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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 ‘셔틀콕 아이돌’ 이용대 - “금메달 따고도 나태하지 않다는 말 들을 때 완전 기쁘죠!” 

연초에 ‘도핑 해프닝’ 겪으며 좌절했지만 단체전 금메달로 ‘복식 세계랭킹 1위’ 클래스 증명… ‘꽃미남’ 얼굴이라 고생 안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진짜 노력파’ 

사진 지미연 기자

이용대가 태릉선수촌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배드민턴 대표선수 이용대(26)를 베이징 올림픽의 ‘윙크 보이’로 기억한다. 물론 2008년 여름에 그가 베이징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내던 순간 중계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윙크는 순식간에 이용대를 ‘국민 남동생’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인상적이긴 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복식 경기에 나선 이용대-유연성 조. / 사진·뉴시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이용대는 만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깜짝 스타가 됐지만, 이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그는 깜짝 금메달을 딴 후에 오히려 실력이 더 향상된 특이한 선수다. 이용대는 현재 주종목이 남자 복식인데, 현재 파트너인 유연성을 비롯해 지금까지 총 세 명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때마다 모두 복식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겼다. 지금도 ‘이 용대-유연성’ 조는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연성과 호흡을 맞춘 이후 슈퍼시리즈에서 따낸 복식 금메달만 벌써 여섯 개다.

이용대는 돌고래처럼 솟구쳐서 강력한 스매시를 내리꽂는 화려한 스타일의 배드민턴 선수가 아니다. 별다른 특기도 없어 보이는데, 희한하게 복식 세계랭킹 1위 자리는 놓치지 않는다. 빠른 공수전환, 영리한 경기 운영, 그리고 자신의 파트너를 잘 파악해서 호흡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머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용대가 베이징올림픽 이후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가 2012년 런던에서 기대했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이용대는 런던에서 남자복식 동메달을 땄다) 하지만 중국이 독주하는 배드민턴 판도 속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 노릇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게 바로 이용대다. 이용대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내는 데 일조했다.

‘꽃미남’ 외모 뒤엔 단단한 실력


잘생긴 외모 탓인지 사람들은 이용대가 별 어려움 없이 늘 웃으면서 지금까지 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특히 올해 유난히 많은 사연을 뛰어넘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거둬들였다. 인천아시안게임 직후인 10월 초에 태릉선수촌에서 다시 훈련을 시작한 이용대를 만났다. 그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태릉에서 훈련을 하나?

“10월 14일부터 19일까지 덴마크 오덴스에서 배드민턴슈퍼시리즈가 열린다. 거기에 대비해서 훈련하는 거다. 9월 말에 인천아시안게임 끝나고 휴가는 딱 나흘이었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쉬는 기간 없이 이렇게 빡빡하게 훈련을 하나?

“우리처럼 대회가 많은 종목은 드물다. 배드민턴이 유독 대회가 많다. 국제대회도 슈퍼시리즈, 오픈대회 등등 종류가 많고, 세계선수권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만 빼고 매년 열린다. 또 국내 대회도 엄청 많다.”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이 이용대 선수에겐 첫 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 들었다.

“인천 대회 이전에 두 번이나 아시안게임에 나갔지만 금메달을 못 땄다. 배드민턴 강국이 중국, 인도네시 아니까 배드민턴은 사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나 별 차이가 없이 금메달 따기가 다 어렵다. 특히 이번에는 결승에서 중국을 이겼다. 한국 배드민턴이 28년 만에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서 이긴 거였다.”

마지막 단식에서 이현일 선수가 이기면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에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그 순간 기억하나?

“단체전 우승이라 너무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뛰어나갔다. 선수들 모두가 단체전 금메달을 원했고, 다 함께 뭉쳐서 이룬 거니까. 그런데 그때 스케줄상 그 뒤로 개인전이 있어서 마음 놓고 우승자축도 못 했다. 개인전이 남았다는 긴장감 때문에.”

“금메달 순간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

인천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결승은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명승부였다. 한국은 5시간 15분의 혈투 끝에 중국을 3대 2로 꺾었다. 1단식에서 손완호가 중국의 세계랭킹 2위이자 올해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 천룽을 꺾는 이변을 일으켰고, 2복식에 나선 이용대-유연성 조가 여유 있는 승리를 따냈다.

