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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패트롤] 김영만 경북 군위군수의 혁신 행보 

겉치레·구습 타파... 전통의 현대화 ‘앞장’ 

‘삼수’ 끝에 지난해 6·4지방 선거에서 무소속 당선된 이변의 주인공 … 팔공산의 기개와 선비고을 자부심 안고 군위군의 도약 이끌어

▎경북 군위군은 팔공산이 좌우로 팔을 벌려 품에 안은 듯 넉넉한 기운이 서려 있다. 조림산 정상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전경.
경상북도 안동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의성을 지나 10여㎞를 내려가다 보면 멀리 남쪽으로 병풍처럼 늘어선 웅장한 산능선이 좌우로 펼쳐진다. 가운데 주봉과 양 옆의 봉우리가 우뚝 선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경북에서 가장 유명한 팔공산(높이 1192m). 대구의 진산으로 꼽히지만 이 산은 경상북도의 5개 군에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군위군에서 바라보는 북사면의 산세는 대구 쪽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대구 쪽인 남사면이 낮은 구릉에서 치솟아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이라면 북사면은 산자락을 길게 늘어뜨려 군위 지역을 감싸 안은 형세다. 마치 다소곳하게 앉은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처럼 우아하다. 그래서일까? 대구사람들의 성격이 팔공산의 위세를 닮아 대체로 불 같고 직설적인 반면 군위사람은 상대적으로 유순하고 여유롭다는 말도 나온다. 군위 사람들의 이런 정서는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지난해 취임한 김영만 군수의 행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에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군위군수 선거는 이변으로 꼽을 만하다. 당시 장욱 군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영만 후보에게 패배한 것이다. 김 후보는 장 군수를 3911표 차이로 따돌리며 승리했다. 투표 전날까지도 각종 여론 조사 결과는 장 군수의 승리를 점치던 터라 모두가 놀랐다. 새누리당의 표밭으로 꼽히던 곳에서 무소속 후보의 당선과 새누리당 현역 군수의 패배는 파란이었다.

김 군수는 취임과 함께 군행정에서도 새 바람을 불러왔다. 먼저 각종 행사에서 군수 의전을 과감히 없앴다. 크고 작은 행사에는 늘 지역 국회의원과 도의원, 군의원, 군수 등 기관·단체장들을 위한 의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마련이었다. 소개를 빼먹거나 인사말을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행사의 주인인 군민들은 천편일률의 의전절차 때문에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치기 일쑤였다.

새누리당 텃밭에서 무소속 당선 파란


▎김영만 군수는 새누리당 현역 군수를 누르고 당선돼 무소속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성을 앞세워 혁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 행사 때 맨 앞자리에 지정하는 내빈석을 없앴다. 대신 행사를 주관한 단체 관계자와 어르신·장애인·어린이에게 앞자리를 내어줬다. 참석 인사의 ‘급’에 따라 정했던 자리 배치는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바꿨고, 내빈 소개와 축사를 과감히 생략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시골 고장에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김 군수는 “의전을 간소화하고 본 행사에 충실하면 낭비적인 요소가 사라지고 군민과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딱딱했던 관료조직 문화도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일에 열린 정례조회에는 연극무대가 펼쳐졌다. 삼국유사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열린 조회에서 군청 직원들이 ‘민원인의 마음으로 봅니다’란 제목의 연극 한 편을 선보인 것이다. 군위군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공무 국외연수 대상자를 선정하는 건 각 부서장들에게 맡겼다. 여행을 다녀온 공직자들이 선물을 들고 오는 것을 일절 금지시켰다. 국외 연수를 다녀오면서 군수 등 상사들의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명절 때에도 선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배달된 선물은 직원들에게 추첨을 통해 골고루 나눠줄 정도다. 집으로 명절 인사를 오는 직원들이 있을까 봐 가족들과 멀리 여행을 가거나 마을 경로당을 돌며 인사를 다니는 등 문제의 소지를 차단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김 군수의 혁신 행보에 대해 인색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농업보조사업 지원 대상자 선정 방식을 바꾸면서부터다. 농업보조사업 예산은 군위군의 한 해 예산 2500억 원 중 400억 원을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임 군수 시절에는 군청에서 직접 보조 대상자를 선정했다.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김 군수는 취임하자 대상자 선정 권한을 읍·면장들에게 분산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과거에 수십억 원에서 수억 원씩 사업비를 가져가던 부농들로부터 원망하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잘못된 관행 없애고 청빈 생활 앞장서


▎부계면 대율리의 한밤마을은 여러 채의 고택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군위군의 전통과 선비 정신의 고향이다. 야트막한 돌담에 쌓인 눈이 고즈넉함을 더한다.
김 군수는 2014년에 편성된 올해 예산도 취임 후 대폭 손질했다. 표를 얻으려고 편성한 선심성 예산을 삭감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사업으로 예산을 돌렸다. 군의 보조에 기대온 관변 단체들의 운영 보조금을 줄이자 반발이 컸다. 하지만 김 군수는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검소한 생활을 철저히 지켜오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군수가 취임하면 의례 바꾸곤 했던 관용차량과 책상, 집기는 물론이고 찻잔과 방석도 모두 전임자가 사용했던 것을 물려받았다. 이쯤 되면 “직원들이 붙여준 ‘자린고비’란 별명에는 군수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을 것”이란 군 관계자의 귀띔이 지나친 말도 아닌 듯하다.

김 군수의 이 같은 행보는 군위군의 뿌리 깊은 선비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군위군은 부계(부림)홍씨(缶溪洪氏)의 집성촌이다. 부계면에는 홍씨 일가의 유서 깊은 고택들과 야트막한 돌담길이 관광코스로도 제격인데 문중에 서린 일화는 군위군이 선비의 절개와 지조의 요람이었음을 일깨운다. 조선의 문신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1438~1504)과 그의 아들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1473~1508)을 대표적인 선비로 꼽는다. 허백당은 성종대에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비하는 것에 반대하다 투옥되고, 무오사화 때 연산군에게 직언했다가 유배길에서 숨졌다. ‘허백당’이란 호는 그의 청빈한 삶을 상징한다. 그의 아들 우암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연산군에게 간언을 올렸다가 귀양을 갔는데, 반정 소식을 듣고는 연산군의 폐위를 슬퍼하며 중종이 내린 벼슬을 사양하고 여생을 고향에서 보냈다. 우암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후대 선비들에게 추앙받았다.

군위는 전국의 지자체들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작은 축에 속한다. 한때 8만 명(1966년)을 넘던 인구가 점점 줄어 2010년에 1만9천여 명에 이르렀다가 최근 들어 2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전통으로 치자면 경주, 안동, 전주 등 선비의 고을로 이름난 여느 도시들과 견줘서 손색이 없다. 때묻지 않은 환경에서 거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관광 콘텐트로 활용가치가 높다. 김 군수는 “군위는 선비문화와 함께 삼국유사의 집필지이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가가 있는 등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며 “이런 콘텐트와 팔공산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작지만 내용이 알찬 곳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취임 1년을 맞은 김 군수의 혁신 행보는 군민들의 관심사 중 하나다. 과거의 폐습을 혁파하고 올곧은 전통과 기개를 이어가려는 그의 시도가 군위군의 오랜 자부심을 일깨운 듯하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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