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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위대한 도전 시즌 3’ 김인식 2017 WBC 대표팀 감독 

“나는 늘 핀치히터, 믿는 건 태극마크 힘” 

글 이창호 스포츠 평론가·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02 아시안게임, 2006·2009 WBC, 2015 프리미어 12 이어 5번째 대표팀 사령탑…류현진·추신수·강정호·김현수 등 빅리거들 빠졌지만 인화(人和)와 조직력으로 승부

▎‘감독 김인식’의 태극마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6·2009 WBC, 2015 프리미어 12에 이어 2017 WBC가 5번째다. 김 감독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전력은 크게 약화됐지만 인화와 조직력으로 승부를 걸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늘 핀치히터다.”


▎배문고에서 야구를 했던 김인식은 대학 진학 대신 실업팀 크라운맥주(1965년)에 입단했다가 한일은행(1969년)으로 옮겼다. ‘코끼리’ 김응용은 한일은행 6년 선배, ‘만만디’ 강병철은 동기, ‘자율야구 전도사’ 이광환은 2년 후배다.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김인식(70) 감독이 또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위대한 도전 시즌 3’에 나선다.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겠다고 나서는 야구인은 거의 없다. 현역 감독들은 소속팀 성적을 내는 것이 첫째 책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을 맡았다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온갖 비난의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국가대표 감독’이다.

‘칠순의 야구인’ 김인식은 이렇게 부담스런 ‘국대 감독’을 ‘핀치히터’처럼 벌써 5번째 맡는다. WBC에선 2006년 1회, 2009년 2회에 이어 세 번째로 지휘봉을 잡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15년 프리미어 12 때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최다 ‘국대 감독’이다. 아시안게임과 프리미어 12 때는 우승, 2006 WBC는 4강, 2009 WBC는 준우승의 성적을 올렸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제4회 WBC는 3월 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고척 스카이돔, 일본 도쿄돔, 미국 마이애미 말린스 파크, 멕시코 할리스코 4곳에서 열린다. 한국은 네덜란드·이탈리아·대만과 함께 A조에 편성돼 처음으로 국내에서 1라운드를 갖는다. 월간중앙이 ‘위대한 도전 시즌 3’에 나서는 김 감독을 만나 출사표를 들어봤다.

김인식 감독은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선수 선발까지 순탄했던 적이 별로 없다”고 회고한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모두 손사래를 치며 거부할 때 “핀치히터로 대표팀을 맡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준비된 지도자였다. 지휘봉을 잡을 때마다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WBC에서 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이끈 불굴의 사령탑이었다.

야구팬들은 김인식 감독에게 여전히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크고 작은 악재 탓에 추신수(텍사스)·강정호(피츠버그)·김현수(볼티모어)·박병호(미네소타)·류현진(LA다저스) 등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참여하지 못하는데다 왼손 에이스 김광현(SK), 포수 강민호(롯데), 2루수 정근우(한화) 등 터줏대감들까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최약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최약체 대표팀 이끄는 ‘국민 감독’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환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명환(두산)·이영우(한화)·이승엽·임창용(이상 삼성)·김진우·김상훈 (이상 KIA)·이상훈(LG)·김한수(삼성)·조용준(현대).
단기전의 명장으로 자리매김한 ‘국민 감독’이 재현하는 ‘믿음의 야구’가 WBC에서 다시 시작된다.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도 투수 교체 타이밍이 가장 큰 승패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제한하고 있는 만큼 중간에 투입되는 투수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선발진은 왼손 양현종과 장원준, 오른손 이대은과 우규민이 맡는다. 차우찬은 선발 같은 중간으로 대기한다. 마무리는 오승환이다. 오른손투수 원종현·장시환·임정우·심창민·임창용과 왼손투수 이현승·박희수를 중간에서 상황에 맞춰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대호와 김태균은 상대팀에 따라 1루와 지명타자를 맡는다. 2루는 서건창과 오재원, 3루는 박석민과 허경민, 유격수는 김재호와 김하성이다. 좌익수는 최형우와 박건우, 중견수는 이용규, 우익수는 손아섭과 민병헌이 나선다. 양의지와 김태군이 포수 마스크를 쓴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교체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타순을 짤 때나 공격에서 작전을 걸어야 할 때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처음 구상에서 다소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기량이나 능력은 엇비슷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전력 손실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한국은 예비 엔트리 50명에서 최종 28명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은 팀 사정 때문에, 토종 스타들은 부상 탓에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이런 와중에도 가장 경쟁력 있는, 활용도 높은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수 선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2006년 3월 17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열린 WBC 한국 대 일본의 준결승에 앞서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찬호·조인성·김 감독·홍성흔·이승엽.
그렇지 않아도 약한 투수진은 이용찬(두산)이 오른쪽 팔꿈치, 김광현이 왼쪽 팔꿈치를 수술해 각각 삼성 심창민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을 대체선수로 뽑았다.

