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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 대통령 지지율의 최후 보루 TK 민심의 行路 - “우리도 아는 걸 대통령은 왜 모르노?” 

현 권력의 내부 구조를 더 잘 아는 지역 여론 주도층일수록 청와대 인사 파행에 좌절… 낙후된 경제, 지지부진한 남부권 신공항, 지역 역차별 심리까지 겹쳐 지지철회 확산 

서상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2012년 12월 12일 저녁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을 가득 메운 유세 인파.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80%가 넘는 지지를 몰아줬다.
“콘크리트 다 뿌사지고 철근만 남았다. 철근이 뿌사지겠나.

“철근이 뿌사지나? 휘지! 휘면 확 주저앉는다.”

“그러면 여서 더 내리갈 수도 있다고 보는 거가? 이제는 철근 지지율이라 불러야 되나.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 철회 안 한다.”

“더 내리갈 수도 있다 본다. 가들(문고리권력 3인방) 안 내치면 반등 요인은 없다.”

“8080(대선 당시 대구·경북 공히 80%가 넘는 지지율을 박근혜 후보에게 보낸 것을 이른다) 만든 동넨데 (박근혜) 불쌍해서라도 그리 안 한다.”

“유(승민) 아저씨라도 좀 잘해주면 되는데….”

“여론조사 보니 ‘씽크홀’이 생각나더라. 이래 되면 TK 다 죽는다.”


▎대구의 민심 바로미터라 할 서문시장 상가를 오가는 시민들. 최근 지역 민심이 박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목소리가 많다.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경북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실에선 TK(대구·경북) 쪽 선임 보좌관 세 명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환한 빛 아래에선 하기 힘든 이야기인지, 형광등을 켜지 않은 그 방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들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다. 분위기를 깨보려고 “그래도 TK인데, 여론조사대로 그렇게 안 좋겠습니까? 일부 거품도 있겠지요”라고 떠보았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머뭇거리던 셋 중 하나가 대뜸 “함 내리가보소. 싸늘할 끼라”며 타박을 주면서 다음의 사례를 들려줬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난 얼마 뒤 지역구 사무실에서 당 여성위원 신년회가 열렸다. 마카(‘모두’의 방언) ‘이거 삐(밖에) 안 되나’ 캐쌌더만. 여성위원들 하믄 모두 50대 이상, 우리 지역구는 거의 60대 이상으로 골수 박근혜 팬들인데 말이지. 그 사람들 입에서 ‘우째 해도해도 이리 모하노’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소름이 확 올라오는 기라. 팬 중에 광팬이고, 돈 한푼 안 받고도 이리저리 쫓아댕기믄서 대통령 만들자고 외치던 그 사람들 입에서 결국 ‘실망이네’, ‘와(왜) 국민을 이기물라(이기려고) 카노’ 카는데 ‘야 이거 분위기가 이래 가면 내년 선거 힘들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나대. 어떤 아줌씨가 ‘경기가 더 안 좋아졌다’ 카믄서 ‘고향 대통령 맹글어주가 우리한테 득이 뭐 있노’라며 불을 확 땡기니까 분위기가 더 살벌해져서는…. 이거 농 아니요. 이기 지금 TK에서 나오는 이야기요.”

새누리당의 TK 집토끼가 집 밖으로 뛰쳐나간 수는 매주 발표되는 정례 여론조사에 따박따박 박히고 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박 대통령 하락세 둔화에도 불구, 핵심 지지층 이탈 지속’을 제목으로 2월 1주차(2~6일) 주간집계 결과를 냈다. 취임 102주차였다.

3인방 잘 아는 TK 인사들이 더 격분

리얼미터는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일주일 전 대비 0.4%포인트 하락한 31.8%로 집권 후 최저치(주간집계)를 4주 연속 경신했다. 부정평가는 2.2%포인트 높은 62.3%로 3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격차는 -30%대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에게 유선(50%)·무선(50%)·임의걸기(RDD)·전화면접과 ARS로 조사한 결과로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표본오차였다. 그리고 이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뉴스전문채널 등은 모두 박 대통령 핵심지지층의 지지 철회를 앞다퉈 보도했다.

