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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물탐구]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 불리는 유아인의 매력 

소년 같은 이미지에 나쁜 남자의 섹시함이라니… 

이은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올 한 해, 영화 <베테랑>과 <사도>로 2천만 명 육박한 관객 동원, 비주류 같은 주류 배우… JTBC 드라마 <밀회>로 여심 흔들더니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로 물오른 연기력 과시

▎배우 유아인은 “지금은 아인시대”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대체불가’ 배우가 됐다. 반항하는 소년의 이미지를 벗고 이제 그는 강하고 매력적인 남자로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금은 아인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 해 유아인(29)의 활약은 눈부셨다. 영화 <베테랑>과 <사도>로 2천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20대 배우로서 독보적인 티켓 파워를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태조 이방원 역을 맡아 안방극장까지 접수했다.

기자가 유아인을 처음 본 건 4년 전 겨울 영화 <완득이> 500만 돌파 파티에서였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만 해도 앳된 소년 같았던 그가 4년 뒤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재목이 되리라고 생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유아인은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가 된 것일까? 한 연예계 관계자는 “그에게서 제임스 딘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한 방송사 고위관계자는 “영리한 여우”라고 평가한다.

그가 여느 20대 스타와 분명히 다른 점은 ‘배우’로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연기파 배우의 타이틀은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등 40대 배우들의 차지였고 상대적으로 20대 배우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연기로 이 같은 편견을 뛰어넘었다.

반항하는 청춘의 표상이었던 유아인은 드라마 데뷔작인 <반올림>에서 극중 이름이었던 유아인을 예명으로 정할 정도로 길들여지지 않는 청춘을 꿈꿨다. SNS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때론 그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기획사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20대 스타가 신비주의를 내세우는 것과 달리 ‘자생적인 배우’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다.

20대 스타답지 않은 소신발언으로 화제 모아


▎영화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를 연기하며 첫 악역에 도전한 유아인.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의 얼굴에 깃든 천진함이 조태오를 더욱 기이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 사진제공·CJ E&M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씨는 “요즘 20대 스타들은 아이돌 가수처럼 소속사에 보호를 받으면서 대중이 듣기 좋은 말만하는 등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쓰지만 유아인은 일관되게 소신 있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초기에 허세와 치기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대중의 이해가 쌓이면서 자생적인 배우라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작은 규모, 신인 감독의 영화 등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주관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는 독자적인 필모그래피를 통해 인기만 쫓는 배우가 아니라는 신뢰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다소 다르다. 유아인은 “나는 두려움이 많고 소심하고 나약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작은 사람이지만 순전히 깡으로 순간순간을 살고 있다”면서 “다만 주변에 관심을 갖고 내 생각을 잘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은 이유가 더 크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쁜 작품 활동에도 그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최근 그가 아름다운재단 양육시설의 아이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하는 캠페인에 7700만원을 기부하면서 남긴 한 통의 메일은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나는 아동생활시설 급식비 1420원에 반대합니다. 올해 100원 올린 1520원짜리 식단에도 역시 반대합니다. 아동 생활시설 아이들이 매 끼니 적정단가 수준의 식단을 지원받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 나는 부자이길 원하고, 성공하길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아름다운재단에 남긴 유아인의 메일 중 일부)

많은 감독들에게는 ‘고마운 배우’


▎1. SBS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아인. 2. JTBC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와 유아인은 스무 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로 위험한 로맨스를 연기했다. 3. 영화 <사도>에서 유아인은 무게감 있는 사도세자를 연기하며 진짜 배우임을 증명했다. / 사진·중앙포토
배우로서 처음부터 그의 삶에 탄탄대로가 펼쳐졌던 것은 아니다. 10대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아이돌 가수를 준비하다가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로’ 데뷔가 물거품 되기도 했고 2003년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얻었지만 수년간 작품 캐스팅이 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적도 있었다.

