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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기획 | 유럽 4대 리그 흥망사 - EPL 뜨고, 라 리가 시들한 이유 

우수 지도자와 최고 선수가 각 리그의 황금시대 열어… 과잉투자로 몰락한 세리에A, 스포츠마케팅로 살아난 프리미어리그 

김태석 베스트일레븐 기자
“현재 축구계의 엘도라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평가가 있다. 황금빛 무대로 각광받던 리그는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유럽 축구사에 늘 존재해왔고, 늘 변화 해왔다. 그 황금빛은 시대와 자본의 흐름을 타고 지금도 유럽 전역을 오간다. 그 찬란한 빛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유럽 축구리그의 황금시대는 우수 지도자와 최고 선수가 이끌었다. 그 힘은 ‘돈’이었다. 사진은 유럽의 각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이 최고의 클럽 자리를 놓고 겨루는 챔피언스리그 개막식.
현재 프리미어리그 중견 클럽이자 역사상 단 한 번도 강등당한 경험이 없는 위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스톤 빌라는 잉글랜드 클럽축구의 산파 역할을 했다. 1885년 당시 아스톤 빌라 구단주였던 윌리엄 맥그리거는 FA(잉글랜드축구협회)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만 문호를 열었던 축구 경기의 문호를 프로 선수들에게도 개방하자, 1년 후 블랙번 로버스, 볼턴 원더러스, 프레스턴 노스 엔드,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스토크 시티와 연대해 최초의 근대적 프로축구 리그라 할 수 있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프리미어리그의 전신)를 출범시켰다.

당시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던 영국의 강대한 국력을 자양분 삼아 축구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절이다. 유럽과 남미 전역에 원시적 형태로 자리하던 클럽들은 ‘축구 종가(宗家)’에서 풋볼리그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자극받아 친선전 혹은 소규모 토너먼트 식으로 치르던 수준에서 벗어나 속한 국가를 기준으로 리그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현재 100년을 훌쩍 넘은 유럽과 남미 프로축구 리그가 뿌리내리게 된 배경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리그 간 헤게모니를 논하려면 직접적 선수 교류와 승부를 통한 우열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유럽 클럽축구 초창기에는 리그 간 교류는 거의 없었다. 서로다른 국적의 팀들이 실력을 겨루는 건 월드컵 등 국가대항전 뿐이었고, 심지어 외국인 선수 영입에 관해 찬반으로 의견이 나뉘어 갈라서게 된 이탈리아의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일화마저 생겨났다. 1940년대 이전까지 유럽 클럽축구판의 지존을 논하는 데에 의견이 크게 갈리는 이유다. 그러던 중 1948년 프랑스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의 편집장 가브리엘 아노가 ‘유럽 각국 리그의 챔피언들끼리 맞붙여 진정한 챔피언을 가려보자’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것이 최초의 유럽 클럽대항전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역사의 시발점이다. 이 중대한 시도마저도 UEFA(유럽축구연맹)이 아닌 일개 언론인의 발상에서 비롯됐을 정도이니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1955-1956시즌 첫선을 보인 유러피언컵을 통해 각 리그 간 경쟁이 본격화됐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는 원년 정상을 차지한 이래 대회 5연패를 달성하며 최초로 유럽 클럽축구의 헤게모니를 쥔 팀이 됐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어느 특정 리그가 유럽 클럽 축구판을 주도했다고 보기엔 마뜩찮은 구석이 있다. 지금처럼 선수 교류가 자유롭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페렌치 푸슈카쉬 등 특급 외국인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뛰면서 독보적 기량을 뽐내긴 했다. 그러나 ‘특급’이 아니고서는 실상 기회도 많지 않았다. 당시 유럽 각국 리그는 같은 유럽 국가 출신 선수들에게도 외국인 쿼터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국적 불문하고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들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신 자국 출신 선수들의 기량이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각 리그의 명문 클럽은 자국 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 스쿼드를 강화하고 유럽 전역에 명성을 날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즉, 어느 나라가 유소년 시스템을 통한 우수선수 발굴 능력이 뛰어난지에 따라 리그간 우열이 갈리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까지 유러피언컵 정상을 차지한 팀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레알 마드리드·벤피카(포르투갈)·인터밀란·아약스(네덜란드)·바이에른 뮌헨(독일)·리버풀·노팅엄 포레스트(잉글랜드) 등 유러피언컵에서 최소 2연패 이상을 차지한 팀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우수한 지도자와 ‘황금 세대’ 선수들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파나치나이코스(그리스)·셀틱(스코틀랜드)·말뫼(스웨덴) 등 지금은 감히 명함조차 내밀기 힘든 팀도 유럽 정상을 밟아보거나 넘볼 기회를 잡았는데, 그 원동력은 역시 명장과 우수선수 발굴에 달려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됐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에서 뛰었던 미셸 플라티니는 1984년 디에고 마라도나가 300만 달러(한화 33억 원)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의 몸값으로 나폴리 유니폼을 입자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 사람 몸값이 300만 달러나 하다니….” 큰돈을 주고 수퍼스타를 영입해 최고의 선수진을 구축한다는 지금의 발상이 당시엔 어색했다는 것이다.

