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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 초록색 우산 펼쳐든 지 4년 ‘나누세요, 세상이 바뀝니다’ 

신문사 사장 출신으로 2010년부터 재단 회장 맡아… “아낌없는 후원, 열정적인 봉사자 보면 점점 젊어지죠” 

사진 전민규 기자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이 서울 무교동에 있는 재단 사무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해진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현되긴 쉽지 않은 이 명제를 위해 일하는 곳이 있다. 바로 ‘초록 우산 어린이재단’이다. 1948년 CCF(Christian Children’s Fund·기독교 아동복리회)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조직은 2010년 4월 ‘초록 우산 어린이재단’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달고서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 1월 사회공헌 협약식에 참가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 추신수(가운데) 선수와 부인 하원미 씨. / 사진·중앙포토
‘초록 우산’이란 이름은 어린이들에게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주고, 우산을 펴듯 꿈을 펼치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현재 존재하는 여러 복지재단 가운데서도 대한민국 어린이의 복지를 위해 일해온 가장 오래된 단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제훈(74) 회장을 만나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마침 이날은 가을비가 꽤 많이 내렸다. 이 회장은 “사무실에 진짜 초록색 우산이 많이 있으니 한 개 가져가시라”며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이 회장은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사장을 지낸 후 2010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기자 시절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들춰내면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그런데 어린이재단에서 일을 해 보니 진짜로 세상을 바꿔가는 힘은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나눔의 힘’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신문기자와 신문사 사장을 거쳐 재단을 맡았다. 독특한 이력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는 2001년부터 인연이 있었다.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던 때였는데, 재단 이사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맡았다. 9년간 이사를 했고, 그중 마지막 2년은 대표이사를 맡았다. 대표이사를 마친 후에는 중앙일보 고문으로 일했는데, 2010년 6월 어린이재단의 김석산 전 회장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공석이 된 회장 자리를 대신 맡게 됐다.”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기 전부터 자선재단 쪽에 관심이 많았나?

“원래 자원봉사 일을 적극적으로 했다. 자원봉사포럼 회장, 경기도 자원봉사회장, 자원봉사회 공동대표, 자원봉사협의회 상임대표 등을 맡았다. 그러다가 2010년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으면서 재단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자원봉사 단체 일을 그만두게 된 것뿐이다. 기자 시절부터 자원봉사 일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봉사와 나눔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고 갈등을 극복하려면 나눔과 봉사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는 소신과 사명감이 생겼기에 재단 회장을 맡게 됐다. 단순히 명예직이라거나 소일거리라고 생각한 게 아니다.”


서울 무교동에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건물 로비에는 주요 후원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새긴 ‘명예의 전당’이 설치돼 있다. / 사진·중앙포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나눔 중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나눔을 실천하는 곳 아닌가?

“회장을 맡고 나서 직접 정한 캐치프레이즈가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옛날에는 모두가 가난한 절대 빈곤 상태였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가 성장했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지금도 어린이들에게 경제적인 사각지대가 있다. 기초수급자가 100만 명 정도 된다. 그런 아이들을 계속 돕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은 아동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옛날엔 가난했어도 여러 형제가 어울려서 가족과 함께 커갔지만, 지금은 가족해체 현상이 심각하다. 부모가 사회성, 남에 대한 배려, 이런 걸 가르치는 게 옛날보다 부족하다. 아이들이 야단 맞는 것도 못 견뎌 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의지력이 떨어진다. 이러다 보니까 아동 범죄도 늘어나고, 심지어 아동들의 자살까지 늘어난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군대에 가니까 군 생활을 못 견디게 되고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아이들을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돕는 게 중요하다. 그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요즘은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황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부모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쉽지 않은 시대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인 이홍렬 씨가 2012년 6월, 30일 동안 부산-서울 간 610㎞를 걷는 도보횡단을 마친 후 헹가래를 받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이 키우기 어렵다고 갓난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가는 일도 생긴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가 2001년 네 명에서 시작했다가 지난해에는 200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늘어났다. 올해는 벌써 600여 명까지 늘었다고 하더라. 사랑으로 키울 생각하지 않고 버리는 건데, 이 아이들이 그대로 자란다면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우리 미래가 어찌 될 지 걱정이 앞선다.