그는 “<반올림> 때는 아이돌 가수 같고 진짜 스타가 된 것 같았다”면서 “하지만 그 작품 이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혼란스러워서 고향으로 돌아가 한동안 배우를 계속 해야 되는지 고민에 빠졌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고 남과는 다른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이후 영화 <좋지 아니한가> 등에 출연한 유아인은 개성파 젊은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것은 2008년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동성애 코드를 유쾌하게 그린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파티쉐 견습생 양기범 역을 맡아 신선한 마스크와 틀에 박히지 않은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2008년 제11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 연기자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에 “내가 잘생긴 꽃미남과도 아니고 다른 20대 배우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오직 연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을 ‘미운 오리새끼’에 비유하면서 남과는 다른 개성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배우로서 차별화된 무기로 삼았다.

“비춰지는 것보다 더 반항아적 기질이 센 편이에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요. 20대 초반에는 특히 기성세대와 사회에 반발심이 많았어요. 그런 면이 배우로서 이미지화되면서 다른 남자 배우들이 백조라면 저 스스로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고 느낀 적도 많았어요. 저는 그들과는 다르게 생겼으니까요.”(유아인)

하지만 그런 특성은 여타 꽃미남 배우들과 다른 그만의 개성으로 인정받았고 주류와 비주류를 오가면서 쌓은 연기 내공은 20대의 끝자락에 비로소 빛을 발했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올해 유아인이 각광받은 이유에 대해 “워낙 연기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터질 만할 때 터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동시에 많은 감독은 ‘고마운 배우’로 그를 기억한다.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은 그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단순하게 개성 있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아인은 문학적인 언사를 동원해야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안 PD는 “유아인은 세상의 유행이나 통설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배우”라면서 “그는 자신의 눈으로 캐릭터를 연기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새로움을 창조해냈고 감독으로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그가 출연한 미니시리즈 연출을 맡았던 지상파 드라마 PD는 “자기가 캐릭터를 잡고 배역에 몰입하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친구”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대극과 사극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그 당시에도 때를 기다릴 뿐이었지 그의 시대가 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면서 “그에게 시청률이 더 잘 나오는 방향을 제시했더니 오히려 시청률이 안 나와도 흔들리지 말고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웃는 모습이 유독 천진난만해 모성애 자극


▎유아인은 올해 영화 <사도>와 <베테랑>으로 2천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티켓파워를 증명하기도 했다. 20회 부산국제영화제 <사도> 무대인사 도중 배우 송강호가 유아인을 안아 올리고 있다. / 사진·뉴시스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평가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적 기질은 오늘날의 그를 만든 또 하나의 축이다. 유아인을 스타덤에 올린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문재신 역할은 원래 그의 것이 아니었다. 본래 캐스팅된 한류스타가 소속사와의 마찰로 공석이 되자 그는 절호의 찬스를 꽉 잡았다. <성균관 스캔들>의 제작사인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는 “처음에는 유아인에게 다른 악역을 맡기려고 했지만 서너 번이나 걸오 역할을 맡겨달라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왔었다”면서 “뒤늦게 합류한 감독이 당시 <자이언트>에 출연한 김수현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뒤엎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처음에 대본 리딩을 할 때는 긴장을 했는지 떠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순간 눈빛을 보고 잘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면서 “머리를 풀어헤친 콘셉트나 의상, 메이크업도 본인이 잘 잡아왔다. 사실 4명 중에 아픈 사랑을 하는 걸오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유아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은 셈”이라고 말했다.

2011년 <성균관 스캔들>의 폭발적인 흥행을 통해 그는 비로소 스타덤에 올라섰고 마니아에 머무르던 팬층도 대중적으로 넓어졌다. 2년 뒤 영화 <완득이>에서는 다문화 가정에서 복서를 꿈꾸는 완득이 역할을 맡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문제아지만 절대 환경에 굴하지 않는 고등학생 역할을 잘 소화하며 영화계에서도 흥행의 성공을 일궜다.