마라도나의 나폴리 이적은 축구 이적사를 통틀어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할 만하다. 나폴리는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팀이었고, 마라도나가 떠난 후에는 숫제 2부리그까지 추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런 나폴리가 마라도나가 뛰던 시절에는 이탈리아 최강으로 우뚝 섰다. ‘돈이 트로피를 만든다’라는 걸 증명한,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사례였다. 그리고 이 나폴리를 잡으려고 AC밀란·유벤투스·인터밀란 등 명문을 자처하던 클럽도 대대적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중 AC 밀란은 ‘오렌지 삼총사(마르코 판 바스턴·뤼트 훌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를 통해 유럽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수퍼클럽으로 자리매김 한다.

보스만 판결, ‘몸값 거품’을 제촉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가운데)이 2013년 5월 13일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스완지시티와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물론 AC밀란의 전성기를 일컫는 ‘밀란 제너레이션’에는 자국 선수들의 활약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크긴 했다. 그러나 ‘오렌지 삼총사’의 성공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라도나의 나폴리행과 더불어 투자를 통한 실력파 외국인 선수 가세가 전력 강화를 넘어 클럽의 전성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각 클럽에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그 후로 빼어난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클럽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각 클럽의 지출이 경쟁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클럽들의 이런 동향은 다른 유럽 리그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각 클럽마다 많은 자금을 통해 우수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운영 방침이 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 축구 산업계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다준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보스만 판결’이다. 벨기에 출신 장-마르크 보스만이라는 무명 선수가 1990년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걸면서 벌어진 이 사건은 구단의 투자와는 무관한 선수 권익보호에 관한 법정 싸움이었다. RFC 리에쥬에서 뛰던 보스만은 계약 만료 후 프랑스 클럽 뒹케르크로 이적을 시도하다 불발됐다. 계약 관계가 끝난 RFC 리에쥬가 이적을 방해한데다, EU(유럽연합) 출범 후에도 같은 유럽 국적의 선수에게 쿼터를 개방하지 않은 프랑스 리그의 규정이 발목을 잡아 이적이 무산된 것이다. 보스만은 계약 만료된 선수에 대한 구단의 선수 소유권이 소멸돼야 함은 물론 프로축구 선수를 포함한 EU 내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EU 내 국가에 취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5년간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승리했다.

보스만의 승소는 두 가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첫째, ‘갑을 관계’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직적이고 강압적이던 구단-선수간 관계가 수평적으로 바뀌게 됐다. 이전까지 한번 계약하면 계약기간이 만료돼도 선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있었던 클럽들은 보스만 판결 때문에 이전처럼 우수선수를 거느리기 어려워졌다. 둘째, EU 국적 선수들은 EU 내에서 자유롭게 이적이 가능해졌다.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뛸 기회를 주었던 유럽의 각 리그는 이제 유럽 국적 선수들에게 무제한적으로 문호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다. 선수에 대한 구단의 권한이 축소되고 이적 시장이 활성화된 것이다. 이는 예전처럼 선수 발굴만으로는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힘들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전력을 유지하고 우수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돈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보스만 판결 후 이탈리아 클럽들은 엄청난 투자 열풍이 일면서 여타 국가의 리그와 격차를 벌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 세리에A 판도를 두고 국내 축구팬들은 이른바 ‘7공주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그럴 만했다. AC밀란·유벤투스·인터밀란·AS로마 등 명문 구단은 물론 라치오·피오렌티나·파르마 등 정상과 거리가 멀었던 팀도 돈을 물 쓰듯 하며 우수선수 영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리에A 우승이 챔피언스리그 우승보다 더 힘들다는 평가가 나올 지경이었고, 자연히 이탈리아 클럽들의 유럽 클럽대항전 성과가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은 소위 ‘빅3’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세리에A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황금기였다.

