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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그림을 읽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 

영광의 면류관 쓰고 비운의 세마포를 입은 이들이여! 

정여울 문학평론가
람세스에서 엘리자베스 1세까지 백성의 땀과 눈물 밴 얼굴에 새겨진 역사의 주름
왕과 왕비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들에서는 왠지 ‘정해진 틀’이나 ‘권력의 입김’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왕의 얼굴, 왕비의 얼굴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집트의 람세스와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둘 다 제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이미지와 제스처를 보여주지만 람세스의 아우라는 둔중하고 장엄하며, 루이 14세는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람세스가 원하는 것은 민중의 절대적인 숭배이지만 루이 14세가 원하는 것은 만인의 뜨거운 사랑이나 인기가 아니었을까? 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에서는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려는 영웅적 남성성의 전형이 보이지만,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그늘에 가린 루이 16세의 초상에서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소심함이 느껴진다. 왕의 초상이나 기념비는 ‘왕의 권력’을 상징하지만,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은 ‘백성’이다. 그들이 그린 것은 단지 한 나라 왕의 얼굴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였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왕과 왕비의 얼굴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숨은 얼굴은 바로 백성의 땀과 눈물과 미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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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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