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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 독해진 안철수 딴살림 차리나 

비대위 참여 거절하고 권토중래 노리며 정중동 행보… 야당발(發) 정계개편 가시화되면 독자노선 걸을 듯 

친노계의 당 장악이 가시화되면서 야당발 정계개편설이 그치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직을 물러난 이후 3개월째 침묵 모드다. 하지만 만나자는 의원들이 있으면 계파를 가리지 않고 회동해 조언을 듣는 등 정중동의 행보를 보인다. ‘안철수’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안 의원의 일정에 몇 차례 동행하면서 그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안철수 의원은 10월 1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 비대위 참여를 재차 거절했다. 그의 한 측근은 “안 의원이 당내에 중도파 세력확장이 필요하다거나 분당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 야당발 정계개편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10월 9일은 안철수(52)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서울 노원구민의 날이었다. 오전 11시30분, ‘노원 탈축제’ 개막식에 안철수 의원이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행사장에 나타났다. 경기도 양주에서 분리돼 서울시에 편입된 노원구는 전통 가면극인 양주별산대놀이를 계승하는 탈축제를 지난해부터 공식 행사로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객석의 맨 앞줄에 앉은 안 의원 바로 옆자리에는 이노근 의원(새누리당)과 우원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 노원을 지역구로 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사회자가 김성환 구청장 등 내빈을 소개하면서 “안철수 국회의원님 참석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박수 소리는 멀리는 2년 전 서울 구세군센터에서 단행한 대선 출마선언 현장에서부터 가까이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유세현장 등을 두루 동행하며 기자가 목격했던 지지자들의 환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 지난 2년 동안 블루칩으로 상종가를 치다 거품이 빠져 시세 하락한 안 의원의 최근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안 의원이 축사할 차례가 되자 입을 열었다. “오늘 탈을 쓰는 분들은 어쩌면 이 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역지사지, 어쩌면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분열된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는 준비한 축사를 또박또박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안 의원은 이날 개막식 행사에 30분쯤 앉아 있다가 의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2시에 예정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지역 주민들과 서로 탈바가지를 쓴 채 면전에서는 못했던 얘기도 나누고, 역지사지로 서로를 이해하며 지역구민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운 듯했다. 안 의원이 이동하자 그의 지지자들과 젊은 사람들 몇몇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면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안 의원이 즉석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이런 때면 나타나는 예의 ‘명랑소년 안철수’의 미소는 여전했다. ‘청춘콘서트’의 스타로서 그의 상품성도 아직 녹슬지 않아 보였다.

“안철수도 흰 머리가 났네.” 행사장 옆에 서있던 진행 요원이 지나가는 말처럼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안 의원의 옆머리와 정수리 쪽에 흰 머리가 많았다. 정치입문 이후 지난 2년은 그에게 쉽지 않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대선주자였고, 제1야당의 대표까지 지냈지만 그는 지금 백의종군하는 신세다. 그의 정치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진폭이 심했고, 그와 비례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권력구도도 심하게 요동쳤다.

안철수 떠난 지도부 범친노계가 장악


당 대표 사퇴 이후 “안철수가 달라졌다. 독해졌다”는 말이 나온다. 그의 백의종군은 2012년 대선후보 사퇴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중도성향이었던 그가 김한길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직을 사퇴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안 두 공동대표의 흔적을 지우고 하루가 다르게 다수파인 친노(친 노무현)계 색깔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당 대표격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동교동계 출신으로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문희상 의원이 추대됐고, 당 개혁을 주도할 정치혁신실천위원장에는 친노계와 가까운 원혜영 의원이 임명됐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를 맡을 새 원내대표도 친 노계와 가까운 우윤근 의원이 선출됐다.