그러나 세리에A는 2000년 전후로 급격한 쇠락기에 접어들게 된다. 재정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투자 때문이었다. 가이즈카 멘디에타에게 6천만 유로(827억 원)라는, 당시로서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엄청난 이적료를 지출했다가 파산했던 라치오가 대표적이다. 피오렌티나 등 다른 이탈리아 클럽도 줄줄이 도산하거나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우수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던 팀들에는 현상 유지를 위한 토대가 부족했다. 입장료· 구단 머천다이징 상품· 중계권 등을 통한 수익으로는 선수 이적료 및 연봉을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탈리아 클럽들이 현재의 한국 프로스포츠 팀과 마찬가지로 홈구장을 통한 수익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게다가 구장도 시설이 낙후돼 있어 팬들을 불러모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수익 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셈이다. 자연히 성적(특히 유럽 클럽대항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적 시장의 인플레이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세리에A는 이후 지금까지도 당시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루퍼트 머독, ‘잠룡’ 프리미어리그를 깨우다

이탈리아 리그가 휘청거리는 동안 ‘잠룡’으로서 꿈틀대던 무대가 있었으니 바로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다. 사실 유럽 클럽대항전 성적과 별개로 1980년대까지 잉글랜드 풋볼 리그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리그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낙후된 스타디움, 훌리건이라는 사회적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았고, 스포츠마케팅에 입각한 사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1985년 리버풀과 유벤투스가 맞붙었던 유러피언컵 결승전서 빚어진 ‘헤이젤 참사’ 이후 5년간 유럽 클럽대항전 출전이 금지되면서 국제적 경쟁력까지 잃은 상황이었다. 1992년 풋볼 리그를 다시 론칭하면서 출범한 프리미어리그는 이런 구태(舊態)를 벗고 축구 종가다운 리그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신발끈을 다시 조였다.

프리미어리그 출범은 축구산업뿐만 아니라 스포츠마케팅 역사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지나친 표현일 수 있으나 프리미어리그는 오늘날 각국의 프로축구를 통한 마케팅 기법과 상업화의 초석을 닦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중계권에 대한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전까지 풋볼 리그 경기들은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중계했다. 수익적 면에서 구단 재정에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0년 영국 내 위성채널 스카이 텔레비전을 매입하면서 영국시장에 진출한 호주 출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머독은 때마침 출범한 프리미어리그의 상업적 가치를 꿰뚫어보고 경쟁사인 브리티시 위성 방송(British Satellite Broadcasting)을 흡수하며 스카이스포츠를 출범시켰고, BBC로부터 3억 400만 파운드(약 5304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중계권을 사들였다. 정확히는 2052년까지 중계권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미국식 페이 퍼 뷰(Pay per View)를 적용시켜 대중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타 리그와는 다른 독특한 ‘뷰’를 통해 풋볼 리그가 가졌던 낙후된 이미지를 없애고 영국 내 시청자들에게서 엄청난 수익을 챙긴 것은 물론 해외에도 판권을 팔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를 바탕으로 한 중계권 수익에 대한 클럽의 권익도 충실히 챙겼다. 구단들은 스카이스포츠가 만들어낸 일정 비율의 중계권 수익을 통해 재정적 보조를 받아 이전보다 더욱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됐고, 이런 자금의 흐름을 통해 경쟁적으로 전 세계의 스타 선수를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브리튼 섬에 갇혀 구질구질한 경기장에서 훌리건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들끼리 경기하는 무대라는 인식이 강했던 프리미어리그는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가장 수준 높은 무대로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성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절대 강자로 거듭나면서 신장된 구단의 가치를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사업을 펼치며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이는 축구 이외의 사업에서 문외한이었던 타 구단들에도 전범이 됐다.

