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풍향] 친박發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 깜짝 시나리오’ 

○○○ 대통령에 박근혜 총리?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개헌 정국과 맞물려 박 대통령 퇴임 후 진로에 대해 여러 가능성 열어두고 모색 중 “대선까지 1년반 남은 데다 ‘정치는 생물’… 예상대로는 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4·13 총선을 뒤흔든 ‘유승민 파동’과 ‘진박 마케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실한 친박’이라는 진박은 왜 여론의 질타를 받아가면서까지 공천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을까? 그들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구심점이 돼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설령 패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중심에 서서 총선을 치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대 국회 개원 직후 한 친박 인사의 말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괜히 머릿수만 많은 것보다 조촐한 것이 차라리 더 좋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친박계 일부가 대통령 퇴임 후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무개차를 타고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2년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접전’을 벌였다. 결과는 푸틴의 승리. 2011년 9월 24일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푸틴 총리가 2012년 대선후보로 추대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수년 전에 이미 (푸틴 추대) 합의가 이뤄졌다”며 예정된 일이었음을 고백했다. 둘의 경합은 시나리오대로 결론을 내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연임한 푸틴은 헌법상 3기 연임 금지조항 때문에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선 승리를 통해 크렘린궁에 복귀했다. 대통령을 지낸 메드베데프는 현재 푸틴 정부의 총리다. 재집권 후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린 푸틴이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2024년까지 러시아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얼마 전 사석에서 한 친박계 인사는 푸틴식 재집권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러시아와 한국의 헌법·권력구조·정치지형 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푸틴의 재집권이라는 ‘팩트’에 그는 방점을 찍었다. “문제될 게 있나요? 그리고 재집권 후 푸틴의 지지율이 얼마나 높은 줄 아세요?”

러시아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푸틴의 지지율은 2013년 57%, 2014년 71%, 2015년 83%, 그리고 올해 상반기 73%를 기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푸틴이 2018년 재선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아직까지 야당에서는 푸틴의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푸틴의 재선은 공염불이 아니다.

이 인사는 친박 내부 소수의 견해를 전제로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 거취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들이 구상하는 박 대통령의 퇴임 후 거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대통령의 총선 컴백과 계파 복구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행사가 끝난 뒤 차를 타고 떠나면서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나이에 주목했다. 퇴임연도를 기준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 71세, 김대중 전 대통령이 79세, 이명박 전 대통령은 72세였다. 반면 1952년생인 박 대통령은 퇴임하는 2018년 66세가 된다. 이 인사는 “요즘 나이로 66세라면 앞으로도 10년 이상 거뜬히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레임덕을 가장 늦춘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박 대통령 역시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지지율 하락을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7월 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도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前週)보다 3%p 하락한 31%로 조사됐다. 한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할 때도 많았다.

새누리당 출신 정치 분석가의 말이다. “박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가 집권 초기에 비해 많이 추락한 것은 사실이다. 여권 일각에서 이제는 새로운 리더를 찾으려 한다. 이 상황을 친박이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존재감이 희미해진 전임 대통령들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전임자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후임 대통령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보다 다시 한 번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2020년 21대 총선에서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새누리당은 또 한 번 혼돈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자당(自黨)에서 대통령까지 지낸 분을 공천에서 배제하자니 너무 야박하고, 공천하자니 계파 부활이 신경 쓰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당에서 공천을 하지 않았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다면 당은 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런 가정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담겨 있다. 그동안 존재했던 각종 계파는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사실상 해체됐다. 천하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나자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자연스레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었다. 한때 스스로 ‘폐족(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길에 나설 수 없는 후손)’이라 칭했던 친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과 맞물려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 유일한 예외다.

그렇다면 친박은 어떻게 될까?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다면 그들 역시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정치의 중심에 선다면 친박의 연명(延命)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역대 대통령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맞았던 것은 현실에서 권력기반을 잃어버렸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박이기에 박 대통령 퇴임 이후로도 자신들을 보호해줄 울타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친박 일부가 박 대통령이 퇴임 후로도 정치를 내려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 후 첫 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1998년 4월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환호하고 있다. ‘초선의원 박근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박 대통령이 권력자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는 이벤트는 이미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개헌이다.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책임제로 개헌한 후 첫 총리로 박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128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내각제 개헌 후 총리 선출은 명확하게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헌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차기 대통령후보가 개헌과 관련해 대통령과 담판을 하고, 이를 대통령이 수용하는 방식이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직선제 개헌을 제안한 것과 비슷한 형태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야당에서도 반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강성 친노·친문(친 문재인)을 제외한 다수의 야당 의원 사이에서도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7월 12일에는 여야 중진급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6개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국가전략포럼이 이날 국회에서 개최한 ‘국민이 바라는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김세연 의원, 20대 국회 개헌추진모임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 더민주 원내대표 출신의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등이 함께했다.

