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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람 이르는 ‘윤달에 만난 회양목’그리고 새파랗고 모가 진 잔가지를 많이 쳐서 전체 허우대(나무모양)가 더부룩하다. 수고(樹高) 7m까지도 자라며 수피(樹皮)는 회색으로 줄기가 네모지다. 잎은 마디마다 두 장이 마주 자리하는데 워낙 마디 사이가 좁아 잎이 잔가지들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잎은 가죽처럼 단단하고 질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게 뒤로 젖혀진다. 잎 길이는 1㎝ 안팎인데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이 밋밋하고, 앞면이 반들반들하며, 잎자루에 털이 딥다 빽빽하게 난다.회양목은 일찍 꽃을 피우는 산수유나 목련 꽃망울들이 된통 시린 추위가 무서워 옹송그리고 있는 이른 초봄에도 진한 꿀 향이 풍기는 꽃을 헤벌쭉 피워줘서 부지런한 꿀벌들이 일찍이 첫 꿀 따기를 한다. 꽃은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소담스럽게 몇 송이씩 뭉쳐 피는데 한가운데에 암꽃이 자리한다. 꽃의 지름은 3㎜도 채 안 되며, 빛깔은 연한 노란빛이다. 암꽃엔 세 개의 암술머리가 있고, 수꽃은 1~4개의 수술이 있으며 암꽃 주변에 둘러 핀다. 열매는 1㎝쯤 되는 삭과(蒴果, 익으면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씨방으로 된 열매)로 둥글며, 6∼7월에 갈색으로 익는다.필자의 교수 시절 이야기다. 어느 늦여름 날에 학교 정원에 늙수그레한 할머니 한 분이 바싹 마른 회양목 열매를 주섬주섬 따 보자기에 넣고 있었다. 꽃이 피어 열매가 열리고, 영그는 것을 눈여겨봐왔지만 그것의 쓸모에 무심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그분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여러분이 열매 따기(채종, 採種)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섬섬옥수로 모운 씨를 종묘장에 비싸게 판다고 하는데, 걀쭉하고 새까만 씨앗을 심어 회양목 묘목을 얻는다고 한다.회양목의 생약명은 황양목(黃楊木)으로 잔가지와 잎을 약재로 쓴다. 아무 때나 잎줄기를 채취하여 잘게 썰어 햇볕에 말려 쓴다. 이 나무엔 생약 성분인 북신(buxin), 파라 북신(parabuxin), 북시니딘(buxinidin), 파라북시니딘(parabuxinidin), 북시나민(buxinamin) 등의 알칼로이드 물질이 들어 있다. 이들은 진통·진해·거풍·백일해·치통 등에 효과가 있고, 통풍이나 류머티즘, 매독 치료약으로도 쓴다. 그러나 과용하면 구토, 설사, 현기증이 인다고 한다. 뒤탈(부작용)이 없는 약은 세상에 없는 법이니 약을 아주 멀리하면 오래 산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파리 즙액이 손에 닿으면 가려움증이 생기는 수가 있다 한다.회양목은 자람이 느린 탓에 목질이 매우 단단하고 결이 골라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옛날엔 목판 활자나 호패(號牌), 표찰(標札), 도장, 장기 알을 만들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자주 써왔던 목도장(목인, 木印)은 거의가 회양목을 썼던 것이다.끝으로 ‘윤달에 만난 회양목’이란 속담이 있다. 회양목이 윤달이 되면 그 키가 한 치씩 준다는 전설에서 키 작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요, 또한 일의 진행이 더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