음주운전으로 삼진 아웃을 당한 강정호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넥센 김하성, 무릎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간 롯데 포수 강민호는 NC 김태군으로 각각 교체했다. 김하성의 발탁은 거시적인 선택이었고, 김태군의 선발은 승부를 할 때 수비에서 장점을 지녔다는 코칭스태프의 공통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했다.

“겉으로 드러난 기록만 보면 이재원이 김태군보다 앞선다. 그러나 효과적인 수비력과 볼 배합 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선 김태군의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였다. 팬들이 볼 수 없는, 야구인들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요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시즌 초반 볼티모어에 안착하는 데 애를 먹었던 김현수의 빈자리는 손아섭으로 대체했다. 손아섭은 2013년 3회 WBC, 2014 인천아시안게임, 2015 프리미어 12에 대표선수로 출전해 존재감을 보여줬다. 텍사스는 추신수의 부상을 우려해 WBC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추신수 대신 중견수와 좌익수로 활용할 수 있는 두산 박건우을 뽑아 이용규와 최형우의 백업으로 삼았다.

2루수 정근우까지 탈이 났다. 정밀검사 결과 ‘왼쪽 무릎 관절 안쪽의 반월상 연골 손상’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용규와 함께 리드오프로서 다양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베테랑의 부상 공백은 두산 오재원으로 메운다. 오재원 역시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5 프리미어 12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이스라엘과 대만은 무조건 잡는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2015년 11월 21일 도쿄돔에서 열린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 12 결승전에서 미국을 8대 0으로 대파하고 초대 우승컵을 차지했다. 김인식 감독이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WBC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부담스럽다. 그래도 대표선수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자 느낌을 갖고 있다. 태극마크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을 믿고 최선을 다하겠다.”

김인식 감독은 먼저 ‘1라운드 통과’라는 소박한 목표를 품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1회와 2회 대회에서 ‘독’을 ‘약’으로 삼아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고, WBC가 추구하는 ‘야구의 세계화’에 힘을 보탰듯이 선수들을 믿고 함께 호흡하려 한다.

4회 WBC는 1라운드에서 각 조 상위 2개 팀이 2라운드 진출권을 얻는다. 2라운드는 2개조로 나눠 8강전을 갖고, 4강 전과 결승을 펼친다.

‘김인식호’의 목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먼저 1라운드에서 2승을 올리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대만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한국은 2013년 3회 대회처럼 1라운드 탈락의 비운에 빠지지 않기 위해 활용도 높은 대체선수를 뽑는데 신경을 썼다.

“이스라엘도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메이저리거들이 합류하는 등 예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조직적이고, 세밀한 야구에는 약할 것이다.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이 필승전략이다. 대만전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뛰던 투수들은 경계 대상이다.”

김인식 감독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이 속한 A조는 예측불허의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조부모의 혈통까지 인정하는 WBC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과 네덜란드팀에 많은 전·현직 메이저리거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대만은 빅리거 출신의 베테랑 왕첸민이 중심이다. 한국은 이대호와 오승환만이 전·현직 빅리거일 뿐이다.

네덜란드는 현역 메이저리거들과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이 포함돼 A조 최강이란 평가다. LA 다저스의 마무리인 켄리 잰슨을 비롯해 잔더 보가츠(보스턴), 디디 그레고리우스(뉴욕 양키스), 주릭슨 프로파(텍사스), 조나단 스쿱(볼티모어), 알더렐튼 시몬스(LA 에인절스) 등이 네덜란드 유니폼을 입는다. 블라디미르 발렌틴(야쿠르트)과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는 일본에서 정상급 기량을 보였다. 보가츠, 그레고리우스, 스쿱은 지난해 모두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힘 있는 내야수들이다. 시몬스는 최고의 수비력을 지닌 유격수다. 전체적으로 공격과 수비력이 투수력보다 다소 앞선다.