안 의원의 최대 경쟁자이자 친노계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은 일찌감치 비대위원으로 참여해 계파의 몫을 챙기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범친노계인 정세균 의원, 호남파와 김근태계를 대표하는 박지원 의원과 인재근 의원이 비대위원으로 참여해 나름 세력균형을 꾀하고 있지만 중도파의 한 축인 안철수 의원이 불참하면서 당의 무게중심이 친노계로 급속히 쏠리는 형국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와 반대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안 의원의 마음속의 앙금은 아직 가라앉지 않는 눈치다. 비대위원 참여를 단호히 거절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문희상 위원장은 그동안 안 의원에게 비대위원으로 참여해달라고 여러 차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이 공동대표를 지낼 때 비서 실장을 지낸 문병호 의원에게 당직을 맡기는 등 안철수계를 ‘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의원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문병호 의원이 전략홍보본부장으로 임명된 바로 그날 안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를 통해 “저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밑으로부터 차근차근 나아가려 한다”며 비대위 불참을 선언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았던 그는 달라진 면모도 보였다. “제게 비대위 참여를 권유하는 분들께 한 말씀 드리자면 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의 통합도, 당 대표직도 마다치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그는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자신을 대표 자리에 올려놓고 흔들어댄 사람들과는 마주하기 싫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10월 15일에는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해 비상대책위원회와 조직 강화특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껄끄러운 계파 수장들과 부딪치기 싫다?

안 의원은 현재 당내 각 계파 수장으로 구성된 문희상 비대위 체제가 제대로 된 당 혁신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듯하다. 그 때문인지 안 의원은 자신의 측근이었던 금태섭 변호사의 비대위원 참여도 반대했다. 당 지도부가 안 의원과 가까운 송호창의원을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배정하자 “조강 특위 위원 선정에 한 번도 (당이) 저나 송호창 의원에게 물어 본 적이 없다”며 송 의원도 사퇴시켰다. 안 의원의 비대위 불참은 합당 당시 약속했던 5대 5지분의 포기로 읽혀졌다.

그는 ‘당 비대위원으로 왜 참여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그 때문에 구성된 비대위에 참여하는 것은 당원과 지지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비대위 출범의 원인제공자가 다시 지도부에 참여하는 것은 책임정치에 맞지 않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치 9단으로 불렸던 DJ의 명언처럼 ‘정치는 생물’이기도 하다.

당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물러났더라도 러브콜이 오면 못이기는 체 다시 들어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도모하는 게 또 한 정치다. “그래도 안 의원이 참여해서 야당을 바꾸는데 기여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다시 말을 건네자 “네, 잘 알겠습니다” 하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는 왜 화가 났을까? 새정치민주연합 주변에서는 현재 계파 수장들의 연합체 성격인 비대위에 안 의원이 참여를 거부하는 데는 그가 말하는 ‘책임정치’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안 의원이 껄끄러운 계파 수장들과 부딪치기 싫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안 의원은 정치 입문한 이후 동료 의원들이나 당직자들과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속된 말로 ‘혼자 논다’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계파 수장이나 중진급 의원이 되면 대부분 스킨십에 능하다. 속으로는 앙숙이면서도 만나면 먼저 손을 내민다. 다투었다가도 화해하고, 갈라섰다가도 협력한다. 그렇게 입장과 노선을 달리하는 이들과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서로를 파악하고 공존의 방법을 터득해간다. 비대위원장을 겸임해 명실상부한 ‘원톱’이었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핏 대만 세우다 제풀에 넘어졌다”는 말을 듣는 것도 스킨십과 소통 능력의 부족 탓이라는 게 야당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안 의원 역시 정치판에서 제대로 단련되지 않은 ‘온실 속의 화초’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 의원에 대해 “진흙탕 속에 제 발로 들어와 놓고도 아직까지 흙탕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새 정치만 외치고 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안 의원이 정치권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환골탈태 수준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 몇몇 당직자는 기자에게 “안 의원이 남의 말을 경청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독단적인 경향이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안 의원 자신은 사람들에게 민주적 소통을 강조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독단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는 것이다. “안 의원이 두 차례나 자신의 제갈량으로 영입했던 윤여준 전 장관조차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통합한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을 정도면 말 다했지 않느냐!’는 게 이들의 지적이었다.

