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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제1부 광복) 

제3장 - [4] 선전포고 

복거일(卜鉅一) / 조이스 진
1920년 7월 밀항선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이뤄진 이승만의 상하이 방문은 임시정부가 맞은 어려움들을 풀기는커녕 분열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계열로 분파돼 지리멸렬해진 임시정부의 모습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처음 임시정부가 섰을 때의 감격과 열정도 차츰 식고 외지에서의 삶은 고달픈지라, 적잖은 사람의 의지를 꺾었다. 그래서 일본 당국에 투항하거나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돈에 쪼들린 상해임시정부가 자금을 얻을 길을 모색하던 1920년, 마침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가 조선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볼셰비키 정부가 유럽 지역에서의 내전에서 승기를 잡자, 볼셰비키 정부를 이끌던 레닌은 동북아시아에서 잃었던 영토와 영향력을 되찾으려 했다. 지정학적 조건은 러시아로 하여금 조선을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원래 조선은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부동항을 확보하려 한 러시아가 노리던 곳이었다. 러시아는 한때 조선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렸지만,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한 뒤로 조선과 만주에서 지녔던 이권들을 모두 잃은 터였다. 게다가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연해주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서 점령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데 상해임시정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레닌은 판단했다.

서유럽을 휩쓴 근대화의 조류를 외면하고 중세적 질서를 유지하던 러시아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불안해졌다. 필요한 개혁들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혁명의 기운은 점점 거세어졌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지자, 민심은 정부를 떠났고 수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선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니콜라이 2세는 의회(duma)를 설치하고 시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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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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