네덜란드는 2013년 3회 WBC에서 4강까지 진출했다. 신흥 야구 강국으로 떠올랐다. 당시 네덜란드는 1라운드 첫 경기에서 한국을 5-0으로 꺾고 예선 탈락의 아픔을 안긴 주인공이다.

이스라엘도 빅리거들이 합류한다. 2009년 17승8패, 평균 자책점 4.08을 기록하는 등 메이저리그 통산 71승을 기록한 스콧 펠드먼,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는 등 통산 124승을 기록한 제이슨 마퀴스, 통산 539경기에 뛴 왼손 불펜 요원 크레익 브레슬로우가 마운드에 선다. 2012년 홈런 32개 등 통산 81홈런을 기록한 아이크 데이비스가 중심 타선을 이끈다. 외야수 샘 플러드, 포수 라이언 라반웨이 등도 전직 메이저리거다. 마이너리그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젊은 선수들도 가세해 전력이 만만치 않다.

대만은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피칭을 했던 베테랑 왕젠밍이 마운드의 중심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뛰고 이는 천관위, 궈진린, 송자하오 등이 합류한다.

WBC는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창설된 대회다. 한국 프로선수들에겐 메이저리그나 일본에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대만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수들은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김인식 감독은 최종 엔트리 28명을 굳게 믿고 있다. 지명 투수 풀(full) 제도에 따라 투수들을 추가로 예비 엔트리에 넣을 수 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기존 선수들의 사기를 고려하면서 신뢰를 보냈다. 똘똘 뭉쳐 또 한 번 큰일을 내자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오승환, 성적으로 팬들의 시선 바꿔놓아야”


▎김인식과 선동열의 인연은 각별하다. 해태 시절 수석코치와 선수로 4년(1986~89년) 한솥밥을 먹으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합작했던 두 사람은 대표팀에서 감독과 투수코치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세인트루이스의 마무리로 자리매김한 오승환의 대표팀 승선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오승환이 해외 원정도박으로 KBO로부터 2015년 말 1000만원의 벌금과 국내 복귀 시 한 시즌의 절반(현재 72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김인식 감독도 섣불리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1월 11일 코칭스태프 회의를 거쳐 팔꿈치 수술을 한 김광현 대신 오승환을 국가대표로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뒷문지기’로 확정했다.

“국가가 부른다면 WBC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던 오승환은 김인식 감독이 고뇌 끝에 내린 결정에 따라 다시 한 번 대표 선수로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됐다.

“참 많이 고민했다. 오승환이 없다고 가정한 뒤 투수 운용 계획을 그려봤더니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뒤에 듬직한 마무리투수를 놔두고 마운드를 움직이는 것과 뒷문이 불안한 상태에서 중간을 운영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팬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오승환을 선택한 이유다. 오승환이나 나나 이번 대회의 성적으로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바꿔놓아야 할 것이다.”

김인식 감독의 결정은 마운드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의 협조가 오승환을 대표선수로 발탁하는 데 용기를 줬다. 오승환의 해외 원정도박 사건을 다루는 모습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다시금 알게 됐다.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오승환이 왜 WBC 국가대표로 뽑히지 않는 것이냐는 궁금증을 갖고 있는 듯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차이 때문일 것이다. 도박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또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세계 야구의 저변 확대라는 대의에 따라 별다른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오승환을 최종적으로 낙점할 수 있었다.”

김인식 감독은 “마무리는 무조건 오승환 한 명”이라며 “선발에서 중간을 거쳐 어떻게 오승환에게 구원 등판 기회를 넘겨주느냐가 마운드 운영의 열쇠”라고 밝혔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첫 해였던 2016시즌 76경기에 나가 6승3패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 이후 트레버 로젠탈 대신 세인트루이스의 마무리를 맡아 2003년 김병현 이후 13년 만에 한국 선수로는 두 자릿수 세이브를 올렸다. 또 다카쓰 신고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일본, 미국 프로야구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

오승환은 묵직한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가 일품이다. 회전이 남다르다. 공끝의 독특한 움직임이 힘 좋은 빅리거까지도 주눅 들게 만들었다.

오승환은 2월 11일부터 23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실시한 한국 대표팀의 합숙 훈련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2월 15일부터 미국 플로리다 주피터에서 시작된 세인트루이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가 2월 말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시범 경기에 한 차례 등판한 뒤 WBC 출전을 위해 일시 귀국한다.

