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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더불어민주당, 2017년 정권교체 전략 보고서 

“정권 실망층 붙잡지 못하면 내년 대선에서 필패”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 최근 <4·13 총선 평가와 더민주의 진로: ‘신화의 정치’를 넘어서> 발간… 총선에서 국민의당 지지자 절반 이상이 ‘더민주는 지지하기 않았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 주목해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제18대 대선일이었던 2012년 12월 19일 밤 패배가 굳어지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축하를 전한 뒤 서울 영등포 당사를 나서고 있다.
4·13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123석)을 차지했다. 단 1석 차이긴 하지만 야당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 상태에서 치른 선거였기에 ‘1등’의 의미는 남달랐다. 그렇다고 내년 대선 전망이 밝다고 말하긴 어렵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에 더민주의 싱크탱크(Think Tank)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는 <4·13 총선 평가와 더민주의 진로: ‘신화의 정치’를 넘어서>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정권 실망 부동층’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불가하다”고 전망했다.

더 민주의 싱크탱크(Think Tank)인 민주정책연구원이 5월 말 작성·발간한 보고서는 총 5단락, 50쪽으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는 ▷4·13 총선 미스터리(여야 3당의 승패 요인 분석) ▷선거문법 파괴(지지층 이탈 선거) ▷선거의 신화(5060세대 표심의 변화) ▷‘박근혜 신화’의 붕괴 등 4개 단락에서는 총선에서 각 당 승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마지막 단락인 ‘2017 시대교체를 위하여’에서는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정권 탈환 전략을 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선의 정치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디스코 팡팡(큰 원형의 회전판에 올라가 동그랗게 설치된 난간을 붙잡고 버티는 놀이기구)’, 즉 부동층이 6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진복 민주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한국의 정치지형은 디스코 팡팡을 닮았다. 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은 왼쪽으로 급격히 쏠렸다가 다음 번에는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린다. 어느 순간 급정지하면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 쏠려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지난해 새누리당 정치 연대플러스 정책위원장인 김장수 박사가 펴낸 <하드볼 게임>을 인용해 ‘디스코 팡팡’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한국 대선은 중도 유권자에 의한 정권심판이 기본적인 특징”이라며 “합리적 최소 추정치 방식을 통해 추정한 스윙보터(부동층)의 규모는 2002~2007년에는 651만 표, 2007~2012년에는 485만 표였다. 대선을 한 번 치를 때마다 표심 변화를 보이는 유권자들이 485만~651만 명이었다는 뜻”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5060세대, 특히 50대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을 빼앗지 않고서는 야권의 대선 승리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4·13 총선 당시 전체 유권자는 4210만 명으로 ▷19~29세(739만 명) ▷30대(761만 명) ▷40대(884만 명) ▷50대(537만 명) ▷60대 이상(984만 명)으로 집계됐다. 총선 투표율을 보면 ▷19~29세(49.4%) ▷30대(49.5%) ▷40대(53.4%) ▷50대(65.0%) ▷60대 이상(70.6%)였다.

보고서는 4년 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선거전략’에 주목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정권 심판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상황에서 ‘정권 실망 부동층’이 야당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따뜻한 육영수’와 ‘유능한 박정희’의 이미지를 동시에 어필하는 ‘100% 대한민국’을 들고 나왔었다.

결국 박 후보는 자신의 ‘당선=정권교체’로 간주하는 ‘정권 실망 부동층’, 즉 정권교체를 원하지만 박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음으로써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득표(51.6%) 대통령이 됐다.

승패를 가르는 10%, 그들은 누구?


