 허술한 사회적응교육이 재입북을 결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모든 탈북자는 한국에 들어오면 하나원에 3개월 동안 머물며 한국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게 된다. 주요 교육 내용은 정서안정 및 건강증진(46시간), 진로지도 및 직업훈련(174시간), 우리 사회의 이해 증진(121시간), 초기 정착지원(51시간) 등으로 짜여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육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원 교육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탈북자 조승민(가명·33) 씨는 “하나원 안에서 아무리 컴퓨터 타자연습을 열심히 해도 밖에 나가면 초등학교 수준인데, 탈북자가 남한 사람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건 비현실적인 기대감만 키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탈북인권난민연합 김용화 대표는 “비현실적인 기대감만 키운 탓에 사회에 나가 더 크게 실망하는 등 정착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의 정착지원 방향이 ‘물질적 지원’에서 ‘자립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탈북자 스스로 사회에 적응해 나갈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상담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김재숙 차장은 “물질적인 지원이나 취업 못지않게 ‘사회적 포용심’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조직 문화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데다 ‘탈북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여기기 쉽다”고 말했다.


▎브로커를 통한 탈북 비용은 1인당 5백만~1천 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동남아를 통해 입국한 탈북자들이 경기도 안산시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하나원에서 나오면 “남한 사람에 비해 못미덥다”, “한국 사람에 비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에 시달리곤 한다. 이러한 ‘낙인효과’가 반복되면 한국에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탈북자도 ‘무능하고 나쁘다’는 인식 속에 사회 이탈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차장은 “탈북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소외감이 커질수록 탈북자 그룹이 더욱 폐쇄적으로 변하게 돼 결국 사회와 동떨어지는 부정적 경향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탈북자 재입북, 개인 일탈 아닌 ‘현상’으로 봐야

정부는 탈북자의 재입북 예방 대책은 미흡한 편이다. 오히려 이들의 재입북을 ‘소수의 일탈’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재입북 탈북자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들은 “해당 탈북자는 북한에서도 문제가 많았던 인물”, “젊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청년들에 비해 일할 의지가 떨어졌던 사람” 등이라고 평가하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정부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탈북자의 재입북 사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확한 실태 파악에는 어려움을 표명한다. 예방 차원에서 재입북을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고 개인의 이동을 통제할 정책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재입북 시도가 많다는 건 알지만 탈북자들을 일일이 의심하면서 감시를 강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탈북자도 이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중국에 나가거나 거주 이전의 낌새가 보인다고 해서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재입북 문제는 개인의 범죄보다는 탈북자 사회의 경향으로 보고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탈북과 입북, 재탈북을 반복한 끝에 지난해 12월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광호(38)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씨는 탈북 브로커 김모 씨에게 브로커 비용을 갚지 못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2012년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 재적응하는 데 실패한 김씨는 2013년 6월 가족과 함께 다시 탈북을 결행했고, 남한에서 구속돼 형을 살고 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박사는 “고향을 떠나온 이주자가 본향으로 돌아가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국 생활의 어려움까지 겹쳐진다면 더 심화될 것”이라며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관건인 만큼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되는 재입북은 탈북자의 국내 정착문제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해 온 남한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탈북자들이 하나둘 재입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탈북자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맡겨왔던 한국사회의 정착을 정부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고, 정부는 탈북자의 관리·감독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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