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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 더 이상 위기는 없다! 방송가 종횡무진 개그맨 이경규 

“방송 오래할수록 더 치열하게 살아야죠”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버럭’ 화법에서 부드러움 갖춘 개그맨으로 진화…JTBC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 출연 신개념 토크쇼에서 새로운 도전

▎방송경력 33년의 이경규는 5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을 웃길 줄 안다. 팬들은 그런 그에게 ‘경규옹’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맨들이 있다. 1990년대에는 이홍렬, 주병진, 서세원 등이 예능 프로를 주름 잡았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활동한 개그맨으로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이경규(54)만이 예외다.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로 방송에 데뷔한 그는 동년배들이 대부분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것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면서 말이다. 팬들이 그를 ‘경규옹’이라고 추켜세우는 이유다.

그런 이경규가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4월 2일 첫 방송을 한 JTBC의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이하 <뜨거운 네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뜨거운 네모>는 앙케트 조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이슈들을 논하는 신개념 토크쇼. 이경규와 함께 개그맨 유세윤이 공동MC를 맡았고, 방송인 최유라와 연세대 황상익 교수, 걸그룹 달샤벳 수빈 등이 출연한다.

4월 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뜨거운 네모> 제작발표회에서 이경규는 “공중파도 케이블방송도 다해봤지만, 새로운 방송국에서는 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가급적 한곳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다”며 “<뜨거운 네모>는 사회적인 이슈를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제 모습과는 색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JTBC 토크쇼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에서 이경규는 후배 개그맨 유세윤과 공동MC를 맡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뜨거운 네모>는 이경규가 MBC에서 연을 맺은 여운혁 CP와 14년 만에 재회한 프로그램이다. 여운혁 CP는 “이경규를 모셔오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연이은 방송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경규를 <월간중앙>이 만났다.

“재미없으면 때려치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JTBC와는 첫 만남이죠? 여운혁 CP와 인연이 작용했다고 들었는데, 감회가 어떤가요?

“여운혁 CP 한 개인을 위해서 방송을 맡은 건 절대 아니에요.(웃음) 다만 여운혁 CP가 하는 방송이라면 ‘믿고 따라가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JTBC에 처음 출연하는 방송이기도 하고, 프로그램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누구도 예측을 할 수 없잖아요. <뜨거운 네모>의 시청률이 저조하다면 JTBC에서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라도 꼭 성공해야죠. 두세 개의 프로그램을 히트 치고 떠나는 게 목표예요.”(웃음)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옛날에는 재미없으면 안 했죠. 피디나 작가들한테 ‘이렇게 하면 망한다,’ ‘바꿔라’ 하고 잔소리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요즘은 먼저 판단하기에 앞서 일단 녹화부터 한 뒤 난리를 치죠.(웃음) 이제 고집 부릴 나이는 지났으니까. 말을 많이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나이 아닌가요? 그래서 방송에 임할 때도 욕심을 내려놓고 양보하는 편이에요. 옛날에는 ‘녹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송했지만, 이제는 ‘좋게, 재밌게 빨리 끝났으면’으로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고집불통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저 예상 외로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아요.”(웃음)

방송에서 곧잘 호통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와는 다른가 보죠?

“저는 우리나라에 왜 반말, 존댓말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어요. 후배는 왜 90도로 선배에게 인사를 해야하는 건지도 그렇죠. 굳이 격을 따지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한테 ‘나이 몇 살이냐, 학교 어디냐, 출신 어디냐’ 묻지 않거든요. 나이 물어보는 순간 갭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 대신 ‘너 뭐 좋아 하냐?’ 이런 건 물어보죠. 방송에 출연한 후배들이 저를 가리켜 ‘어렵다’, ‘무섭다’고 너스레를 떠는데, 실제로는 허물없이 같이 잘 놀아요.”

이경규 씨를 가리켜 ‘개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들 하는데, 이렇게 롱런하는 비결은 뭐라고 보세요?