그러나 3단식에서 이동근이 중국의 최고 스타 린단에게 졌고, 4복식의 김사랑-김기정이 역전패해 전체 스코어가 2-2가 됐다. 마지막 단식 주자는 이현일. 그는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이번 대회에 다시 나선 대표팀의 맏형이다. 이현일이 중국의 궈환(랭킹 54위)을 꺾으면서 한국의 우승이 확정됐다.


이용대는 “베이징올림픽 이후로 금메달 수준을 유지하려고 진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1단식에서 손완호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나?

“경기 시작하고 나서 흐름을 보면서는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1단식에서 한국이 이겼기 때문에 2복식에는 여유 있게 들어간 것 아니었나?

“아니다. 애초에 작전이 우리(이용대-유연성 복식조) 랑 이현일 선배는 중국을 이기는 걸로 보고, 하나만 더 이기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거였다. 손완호가 진다고 생각한 경기를 잡았는데 우리가 못 이기면 어떻게 하나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더 긴장됐다.”

결국 2대 2가 됐지만 마지막에 이현일 선수가 중국선수를 잡을 거라고 믿었나?

“그렇다. 배드민턴 단체전 오더(출전자 명단 및 출전 순서)는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짠다. 랭킹이 높은 선 수가 앞 순서에 나와야 한다. 현일이 형 같은 경우는 2012년에 대표팀을 은퇴했기 때문에 그동안 국제대회에 나가질 않아서 세계랭킹이 뚝 떨어져 있었다. 물론 진짜 실력으로는 그 랭킹이 아닌 거고. 그래서 현일이 형이 다른 나라 3단식 선수는 무조건 잡는다고 봤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도 그렇고, 선수들의 실력도 그렇고 이번 단체전 멤버가 역대 최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명승부를 방송국이 생중계하지 않아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선수들도 많이 섭섭했을 텐데.

“아시안게임이란 게 워낙 종목도 많고, 그 시간에도 다른 종목 결승전이 많이 열리고 있었고…. 섭섭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 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용대는 올 한 해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했다. 금메달로 최고의 기분을 맛보았지만 9개월 전만 해도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다. 1월에는 난데 없이 ‘도핑 문제’에 휘말려서 1년간 선수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당한 것이다. 내막은 이랬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10년부터 선수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소재지를 보고하도록 하고, 불시에 해당 소재지에 방문해 도핑 테스트를 했다. 소재지 보고는 선수들 입장에선 다소 귀찮을 수 있는 업무라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이 보고업무를 대신해왔는데, 협회가 이를 소홀히 하면서 WADA에서 지난해 두 차례 불시에 테스트를 하러 한국에 방문했을 때 이용대는 마침 그가 보고한 소재지에 없었다. WADA는 이를 도핑 회피로 간주하고, 이용대에게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결국 배드민턴협회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한 결과 5월에야 징계가 무효로 처리됐다.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지 못할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천당과 지옥 오간 2014년

이번 아시안게임에 못 나갈 뻔했죠? 처음 징계가 떨어졌을 때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황당하지 않았나?

“징계가 발표된 것이 1월이지만, 사실 나는 지난해 12월에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많이 힘들었다.”

배드민턴협회의 행정적인 실수가 결정적이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가 일일이 소재지를 입력해야 하는 WADA의 도핑 방식도 너무 번거롭고 복잡하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또 그런 일 생기면 안 되니까 지금은 소재지 입력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사실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선수들도 ‘협회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 나한테 그 사건이 안 터졌더라면 분명 다른 종목에서 일이 터져서 선수들이 피해를 봤을지 모른다. 근데 하필 그게 나였던 거고. 그래도 그 덕분에 대표선수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재수 없게 왜 하필 나야?’ 하고 원망하지 않았나?

“좀…. 그랬다. 아무래도.”

그래서 올해 5월까진 혼자서 훈련한 건가?

“언제 징계가 풀릴지 기약이 없으니 혼자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자격이 정지되는 징계라서 소속팀(삼성전기 배드민턴팀)이나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것도 허락이 안 됐다. 그래서 집 가까이에 있는 체육관을 빌려 운동했다. 항소를 준비하면서 변호사들과 상의하느라 한 달 동안은 아예 운동도 못했다. 덕분에 그 기간 동안 이전에 부상당했던 팔꿈치 재활치료를 했다.”

힘들게 나간 게 인천아시안게임인데, 대회 중에 또 다른 해프닝이 있지 않았나?