이처럼 리그와 그 속에 속한 명문 클럽의 브랜드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자, 해외 자본가들이 하나둘 프리미어리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헤롯백화점을 소유한 이집트 부호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풀럼을 사들이면서 시작된 해외 자본의 유입은 말콤 글레이저(미국·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만 아브라 모비치(러시아·첼시), 만수르 알 나얀(UAE·맨체스터 시티)등 내로라하는 거부들의 러시로 이어졌다. 단순히 해외 갑부들이 ‘축구 사랑의 표현’으로 투자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 할 만하다.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주들의 사업적 수단으로서 철저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시티를 가진 만수르는 2014년 들어 글로벌 축구클럽 그룹인 ‘시티 풋볼그룹’을 출범시켜 전 세계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 덕분에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세리에A 클럽처럼 재정적으로 취약하지 않다. 돈이 돈을 부르는 선순환 구조를 다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스타 선수들이 몰리고 우수한 팀 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리에A와 달리 프리미어리그는 황금빛을 잃지 않는 엘도라도가 된 것이다.

‘선수장사’ 시한폭탄 안고 있는 라 리가


▎유럽 4대 리그 중 가장 뒤처지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오늘날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는 천문학적 금액의 중계권료가 큰 역할을 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출범한 스카이스포츠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유럽 클럽축구의 또 다른 중심축인 라 리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에 어리둥절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위시한 스페인 클럽들이 남긴 거대한 족적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이 두 팀들은 라 리가에 유럽 클럽 축구판 헤게모니를 가져다줄 강력한 힘을 지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마케팅적 시각에서도 두 팀은 앞서 언급한 프리미어리그 소속 클럽들을 능가하는 명품 구단이다. 그러나 이 두 팀의 존재만으론 라 리가가 타 리그를 압도할 만큼 건전하고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라 리가는 분명 스타들이 모이는 세계적 무대이지만, 불안 요소도 뚜렷하게 보인다. 우선 수익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너무 극심하다. 중계권 사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후 라 리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성행하고 있는데, 일정 비율로 공평하게 나눠 갖는 프리미어리그와 달리 수익 분배가 균형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중계권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 다른 클럽들의 재정적 기반은 취약하다. 과거 레반테는 파산 상태에 놓여 선수들이 파업을 벌였을 정도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경기가 타 팀에 비해 더 많이 중계되는 만큼 더 많이 수익을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지만 여타 클럽들은 자신들이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위한 착취의 도구가 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구단 간 알력은 한때 개막전 연기 사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을 정도로 심각하다. 2012년 스페인 정부가 나서서 해결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외 구단들은 ‘선수 장사’를 통해 이런 불균형적 수익 분배구조를 극복한다. 세비야·발렌시아는 물론 2013-2014시즌 라 리가 챔피언에 오르며 ‘신계’에 파열음을 냈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중 세비야는 ‘거상’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장사 수완을 발휘 한다. 해외 유망주들을 불러들여 공들여 키운 후이 선수를 바탕으로 유로파리그서 성적을 내어 묵직한 몸값을 받고 빅 클럽에 팔아넘기는 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다. 라 리가가 보다 각광받기 위해서는 실력적으로나 마케팅적으로나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의 라이벌이 더 필요하나, 우수선수를 줄줄이 팔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들에 견줄 만한 빅 클럽이 탄생하기 어려운 탓이다.그렇다고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가 이들이 배출하는 우수선수들을 모두 흡수하는 것도 아니다. 우수선수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레 라 리가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선수 이적을 통한 수익 창출은 단기적 방편에 불과하다. 프리미어리그처럼 장기적 안목에서 수익을 만들어낼 기반을 살필 수 없다. 자칫하면 몰락한 세리에A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불안 요소를 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손흥민이 활약하면서 국내 팬들에게서 뜨거운 관심을 얻는 분데스리가는 프리미어리그·라 리가·세리에A와는 달리 봐야 할 무대다. 경쟁 리그가 투자를 통해 흥망성쇠를 겪었다면, 분데스리가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두터운 입지를 구축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대표되는 클럽을 앞세워 197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위상이 흔들리더니 1990년대부터 중심권에서 숫제 멀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표적 명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파산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통독 이후 국가 경제 기반이 흔들리면서 투자가 위축되어 분데스리가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회적 해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한 점은 당시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재정 건전성이 타 클럽에 비해 좋지 못했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우수한 유망주가 발굴되지 못하면서 리그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분데스리가, 철저한 관리로 ‘명가’ 부활 조짐


