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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농업인 마이스터’ 다감농원 강창국 대표 

햇빛과 바람의 도움받아 ‘농촌마을’을 경영한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농산물 생산·판매·관광 결합한 6차산업 선도… 한국 단감 세계화의 대표주자로 인정받아 정부 철탑산업훈장 수상도

▎강창국 다감농원 대표가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온 대학생들과 함께했다. 강 대표는 농업의 6차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한적한 시골의 단감농장에 소녀들의 웃음 섞인 수다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들어보니 영어로 하는 말이다. 예닐곱 명의 소녀가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색과 차림새가 제각각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옷과 히잡으로 몸을 가린 소녀들 사이에 반바지와 반팔 셔츠 차림의 눈이 파란 백인 소녀들이 섞여있다.

중년의 한국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 이들에게 농장을 소개한다. 단감의 유래와 감 재배법에 대한 설명이다. 소녀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그 말을 듣고 받아 적는다. 경남 창원시 대산면 모산리에 있는 단감농장 ‘다감농원’의 풍경이다. 학생들을 안내한 이는 다감농원이 위치한 빗돌배기마을 내 위드 다감협동조합의 문진숙 대표다. 문 대표는 도시의 학교에서 재직하다 농촌의 매력에 빠져 이곳으로 귀농한 사람이다. 그는 다감농원을 통해 농업인의 길로 들어섰고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이렇게 육성된 젊은 귀농자가 몇 명 더 있다.

이 마을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농업농촌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인턴십 프로그램도 진행하지만,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해외 대학생의 인턴십을 운영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국립대인 UPM과 협약을 맺어 3개월 과정으로 현장교육이 이뤄진다. 학생들은 이곳에서의 ‘농활’을 정식 학점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매년 20명 정도의 말레이시아 학생이 이 농장을 찾아와 한국의 과수농업 기술과 6차산업 등에 대해 배우고 돌아간다.

연 3만여 명이 찾는 ‘스타농장’


▎다감농원의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직접 감을 따며 즐거워하고 있다.
해외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은 다감농원에 대한 설명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간 3만여 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농장의 기반을 이용해 육성된 영농조합법인이 3개나 된다. 이곳에서 12명의 직원이 협업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회복해가고 있다. 매출도 도시의 여느 개인사업 이상의 규모다. 시골의 한적한 과수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가 어렵다. 공동체 육성형 영농이 가능한 이유는 생산(1차)과 가공(2차)에 머물지 않고 관광·교육 등 서비스(3차)를 접목했기 때문이다. 농촌의 미래 모델로 주목 받고 있는 ‘6차산업’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빗돌배기마을에는 21가구 중 16가구가 농사를 짓는다. 이곳에 단감농사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단감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단감 농사의 출발지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게 없었다. 이곳이 주목받은 것은 강창국 다감농원 대표가 이 마을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강 대표가 운영하는 다감농원은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탑프루트 단감부문 대상(2007년)을 수상한 데 이어 대한민국 100대 스타 농장으로 꼽힌다.

다감농원을 전국구 스타 농장으로 일군 사람은 강창국(56) 대표다. 그는 2013년에 정부가 선정하는 ‘마이스터’ 자격을 얻었다. 전국에서 100여 명의 최고 실력을 가진 전문농업경영인에게만 주는 칭호다.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농업마이스터대학(2년제)을 졸업하고 품목별로 특별한 재배 노하우를 가진 장인이어야 한다. 3차에 걸친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영예다.

다감농원의 주인은 현재 3대째로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의 여느 과수원처럼 작은 규모였다. 1995년부터 강 대표가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은 뒤부터 지금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강 대표가 하는 일은 농업과 거리가 멀었다. 일찌감치 상경해 공부하고 가정을 꾸렸다. 강 대표는 감정평가사무소에서 근무를 했고, 그의 아내 신수오(51) 씨는 은행에서 일했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힘겹게 농사를 짓게 되신 어머니를 돕기 위해 그는 농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귀농한 건 아니었다. 1991년부터 틈날 때마다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4년에 걸쳐 귀농을 준비했다. 막상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전업농의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귀농한 첫 해에 거둔 소득은 고작 30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마저 시장에 내놓을 상품이 아니었다. 위기감이 들었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농업인 교육과정을 닥치는 대로 찾아서 들으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1년 과정의 똑같은 농업인 교육 프로그램을 무려 14년이나 반복해서 들었다고 하니 그의 남다른 집념을 느낄 수 있다. 경남농업기술원의 단감연구소를 찾아가서 단감 재배법도 공부했다. 강 대표는 “확실히 이론적으로 체계가 잡히고 다른 농부들의 재배 노하우를 내 방식으로 개선하면서 농사에 적용하니 품질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수확한 단감을 트럭에 싣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강남 일대 아파트를 돌며 직거래를 시작했다. 농부 혼자서 판로를 개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계절이 바뀌도록 아침저녁으로 공들여 가꾼 단감이었지만 소득은 늘 인건비를 건지는 수준에 그쳤다. 그렇게 창원에서 단감을 재배하고 늦가을에 서울로 싣고가 판매하길 반복하던 어느 날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일이 있었다. 2002년 백화점과 마트에 시장조사를 나갔다가 자기가 재배한 것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이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22번 도전 끝에 성공한 백화점 입점