안 의원 특유의 ‘철수정치’를 문제삼는 이도 많다.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늘 중도에 ‘철수(撤收)’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는 지적이다. 안 의원은 2011년에는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고, 2012년에는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며 대통령후보를 사퇴했다. 독자노선을 걷기 위해 새정치연합이라는 신당 창당을 추진하다 돌연 제1야당인 민주당의 그늘로 들어왔다. 안 의원 지지자들 주변에서는 “안 의원이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호랑이(민주당)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느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절감”


안철수 의원이 국감장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모범적인 국감의원이긴 했지만 국감스타가 되기에는 2%가 부족했다.

공동대표를 사퇴한 뒤 국회에서 만난 김한길 의원과 안철수 의원. 두 사람은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하고 있다.
그럼 안철수 의원 자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9월 24일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난 2년을 돌아보며’라는 반성문 성격의 글을 올렸다(실제 안 의원과 안 의원의 보좌진은 최근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하면서 안 의원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로 답변을 대신해달라고 했다).

안 의원은 자신의 정치생활 2년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현실 정치 속에서 실제로 경험해보니 부족했던 점이 많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안 의원은 선거패배와 관련해 당 대표로서 자신의 잘못도 인정했다. 안 의원은 “두 선거의 공천 작업을 하면서 개혁적인 공천과 선거 승리 가능성의 두 가지를 함께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신인은 승리 가능성이 낮고 중진은 개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점이 고민이었다”라며 공천파동으로 이어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7·30 재·보선의 경우는 선거 이후 본격적인 정당개혁을 시작할 생각으로, 선거의 승리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한다”고도 했다.

안 의원은 자신이 부족했던 점도 솔직히 밝혔다. “(공동대표가 된 뒤)국면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면서 인정받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는데, 단기간에 안정을 이루려고 했던 것은 과욕이었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고도 토로했다.

자신이 주창했던 새 정치가 무산된 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때 새롭게 당헌·당규를 만들면서 ‘당무혁신실’을 신설해 정당개혁을 하고자 했다”며 “당무혁신실을 통해 낡은 정치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새 정치를 구체화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큰 선거를 치른 이후로 미뤄두었던 당무혁신실을 통한 정당개혁을, 대표를 그만두게 되면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난 2년간 정치에서의 값진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이제부터 다시 뚜벅뚜벅 한걸음씩 내딛겠다. 삶의 현장에서 국민을 만나고 국민께 듣고 함께 길을 찾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나씩 구체화해나가고,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정치를 실현하겠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안 의원이 정치 입문 2년을 계기로 몇 가지 과거와는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보좌진을 새로 영입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새로 단장했다.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도 강화하고 개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스킨십 행보’도 달라진 점이다. 최근 안 의원은 자신을 만나자는 의원이 있으면 과거와 달리 계파를 가리지 않고 만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한다. 안 의원 보좌진들도 기자에게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안철수가 아니라 일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 안 의원은 9월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의원회관에 나와 정책 보좌관으로부터 국정감사 준비 상황을 보고받으며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감장의 안철수, 2% 부족했다


안철수 의원의 지난 2년은 그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쓴 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달라진 안철수’를 만드는 자기 혁신에 실패한다면 ‘안철수 현상’은 소멸될 수 밖에 없다.
국정감사 현장은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라는 안 의원의 다짐이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0월 7일, 국회 본관 2층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첫 국정감사가 있는 날이었다. 오전 내내 다른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인내심 있게 기다렸던 안 의원이 오후 발언시간이 되자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는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앞에 앉혀놓고 “줄기세포 치료제는 유전자변형 발생 가능성, 세포의 일시 투입에 따른 부작용 가능성, 종양 유발 가능성 등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식약처가 이런 문제에 소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의사 출신인 안 의원이 자신의 장점인 의료와 의약품 분야에서 밀도 높은 질문을 쏟아내자 배석한 식약처 간부들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안 의원의 국감 준비는 성실했고 구체적이었다. 그는 10월 13일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로 20조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원격의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튿날에는 정부가 실시하는 4대 중증질환(암·뇌혈관·심장·희귀 난치성 질환) 보장성 강화정책의 혜택을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많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동료 의원의 발언을 경청하면서 수시로 자료를 검토하고 메모하며 발언을 준비하는 꼼꼼함도 보였다.

