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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정권 후반기 위기관리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 ‘원샷원킬'의 군기반장 

‘팩트’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 ‘칼날’ 별명도… 총선 출마의사 접고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재무장 

이영란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인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부당인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 중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정국면이 도래하면서 우 민정수석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집권 3년차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에서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48·연수원 19기)이다.

뛰어난 능력에다 인물 좋고, 재산까지 많은 ‘40대 남자’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대한민국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인 민정수석 자리를 꿰찼다. 유례가 드문 이 ‘스토리텔링’은 시기와 질시, 그리고 부러움을 동시에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가운데 바닥으로 떨어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는 낙관적인 변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체감경기는 냉기류가 흐르고, 공무원 연금개혁 등 각종 개혁과제는 첫 단추를 꿰기에도 벅차 보인다. 권력과 정치의 속성은 냉혹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진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박 대통령 때문에 국회의원 배지를 단 많은 ‘박근혜 키즈’조차도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일이다. 민정비서관 임명 8개월 만에 수직 승진한 역대 최연소급 우 민정수석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년등과(少年登科) 공직자들이 흔히 그래왔듯이 우 수석도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의 희생자가 될까? 키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란 키가 커서 돋보이는 양귀비를 싹둑 잘라내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자기보다 빨리 출세할 경우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끌어내리려는 세태를 빗댄다. 혹은 ‘리틀 김기춘’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앞서의 민정수석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리더십을 발휘해 박근혜 정부의 충직한 호위무사가 될 것인가?

우 수석은 자신의 행보와 관련해 “(이런저런 오해가 있어도)인터뷰를 안 하는 것이 (비서의) 본분”이라며 “사람은 행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조용히 대통령을 모실 것”라고 말했다.

보통 민정수석이라고 하면 ‘사정기관을 총괄하고 민심을 정확히 대통령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고 정의된다. 이 속에는 ‘국정의 모든 부분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민정수석이 연관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검찰 서열, 기수 문화 흔들기


▎지난해 말 ‘정윤회 문건 파동’ 등으로 곤욕을 치른 청와대는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등 주요 보직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통해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다.
현재 민정수석은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민원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린다. 이들 비서관 밑에는 검찰·경찰은 물론이고, 감사원·금감원·공정위·기무사·행자부 등 사정 관련기관의 최정예 인력이 파견된다. 물론 지난해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으로 민정수석실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조직의 능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역할의 중요성이나 ‘파워’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정수석으로 취임하고 보니, 밖에서 생각할 때보다 훨씬 업무가 중요했다.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해서 최고의 결정이 나오도록 해야 하기에 법무·검찰뿐 아니라 경제·외교 등 국정 전반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자면 정보도 알아야 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배겨나질 못한다.” 비리 척결에 나서더라도 경제 등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국정에 미치는 파장을 놓고 고민하고 토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나아가 “민정수석의 직분에 전념하자면 친정 ‘검찰’은 싹 지워버려야 한다”면서 “원대복귀를 꿈꿔서는 될 일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이 수석과 직접 소통하느냐, 간접 소통하느냐는 것은 어느 것을 더 효율적으로 보느냐 하는 대통령의 판단과 스타일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나는 비서실장을 경유하지 않고 대통령에 늘 직접 보고 했다”고 밝혔다. “가끔은 비서관을 대동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보다 디테일한 보고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 비서관들에게 자긍감을 심어주기 위한 배려 차원이기도 했다.”

이처럼 막중한 자리에 박 대통령은 어째서 40대 나이의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곧장 수석으로 승진시켰을까. 여권 주변에서는 그의 업무 역량과 성품이 난맥상을 드러낸 공직기강을 다잡는 데 적합하다는 판단의 산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민정수석 인사를 앞두고 당초 정치권과 검찰 쪽에서는 “검찰총장과 기수와 같거나 높은 인사가 발탁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아울러 ‘민정수석이라면 적어도 검사장 출신은 돼야 한다’는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 그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검사장을 거치지 않은 40대 민정수석의 등장이 검찰과 정치권에 던진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우 수석이 업무를 협의해 나갈 황교안(58) 법무부장관이 사법연수원 13기, 김진태(63) 검찰총장은 연수원 14기다. 나이는 우 수석이 두 사람보다 열 살 넘게 어리다. 전임인 김영한 전 수석(58·연수원 14기)과 이전의 홍경식 전 민정수석(64·연수원 8기)과 비교해도 우 수석은 검찰 선배들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 수석은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뒤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개업한 전력이 있다.