▎1. 다감농원의 감나무는 높이가 낮고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진 게 특징이다. 작업하기 편한 것은 물론 햇빛을 고르게 받고 흙의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어 최고 품질의 단감이 열린다. / 2. 유치원생들이 다감농원 내부를 도는 관광용 전기버스를 타고 농장을 견학하고 있다
강 대표는 그날 이후 직접 재배한 단감을 들고 무작정 서울의 유명 백화점 본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구매 담당자들이 시골 농부를 무턱대고 만나줄 리 만무했다. 창원에서 서울까지 KTX를 타고 찾아가길 스물두 번. 길바닥에서 쓴 밥값과 차비만 해도 수백만원에 이를 정도로 적지 않았다. 끈질긴 구애 끝에 마침내 백화점 담당자와 면담이 성사됐다. 하지만 달랑 5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품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고품질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려고 농가와 직거래를 추진하는 현대백화점의 영업 방침과 맞아 떨어져 2004년 드디어 백화점 입점이 성사됐다. 백화점에 입점한 뒤로 매출이 급격히 상승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백화점 측은 1주일 만에 서울의 다른 지점으로 매장을 늘려줬다. 2005년부터 서울시내 7개 전 지점에 납품이 이뤄졌고, 이듬해에는 같은 백화점이 거느린 전국의 친환경매장에 입성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현대백화점과 직거래 파트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감농원은 2007년 농촌진흥청 탑프루트 단감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경상남도의 명품 농산물 브랜드 ‘이로로’ 대표 농가로 지정돼 명품 단감의 반열에 올랐다. 강 대표가 재배한 단감은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 크고 표면이 매끈한 게 작 익은 고운 빛깔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탐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당도도 뛰어나다. 품질 좋은 단감을 얻게 된 데에는 그만의 남다른 재배 노하우가 있다. 그는 “욕심을 버리는 게 첫째 원칙”이라고 했다.

다감농원의 감나무는 모양이 특이하다. 높이가 약 2m 정도로 여느 감나무에 비해 무척 짧다. 대신 가지가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곧게 뻗은 가지들이 낮게 펼쳐진 모습이 마치 소나무 분재와 모양이 비슷하다. 이런 모양을 유지하는게 다감농장이 최고급 품질의 단감을 재배하는 비결이다. 강 대표는 “통풍과 충분한 햇빛, 건강한 토양 관리가 단감 맛의 비법”이라고 말했다.

일반 감농장에선 약 3m가 넘는 감나무를 빽빽하게 심는다. 더 많은 감을 재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생각과 반대로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품질이 낮아진다고 한다. 농촌의 작업인력은 대부분 고령이어서 사다리를 타고 높이 솟은 감나무 위에서 작업을 하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다. 또 빽빽하게 나무를 심으면 통풍이 잘 되지 않고 충분한 햇빛을 보지 못해 나무도 건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일의 크기가 작고 당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가지끼리 부딪히고 광합성이 부족해 자연 낙과가 많이 발생하고 품질도 떨어진다.

생산-가공-서비스 6차산업을 마을 전체에 이식


▎다감농원이 있는 빗돌배기마을은 계절마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한 해에 3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모은다. 초등학생들이 벼베기 체험을 하고 있다.
반면 강 대표의 방법대로 나무를 관리하면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구석구석까지 충분히 들어 과일이 잘 익을 뿐만아니라 작업하기가 훨씬 편해진다. 다감농원의 나무 한 그루당 과일 개수는 400~500개를 유지한다. 너무 많이 열려도 과일 크기가 작아져 좋지 않다고 한다. ‘정지(整枝)’와 ‘일지일과(一枝一菓)’. 강 대표의 노하우가 바로 이 두 가지 원칙에 있다. 기본 환경을 잘 유지하고 가지치기와 꽃솎기, 과익솎기를 통해 품질을 최고로 유지하는 것이다.