▎제18대 대선이 치러진 2012년 12월 19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 모인 민주통합당 주요 인사들이 출구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가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헌·이석현 의원, 김두관 전 경남지사, 정세균·박지원·박병석·우원식 의원.
여당의 재집권이 사실상 불가능한 분위기였던 2007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지율 평균치 합은 무려 65%(이명박 예비후보 40%, 박근혜 예비후보 25%)에 이르렀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던 박 예비후보의 지지율 25%는 본선에서 이명박 후보(약 10%)와 이회창 선진당 후보(15%)로 갈린 것으로 분석된다. 본선에서 이명박 후보(득표율 48.7%)는 개인 지지율 40%에 박 예비후보의 지지율 가운데 10%가량을 가져갔던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후보의 개인 지지율 40% 가운데 보수 고정층 15%를 뺀 25%가 큰 틀에서 중도표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때 중도 성향을 보였던 유권자들의 대부분이 2007년 대선에서는 보수진영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고, 이것이 ‘보수 65대 진보 35’의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50대 50의 경합구도로 바뀌었다. 2007년 대선 때 보수진영에 몰표를 줬던 중도 25% 가운데 15%가 진보진영으로 선회했고, 10%는 여전히 보수진영에 머물렀다는 분석이다.

48.9%를 얻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46.6%에 그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었던 16대 대선에서는 군소후보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진보가 보수에 6%P가량 앞섰다. 그러나 10년 후인 18대 대선에서는 오히려 보수가 3.6%P 차로 진보를 따돌렸다. 대략 그 변화의 폭은 10%에 이른다. 이들 10%가 최근 세 차례 대선 승패를 결정지은 핵심적 유권자 집단이라는 게 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 위원은 특히 2012년 대선에서 MB정권 심판론에 공감하는 여론이 60% 이상이었고, 정권교체를 원하지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부동층, 즉 ‘박근혜 정권교체 지지자’가 10%였다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바로 이 10%의 대선 승패를 가르는 핵심적 유권자 집단이 지난 4·13 총선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철회했지만 여전히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정권 실망 부동층’이었다.”

보고서는 4·13 총선에서 특기할 만한 점으로 대통령 지지도와 여당 지지도의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현상의 해체를 꼽기도 했다. ‘정권 실망 부동층’이 야권으로 이탈하긴 했지만 이들이 더민주 대신 국민의당을 지지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민주가 수도권 압승을 바탕으로 제1당이 되긴 했으나 ‘정권 실망 부동층’ 10%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이 위원은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국민의당의 유무를 떠나 더민주는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핵심이 바로 더민주를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 ‘정권 실망 부동층’”이라고 설명했다.

호남정치 복원은 정권교체 위한 대전제


▎15대 대통령선거 다음날인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당선인이 경기 일산 자택에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달한 대통령 당선증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 명예총재, 김 당선인, 김 당선인의 부인 이희호 씨, 박태준 자민련 총재.
이 보고서는 호남정치 복원은 더민주가 ‘야권 지지 부동층’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정권 실망 부동층’의 지지를 얻어 정권교체를 완수하기 위한 대전제로 규정했다. 4·13 총선에서 확인됐듯이 지역구 후보 투표에서는 지역별로 야권 지지층이 많이 결집했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야권 지지층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갈렸다.

‘야권 지지 부동층’은 호남에서 지속적으로 더민주를 지지하지 않았던 40%에 이르는 ‘신당 지지 호남 부동층’과 수도권 후보 투표에서 더민주를 지지했던 15% 정도의 ‘더민주 지지 부동층(국민의당 지지 부동층 10%+정의당 지지 부동층 5%)으로 이뤄졌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더민주가 아니라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10% 정도의 ‘정권 실망 부동층’, 5%가량의 무당층, 그리고 ‘신당 지지 호남 부동층’이 결합한 덕분에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이 위원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총선이 낳은 현재의 3당 체제는 여전히 더민주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신당 지지 호남 부동층’과 ‘정권 실망 부동층’으로 인해 나타난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민주 실망 호남 부동층’은 수도권에서 지역구 후보는 더민주를 지지했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10% 정도의 ‘국민의당 지지 부동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수도권 ‘국민의당 지지 부동층’의 대부분은 출향(出鄕) 호남인으로 해석된다. 수도권 출향 호남인 중 더민주에 실망한 40% 정도는 정당 투표에서는 더민주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후보 투표에서는 더민주를 지지했던 10%의 출향 호남인과 정서적 공동체를 이룬다. 더민주가 호남에서 역풍을 맞은 것도 호남이 정권교체를 위해 군말 없이 표만 줘야 한다는 이른바 ‘호남 인질화’와 함께 정권교체를 꿈조차 꿀 수 없게 만드는 제1야당의 ‘절대적 무능’ 때문이라고 이 위원은 분석했다.

