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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제1부 광복) 

제2장 - [1] 펄 하버 

복거일(卜鉅一) / 조이스 진
진주만 기습이 성공하면, 불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 방안은 ‘가능성이 낮지만 배당은 엄청난’ 도박으로, 강심장을 지닌 도박사만이 걸 수 있는 패였다. 국가의 명운을 단 한 번의 공격에 거는 건곤일척의 싸움판에 일본 군부는 뛰어들었다. 태평양의 격한 파도 위로 검붉은 전운이 짙게 드리웠다.
이승만이 호바트 스트리트의 셋집 서재에서 로크크릭 너머 동물원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을 무렵, 그리고 크레이머 소령이 해군부 사무실에서 해군 정보 부대가 도청한 일본 외무성 훈령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 어둠이 내린 동태평양에선 거대한 함대가 높은 파도를 헤치면서 남쪽으로 항진하고 있었다.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해군 중장이 이끄는 일본 해군 ‘기동 부대’였다. 제1 항공함대를 주력으로 한 이 거대한 함대는 1941년 11월 26일 일본 치시마(千島) 열도(쿠릴 열도)의 하나인 에토로후(擇捉) 섬의 히도가푸 만을 떠나 12일 만에 하와이 북쪽에 이른 것이었다. ‘하와이 작전’이라 불리는 이번 작전의 목표는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오아후 섬의 펄 하버를 기습해서 거기 정박한 미국 태평양함대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일본 해군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렸다. 일본 해군의 전략가들은 일본이 미국과 싸워 궁극적으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육군에선 병력의 크기가 근본적 중요성을 지녔지만, 해군에선 군함과 함재기 같은 무기들에 크게 의존했다. 그리고 그런 무기들은 높은 기술과 대규모 경제를 지닌 나라들만이 만들 수 있었다. 영토, 인구, 자원, 경제력 및 기술 수준에서 단 두 세대 동안에 서양을 따라잡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미국에 한참 뒤졌다.

일본 해군이 기습 작전으로 미국 해군에 심대한 손실을 주어 일시적 우위를 지니더라도, 미국의 막강한 힘 덕분에 조만간 미국 해군은 일본 해군을 압도할 터였다. 군국주의에 취해서 판단이 흐려진 일본 육군 전략가들과 달리, 일본 해군 전략가들은 국력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미국과의 전쟁을 재앙으로 여겼다. 원래 매사에서 육군과 경쟁적이었던 터라, 해군은 육군의 폭주를 억제하려 무던히 애썼다. 이런 사정을 반영해서, 일본 해군의 기본 전략은 방어적이었다. 미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 해군은 자기 영해를 지키고 미국 해군이 서태평양으로 진격해오기를 기다려 격파한다는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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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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