“어느 정도 운도 작용했고, 시대를 앞서가는 예능을 가장 먼저 시도해서 그런 듯해요. ‘캐릭터 설정’을 해놓고 방송을 했던 개그맨은 제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옛날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서로 재밌는 얘기만 주고받았지,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방송하진 않았거든요. MBC <대단한 도전>을 하면서 김용만 씨와 캐릭터를 설정했어요. 저는 김용만 씨한테 호통치는 역할이었고, 김용만 씨는 적당히 망가지면서도 저와 밸런스를 맞춰주는 캐릭터를 선보였죠.

‘버럭 개그’도 그때 생겨났어요. 호통 치는 캐릭터가 저한테 잘 맞더라고요. 용만이한테 큰소리치는 게 편한 것도 있었지만요.(웃음) 출연진 간에 캐릭터를 설정하는 등 남들이 하지 않은 부분에서 앞서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방송 노하우를 모두 나눠가지는 바람에, 웬만한 사람도 다 평균 이상으로 잘 만들어내요.”


▎이경규는 20년 동안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면서 여러 코너를 히트시켰다. 월드컵축구와 예능을 접목시킨 ‘이경규가 간다’는 예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경규 이름 걸고 한 방송은 달랐죠”

방송마다 비슷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모두 다 똑같잖아요. 버라이어티에 개그맨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배우, 가수 등 출연을 안 하는 사람이 없죠. 좋다고 봐요. 영역 구분 없이 누구나 다 방송할 수 있으니까. 좋고말고요. 요즘에는 프로그램 시청률이 부진해도 잘나가는 출연진이 나오면 방송이 쭉 가요. 하지만 반대로 한물간 출연진 때문에 프로그램을 없애는 경우도 있죠.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기다려주지 않는 세상이잖아요. 방송사가 기다려줄 이유가 없는 거죠. 시청률에 치이는 게 현실이에요.”

이경규는 개그맨으로 수많은 히트작을 냈다. 특히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에 오랫동안 출연하면서 그의 이름을 붙인 코너를 여럿 히트시키기도 했다. 건널목 정지선을 지키는 시민들에게 양심냉장고를 선물했던 ‘양심냉장고’, 월드컵 열기를 안방에 전달했던 ‘이경규가 간다’, 연예인들의 색다른 모습을 공개한 ‘몰래카메라’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공익과 예능을 접목시키고, 축구와 예능을 결합한 방송은 제가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이경규는 웃음과 재미와 함께 감동을 이끌어냈다.

<일밤>에서 ‘이경규’ 간판을 걸고 한 방송은 모두 대박을 쳤는데, 이젠 <이경규쇼> 같은 것도 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방송이니 더 애착이 가긴 하죠. 그런데 ‘이경규쇼’만큼은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것까지 하고 나면 정말 제 방송경력이 끝날 것 같아서요. 나중에 언젠가는 제 이름을 건 ‘이경규쇼’를 하겠지만, 아직 그럴 때는 아니라고 봐요.”

연예계에서 출발할 때부터 개그맨으로 성공할 줄 알았나요?

“사실 코미디언을 평생 할 생각은 없었어요. 데뷔하고 나니 같은 방송국에 학교 선배들(동국대 연극영화과)이 많더라고요. 당시 개그 프로그램은 콩트 위주였기 때문에 연기를 잘해야 했는데, 저는 연기실력이 영 꽝이었어요. 사투리가 심하고, 웃기는 연기도 잘 못했어요. 그래도 해보니까 점점 재밌더라고요. 계속하다 보니 오늘날까지 온 거예요.”

‘이십 대를 웃길 수 있는 오십 대 개그맨은 이경규가 유일하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래요? 어린 친구들을 웃길 수는 있죠. 그런데 어떻게 웃기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교훈을 넣으면 싫어할 테고, 교훈을 안 넣으면 가볍다고 여길 테니까. 그래서 고민이에요. 세대 별로 어떤 웃음 포인트를 좋아하는지, 젊은 친구들에게는 무엇을 전달해야 할 지를요.”