이 위원은 “호남정치 복원이란 호남만의 정서와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가 아니라 ‘호남색깔’을 존중하되 더불어 다른 지역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 정치’를 의미한다”며 “호남사람들은 호남의 정서와 이익을 무시하는 것도 참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호남 자민련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박스기사] 영·미 보수당과 ‘박근혜 신화’ 몰락은 자만이 부른 ‘닮은꼴’-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 치열한 자기성찰과 쇄신 덕에 오랜 침체 딛고 재기해

미국과 영국에서 신(新)우파 보수정당은 서서히 쇠락했던 게 아니라 가장 강할 때 극적으로 몰락했다.

미국의 경우 70~80년대 6번의 대선에서 5번 공화당이 승리했고, 영국에서는 보수당이 18년 동안 4번의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뒀다. 미국에서 도널드 레이건,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의 집권은 각각 민주당과 노동당의 뼈아픈 국정실패에 기인한 ‘반사효과’였다는 게 민주정책연구원 이진복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미국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으로 인한 민생 악화에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카터 대통령의 무능이 겹치면서 민주당은 무능 정당의 이미지가 굳고 말았다.

영국에서는 IMF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파업을 방치함으로써 ‘불만의 겨울’을 불러왔던 캘러헌 정부의 무능으로 노동당이 악화일로를 면치 못했다. 이후 신우파 보수정부의 ‘불패신화’는 보수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진보야당의 패배인 셈이었다.

유능과 무능으로 국민을 편가르는 신우파 보수정당의 ‘두 국민 정치(Two Nations Politics)’는 선악 이분법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구좌파 진보정당의 ‘시끄러운 소수의 정치’와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신우파의 ‘두 국민 정치’는 ‘진보정당=민생과 무관한 소수파’의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 그 결과 진보야당의 낙승이 예상됐던 1988년 미국 대선과 1992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여당이 승리했다.

연전연승이 이어지자 공화당과 보수당은 더 이상 야당을 유력한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다. 그러자 내부적으로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내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더는 야당 탓을 할 수 없게 되자 경제불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보수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이 점차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당의 분열과 무능만으로 야당의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았다. 민주당과 노동당은 철저한 자기성찰에 근거한 혁신 단행, 구좌파에서 신중도, ‘제3의 길’로 근본적인 노선 전환, 수권정당으로 체질개선, 조용한 다수, 생활인의 상식을 대변하는 유능한 정당으로 도약했다.

그 결과 1992년 클린턴의 대선 승리 이후 민주당은 득표로 보면 6번의 대선에서 5번 승리했고, 97년 블레어의 총선 압승 이후 단 한 번도 연속 집권하지 못했던 노동당이 13년 동안 3번의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진보정당이 ‘항의의 정당’이 아닌 ‘자연스러운 수권정당’으로 면모를 일신한 덕분이었다.

이진복 위원은 “4·13 총선에서 정부·여당은 분열을 면치 못한 야권을 경쟁상대로조차 여기지 않는 한편 여권의 낙승을 기대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10여 년 동안 지속돼온 ‘박근혜 신화’는 외부의 적이 없어지자 내부에서 적(비박계)을 찾아 공격함으로써 정치적 자멸을 불렀다. ‘선거의 여왕’의 승리방정식은 ‘박근혜의 승리가 아니라 야당의 패배’였다. 역설적으로 총선 패배공식은 야당의 승리가 아닌 ‘박근혜의 패배’”라고 주장했다.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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