하지만 안 의원은 모범 국감의원의 모습은 보여줬지만 ‘국감스타’가 되기에는 2%가 부족했다. 언론과 국민이 원하는 것을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이 아쉬웠다. 10월 7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어린이용 치약 속에 파라벤이라는 유해성분이 있다’라며 시중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치약을 국감장에 들고 나와 방송 카메라를 불러 모았다. 국감장에 죽치고 앉아있던 기자들과 방송카메라가 김 의원의 ‘퍼포먼스’에 우르르 몰려간 것은 물론이다.

김재원 의원의 폭로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밤잠을 설쳐가며 자료를 챙기고 질의내용을 준비한 안 의원으로서는 힘이 빠질 노릇이었다. 기자의 눈에 초선 국회의원 안철수는 노력하고 변화하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정치권의 유망주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년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큰 폭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본다. 안 의원은 그 변화를 몰고올 핵심변수 중 하나다. 안 의원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정치권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문재인 의원의 전례를 밟는 것이다. 문재인 의원은 2012년 대선패배에 따른 책임론에 휩싸이자 한동안 외부노출을 자제한 채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시국의 중요 사안에 대해서만 SNS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문 의원은 올해 세월호 정국에서 목소리를 내며 차기 주자 중 한 명으로 입지를 회복했고, 지금은 당권 장악의 7부능선을 넘었다. 안 의원도 당분간 이런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동안 잠행을 이어가며 ‘달라진 안철수’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문 의원이 친노계의 수장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듯이 안 의원도 이미지 쇄신을 거쳐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중도파 의원들의 ‘간판’으로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중도진영과 비노(비 노무현) 성향의 전·현직 의원들이 9월 말 결성한 ‘구당구국(救黨救國) 모임’에는 정대철·이부영·정동영·천정배 등 원로급과 재선·3선의 중진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인사들과 또 다른 중도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이 안 의원을 중도파 의원들의 간판으로 추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렇게 되면 안 의원으로서는 성공적인 권토중래다.

두 번째 길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내 다수파인 친노계가 당을 장악해 야당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안의원이 독자노선을 결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최근 여의도 정가에 무성한 분당 시나리오에 합류하는 방법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정계개편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중앙일보> 칼럼에서 “안철수의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새 정치에 대한 열망마저 사라져버렸다고 볼 수는 없다”며 야당발 정계개편을 전망했다. ‘구당구국모임’의 좌장인 정대철 상임고문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변화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외부에서 깃발을 들 수도 있다”라며 ‘신당 추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최근 안 의원의 침묵이 길어지고 물밑에서 다양한 계층의 인사와 접촉하자 친노계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딴살림 차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늘어났다.

‘딴살림’ 차릴 생각한다?

안 의원의 진짜 속내는 뭘까? 안 의원은 “최근 (신당 추진을 시사한) 정대철 고문을 만난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만나지 못했다”라고 했다. 기자가 “중도정당 얘기가 많던데 참여하는가?”라고 다시 묻자 대답하지 않고 그냥 “허허” 웃기만 했다.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계파를 초월해 다양한 의원을 접촉하면서 당내에 중도파의 세력확장이 필요하다거나 분당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안 대표가 고민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그에 대해서도 적절한 시점에 발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독자노선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이런 기류를 감안하면 10월 15일, 그가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집권할 수 없다”며 비대위원 참여를 거듭 거부했다. “대한민국의 경영을 맡겠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혁신의 시작이다. 저는 정의로운 사회와 통합된 국가,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우리사회의 절박한 과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안 의원 혼자서라도 ‘혁신’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다름없다.

성장하는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의 지난 2년은 그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쓴 약이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앞으로도 자기 혁신에 실패한다면 안철수 개인의 몰락뿐만 아니라 ‘안철수 현상’까지 완전히 소멸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되건 그것 역시 ‘안철수의 생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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