데뷔한지 33년, 개그계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경규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년간 몸담아왔던 <일밤>에서 2008년 하차한 것. 이와 관련해 그는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가 회사를 떠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삶이란 게 이런 거구나’고 느꼈죠.

최선을 다해도 이것이 순리구나, 후배들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 후로 ‘위기설’이 나돌았다. <일밤> 하차를 이후로 “이경규도 한물갔다”,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호통 개그가 호감을 얻지 못한 것” 등 다소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설’ 극복하고 노익장 과시

그러나 이경규는 2009년 KBS 리얼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으로 복귀하면서 그 ‘위기설’을 보기 좋게 잠재웠다. 가수 김태원과 후배 개그맨인 김국진, 이윤석 등 멤버들과 함께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콘셉트로 합창단, 배낭여행 프로젝트, 마라톤 등에 참여했다. 자신만의 조리법으로 만든 흰 국물 라면 ‘꼬꼬면’을 선보여 실제 제품 출시로 연결시키는가 하면,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기도 했다.

쟁쟁한 후배들 틈바구니에서 ‘이경규’만의 웃음을 선보인 그는 201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하면 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강호동·유재석·신동엽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후배들을 제치고 ‘50대’ 이경규가 수상한 것이다. 당시 이경규는 수상소감에서 “개인적인 어려움과 함께 팀 자체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동안 탄 상 중에서 평생 값어치가 있는 상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있는 후배와 난 똑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 눈이 내린 길을 앞서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며 후배들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길을 만들어주겠다”며 선배로서의 부도 밝혔다. 전성기를 지난 이경규가 또 한 번 정상에 올라서며 그의 녹슬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다시 정상에 오른 뒤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고민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늘 해요. 다만 요즘의 고민이라면, 방송이 너무 다큐멘터리화된다는 거예요. 리얼을 강조하다 보니 하루 종일 카메라가 저희를 따라붙거든요.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요즘 후배들 방송하는 거 보면 (리얼리티 한다고) 군대에 가지를 않나, 엄마 대신 애를 보질 않나… 방송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하는 건지 잘 모르지만 ‘이게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의 자격> 할때도 24시간 내내 찍었는데, 예전에는 안 이랬거든요. 촬영하다 중간에 쉬기도 했는데, 지금은 카메라 불이 꺼질 틈이 없어요. 자식을 등장시키지 않으면 출연 못하는 코너들도 있고요. 방송의 포맷에 한계가 있으니까 언젠가 이런 시대가 올 줄 알았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는 건지는 의문이 생겨요. 요즘 트렌드가 하루 종일 찍는 거라면, 편안한 포맷도 하나쯤 생겨야 한다고 보는데.”(웃음)

동년배 개그맨들이 방송을 떠난 상황에서, 홀로 남은 것이 외롭지는 않나요?

“외롭지는 않은데, 나한테 충고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좀 그래요. 나보다 어른이 있으면 좀 눈치도 보고 할 텐데, 선배가 없으니 대충해도 나한테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어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컨트롤하는 게 힘들죠.”

과거에 대한 향수는 없나요?

“방송하면서 ‘이때가 참 좋았지’ 싶었던 시절은 별로 없고요. 제 인생 중에서는 일본 유학 시절이 제일 신났죠. (이경규는 <일밤-이경규가 간다> 이후 1999년 1년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유학이 제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매일 놀면서 새로운 걸 많이 봤어요. 요즘처럼 ‘TV에 안 나오는 동안 내가 잊히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없었고요. 그땐 방송하는 사람이 몇 명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웃음)


▎방송인으로 성공했지만 이경규의 최종 목표는 아무래도 영화감독이다. 그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대선배 되고 나니 꾸지람이 그리워”

개그맨으로서 늘 웃음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그래서 제가 사람을 잘 안 만납니다.(웃음) 만나면 친절하게 행동해야 하고, 웃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못 되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잘 안 가는 이유죠. 시청자들은 TV에서 개그맨의 늘 웃는 모습만 보니까, 우리가 늘 쾌활한 줄 알아요. 사실 저는 하루 중에 밝은 표정 지을 때가 한두 시간도 안 돼요.”