“아, 에어컨 바람 사건 말인가?”(웃음)

인천아시안게임 동안 일본과 중국은 대회가 열린 인천 계양체육관의 에어컨 바람을 문제삼았다. 에어컨 바람을 한국에 유리하도록 조작했다는 주장이었다.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분 것은 맞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도 그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아예 에어컨을 끄고 하자고 주장했지만 9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운영진 측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며 억울해했다. 배드민턴대표팀의 이득춘 감독은 “중국이나 일본이 지고 나서 에어컨 바람을 문제삼은 건 선수로서 그런 말을 꺼냈다는 자체가 치사하고 창피한 이야기”라고 했다.

계양체육관 에어컨 바람이 정말 이상하긴 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이렇게 강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데서 경기한 게 처음이었다. 간혹 싱가포르나 이런 데서 열리는 작은 규모의 오픈대회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세게 부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은 메이저대회 아닌가. 선수들이 4년을 기다리는 큰 대회다. 아시안게임에서 이렇게 센 바람이 분 건 나도 처음 겪어봤다.”

한국에 유리하게 바람을 조작하는 게 가능했다고 보나?

“말도 안 된다.(웃음) 바람 때문에 나도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바람이 세게 부는 데서는 경기를 잘 풀어가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그런 부분도 받아들이고 경기를 하는 게 맞다. 일본이랑 단체전 8강을 했을 때는 나도 에어컨 바람에 적응을 못해서 1세트를 내줬다. 2세트 때는 코트 자리를 바꿔서 하니까 일본이 고전했고. 3세트에는 바람을 뚫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적응을 하니까 오히려 쉽게 풀렸다.”

이득춘 감독은 남자복식 결승전에서 이용대-유연성이 바람 때문에 손해를 봐서 졌다고 하더라.

“상대팀 인도네시아가 체력은 약한데 네트플레이나 그 밖의 기술이 참 좋았다. 다른 대회 때 그 선수들을 만나면, 체력적으로 우리가 밀어붙였다가 마지막에 승부를 내는 방식으로 해서 이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부니까 체력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힘들더라.”

이번에 덴마크 슈퍼시리즈에서 그 선수들이랑 다시 붙으면 승리할 자신 있나?

“자신 있다. 다른 대회에서는 자신 있는데, 하필 인천에서…. 차라리 이번 아시안게임을 외국에서 했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드는 게 사 실이다. 단체전 금메달을 땄지만, 정작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복식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자신 있다. 다른 대회에서는 자신 있는데, 하필 인천에서…. 차라리 이번 아시안게임을 외국에서 했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드는 게 사 실이다. 단체전 금메달을 땄지만, 정작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복식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혼합복식 금)과 아시안 게임(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금)에서 금메달을 땄다. 남은 목표가 있다면?

“아직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이 없다. 내년 대회에선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윙크 왜 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

그동안 정재성(2006~2012년), 고성현(2012~2013 년), 유연성(2013년~현재)과 복식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모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이용대랑 하면 랭킹 1위가 되는 이유가 뭔가?

“하하. 운이 좋았다. 호흡을 맞추는 노하우도 생겼고. 내 파트너는 모두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공격력이랑 파워가 약하니까. 파트너의 공격력을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끌어올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가장 좋았던 점은 파트너들이 경기 운영이나 게임 스타일을 끌고 가는 부분을 나한테 일임해줬다는 거다. 사실 예전에 1위까지 가지 못했을 때는 내가 끌려가다시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재성 선배랑 호흡을 맞출 때 처음엔 내가 별 말을 못했다가 런던올림픽 가기 2년 전에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려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6년 선배인 정재성 선배한테 얘기를 했다. 그 선배가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나를 위해 스타일을 많이 바꿔주신 거였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감이 쑥쑥 올라가더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파트너였던 이효정 선수는 어떤 스타일이었나?

“효정 누나는 나한테 요구를 별로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내가 멋모르고 달려드느라 별로 흥분을 안 해서 잘한 것 같다.”(웃음)

아직도 베이징올림픽 때의 윙크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많지 않나?

“아, 그러니까 말이다. 이제 안 물어봐도 될 것 같다.(웃음) 벌써 6년 전 이야기인데.”

‘그때 왜 윙크를 했지?’ 하는 후회도 해봤나?

“후회는 안 한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주변에서 ‘윙크는 왜 한 거냐’고 너무들 물어봐서 좀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생기지 않았나.”