리얼미터가 보여준 박 대통령 지지층의 등돌림은 섬뜩 할 정도였다. 전국적으론 대구·경북에서,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에서 지지가 하락했다는 것이 골자인데, 12월 5주차 63.1%의 긍정평가를 기록했던 TK는 1월 12일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던 3주차에 45.4%의 긍정평가를 보냈다. 부정평가는 31.6%에서 45.2%로 급등했다. 신년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긍·부정평가가 같아지더니 2월 1주차에는 부정평가(45.2%)가 긍정평가(42.3%)를 앞서기 시작했다. 세 보좌관은 이날 이 조사결과를 출력해 훑어본 뒤 “더 떨어진다”, “여기가 마지노선” 등으로 갑론을박했다.

그래도 TK 아닌가.

18대 대선 당시 대구는 199만 선거인 중 158만 명이 투표했고 이 중 126만 명(80.14%)이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경북은 218만 선거인 중 171만 명이 투표소를 찾아 137만 명(80.82%)이 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이것을 일러 ‘8080’이라 하는데 이는 박 대통령이 TK에서만큼은 절대권력임을 입증하는 수치였고 의원들에겐 TK만은 ‘친박의 성지’임을 각인하는 숫자였다. 그래서 최근의 여론조사에 ‘거품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역 여론의 수렴창구인 새누리당 대구시당, 경북도당에 “TK 공기가 실제 그리 탁하냐”고 물었다.

“열혈 팬 빼고는… 실지 나머지는 다 안 좋다”는 대답이 관계자들로부터 돌아왔다.

“신년 기자회견이 (타격이) 컸다. 우리 박 대통령이 강하게 나갈 줄 알았는데, 더 강단 있게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부속1비서관·안봉근 당시 2부속비서관)에 대해 잘못이 없으니 아무일도 아니라며 비호했을 때 쯧쯧 혀를 차고, 주먹을 쥐는 당원이 많았다. 그 사람들(3인방)을 우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있겠나. 그들 자질로 봤을 때 (국정에 개입할) 그럴 가능성이 높은 애들인데 말이지…. 대통령이 감을 잡지 못하고 저런다는 불만이 비등하다. 우리 다 그들 겪어봤지 않나. 언론이든 여론이든 잔소리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박 대통령이 (측근을) 무조건 내치는 것도 나쁘지만 적당히 뒤로 뺄 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못한다 그 말이지. 서민들 묵고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일이고.”

“박 대통령, 아버지 하던 식으로 밀어붙여”


▎2월 10일 대구시 북구 칠성동 옛 제일모직 부지에서 거행된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 기공식. 이날 분위기는 뜨뜻미지근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들 3인의 보좌진은 그때부터 박 대통령을 모셨다. TK에서 소위 정치 물 좀 먹었다는 사람치고 이들 3인방과 에피소드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일부는 안봉근 비서관을 ‘봉근이’라 부르기도했다. “누구가 단골인 서울의 술집에 같이 가봤다”, “누구는 민원 하나 넣었더니 쌩까더라” 등등의 이야기가 돌고 또 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시적으로 유임하고, 문고리 3인방에 대한 경질은 없다고 밝힌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직후 TK의 지지여론에 큰 구멍이 생겼다. “우리도 잘 아는 걸 대통령은 왜 모르느냐”는 반감과 실망감이 터진 것이다. TK는 내쳐야 할때 내치지 않았다는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지역 정치권뿐 아니다. TK 공직 사회에선 직접적으로 ‘누수’라는 단어만 나오지 않았지 레임덕 징후는 또렷하다. 대구만큼 보수적인 곳도 없고, 대구 공무원만큼 충성도 높은 공직사회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분위기는 그 정반대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멘트를 처리하겠다고 확답을 한 뒤 직접 들어본 공무원들의 이야기는 신랄하기 그지없다. 지역민 접촉의 최일선에 있는 그들은 자기 말, 남의 이야기를 뒤섞어가며 작금의 TK 공기를 덤덤하게 설명해줬다. 듣는 귀를 의심케 하는 말들도 튀어나왔다.

