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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대륙을 품은 한류스타, 장서희 

“저 그렇게 기센 여자 아니에요”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김종태 인턴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막장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외출… JTBC 가상 만혼부부 예능 <님과함께2> 뮤지션 윤건과 달콤한 신혼생활

▎중국 한류의 주역인 배우 장서희의 첫 예능 나들이가 심상치 않다. JTBC <님과함께2>에서 가상 만혼부부로 출연해 사랑스러운 모습을 선보인다.
2002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건 월드컵의 열기만이 아니었다. MBC 드라마 <인어아가씨>는 시청률 47.9%를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접수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에 대한 전처소생 딸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였다. 청순하고 상처가 많을 것 같던 인어아가씨 ‘은아리영’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1. 1981년 ‘예쁜 어린이 진’으로 선발된 장서희는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30년 넘게 연기생활을 했다. / 2. JTBC <님과함께2>에서 가상 부부로 출연 중인 장서희와 뮤지션 윤건.
이 드라마로 배우 장서희는 에서 대상을 비롯해 4개의 상을 휩쓸며 20년간 따라다니던 조연배우 딱지를 뗐다. 이후 2008년 <아내의 유혹>에서 눈 밑에 점 하나를 ‘톡’ 찍은 것만으로 남편이 ‘전혀 못 알아보는’ 더 지독한 여자로 돌아와 또 한 번 주부들을 열광시켰다. 배우 장서희(44)의 연기 인생은 드라마만큼이나 극적이다.

일일드라마 퀸으로 정상에 올라선 그는 중국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중국·대만 합작드라마 <경자서경기>에서 1인 2역을 맡아 연기했다. 그는 당시 중국 방송가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다. 장루이시(장서희의 중국식 이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한류 붐을 일으킨 그는 그 뒤로 5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수당영웅>이나 중국 베이징BTV의 <림사부재수이> 등의 드라마에도 연속으로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런 그가 올해는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 산다. JTBC 예능프로그램 <님과 함께 시즌2-최고(高)의 사랑>에서 가상부부로 출연하면서부터다. ‘재혼’을 다뤘던 시즌1과 달리 이번 시즌은 ‘만혼(나이가 들어 늦게 결혼함)’이 주제다. 가상 파트너인 뮤지션 윤건과는 세 살 터울로 두 사람의 평균 나이는 42.5세다.

5월 14일 오후 서울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데뷔 후 국내 예능 프로그램 고정출연은 처음이라고 운을 뗀 그의 얼굴은 상기돼 보였다. 과거 독기를 품은 복수의 화신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이다. 장서희는 평소 기가 센 캐릭터로만 알려진 데에 꽤나 억울해 하는 눈치다. 그는 “사실 예능을 정말 좋아하는데 악녀 특집 같은 곳에서만 부르더라”며 웃었다.

본격적으로 예능프로에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어색하진 않으셨나요?

“부담 됐죠. 그동안 보여드렸던 연기 때문에 저에게는 ‘센’ 이미지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즐겁게 촬영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해보니 정말 재밌던데요? 대본도 안 외워도 되고.(웃음) 사실 배우로서 변신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예능 하면서 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좋아요.”

정말 궁금한데 장서희 씨는 어떤 성격인가요?

“전 정말 ‘복수’와는 거리가 멀죠.(웃음)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부족한 부분도 많아요. 사실 드라마 속 역할은 늘 만능이었잖아요. 예컨대 전 요리를 정말 못하거든요.”(웃음)

JTBC <님과 함께2> 3회 방송에서 장서희는 실제로 ‘요리치’의 모습을 보였다. 부엌에서 김을 굽는데 김에 불이 붙는가 하면 팬에 만두를 굽다가 기름 터지는 소리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두 사람에게 ‘요리 바보 부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기쁨도 아픔도 다 겪고 만난 ‘만혼부부’


▎1. <인어아가씨>는 한국 드라마사에 ‘막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고 장서희는 그 중심에 섰다. / 2. 장서희가 주연으로 출연한 SBS<아내의 유혹>은 몽골에서 83%이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님과 함께>에서 만혼부부로 출연 중이신데 즐거우세요?

“얼마 전 놀이공원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결혼생활의 첫 번째 로망이 있다면 남편과 손잡고 놀이공원을 가는 거였거든요. 예전에 연애할 때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공개적인 장소에 가본 적이 별로 없어요. 특히 동물 중에서는 기린을 좋아하는데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그렇게 가까이서 기린을 본 건 처음이었어요. 얼굴도 엄청 크고 눈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평소 꿈꾸는 프러포즈나 결혼생활은 없나요?

“솔직히 프러포즈는 생각 안 해봤어요. 프러포즈가 꼭 필요할까요? 느낌으로 알겠죠. 꿈꾸는 이벤트도 없어요. 꿈꾸는 결혼생활은 저처럼 여행을 좋아해서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백발이 돼서도 손잡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프로그램은 아마 나중에 있을 결혼생활의 중요한 리허설이 되겠죠?”(웃음)

윤건 씨는 어떤 분이던가요?

“제가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자 부른 사람이라는 점부터 신기하고 친근했죠.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에요.”