또 요즘 사회적인 문제 중 하나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왕따 문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완전한 한국 국민이 되는 거다. 요즘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인 IS(이슬람국가)가 국제적으로 문제다. 거기 구성원 대부분 이 유럽지역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라고 한다. IS가 일부러 유럽 서방세계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찬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모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섬뜩한 생각이 들지 않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란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초록 우산이란 BI(브랜드아이덴티티)는 2010년부터 썼다. 어린이재단이라고만 하니까 다른 비슷한 이름이 많아서 혼동을 많이 하더라. 그래서 차별화하자는 목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초록이란 색깔 자체가 아이들의 생명을 뜻한다.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것 아닌가? 아이들 보호해준다는 의미도 된다. 또 우산을 펼친다는 건 꿈을 펼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꿈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어린이재단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채택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하는 캠페인 이름도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 이를테면 ‘어른이날 캠페인’도 참신한 발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서 낸 거다. ‘어른이 날’이란 캠페인 이름은, 후원자 개발을 위한 캠페인을 해야 되겠는데, 어른과 어린이를 합친 말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어린이를 제대로 돕고 보살 피고 그래야 어른이지, 아이들을 외면하면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지금 우리 광고의 콘셉트로 쓰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다른 자선재단과 달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66년의 역사를 가진 어린이재단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돕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해외보다도 국 내 어린이들을 많이 돕는다. 유니세프, 월드비전 같은 또 다른 어린이재단도 있지만, 그쪽은 국내보다 해외 어린이들을 돕는 게 훨씬 많다. 우리는 국내 어린이를 돕는 데 전체 예산의 85% 이상을 쓴다. ‘국내’라고 하면 북한 어린이들까지 포함한다. 우리 후원자 중에서도 해외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분이 많이 늘어나서 앞으로는 해외 어린이를 돕는 부분도 늘어 날 것 같다. 우리가 옛날에 외국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지금은 가난한 나라를 도와줄 차례라는 인식이 많더라. 하지만 해외 어린이를 돕는 비중이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국내 어린이를 돕는 비중을 60~70%은 유지해나갈 계획이다.”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아무래도 후원자를 모으는 일 아닌가?

“우리 재단이 국내 사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과거에는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까 스스로 자원 확보를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떨어져서 다른 곳에 비해 모금활동에 조금은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건 2008년 즈음부터다. 제가 회장을 맡았던 2010년엔 후원자가 12만 명을 조금 넘었다. 회장을 맡자마자 가장 중요한 일이 후원자를 확보하고 기반을 넓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국 후원회 네트워크를 재정비하고, 홍보대사도 대거 영입했다. 지금은 전국에 후원자가 27만 명가량 된다. 그것도 아직 부족하다. 돕고자 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도우려면 후원자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후원자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도와달라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 어린이재단의 강점이 투명하고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거다. 자화자찬 같지만, 예전에 정부 지원금을 받을 때 매년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그때 감사를 나온 분들이 내부 자료를 보고 ‘정말 깨끗하게 일을 잘 한다’면서 나중에는 그분들이 직접 후원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현재는 일부 정부 위탁사업을 하는 것 말고는 정부지원금을 전혀 받지 않는다. 후원금이 들어와도 재단 직원 손을 거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아이들, 혹은 기관 계좌로 들어가니까 투명함은 믿으셔도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꾸준히 감동적인 스토리를 알리는 것이다. 우리 재단의 지원으로 꿈을 찾은 아이들의 스토리를 알려서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팝페라 가수 최성봉 씨의 사연이 대표적인데, 이 사람은 그야말로 밑바닥 생활을 거쳤지만 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재능을 발견해 대전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만들어서 생활환경 때문에 좌절을 겪었던 초등학생들을 모아 음악적인 재능을 키워주고 있다. 목포에 있는 오케스트라는 현재 단원이 230명 정도 된다. 11월 4일에 어린이재단 후원자를 위한 음악회를 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오케스트라 아이들이 직접 공연을 한다.”

요즘엔 사회가 팍팍해지다 보니 기부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일 하면서 가장 힘들 때다. ‘복지재단이라고 이름 붙었지만 쟤들 쇼 하는 것 아냐’ 이런 관점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 가치라는 게 그렇게 냉소적으로 멀리서 바라볼 때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을 돕고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생기는 거다. 나눔이나 봉사가 남을 위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회장을 맡고 나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여기에 와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도 아낌 없이 후원금을 내놓는 분이 많다. ‘철가방 기부천사’ 고 (故) 김우수 씨가 대표적인 예다. 월급 70만 원으로도 아낌 없이 기부를 하다가 배달 도중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분이다.