“정서가 등을 돌렸다. 친구 모임을 하는데 다들 50대 후반이다. 1년 전에 박근혜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다 돌아섰다. 공무원·교사·회사원 등 봉급생활자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고 자영업 하는 놈들도 있는데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느낌이 오더라. 국민을 속이고, 없는 사람 등치고, 담뱃값 올리면서, 연말정산 저 지랄하면서 전부 증세가 아니라고 하니까 더 믿지를 못하겠다. 게다가 독단적이다. 정윤회(박 대통령의 의원시절 비서실장) 국정농단 의혹도 (박 대통령이 말하는 걸) 사실로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내 주변만 봐도 인의 장막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 사람 관리를 못한다, 사람을 못 찾아 쓴다는 등등 사람·소통·정책 어느 하나 믿음을 주는 바가 없다고 다들 막 그래. 서울에서 보면 콘크리트 지지율 그러지만 여기 지금은 그렇지 않아.”(대구 한 주민센터장)

“사람들 실망감이요? 그거(여론조사)보다 더 낮은 거 같은데?” 대구의 한 기초자치단체장은 부정평가 여론조사가 오히려 더 높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단체장은 “지식층에서는 (지지율이) 더 낮은 것 같다. 심각하다. 누구는 진짜 ‘이 정부 오래 가겠나’ 카더라니까”라고 현지 정서를 전했다. 대구를 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더 싸늘하다는 소리였다.

“일부는 문재인(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 못하면 반대급부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식의 요행수를 말하더라. (박 대통령) 주변에 꼬라지 비기 싫은 사람들 내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어딜 가도 하는 얘기다.

저번에 우리 구청 국장님이 내게 이러더라. ‘구청장님, 제가 이번에 연말정산 150만원 토해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증세해놓고는 증세 아니라고…, 어떻게 그리 야비한 짓을 하나? 우리가 뭐 병신이가? 박근혜가 옛날식, 아버지가 하던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 아이고 나는 안타까워 죽겠어….”

“크게 우려할 만큼 나쁜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공무원들이 요즘 일할 맛이 안 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우리가 바로 개혁 대상이라는 게 좀 서글프다. 지금 이 나라에서 공무원 하는 사람들은 다 죄인 취급받고 있지 않나? 박봉에 그나마 승진, 연금을 위안삼아 살고 있는데 말이지.”(대구 한 구청의 언론담당)

넣고 빼고 할 것 없이 말 그대로를 옮겼다. 정치 이야기라면 쉬쉬하던 공직사회도 잔뜩 뿔이 나 있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불만이 생겼고, 연말정산에 분노가 일었다. 모두가 박 대통령의 손과 발인데 충심을 잃고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정권 교체와 재창출 제1공신 지역 TK. 경제는 나아졌을까? 대구·경북에는 번듯한 대기업이 없다. 대구는 전형적인 소비도시다. 공단이 많은 경북 구미·포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배드타운일 뿐이다. 1월 대구의 유통업계는 새해 첫 바겐세일에서 지난해보다 모두 매출이 줄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전국에 몇 남지 않은 토종 유통업체인 대구백화점은 지난해보다 2%포인트, 동아백화점 쇼핑점은 1.4%포인트,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2.7%포인트 매출이 줄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대구·경북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대구·경북은 설비투자 개선, 정부 경기부양정책 등 상방 요인도 있지만 제조업 생산 감소, 수출 증가세 둔화, 소비심리 회복 지연 등 하방 요인 때문에 지난해와 비교해 성장률이 비슷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한다.

윗목만 덥히는 정부의 경기부양 효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지금도 영·호남 국회의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역민들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TK에서도 가장 높은 박 대통령 지지를 보이는 장년층(50~64세)은 취업과 재취업 때문에 죽을 맛이란 표정이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지역 장년 인구는 대구 21%(52만6천 명), 경북 21.8%(58만7천 명)로 전국 평균인 20%보다 오히려 높다. 하지만 2013년 기준 대구 장년 취업자는 도·소매, 음식업 등 자영업자(33.1%)와 임시·일용근로자(30.3%)의 비중이 높아 일자리 안정성이 아주 낮다. 평균 임금은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데 2013년 기준 대구 장년 임금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은 197만7천원, 경북은 208만5천원으로 전국 평균(221만3천원)에 뒤처졌다.

