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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취재] 영풍그룹 영풍개발, 형제 기업 덕에 먹고 사네 

 

2월부터 일감몰아주기 규제법 개정안 시행, 기업들 탈출 노력에도 ‘역행’… 회사 측 관계자 “영풍개발은 계열사들의 건물관리업체라 어쩔 수 없어”

▎재계서열 36위인 영풍그룹의 전체 계열사 22개 중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4곳으로 2년 전과 비교해 1곳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계열사인 영풍문고가 입주해 있는 서울 청계천 영풍빌딩의 전경. / 사진·중앙포토
올해 2월부터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일가가 지분의 30%(비상장사 20%)을 이상 보유한 기업이 200억원 또는 매출 12% 이상 내부거래를 할 경우 규제대상에 포함돼 처벌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신규 내부거래에 제동을 거는 한편 기존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1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기업들은 저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영풍문고로 잘 알려진 영풍그룹은 얘기가 다르다. 계열사들의 건물관리업체인 영풍개발의 경우 내부거래율이 여전히 90%를 넘고 있다.

1949년 영풍기업사로 첫발을 내디딘 영풍그룹. 자산(자본+부채) 기준 재계서열 36위인 영풍그룹은 2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월 1일 발표한 ‘2015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61곳’에 따르면 영풍그룹은 자산총액 10조3110억원으로 에쓰오일에 이어 36위에 자리했다.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강남 영풍문고. / 사진·중앙포토
영풍그룹(공동 창업주 고 장병희, 고 최기호 회장)은 GS그룹·삼천리그룹처럼 공동 창업주가 회사를 세우고, 그 2세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영풍그룹은 장형진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최창영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풍그룹의 지배구조는 여느 재벌가(家)와는 좀 다르다. 최씨 집안과 장씨 집안, 두 가문이 그룹을 공동 경영한다는 점이다. 1949년 그룹이 태동할 때부터 시작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영풍그룹의 내부거래 규제 대상은 4곳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입법되기 전인 2012년에 비해 한 곳 늘어났다. 원래 규제 대상인 서린상사와 서린정보기술, 영풍개발 3곳에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계열사인 테라닉스(대표 서정호)가 추가됐다. 또 이들 규제대상 계열사의 내부거래액(국내 매출 기준)은 441억원으로 2년 전보다 38.7%(123억원) 증가했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일가가 지분의 30%(비상장사 20%) 이상 보유한 기업이 200억원 또는 매출 12% 이상 내부거래를 할 경우 규제대상에 포함돼 과징금 부과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서린상사·서린정보기술 등도 규제대상에 올라


영풍그룹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 오른 것은 계열사 건물관리업체인 영풍개발이 대표적이다. 영풍개발은 장형진 회장의 두 아들인 세준·세환 씨와 딸 혜선 씨가 각각 지분을 11%씩 총 33%를 갖고 있는 회사다. 또 그룹의 공동 창업주인 ‘최씨 집안’에서도 총 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영풍개발은 매출의 대부분을 그룹 계열사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08년 98%(매출 123억8 천만원 중 121억5천만원) ▷2009년 98%(매출 124억8천만원 중 122억4천만원) ▷2010년 98.1%(매출 132억9천만원 중 130억4천만원)에 이르렀다.


이후 내부거래의 규모는 다소 감소했지만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1년 97%(매출 78억1600만원 중 75억8500만원) ▷2012년 94.7%(매출 37억9600만원 중 35억9600만원) ▷2013년 87%(매출 28억1400만원 중 24억5천만원) ▷2014년 95.6%(매출 25억8천만원 중 24억6700만원) 등이었다.

이와 관련 영풍그룹 관계자는 “영풍개발의 경우 그룹 계열사들의 건물을 관리해주는 업체인 만큼 내부거래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종합상사인 서린상사도 과징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이 회사는 장형진 회장(16.1%)과 그의 형인 장철진 전 영풍산업 회장(16,1%),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4.8%)과 그의 동생인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6.5%) 등이 지분 28.5%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2014년 서린상사의 내부거래율은 11.9%(매출 2769억8100만원 중 331억6천만원)이다. 규제기준인 12%에는 0.1% 미치지 못했지만 내부거래 규모는 기준인 200억원을 132억원 가까이 초과했다.

이와 반대로 시스템통합(SI)업체인 서린정보기술은 내부 거래율이 기준을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 장형진·최창근 회장 일가가 각각 33.33%와 16.7% 등 50.03%의 지분을 보유한 이 회사는 2012년 매출의 20.3%(186억4500만원 중 37억9100만원)가 내부거래를 통해 만들어졌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서린상사의 경우 비철금속 무역과 관련해 사실상 국내 유일의, 독점업체이다 보니 내부거래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전산업체인 서린정보기술은 보안문제 등으로 인해 외부업체에 일을 맡기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분 매각 통해 규제 피해간다?


유압기기 제조업체인 영풍정밀도 규제대상에 올랐다. 이 회사는 장형진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이 지분 43.16%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영풍정밀 역시 매출의 상당부분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영풍정밀의 내부거래율은 ▷2011년 30.1%(매출 1184억원 중 357억2200만원) ▷2012년 19.8%(매출 1198억7800만원 중 238억1400만원) ▷2013년 26.2%(매출 988억5800만원 중 259억5400만원) ▷2014년 23.7%(매출 853억8900만원 중 202억4400만원)였다.

규제대상으로 거론되던 기술용역업체 엑스메텍은 지분 매각을 통해 규제기준에서 자유로워졌다. 이 회사는 설립 이듬해인 2010년 내부거래율 60.1%(매출 80억7천만원 중 48억5800만원), 2011년에는 국내매출액 53.3%(176억8100만원 중 94억3100만원)에 달했다.

당초 이 회사의 지분은 세준 씨가 12%, 세환·혜선 씨가 각각 11%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의식한 듯 2011년 해당 지분 전량(13만6천 주)을 ㈜영풍에 매각했다. 이후 계열사간 내부거래도 급감했다. 이듬해 엑스메텍의 내부거래액은 고작 5천만원이었다.

이 외에도 영풍그룹은 그동안 과세대상에 오른 계열사 지분을 잇달아 처분해왔다. 케이지그린텍이 대표적이다. 세환 씨가 지분 40%를 보유한 이 회사는 매출 전량이 계열사에서 창출됐다. 그러나 2012년 고려아연에 해당 지분을 매각하면서 규제대상에서 빠져 나왔다.

케이지인터내셔날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는 세준 씨와 세환 씨가 각각 16.67%씩 33.34%를 소유해온 데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고려아연·㈜영풍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주요 규제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2013년 서린상사에 흡수·합병되면서 내부거래율이 낮아졌다.

재개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부 기업이 편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지분구조 등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달라질 게 없는 만큼 일감몰아주기가 줄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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