이후 20대 남자 배우 기근에 시달리던 영화, 드라마 관계자들은 그에게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다. 이후 SBS 드라마 <패션왕>과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현대극과 사극을 막론하고 드라마 주연을 맡았고 영화 <깡철이>로 첫 영화 원톱 주연까지 따냈다. 하지만 다 잡은 듯한 성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드라마의 시청률도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고 깡철이도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 연기의 자기 복제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자 유아인은 기존의 반항아, 비주류의 이미지를 벗고 성숙하고 대중적인 캐릭터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전의 그는 소년처럼 천진하지만 ‘가난미’(불쌍해 보인다는 의미)가 흐르고 아웃사이더, 비주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밀회>에서 대선배 김희애와 멜로 연기를 통해 팬층을 넓혔고 스타 감독인 류승완과 <베테랑>을, 국민배우 송강호와 <사도>에 출연하며 확실한 주류에 들어섰다. 위기에 적시타를 넘어 홈런을 친 셈이다.

“물론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도 않았어요. 제가 그리는 그림 안에서 동년배 배우들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만들려고 계속 노력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른을 목전에 두고 정체된 느낌을 벗고 다음 스텝을 밟고 싶었어요.”

그는 “나도 남들이 흔히 말하는 주류 영화를 하고 싶었고 유명 감독의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난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의 악역을 제안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기회를 꽉 잡았다.

“저는 한류를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우직하게 노력했어요. 솔직하게 배우로서 천만이라는 도장을 ‘쾅’ 찍고 싶은 마음이 물론 있었죠. 지금 영화계는 30~40대 배우들의 전유물이고 20대 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젊은 배우가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런 그에게 호쾌한 액션이 주를 이루는 범죄 오락영화 <베테랑>은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그에게 많은 여성 팬들이 따라다니는 이유는 소년 같은 천진함 속에 섹시한 이미지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멜로드라마 <밀회>에서는 가난하지만 순수한 남성의 모습으로, <베테랑>에서는 ‘절대 악’이지만 수트가 어울리는 남자로, <사도>에서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들로 여성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남자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웃는 모습이 선해야 뜰 수 있다. 여성 팬들의 모성애를 자극하기 때문인데 웃는 모습이 유독 천진한 유아인도 그런 이유로 여성팬이 많다”고 말했다. 사극인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걸오(미친 말)라는 뜻처럼 거친 남성적인 이미지를 선보인 그는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선조 역을 연기하면서 옴므파탈 같은 섹시한 매력남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군 입대 예정, 공백이 문제 되지 않을 배우


▎유아인에게 많은 여성팬이 따르는 이유는 소년 같은 천진함 속에 숨어있는 섹시한 이미지 때문이다. / 사진·권혁재 기자
<베테랑>의 제작자인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조태오 역을 연기할 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섹시한 악당이 되라는 주문을 했는데 너무나 잘 이해하고 영리하게 연기해줬다”고 말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초반에는 소년의 건강한 이미지였다면 <밀회>에서 가난하지만 감성이 살아 있고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40대 주부들까지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베테랑>에서는 폼 잡는 악역이었지만 수트 속에 숨겨진 섹시한 이미지가 있고 <사도>에서는 극한까지 끌어올려 연기에 미친듯한 폭발하는 에너지에서 남성적인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견 건방지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은 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맹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어려워하기는커녕 스스럼이 없이 대해서 내심 놀라웠지만 배우로서 그런 에너지 자체가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유아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구름 같은 관객이 몰려들었고 연예 매체에서는 그를 촬영하기 위해 하늘에 드론까지 띄었다. 그가 밤늦게 술을 마시러 들른 해운대 포장마차와 부산 인근의 술집에도 구경꾼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산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를 마친 뒤 군입대가 예정돼 있는 것. 하지만 그 공백은 배우 유아인에게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많이 흔들린 만큼 뿌리깊은 배우가 되었기에.

- 이은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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