전문가의 진단도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등 대통령을 그렇게 배출하고도 침체일로인 지역경제는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먹고 살 일마저 막막해지면서 한때 박 대통령에 열광했던 지역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서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정책 혼선과 파행 인사의 원인이 가장 크다”며 “정부의 경기부양효과가 경제의 아랫목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가장 큰 지역이 대구·경북”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역에서는 경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기존 참모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배 본부장은 “모두가 노(No)라고 하는데 대통령만 예스(Yes)라고 우기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또 TK는 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까닭에 역으로 인사에서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역 출신인사는 대통령과 동향이라는 이유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얘기가 많다.

“이러다 아버지의 업적마저 까먹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는 게 오늘날 대구·경북지역의 여론이다.

싸늘해진 TK. 갑작스런 변심일까? 취재에 응한 다수는 “징후가 있었고, 복선도 있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1년은 인사참사 문제가 컸지만 TK는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2년차 지방선거를 앞둔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에서 TK는 정부를 향해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탄생이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사실상 대구에는 ‘지분’이 없는 ‘굴러온 돌’ 권 시장은 새누리당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에서 1408표를 얻었다. 2위 후보와는 200표가 넘는 차이가 났다는 것 말고도, 3선·재선의 친박 핵심인 서상기·조원진 의원을 3, 4위로 따돌리면서 당선되는 ‘TK 난(亂)’을 일으켰다. 물론 서·조 의원 간에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두 사람 다 ‘내가 곧 박심(朴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네거티브도 심했다.

대구의 한 초선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박근혜라고 해서 무사통과가 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며 “30%대의 지지율은 실상 박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대업을 훌륭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하긴, 솔직히 힘들다”고 했다.

2월 10일 있었던 대구창조경제단지 기공식 때였다. 대구 북구 칠성동의 옛 제일모직 부지에서 정계·관계·경제계 인사와 벤처기업인, 예비창업자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열기가 뜨겁지 않았고 오히려 뜨뜻미지근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까지 내려와 삼성이 대구의 창조경제를 이끌 것이라 밝혔을 때만 해도 대구 민심은 신명이 났다. 하지만 곧 대구·경북에만 주는 선물이 아님이 드러났다.

대통령 비판하는 ‘입 큰 개구리’들의 분노


▎지난해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원외의 권영진 후보가 현역 의원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대기업과 전국 시·도를 모조리 짝짓기시켜주며 창조경제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발표한 뒤로 TK는 조금씩 마음을 거두기 시작한다. TK가 박 대통령에게 특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대구·경북뿐 아니라 대전·세종(SK), 전북(효성), 부산(롯데), 경남(두산), 인천(한진), 경기(KT), 전남(GS), 충북(LG), 충남(한화), 강원(네이버), 서울(CJ), 울산(현대중공업), 제주(다음카카오), 광주(현대자동차)가 선물보따리를 하나씩 챙겼다. 대기업과 지역 간 이런 짝짓기는 해당 기업의 주력 분야와 지역 연고, 지역의 산업 수요 등을 고려해 이뤄졌는데 삼성의 모태가 대구였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지 8080 지지를 보낸 고마운 마음에 ‘박근혜의 선물’이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경북도청의 한 공무원은 이런 말도 들려줬다.

“대통령이 내려오면 이동버스 안에서나 행사장 뒤에서 단체장으로부터 현안도 청취하고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그러거든요. 멀리서 온 기초자치단체장들도 그날 대통령과 악수하고 인사 나누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사진도 찍고….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런 게 없어요. 포항으로는 헬기로 이동했는데 헬기 안에서 대화가 불가능하잖습니까? 윗분들은 대통령이 워낙 바쁘고 그러시니 이해한다는 표정인데, 모시는 우리들 입장에선 좀 속이 상하더라고요. 고향에 왔고 고향에 있는 지도자들이 그렇게 모였는데 말이죠.”