개헌 정국에서 또 하나의 묘미는 개헌이 곧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총리(이원집정부제), 그리고 총리와 내각(내각책임제)이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기에 다양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이 가능해진다. 반기문 대통령-박근혜 총리, 안철수 대통령-박근혜 총리,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문재인 대통령-박지원 총리 등의 조합을 얼마든지 맞춰볼 수 있다.

더민주 핵심 당직자 출신의 정치 분석가는 “의원들은 저마다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외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헌을 통해 큰 권력을 잘게 쪼개 나눠 갖자는 것”이라며 “성사 여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내년 대선까지 개헌 이슈는 살아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개헌 시기다. 박 대통령 재임기간 중 개헌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박 대통령은 개헌이 임박한 시점에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한다. 헌법 제128조 2항에 따르면 ‘개헌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70조)도 해당사항이 없다. 총리와 대통령은 다르다.

만일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후보가 각기 다른 개헌안을 들고 나와 대선과 연계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아무래도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작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야당이 다음 대권을 거머쥔다면 ‘박근혜 총리’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혹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대선후보가 당선 이후 박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친박이 박 대통령이 개헌 후 첫 총리가 되기를 진실로 바란다면 전광석화처럼 개헌을 밀어붙이게 될 것이다.

개헌이 빨리 진행될수록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 여야 모두 새로운 구심점이 형성되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완벽한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대통령이 대통령직은 물론이고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고 추진하는 상황에서 여야의 차기 주자가 맞서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퇴임 후 당대표 출마


▎새누리당 혁신비상 대책위원회가 유승민 의원 등 7명의 일괄 복당을 허용한 것에 반발한 친박 의원들이 6월 17일 한자리에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권력게임에서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박 대통령이기에 본인이 직접 나서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새 대통령 취임 이후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출마해 다시 한 번 새누리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차기 대통령이 여당 소속이라면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나가며 함께 개헌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야당 소속이라면 대선 패배로 오합지졸이 된 여당을 다시 수권정당으로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이래저래 나쁠 게 없다.

원외인사라는 신분이 당대표에 선출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은 없다. 원외인사로 당을 이끌어가면서 2018년 또는 2019년 재·보선, 2020년 21대 총선에 출마해서 당선되면 된다. 19대 총선에서 5선 고지에 올랐던 박 대통령이 6선 등정에 성공한다면 국회의장급이 된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 장인 정세균 의원이 6선이다.

박 대통령이 당대표로 나선다는 것이야말로 개헌은 스스로의 힘으로 관철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현존하는 정치인 중 그 누구도 박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기반(영남+보수)과 정치적 자산 및 상징성(박정희)을 갖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가 정치권에 계속 머물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파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제90대 총리(2006년 9월~2007년 9월)였던 아베가 2012년 12월 제96대 총리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것을 지켜봤던 박 대통령과 친박이 어쩌면 그러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재임 중 보수의 95%에 해당하는 연금과 4명의 비서진(운전기사 포함)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 공직에 취임할 경우 그 기간만큼 연금 지급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퇴임 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대통령 연금 지급은 정지되겠지만 4명의 비서진은 그대로 보장된다. 다시 말해 9명의 국회 보좌진(인턴 포함)과 4명의 전직 대통령 비서진을 동시에 보유하는 매머드급 스태프 구성이 가능해진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전직 대통령 신분과 그에 상응하는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일 때는 물론이고 퇴임 이후에도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19대 대통령 선거는 1년 반 가까이, 박 대통령의 퇴임은 18개월 남았다. 이상의 세 가지 시나리오는 박 대통령을 위한 ‘맞춤형 포지티브(positive) 시나리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인 ‘최악의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과 예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