평소 생각하는 이상형과는 가까운가요?

“아니요.(웃음) 제 이상형은 저우룬파(주윤발)예요. 중학생 때 <가을날의 동화>라는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게 됐는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저우룬파와 같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처음에 윤건 씨를 만났을 때 이상형과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매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따뜻하고 감성적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의 음악도 그렇게 따뜻한가 봐요.”

만혼커플의 장점을 꼽는다면?

“만혼은 아무래도 인생을 조금 더 겪어본 사람들의 만남이잖아요. 나름 기쁨도 아픔도 다 겪어보고 만났으니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꽉 찬 신혼’ 장서희의 배우 경력은 벌써 30년. 그가 ‘일일드라마 퀸’이 된 것이 더 의미 있었던 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그의 연기 인생 때문일지도 모른다. 열세 살에 큰 눈과 귀여운 생김새로 ‘예쁜 어린이 진’으로 선발된 장서희는 아역배우로 자랐다. 1989년 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1991년 MBC <뽀뽀뽀>의 7대 뽀미언니를 거쳤다. 1990년 최명길 주연의 <그 여자>에서 깍쟁이 시누이 역할을 맡았지만 그 후로는 작은 역할을 전전했다. 드라마 <만남> <예감> <허준> 등에 출연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NG를 거의 내지 않는 뛰어난 연기력에도 그는 한동안 ‘주인공 친구’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막장드라마의 아이콘? 하나의 장르죠”

“제 인생은 <인어아가씨> 전과 후로 나뉘어요.” 31세의 장서희는 임성한 작가의 <인어아가씨>로 연기자 생활 20년 만에 첫 번째 주연을 맡았다. 첫 시청률 8%로 부진하게 시작한 드라마는 1주일 만에 시청률이 급상승하며 최고 시청률 47.9%까지 끌어올렸다. 배역 ‘은아리영’은 강렬했다. 아버지의 후처 한혜숙과 장서희가 서로 따귀를 주고받는 장면은 당시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장서희는 이 드라마로 연말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전한 그의 수상소감은 여러 시청자를 울렸다. “저처럼 오랜 생활 조연생활을 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며 기회를 기다리는 많은 연기자 분께 제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물꼬를 트자 파죽지세의 인기가 이어졌다. 2008년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다시 한 번 일일드라마의 전설이 됐다. 또 복수극이었다.

현모양처이던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무서운 요부가 된 뒤 남편을 다시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의 열풍은 전 세계 24개국에서 방송되며 한류시장을 뒤흔들었다. 국내 최고 시청률 57.3%이던 이 드라마는 몽골에서는 최고 시청률 83%을 기록할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뻐꾸기 둥지>라는 또 하나의 복수극에 출연하면서 그는 ‘막장 드라마’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막장’이라는 꼬리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히려 저는 감사한 부분이 있어요. ‘막장 드라마’라는 하나의 장르가 탄생한 것이잖아요. 그 포문을 연 게 <인어아가씨>이고 탄력을 받았어요. 훗날 한국드라마 역사에서는 한 획을 그은 것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 큰 상 한번 받는 게 정말 큰 영광인데 전 두 번이나 대상을 받았어요. ‘막장’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 간혹 속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는 않아요.”

패러디도 상당히 많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신 적은 없나요?

“아니요, 재미있던데요.(웃음) 그것 때문에 더 잘 알려지게 됐고, 어느 정도 희극적으로 변한 것 때문에 강한 이미지가 재미있는 이미지로 희석된 것 같기도 해요.”

<아내의 유혹>에서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변신한다는 설정을 알게 되셨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사실 정말 황당했죠. 말이 안 되잖아요. 점 하나로 남편이 못 알아보는데.(웃음) 하지만 그런 황당한 설정마저 잊게 하고 몰입시키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연기했던 것 같아요.”

복수극은 특히 선과 악을 오가며 연기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없으셨어요?

“처음에는 어려운데 자꾸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몰입도 빠르고 빠져나오는 것도 빨라요. 현실과 연기 구분이 확실한 편이에요. 선과 악을 오가는 연기는 처음에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지만 하다 보면 오히려 쉬워요. 오히려 극단적인 연기보다 잔잔하면서 절제된 심리를 표현하는 게 훨씬 어렵죠.”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중은 자신을 대신해 복수해주기를 바라죠. 제가 출연한 드라마에 주부 시청자가 많았잖어요. 한국 어머니들은 정말 많은 것을 희생하잖아요. 아마 그 드라마가 해방구가 아니었나 싶어요.” 드라마의 성공은 그의 중국진출에 발판을 마련해줬다. 장서희는 1993년 한중 합작 영화 <야망의 대륙>에 출연하며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중화권에서 <인어아가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장서희가 출연한 한국 드라마 대부분이 중국과 대만 등지에 팔렸다. 중국에서 러브콜도 쏟아졌다.

중국 현지화에 성공한 ‘한류 1세대’

처음 갔을 때와 비교해서 중국이 많이 달라졌죠?