방송 외에 이경규는 영화와도 연이 깊다. 그의 사생활을 언급할 때 영화 <복수혈전> 이야기가 늘 빠지지 않는다. 1992년 제작자이자 감독·각본·주연·기획 등을 도맡아 이 영화를 찍었지만 흥행에는 참패를 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꿈꿔온 영화에 대한 열망을 실현에 옮긴 도전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절치부심한 이경규는 <복수혈전> 이후 14년 만인 2007년에 다시 영화 <복면달호>를 선보였다. 가수를 꿈꾸는 주인공이 실수로 트로트 기획사와 계약하면서 ‘뽕짝’ 스타가 되는 스토리를 담았다. 주연 배우를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이경규에게 배우 차태현이 손을 내밀어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복수혈전>의 불명예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이다.

영화 개봉 당시 차태현은 “이경규 대표에 대한 편견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며 “처음 영화제작이 발표되고 모두 주위에서 출연을 말렸지만 이경규 대표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경규는 <복면달호> 이후 지난해에는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발표하면서 휴머니즘 코드가 돋보이는 그만의 영화관(觀)을 조금씩 펼쳐나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데, 최종 목표는 영화감독인가요?

“예순을 넘기면 영화감독을 제대로 해보려고요. 지금까지 방송도 오래했고 영화도 세 편이나 발표했으니, 이제는 저만의 관점을 녹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영화제작자를 하면서 좋은 시나리오를 찾기 위해 애쓰고, 젊은 감독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저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노예 12년> 같이 한 사람의 생애를 펼쳐 보여주는 영화가 좋아요. 반면에 CG(컴퓨터그래픽)를 많이 쓴 영화에는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요즘 액션히어로 물이 잘나가던데, 그런 영화를 보면 ‘저게 만화영화인가’, ‘배우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찍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 냄새 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이경규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면서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버럭’ 하는 이미지를 벗고 출연진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는 모습을 본 팬들은 이경규를 ‘사랑과 배려의 아이콘’, ‘힐링의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예순 넘어서 영화감독으로 살고 싶어”

“이경규가 부드러워졌다”는 평이 많아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이를 먹어서 생기는 가장 안 좋은 단점이 말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남의 얘기를 귀담아듣질 않죠. 나이 먹을수록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리슨(Litsen)’과 ‘셧업(Shut Up)’이 필요합니다. <힐링캠프> 촬영을 하려면 네다섯 시간 동안 꼬박 출연자 얘기를 들어야 해요. 내가 떠들고 놀아야 재밌는 건데, 남의 이야기만 들으려니 지겹고 힘들죠. 방송을 하면서 듣는 연습이 많이 됐습니다.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웃음)

만약 <힐링캠프>에 자신이 초대손님으로 출연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그동안 제가 맡아왔던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왜 그 방송을 했는지, 방송을 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풀어놓고 싶어요”

혹시 ‘이경규 위기설’이나 <일밤> 하차에 대해 해명하려는 건가요?(웃음)

“글쎄요. 그런데 전 한 번도 제가 ‘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남들이 ‘한물갔다’, ‘인기가 꺼졌다’고 했지, 전 위기라 여기지 않았거든요. 제 입장에선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이경규를 믿고 TV를 봐준 시청자들이 있으니까,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위기론’이 나를 돌아보는 계기는 됐어요.”

어떤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특별히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건 없어요. 개그맨이 그리 대단한 직업은 아니잖아요. 다만 방송가에서 ‘끝까지 치열하게 일하다 간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도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늘 PD, 작가와 싸우면서 말이죠.”(웃음)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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