▎차범근·손흥민의 활약으로 국내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독일 분데스리가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명가’로 부활하는 중이다. 레버쿠젠 손흥민(22)이 지난 11월 5일 제니트(러시아)와의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C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두 골을 터트려 2대 1로 팀 승리를 이끈 뒤 기뻐하고 있다.
위기의 분데스리가가 지금처럼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배경은 재정 건전성 확보다. 2013년 세계적 축구 전문지 <월드 사커>가 보도한 리그별 재정 건전성 자료에 따르면 분데스리가는 리그 전체 적자가 100억원에 불과했다. 3천억원인 프리미어리그와 1천억원 수준인 라 리가와 세리에A의 적자액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수준인데, 이는 엄격한 클럽 라이선스 제도를 확립하면서 적자가 심한 구단에게 중계권 수익을 통한 배당금 분배에 대한 페널티 및 강제 강등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각 구단은 주머니 사정에 맞춰 예산을 집행해야 했다. 언뜻 보면 투자 위축으로 비칠 수 있다. 바이에른 뮌헨 등 극소수의 빅 클럽을 제외하면 마음껏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팀이 없다는 점에서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앞세운 라 리가와 다를 바가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들여 정비한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우수선수를 화수분처럼 배출해내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입장료 수익을 만들어내며 재정적 부담을 말끔히 덜어냈다. 2012-2013시즌 분데스리가 평균 관중은 4만5116명이다. 상업적 기준에서 최고의 무대로 평가받는 프리미어리그와 비교해도 무려 1만 명이나 앞선다. 두터운 서포터 층은 장기적 측면에서 구단의 재정적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초석이 된다. 한때 파산했던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과 유럽 패권을 다툴 수 있었던 것도 매 경기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 꽉 들어차는 8만 명의 평균 관중과 빼어난 유소년 시스템이 원동력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가 독보적이지만, 다른 팀들의 역량도 타 리그와 경쟁함에 있어 평균치 이상의 역량을 보일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토대로 따지면 프리미어리그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건강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분데스리가는 프리미어리그를 누르고 최고 무대로 떠오를 가능성도 커 보인다. 프리미어리그는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해 이에 군침을 흘리는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투자유치 전략을 통해 최고의 무대로 거듭났다. 앞서 언급했듯 리그 부채가 유럽 최고 수준이면서도 이를 메울 투자 금액이 끊임없이 밀려든 덕분에 상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그러나 어느순간 투자가들이 투자 의욕을 상실할 경우 리그의 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해외 자본가들에게 여전히 부정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영국 언론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반면 분데스리가는 엄격한 관리 규정을 통해 내실을 옹골차게 다져 일어선 무대다. 세리에A와 라 리가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을 분데스리가는 갖고 있지 않으며, 프리미어리그처럼 구단주들의 투자 의욕 상실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UEFA는 재정적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요약하자면 ‘번 만큼 쓰라’는 규정인데, 위반할 경우 엄청난 벌금과 수익적 기반인 유럽 클럽대항전 출전 자격을 발탁하는 등 중징계가 내려진다. 이 때문에 최근 맨체스터 시티·파리 생제르맹 등이 벌을 받기도 했다. 분데스리가는 이 기준에서 가장 자유로운 무대다. UEFA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자체적으로 재정적 부실함이 드러날 경우 강한 징계를 내리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분데스리가는 오랫동안 유럽 클럽 축구계를 호령할 준비를 갖춘 셈이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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