“말도 마세요. 10년 만에 간 거잖아요. 1993년 영화 <야망의 대륙> 찍을 때만 해도 한·중 수교 전이었어요. 직항 비행기가 없어서 마카오를 경유해서 들어 갔었어요. 정말 (인프라가) 아무것도 안 돼 있었죠. 가이드가 잘못 전달받고 마중을 나오질 않아서 급히 버스랑 기사를 고용해 30시간을 달려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어요. 사탕수수랑 옥수수 밭만 보이더라고요. 의자는 뒤로 젖혀지지도 않고, 직각이에요.(웃음) 당시만 해도 테이프 음악 듣던 시절인데, 워크맨으로 듣던 노래 듣고 또 듣고… ‘아, 다신 못 오겠다’ 생각했죠.(웃음) 꼬박 10년 뒤에 중국정부의 초청으로 국영방송 CCTV에 출연하면서 다시 중국에 갔어요. 그때 달라진 중국에도 놀랐고, 엄청난 환대에 놀랐어요.”

이후 <아내의 유혹>까지 성공을 거두며 그는 중국 현지화를 결심했다. 한·중·대만 합작드라마 <경자서경기>(2006)를 시작으로 중국 드라마 <림사부재수이> <수당영웅>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현지에서 장루이시(장서희)의 위상을 확고히 쌓았다. 특히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특별 드라마인 <림사부재수이>는 중국 BTV와 CCTV에서 방영할 당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화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중국 처음 갔을 때 기반이 없어서 고생을 해봤잖아요. 그때 ‘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 중국에 다양한 상품을 비롯해 한류시장 체계가 많이 잡혔지만 당시에는 한국 드라마로만 한류시장을 열었던 시절이죠. 드라마의 인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지에서 배우로 제 이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중국 드라마에 출연을 시작했어요.”

한류 첫 세대라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그런데 다행히도 저는 적응을 잘하는 편이에요.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어요. 사실 우리는 고생을 많이 해본 세대잖아요. 수세식 화장실이건 푸세식이건 저는 신경 안 쓰거든요. 잠자리가 불편해도 괜찮았고요. 음식도 잘 맞기도 했고요.”

그동안 경험한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정말 가깝고 친구 같은 나라예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저는 10년 전에 함께 작품을 한 배우랑 지금까지도 연락해요. 사람들이 한결같아요. 처음에 친해지긴 힘든데 친해지면 발 벗고 도와주는 의리 있는 사람이 많아요.”

언어문제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사실 언어문제는 크게 없어요. 왜냐하면 중국에는 홍콩이나 대만 등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지역마다 방언이 심해서 자막을 많이 쓰거든요. 저에게도 제 목소리만 더빙하시는 전담 성우 분이 있어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담 성우가 장유진 씨였던 것처럼. 그럼에도 중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현지화를 성공적으로 하면서 롱런을 하기 위해서죠. 그렇다고(중국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해요. 아직도 성조는 어려워요.”

중국 드라마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요?

“<수당영웅>이요. 당시 500억원을 들인 대하사극이에요. 몇 년에 한번씩 리메이크되는 작품인데 거기에서 ‘장려화’라는 역할을 맡았어요. 우리나라 ‘장희빈’ 같이 야망이 컸던 역사적인 인물이에요. 그런데 (현지에서는) 외국배우인 제가 그 배역을 맡았던 것 때문에 화제가 됐어요.”

가족애 담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어


▎2006년 한·중·대만 합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경자서경기>에 출연한 장서희.
역시 강한 캐릭터를 소화하셨네요. 앞으로 캐릭터 구상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20년간의 조연생활로 남의 어려움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서희는 재능기부와 사회공헌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사실 저는 다양한 배역을 한 것에 비해 강하고 센 이미지로 각인이 많이 돼 있어요. 앞으로는 가족애를 담은 드라마에서 따뜻한 역할을 맡고 싶어요. 많은 분의 뇌리 속에 또 다른 대표작이 되도록 해야죠.”

가족 드라마를 맡고 싶다는 장서희는 오는 9월 MBC 새 주말드라마 <엄마, 시집 가>를 통해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효도를 하지 않는 자녀들을 향한 엄마의 통쾌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장서희는 장녀인 김윤희 역을 맡았다.

그는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인터뷰가 있던 당일은 마침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홍보대사’ 위촉식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장서희는 중화권 1세대 한류스타로 양국 비즈니스 교류 활성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선정됐다. “중소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배우생활만 해왔지만 조연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중소기업인 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후배 연기자들에게 남다른 애틋함이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럼요. 많은 후배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볼 때가 있어요. (힘든 시기를) 어떻게 참고 견뎌냈느냐고요. 그럼 저는 그래요. 다른 걸 생각하지 않고 한 우물만 묵묵히 파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고요.”

누군가 배우 장서희를 ‘인동초’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인동초는 모진 겨울과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는 식물이다. 어쩌면 그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과는 달리 ‘센’ 여성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작고 여린 체구와 커다란 눈망울에서 끌어내는 보호본능 뒤에는 ‘잔잔하지만 강한’ 힘이 있었다. 쉽게 요동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 인고를 딛고 정상에 올라도 끝없이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회귀본능은 오랜 연륜에서 묻어난 여유로 느껴진다.

-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 김종태 인턴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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