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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웅숭깊은 러시아의 향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장욱 소설을 읽다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지난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흘간 머물렀다. 러시아가 유럽 출정을 위한 교두보로 발트해 연안에 건설한 이 항구 도시는 내가 가본 유럽 도시 중 북극과 가장 가까웠다. 사흘 내내 백야였다. 새벽 3시에 동이 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숙면을 위해 두터운 커튼으로 창을 가리거나 작정하고 긴긴 하루를 살거나 해야 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야간열차로 이동한 탓에, 사흘이라고 해도 하룻밤과 사흘 낮이라는 기묘한 체류였다. 대낮처럼 환한 밤 덕분에 늦게까지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녔다. 주로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의 소설 무대였다. 소설과 을 집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재,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유령처럼 떠돌던 골목들과 K다리, 마지막 숨을 거둔 소파. 그리고 코발료프라는 8등관 관료가 어느 날 자신의 코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코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그린 소설 , 서류를 정서하는 일로 살아온 가난한 9급 문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를 둘러싼 삶과 죽음의 우스꽝스러운 참상을 그린 소설 등 고골의 거의 모든 소설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무대로 펼쳐졌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흔히 그러하듯 바람은 온 사방에서, 모든 골목으로부터 휘몰아치며 그를 향해 불어닥쳤다. 순간 그의 목구멍 편도가 부어올랐고, 집에 겨우 도착했으나 한마디도 내뱉을 힘이 없었기에, 온몸이 퉁퉁 부은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중략) 그 다음날도 그는 고열에 시달렸다. 페테르부르크의 이 위대한 기후 덕분에 병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중략) 마침내 불쌍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숨을 거두었다. (중략) 사람들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차에 실어 매장했다. 이제 예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페테르부르크를 떠났다.”(고골, ‘외투’, , 이기주 옮김, 웅진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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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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