박 대통령 주변의 설명에 따르면 우 수석은 검사장을 거치지 못했기에 발탁됐을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가 검사장을 거치지 않은 게 박 대통령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철저한 서열과 기수 문화로 옥죄인 검찰 조직을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첫 민정수석인 곽상도 전 수석(56·연수원 15기)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56·연수원 14기)이나 황 장관보다 후배였고, 검사장을 거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끝으로 공직을 떠나 변호사를 하던 만46세의 여성, 강금실을 법무장관에 전격 기용해 ‘판’을 흔들어 놓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민정비서관으로서 보여준 우 수석의 역량이 박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성 사퇴 파문 등으로 민정수석실은 논란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임기 초반부터 인사검증 실패가 계속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선제 발언으로 ‘가이드라인’ 논란을 불러왔던 ‘문건 유출’ 수사는 청와대 입장에서 더 이상의 ‘악재’ 없이 무난히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우 수석의 업무역량을 높게 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던 당돌한 고교생


▎2009년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우병우 중수 1과장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들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서울 남부지검에 접수하고 있다.
친정인 검찰의 관계자들은 우 수석이 명석한 두뇌에다가 기획력·수사력·돌파력·추진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한다. 특히 수사에 관한 한 능력이 탁월하다는 데 이론이 거의 없다. 성품과 관련해서는 ‘사심이 개입되지 않는 원칙주의자’, ‘강직한 성격’, ‘타협이 안 되는 성향’ 등의 평가가 따른다.

그는 로비와 타협하지 않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3~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가 국내 모 대기업 경영권 승계 의혹사건을 수사할 때다. 이 회사는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유독 부부장이던 우 수석만 수사 중 이 회사 사람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관련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된다.

또 대구지방검찰청(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상당한 인맥·학맥을 자랑하던 강신성일 전 의원과 당시 여당(열린우리당) 소속의 배기선 의원을 수사하면서 자신에게 쏟아진 온갖 외압에도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역에서는 말한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 김평수 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구속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한 면모를 보여준다.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된 김 전 이사장을 반 년 이상 추가 수사를 통해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세 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경북 봉화가 고향인 우 수석은 지난 1967년 교편을 잡았던 우영구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주에서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를 따라 그도 줄곧 영주에서 학창생활을 보냈다. 영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영주고에 수석으로 진학했다. 그의 장래희망은 ‘검사’였다. 우 수석의 고3 담임이었던 한병태 전 영주고 교장은 다음과 같은 기억을 되살렸다. “우 수석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차정일 특검 “우병우는 훌륭한 검사”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6일 청와대에서 새해 첫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우병우 민정수석(왼쪽에서 넷째) 등 새로 임명된 수석, 특보들과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3 시절 그는 모의 수능시험에서 늘 전국 10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능시험에서 53위를 하여 서울대 법대로 진학했고, 법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7년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의 영예를 누렸다. 이때가 만 20세다. 한 전 교장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우리 반은 7시30분까지 등교를 권장하였고, 일찍 오는 순으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게 했다. 우 수석은 1년 동안 늘 앞에서 셋째 줄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력이 떨어져 너무 멀리 앉거나 너무 가까이 앉으면 정신이 집중되지 않는다고 답하더라.”

우 수석은 2008년에 작고한 이상달 기흥컨트리클럽 및 정강중기·정강건설 회장의 둘째 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상속재산에 힘입어 지난해 420억원이 넘는 재산을 등록,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이 공개되는 고위공직자중 재산이 가장 많은 인물로 꼽혔다.

학교생활과 마찬가지로 검사 시절에도 톡톡 튀는 행보를 보였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와 형사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근무했다(1990∼1998). 평검사 시절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비리를 저지른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 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대부속병원을 적발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경주대 설립자인 김일윤 전 민자당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해 주목받았다(1993).

우 수석은 법무부 국제법무과(1999)를 거쳐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됐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의 전·현직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승환 씨를 구속함으로써 신 총장의 조기퇴진을 불렀다. 차정일 특검이 우 수석을 두고 “매우 훌륭한 검사”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다.