베이징 올림픽 때 겨우 스무 살이었다. 그런데 올림픽 직후의 한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변한 건 없다. 다만 자신감을 얻어서 경기를 즐기게 됐다’고 너무나 어른스럽게 말했는데, 준비된 말이었나?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국가대표로서 수많은 경기를 치러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부담을 갖고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더라.

반대로 편하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베이징 올림픽 혼합복식이었다. 그때 원래는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땄어야 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혼합복식은 훈련도 많이 안 해서 솔직히 그냥 편하게 나간 거다. 그런데 금메달은 운이 따라야 된다는 게, 그때 8강에서 이전까지 전패를 당했던 강한 상대를 만났는데 우리가 이겼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른 강팀들이 줄줄이 다 떨어졌다. 결승에서 인도네시아를 만났는데, 아마 그때 중국팀 만났으면 우리가졌을 거다. 나는 사실 병역 혜택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올림픽은 동메달까지 혜택) 준결승 때가 더 떨렸고, 준결승 전날 밤엔 아예 잠도 못 잤다. 그런데 결승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없고 좋더라. 결승 전날에는 잠도 정말 잘 잤다.”(웃음)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깜짝 스타가 돼서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고 병역 혜택도 얻었다. 그 이후로 슬럼프도 없이 꾸준히 세계 정상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해왔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던데?

“아, 이런 질문 받을 때가 정말 좋다.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로 ‘금메달 수준’을 유지하려고 진짜 열심히 했다. 사람들이 ‘금메달 땄다고 나태해질 수 있는데 너는 안 그런다’는 말을 들을 때가 정말 행복하다. 힘들게 하는 것도 오히려 재미있었고, 힘들게 훈련하는 스트레스보다도 실력이 떨어져서 받게 될 스트레스가 더 무서웠다.”

연예인들한테 연락이 온다거나 하는 주변의 유혹은 없었나?

“섭섭하게도 연예인들이 연락 안 해주더라.”(웃음)

요즘도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에서 대회가 열리면 여자팬들이 이용대에게만 몰리고, 심지어 외국 여기자들까지 이용대 선수에게 싸인을 요청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고 하더라.

“그런 건 아닌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사실 여자들은 내가 얘기할 때 고향 사투리가 나오면 ‘오빠 깬다’고들 하더라.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유명해진 건 맞지만, 딱히 다른 유혹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난 베이징올림픽 이후로 배드민턴이 더 재미있어졌다. 사실 베이징올림픽 전까지 나는 그렇게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는데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니?

“태극마크는 달았지만, 그때는 그냥 세계대회 나가서 잘하면 고작 3등 정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딴 뒤로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특히 복식에서 한계를 한 번 뛰어넘으니까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졌다. 못 이겨본 팀들을 이기기 시작하고, 남들이 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그런 것에 굉장히 재미를 느꼈다. 이걸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시선 즐긴다… 놓치지 않을 것”

‘나는 타고난 선수가 아니라 노력을 정말 많이 해야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데.

“맞다. 나는 운동에서는 타고난 게 아무것도 없다. 타고난 사람은 일단 몸을 타고난다. 파워가 좋고, 조금만 운동해도 몸에 근육이 쫙쫙 붙는다. 그런데 나는 이틀만 운동을 안 해도 근육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대표팀에서 복근운동 하면 하위권, 달리기는 중간 정도고, 순발력 테스트도 꼴찌 수준이다. 스피드도 별로다.”

그러고 보니 베이징올림픽 때 ‘이용대가 이효정보다 팔목 힘이 약하다’는 농담도 들은 거 같다.

“그거 진짜다. 사실 배드민턴 선수는 악력이 강해야 되는데, 악력 테스트를 하면 태릉선수촌 전체에서 내가 하위권이다. ‘난 타고난 게 없다’는 말을 이제 이해하시려나. 팔씨름을 하면 일반 사람들한테도 질 거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용대 너는 그나마 배드민턴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놀린다. 춤, 노래, 게임 같은 잡기도 잘하는 게 없다.”

이제 한국 나이로는 스물일곱이다. 선수생활을 접은 후의 미래까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시기 아닌가?

“사람들이 내 나이 얘기를 하면 다들 그런다. ‘벌써 스물일곱 살이야?’라고. 미래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많이 하고 있다. 일단 2016년 리우올림픽 끝나면 대표팀에서 은퇴할 생각이다. 소속팀에서는 몸 상태가 허락할 때까지, 끝까지 해보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 이후에 후배들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노하우를 물려줄 생각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있지만 아직도 배드민턴이 너무나 재미있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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