‘단기전 명장’의 감각적 용병술


▎2006년 3월 13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WBC 한국 대 미국의 경기. 선제 솔로홈런을 뿜은 이승엽이 더그아웃 앞에서 김인식 감독의 환영을 받고 있다.
“2009년 2회 WBC에서 준우승을 할 때나, 2015년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을 할 때 최상의 전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은 성적을 냈다. 이번 WBC에서도 김인식 감독님의 용병술이 크게 빛날 것이다.”

선동열 투수코치는 2006년 1회 WBC와 2015년 프리미어 12 때 김인식 감독과 호흡을 같이했다. 특히 ‘약체’란 평가를 받았던 프리미어 12에선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로서 절묘한 투수 교체로 꿈같은 우승 드라마를 연출했다. 김인식 감독이 해태 투수코치(수석코치 겸직) 때 선동열은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눈빛만 봐도, 표정만 봐도 선동열 코치는 김인식 감독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선동열 코치는 늘 김인식 감독이 승부수를 던질 수 있도록 투수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영광을 합작했다.

김인식 감독이 선동열 코치의 예상과 기대처럼 멋진 장면을 연출할지 관심거리다.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야구 팬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극적인 승부를 만들었다. 최희섭의 대타 홈런이나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을 꺾을 때를 김인식 감독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2006년 3월 14일 에인절 스타디움, WBC 미국과의 2라운드(8강전), 한국이 3-1로 앞선 4회말 2사 후. 2번 김민재가 2루타로 나갔다. 3번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미국 벤치에선 1회말 2사 후 선발 돈트렐 윌리스의 초구를 받아쳐 선제 우중간 솔로포를 날린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걸렀다. 2사 1, 2루.

김인식 감독은 4번 김태균을 빼고 대타 최희섭을 내세웠다. 미국이 투수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최희섭은 미국 두 번째 투수 댄 휠러의 3구째를 힘껏 받아쳐 오른쪽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다. 쐐기 3점포가 터져 한국이 6-1로 크게 앞서 나갔다.

절묘한 대타 작전으로 메이저리거들이 주축인 미국을 무너뜨렸다. 김인식 감독은 이날 선발 손민한에 이어 전병두·김병현·구대성·정대현·오승환을 효과적으로 이어 던지게 하면서 승리를 지켰다. 오른손 선발투수에 이어 왼손과 잠수함 투수를 중간에 번갈아 등판시킨 뒤 오른손 마무리 오승환으로 승리를 확정했다.

미국전 승리는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냈다. 김인식 감독은 “이름만 들어봤거나 텔레비전으로 봤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맞붙어 이겼다.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며 “한국 야구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 2015년 11월 19일 도쿄돔, 프리미어 12 준결승, 일본에게 0-3으로 뒤진 9회초.

7회까지 한국은 일본 선발 오타니 쇼헤이의 구위에 눌러 1번 정근우가 1안타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삼진을 무려 11개나 당했다. 계속 끌려갔다. 그러나 일본은 8회초부터 오타니 대신 노리모토를 투입했다. 8회는 삼자범퇴.

김인식 감독은 9회초 선두타자 8번 양의지 타석에 오재원을 대타로 내세웠다. 어떻게 하든 출루하는 것이 목표였다. 오재원이 좌전안타로 나갔다. 다시 9번 김재호 대신 손아섭을 내세워 중전안타를 만들고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일본이 크게 흔들렸다. 1번 정근우가 1타점 좌월 2루타로 불을 댕겼고, 2번 이용규까지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 무사 만루가 됐다. 일본이 다시 투수를 마쓰이로 바꿨다. 소용없었다. 3번 김현수가 볼넷을 골라 나가면서 1점을 추가해 2-3. 계속된 무사 만루에서 4번 지명타자 이대호는 역전 2타점 좌전 안타를 날려 4-3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대타 작전이 멋지게 맞아 떨어졌다.