우 수석은 2002년 서울 동부지청 부부장 검사로 승진한 뒤 춘천지검 영월지청장, 대구지검 특수부장,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 조사2부장(2002- 2008)으로 일하며 ‘특수통 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 ▷카드깡을 통한 강원랜드 도박자금 제공 ▷강원랜드 메인 카지노 진입도로 보강공사 비리 ▷사기도박 게임 ▷삼성 상용차 기술자료 해외유출 시도 ▷이정일 민주당 의원 상대 후보 도청기 설치 의혹 ▷대구U대회 옥외광고물 사업자 선정 비리 ▷잠실 야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뇌물수수 사건 등을 수사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같은 해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이러한 분리기소는 나중에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2007년).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를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우 수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 씨의 공천 청탁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그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옥희 씨를 구속했다.

지력, 재력에 탄탄한 경력까지 갖춘 우 수석도 발목을 잡히는 때가 있었다. 부러움의 대상이자 구설을 부른 ‘아내의 돈’, 그리고 일선 검사로서의 절정기에 맞닥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였다.

엄청난 재산과 노무현 수사로 좌절 겪기도

우 수석이 노 전 대통령을 만난 때는 2009년. 그는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총 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같은 해 4월 30일 대검 중앙수사부(이인규 부장)에 소환돼 늦은 밤까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검 청사 11층에 마련된 특별조사실에서 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검사가 그였다. 그는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가지고 신문했다. 그런데 소환 조사한 지 20여 일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 뒤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친 뒤 지난 2013년 5월 스스로 검찰을 떠났다.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해에 걸쳐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쿨’하게 사직서를 던졌지만 검사장(차관급 검사)에는 오르지 못한 상실감은 적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짧은 글을 올렸다. “23년간 검사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다른 길을 걸어본 적도, 돌아본 적도 없다. 검사로서 보람을 느낀 적도 많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쳐 법과 원칙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힘겨운 적도 많았다. 이제 보람은 가슴에 품고 짐은 내려놓고자 한다.”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의 검사장 탈락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검사’였다는 점 보다는 ‘너무 많은 재산’이 더 큰 악재로 작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법무부의 전직 고위급 인사는 “권력기관인 검사가 재산까지 그렇게 많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재산이 걸림돌이 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또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검찰을 오래 출입한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 수석은 실무자라고 보면 되는데, 수사라인을 면면히 살펴보면 김경한 법무장관, 임채진 검찰총장, 문성우 대검차장, 이인규 중수부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민의식’이 강한 기획통이다. 특히 이인규 부장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하게 수사를 몰아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우 수석도 수사를 독하게 하는 편이고. 같은 유형의 검사들로 팀을 꾸리면 외눈박이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수사가 그렇게 된 것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강성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수사라인에 수사통도 있고 기획통 참여해서 상호 보완이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변호사로 말을 갈아탄 우 수석은 모교가 있는 영주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주 지역이나 법조계에서는 “우병우 변호사가 민정비서관에서 물러나면 총선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가 민정수석에 오르면서 차기 총선은 접는 분위기로 간다. 다만, 청와대를 떠나는 등의 변수가 발생하면 그의 출마설은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두 차례나 검사장 승진에서 좌절했던 우 수석이 박근혜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자 이런저런 구설수가 따랐다.

우선은 ‘직보’ 논란이다. 물러난 김기춘 비서실장이 상관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제치고 당시 우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직보’를 받으며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이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사실과 함께 풍파를 불러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으로부터 직접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취합, 보고토록 하는 현행 시스템의 문제라는 비판이 따랐다.

또 다른 논란은 최근 검찰 인사에서 특정 지역과 특정 인맥이 요직을 독식했으며, 우병우 라인이 전진 배치됐다는 비판이다. 검사들이 ‘영남 메이저리그’와 ‘비(非)영남 마이너리그’로 나뉘며, 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면 현 검찰에서 ‘출세’가 어렵다는 뉘앙스의 칼럼도 있었다. ‘TK 요직 독식’ 비판은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TK 출신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검찰 지휘부의 핵심 요직에 TK 출신을 앉혀 청와대가 검찰 장악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우병우 사단’의 대약진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지휘부는 상당히 부풀려진 진단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성재 지검장 기용과 김수남 차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서 대검 차장으로 이동한 것은 PK(부산·경남) 출신인 김진태 검찰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TK 독식론은 박근혜 정부 2년간 재직한 민정수석 4명 중 3명이 모두 TK 출신이라는 점, 직전 민정수석실 소속 비서관 4명이 모두 TK로 채워지면서 더욱 증폭됐다. 우 수석이 단행한 이번 청와대 인사에선 TK 출신이 오히려 줄었다.