그리고 최불암 후원회장님이나 홍보대사 이홍렬 씨처럼 바쁜와중에도 재단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늘 감동을 준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그야말로 휴일도, 퇴근시간도 없이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내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젊게 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그게 다 이렇게 감동을 받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인터뷰를 정리할 즈음 이 회장 책상 위에 놓인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정부는 아동학대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였다. 어떤 내용인지 물었더니 이 회장은 앞서 인터뷰 때보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국가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정부가 아동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이런 것이다. 아동학대특례법이 9월 29일부터 발효됐다. 아동학대를 보면 의무신고 해야 하고, 처벌도 강화된다. 신고가 종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거다. 그런데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전국에 51개다. 그중 10개를 우리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직원이 고작 10명 정도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예산 지원이 필수다. 당초 복지예산을 500억 원 정도 신청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내려온 예산이 169억 원 밖에 안 된다. 새로운 법이 발효됐지만 법 시행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무상급식 같은 포퓰리즘에는 신경 쓰면서 진짜 필요한 복지예산은 엉뚱한 곳에 쓰는 것 아닌가? 아동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서울 청계천에 설치한 조형물 앞에 어린이들이 앉아 있다. / 사진·중앙포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어떤 곳? - ‘소파 방정환’의 마음으로 빈곤층 아동에 도움의 손길


사진·중앙포토
올해로 설립 66주년을 맡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크게 ▷국내아동 지원 ▷해외아동 지원 ▷캠페인 부문의 사업을 진행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아동복지 NGO(민간기구)다. 1948년부터 1986년까지는 CCF(기독교아동복리회)라는 이름으로 전쟁고아아동구호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사회복지사업까지 확장했다가 2010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라는 이름을 새로 달면서 다시 아동복지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014년 기준으로 국내 아동 5만8천여 명, 해외 23개국의 아동 2만7천여 명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 밖에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에 대한 각종 교육사업과 문화예술사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을 돕는 ‘베이비 리본 캠페인’ 등의 캠페인 사업도 펴고 있다. 이는 버려진 아기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자는 리본(re-born)과 후원자와 아기를 연결한다는 리본(ribbon)의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담은 캠페인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끌어가는 힘은 직원 및 자원봉사자, 그리고 후원회장 및 홍보대사들의 열정과 헌신이다. 이를 바탕으로 후원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재단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후원회장의 ‘역사’도 남다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최불암 후원회장은 1985년 5월 재단의 전국후원회장으로 선출된 후 현재까지 30년 동안 후원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의 복지재단을 통틀어 최장기간 후원회장 기록이다. 최 회장이 후원회를 맡은 사연도 눈길을 끈다. 1980년대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회장 역할을 맡았던 최불암 씨는 극중에서 ‘금동이’라는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역할이었다. 이 내용을 보고 감동을 받은 시청자들이 당시 MBC 방송국으로 ‘김회장’ 최불암을 응원하는 선물과 편지를 보냈고, 이게 매주 방송국 사무실 책상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고 한다. 최 회장은 이런 시청자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 및 홍보대사를 맡게 됐다는 것이다.

1998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 씨도 열정적인 활동으로 큰 도움을 준다. 그는 2012년 직접 국토종단을 하면서 기부금 3억여 원을 모아 아프리카 남수단에 자전거 2600대를 기부했다. 당시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하고 국토종단에 나섰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한국의 폴 포츠’로 불리는 팝페라 가수 최성봉 씨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노래의 꿈을 잃지 않고 키워갔다. 그 뒤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꾸준한 후원이 있었다. 그는 2012년 오디션 프로그램 <코리아갓탤런트>에서 뛰어난 성악 실력을 발휘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꿈을 찾은 어린이들의 훈훈한 사연도 많다. 2012년 재단의 후원을 받으면서 공부한 황다솔 양은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서울대에 합격해 많은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어린이들의 예술적인 재능을 꽃 피워주기 위한 문화예술지원사업도 눈에 띈다. 전국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운영하는 드림오케스트라 10개, 드림합창단 3개가 있고, 이곳에서 8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음악을 직접 배우고 있다.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교육을 빈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정서 발달 및 사회성 향상을 돕겠다는 목적이다. 이들은 매년 열리는 나눔음악회에서 자신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후원자들 앞에서 유감 없이 펼칠 기회도 얻는다.

2013년 기준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빈곤가정 지원을 받은 어린이는 5만8294명에 이른다. 이 밖에 아동학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도록 하고, 재활 및 심리치료까지 지원한다. 또한 도서관 운영 등 보육 및 교육사업, 연구조사 사업까지 펼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대한민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모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재단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21세기 소파 방정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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