생산과 판매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여기서 만족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단감 하나만으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단감을 이용한 가공품이다. 감잎차, 단감와인, 감식초, 단감파이 등을 개발해 상품을 다양화했다. 매출이 오르는 건 당연했다. 내친김에 체험형 교육농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소비자가 단감이 재배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 신뢰가 깊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마침 팜스테이, 체험농장 등 교육과 관광이 결합된 모델이 농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농사꾼 개인의 수완에 따라 소득이 천차만별인 농촌의 현실을 극복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생각한 대안은 공동체, 즉 ‘마을’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삼성테크윈, 신세계백화점, 현대모비스 등 주요 대기업들과 마을 차원에서 도농교류 협약을 맺었다. 농촌체험관광, 즉 6차산업(1차 생산×2차 가공×3차 체험관광을 결합한 차세대 농촌모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다감농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마을의 다른 농장들도 덩달아 소득이 늘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2008년에 마을단위 사업을 시작했다. 창원시의 지원을 받아 공동체험관을 건립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6개 농가가 참여해 감, 수박, 멜론, 딸기 등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강 대표는 “처음 3년 동안은 적자가 계속돼 사비로 프로그램 운영을 충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흑자로 돌아선 건 그로부터 5년째 접어들면서부터다. 2010년 전국마을가꾸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데 이어 2012년에는 마을경진대회에서 전국 1등을 차지했다. 마을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마을 공동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금으로 7천만원이 넘는 기부금을 냈다. 홀몸노인과 다문화가정, 지역 내 학교의 장학금과 마을발전기금 등으로 쾌척했다.

강 대표의 실험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다. 2010년에 우프 호스트 농장으로 지정되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시작했다. 우프(WWOOF)란 ‘전세계유기농가체험(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여행객이 유기농 농가에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에는 1천여 곳, 일본 400여 곳이 있고, 국내에는 60여 곳뿐이다. 2011년에는 UN 람사르 총회 필드트립에 이어 베트남 정부기관 관계자 직무 연수도 마을로 유치했다. 이듬해에는 팜스쿨사업자로 선정된 데 이어 국제청소년교류 프로그램(IFYE)을 도입해 외국인 교류를 확대했다.

말레이시아의 국립대인 UPM(University Putra Malaysia)과 해외인턴십 제도를 운영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연히 UPM의 농대생 4명이 농업 인턴십 과정을 통해 다감농원을 찾았다가 한국 농업에 매료돼 학교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건의한 게 계기였다. 이 과정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왕복 경비는 학생이 부담하고, 훈련기간 동안의 모든 비용은 다감농원이 부담한다. 그런데도 일부 경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국가의 해외인턴십 과정보다 훨씬 인기가 높다고 한다. 대부분 부유한 사회 지도층 자녀들이어서 한국에 대한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강 대표는 “말레이시아는 최대 단감 수입국”이라며 “말레이시아 대학생들이 한국의 농업현장을 체험하고 돌아가 사회지도층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얻게 될 인적 자산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의 이런 활약이 알려지면서 그는 일약 스타 농업경영인으로 떠올랐다. 1천 평으로 시작한 과수원은 2만 평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2013년에 농림부로부터 제1회 농업 마이스터 자격을 얻는 동시에 그의 농장이 농림부 WPL교육장으로 지정돼 전국 농업인과 예비농업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WPL교육장은 독일의 마이스터제도를 벤치마킹해 농업인들이 품목별로 실습과 체험을 병행할 수 있는 현장교실이다. 그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려고 전국 각지에서 신참내기 농사꾼들이 앞다퉈 그의 농장을 찾아왔다.

명인의 노하우 전수 위해 농민교육에 열정 쏟아


▎1. 강 대표는 국내에 100여 명에 불과한 농업마이스터로 지정돼 후배 농업전문경영인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년 전 1천 평으로 시작한 그의 과수원은 2만 평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 2. 다감농원 사무실 외벽에는 정부와 각종 농업관련 2 단체들로부터 받은 인증패들이 걸려 있다.
기자가 농장을 찾아간 지난 9월 초에도 인천에서 한 젊은이가 그를 찾아와 농장 운영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인천 강화도에서 쌈채소 농장을 하는 유제우(33) 씨다. 유씨는 게임업체에서 캐릭터를 개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년 전 부모를 도우려고 귀농했다. 지난봄에 강 대표를 처음 알게 된 뒤 틈날 때마다 창원에 내려와 그에게 농장 경영과 6차산업에 대해 배운다. 유씨는 “쌈채소를 활용한 가족 단위 1일 체험농장을 구상하고 있는데 강 대표님으로부터 농장 경영에 대해 배우면서 사업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교육은 일대일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적어도 1년 이상 교육을 받아야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는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강 대표는 지금까지 9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그중 한 제자는 교육을 받기 전 연매출이 3천만원에 불과했지만 교육을 받은 뒤 3억원으로 10배나 성장했다. 또 다른 제자는 연매출 8천만원에서 무려 15억원으로 20배 가까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 강 대표는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를 배출해 나로서도 감개가 무량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국내 농업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7월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농업인으로서는 드문 영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농촌 공동체를 되살리고 6차산업의 성공사례를 통해 우리 농업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 대표는 “나의 성공은 누구나 열정과 노력만 있으면 농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농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습게 봐서도 안 됩니다. 자기만의 노하우를 얻기까지 당연히 겪어야 할 시행착오 때문에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농사는 하루 이틀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농사꾼의 시간에 익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목표를 점검하고 스스로를 다잡는다면 어느새 풍요로운 결실이 맺혀 있을 겁니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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