2012년 대선 때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떠드는 일종의 ‘대선공신’들은 이제 ‘자리 욕심’을 버리고 불만을 대놓고 이야기한다는 말도 들린다. 논공행상이 골고루 이뤄지지 않고 특정 부류에 상이 한껏 쏠린다는 푸념이다. 낙하산 인사가 아예 없다면 모를까 과거 정부와 비교해도 별로 다르지 않은 이번 정부에서 자기만 소외됐다는 박탈감이 박 대통령 평가절하로 이어진다는 전언이다. 지역 정치권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대통령만 믿었던 정치 백수들이 ‘입 큰 개구리’가 되어서는 이곳 저곳에서 대통령을 씹고 다닌다. 워낙 마당발들이어서 피해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지역민만 돌아선 게 아니다. 지역 정치권도 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있다. 최근 나타난 현상은 의정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이 사라진 것이다. 3선 국회의원의 한 보좌진은 “원래는 의정보고서에 대통령과의 사진을 넣었다가 최근 회의에서 의원님만 나오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사진을 뺐다”고 했다.

경북의 한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말도 들려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에 있었던 한 분이 와서 그러더라고요. ‘박근혜 많이 들먹거리지 마래이. 예전같잖디. 홍보물 같은 데 박근혜 넣는다고 좋아하는 사람 이제 없다. 전부 시원찬애.’ 요즘 소위 먹물들 사이에선 이 정권은 틀려먹었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자기는 박정희 제일 존경하고 평생 박근혜 지지자였는데 이번에는 기분 나쁘고 속상하더라’고 말합니다. 연말정산 얘기하면서요. 공무원들은 어떤지 아세요? 무슨 피아다 무슨 피아다 해서 자리가 꽉 막히니 5, 6급은 난리가 났어요. 진급이 안 된다고.”

“대통령이 내 정치생명 연장해주나?”

앞서의 배종찬 본부장은 “TK의 2030세대나 40대의 지지 이탈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그 윗세대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견효과(patron effect)와 후광효과(halo effect) 정도만 남아있는 상태”라며 “대구·경북을 자주 찾고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는 길밖에 없다. 대구·경북 출신 인재를 중용하고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의 2선후퇴가 필요하다”고 나름대로의 처방을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백지화한 남부권 신공항은 아직도 이 지역의 커다란 불씨다. 또 백지화하면 영남권 전체가, 밀양이나 가덕도가 선정되면 진 쪽에서 정부를 냉대할 수 있다. 강주열 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원장은 “신공항 문제는 영남권의 미래 생존권 문제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로드맵을 전혀 내놓고 있지 않다”고 운을 뗐다. “백지화 아픔을 한 번 더 겪는다면… 민심 이반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만에 하나 김해공항 확장이나 가덕도 신공항으로 결정된다면 그 반대급부로 그만한 사업을 엄청나게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TK 정서는 중앙정부에서 뭔가를 해주겠지 하며 기다리진 않겠다는 분위기다. 그래서 정치권이 똘똘 뭉쳐서 전략적으로 ‘큰 건’을 쟁취하라고 조르고 있다”고 했다.

TK가 PK(부산·경남)에 비교되면서도 점수를 잃고 있다. TK와 PK는 지난 정부에서 신공항 유치로 싸우면서 남보다 더한 남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PK 정치권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TK의 박탈감과 상실감이 정서적으로 더 커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PK 출신인 문재인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PK여서 PK출신 여야 최고 수장시대가 열렸다. 여당 내부도 PK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반면 TK에선 유승민 원내대표 밖에 없다. 유 원내대표가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TK의 마지막 애정이 달린 것이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단에 포함된 TK 한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박 대통령에게 기대어서 우리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대통령은 우리의 구세주가 아니다. TK 편중 인사 문제가 거론될까 봐 정부의 각종 인사에 대해 쉬쉬해왔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홍보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에 검찰 인사는 사실 TK의 대약진이었다. BH(청와대)의 비서관 라인도 TK가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번 정부는 과거와 달리 TK를 잘 보듬고 있다고 역설해야 할 때다.”

내년에 있을 20대 총선거는 지역주의라는 고질적 병폐를 깨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대구 당선을 목표로 3수에 도전하는 김부겸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의 분투도 돋보이지만 현 정부에 보내는 TK의 메시지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 서상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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