이번 검찰 인사 때 검사장 승진자 9명 중에서도 TK 출신은 노승권 대구고검 차장 1명뿐이다. 반면 서울과 호남 출신이 각 3명이고, 강원·경남 출신이 각 1명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라인’이 약진했다는 비판은 최윤수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이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상준 대검 수사지휘 과장(옛 중수부 과장)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장으로 이동한 것을 두고 나온 얘기다. 최 차장과 우 수석이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 때 조 부장이 부하 검사였다는 게 주요 근거다.

하지만 검찰의 인사 업무를 잘 아는 전직 한 검사는 “대부분이 옆으로 한 칸씩 이동한 인사일 뿐, 누가 인사를 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관전평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리를 놓고 최 차장과 막판까지 경합했던 권익환 성남지청장은 과거 대구지검 특수부에서 우 수석과 함께 근무한 적이 인연이 있지만 낙점을 받지 못했다.

다만 이번 인사에서 ‘특수통’ 인사들이 수사라인에 전진 배치되면서 대대적인 사정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최근 이완구 총리 대국민담화와 포스코건설 비리 수사 등이 맞물리면서 이런 전망은 더욱 심증을 굳혀간다. 이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은 국가 명운이 걸린 과업”이라며 고강도 사정을 예고했다. 여기엔 박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고 정부와 여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이름은 달리했지만 ‘부패와의 전쟁에 총대를 직접 메 왔다. 정권 출범 첫해 ‘원전 비리와 철도-문화재 비리 척결’에 나서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도 높게 주문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대기업 비자금 척결 등이 뒤따랐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이병기 비서실장-우병우 민정수석 라인업이 갖춰지면서 대대적인 국가기강 확립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과 문건 파동 등 여러 가지 난제로 정국이 어수선했는데 본격적으로 승부수를 띄워 분위기를 반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 민정수석의 존재는 사정국면의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검사 시절의 수사 스타일을 때문이다. 우 수석은 사건을 맡으면 사실을 밝히는데 골몰하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쭉 나가는 편이다. ‘팩트’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특수수사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칼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처럼 그가 일을 잘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지만, 같은 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물불 안 가리는 수사를 한다”거나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 또는 “너무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바른 성정, 뛰어난 능력, 차가운 시선


▎박근혜 대통령이 3월 16일 청와대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항간에서는 우 수석을 ‘리틀 김기춘’이라고도 부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검찰총장으로 재임 시 ‘선엄후관(先嚴後寬:엄격함과 관대함을 결합해 대사를 이룬다)’을 강조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엄격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런데 법조계 인사들은 농반진반으로 “두 사람이 ‘선엄’했던 것은 분명한데, ‘후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꼬집는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좋은 검사는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와 능력은 기본이고, 엄격한 가운데 부드러움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약자에게 진정으로 따뜻한 ‘웃음’을 보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렇게 되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이 부분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바른 성정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과 사회를 향한 시각이 너무 차갑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일 잘한 민정수석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여러 곳에서 파견 나온 대단히 우수한 직원들이 모인 민정수석실은 어느 부서보다 팀워크를 이루기가 어려운 곳”이라며 “엄격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자율과 책임이라는 틀 아래 풀어나가는 유연성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인사는 “민정수석은 검찰 등 사정기관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며 “검찰을 장악하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전직 민정수석은 우 수석에게 <명장의 코드>라는 책의 일독을 권했다. 지난 2012년 발간된 이 책은 그랜트, 마셜, 아이젠하워, 맥아더 등 명장들의 성공적인 리더십을 분석했다. 요체는 ▷사심 없는 마음가짐 ▷결정을 내리면서 책임을 받아들이는 자세 ▷직감과 육감을 기르고 발휘하기 ▷올바른 비판과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기 ▷끊임없는 독서와 연구 ▷부하에 대한 배려 ▷위임할 줄 아는 능력 등이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인품’이다.

- 이영란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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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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