이날 김인식 감독은 선발 이대은에 이어 차우찬·심창민·정우람·임창민·정대현·이현승 7명의 투수를 투입하며 귀중한 승리를 지켰다. 한국은 짜릿한 역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해 미국까지 8-0으로 물리치면서 우승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오타니가 계속 던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튼 대타 작전이 성공하면서 우리는 일본을 꺾고 결승에 올라가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


▎2009년 3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2회 WBC 준결승 한국 대 베네수엘라의 경기. 10대 2로 베네수엘라를 대파하고 결승 진출을 확정한 선수들이 김인식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손뼉을 마주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국가대표로서 투철한 국가관을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신념이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들길 주문한다. 김인식 감독은 2009년 2회 WBC를 앞두고 최종 코칭스태프를 발표하면서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던 고(故) 하일성 씨의 반강제성 부탁을 못 이겨 2006년 1회에 이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자 작심하고, 모든 야구인에게 들으라고 던진 소리였다. 외국에서 경기할 때 애국가를 듣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 시나브로 숙연해질 때 느꼈던 조국애나 국가관이 태극마크를 붙이는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가대표를 영광으로 알고 개인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해달라는 뜻이었다.

2006년 1회 WBC 때는 비교적 수월하게 코칭스태프를 구성하고, 대표 선수들도 선발했다. 김인식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김재박·조범현·선동열·류중일·유지현이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김재박은 현대, 조범현은 SK, 선동열은 삼성 감독이었다. 감독이 국가대표 코치로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2009년 2회 때는 상황이 변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 또는 준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한다’는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을 정했지만 “대표팀 사령탑은 영광이지만 다음 시즌 팀 일정과 대표팀 일정이 겹친다”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김인식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코칭스태프는 수석코치 김성한, 투수코치 양상문, 타격코치 이순철, 주루코치 류중일, 배터리코치 강성우, 수비코치 김민호로 구성했다.

세 번째로 WBC 감독을 맡는 과정에선 찬반이 엇갈렸다. KBO는 2016년 9월 5일 ‘제4회 WBC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김인식 기술위원장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또 김인식이냐’는 부정론과 ‘그래도 김인식’이라는 긍정론이 뒤섞였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이 2009년 시즌을 끝으로 한화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7년가량 현장을 떠나 있었고, 칠순의 나이도 걸림돌이란 것이 부정적인 반응의 이유였다. 그래도 WBC를 비롯해 단기전에서 김인식 감독만큼 성적을 낸 지도자가 누가 있었느냐며 지지하는 쪽의 목소리가 좀 더 높아 논란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2015년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한 이후 대표팀 감독은 그만 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WBC 감독 이야기가 나오길래 선동열 감독 등 50대 지도자를 KBO에 추천했다. 그런데 (구본능)총재께서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 더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해 또 유니폼을 입었다. 감독은 맡는 순간부터 고민의 연속이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은 2006년 1회 WBC에서 4강에 올라 이치로가 중심에 있던 ‘사무라이 재팬’과 야구 본고장의 ‘빅리거’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일본이 더 이상 ‘아시아의 야구 맹주’라고 자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들은 한국의 프로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인식호’는 2009년 2회 WBC에선 감동적인 준우승의 영광을 연출했다. 2017년, 8년 만에 김인식 감독이 재도전에 나섰다. 열정은 똑같다. 칠십은 숫자일 뿐이다.

- 글 이창호 스포츠 평론가·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박스기사] 2017 WBC 세부 규정

타이 브레이커 룰: 1라운드와 2라운드 결과 두 팀의 승률이 같으면 승자승 원칙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2승1패나 1승2패가 세 팀씩 나올 경우 1위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2~3위 팀은 타이 브레이커 게임을 따로 치른다. 세 팀의 승률이 같으면 맞대결 수비 이닝당 실점, 라운드 전체 자책점, 라운드 전체 타율을 차례로 따진다. 그래도 순위를 가릴 수 없을 경우 WBC 조직위원회가 추첨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연장전: 10회는 정상적으로 치르고, 11회부터 승부치기를 실시한다. 승부치기는 무사 1·2루에서 진행한다. 1루 주자는 타자 직전 타순의 선수, 2루 주자는 1루 주자 직전 타순의 선수여야 한다. 12회로 이어질 경우 11회 공격에서 마지막 아웃이 된 타자가 1루에 들어간다.

지명투수 풀: 이번 대회의 신설 제도다. 참가국들은 1~2라운드서 10명의 지명투수를 선택한다. 리스트는 대회 조직위원회에 제출한 최종 엔트리(예비 엔트리 포함)서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투수가 로스터에서 빠지면 그때부터 다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1~2라운드가 끝난 뒤 지명투수 명단을 변경할 수 있다.

비디오 판독: 1~2라운드의 경우 홈런과 안타 여부를 가릴 때 사용할 수 있다. 심판이 비디오 리플레이를 보고 결정한다. 결승 라운드는 메이저리그 비디오 판독과 동일한 기준으로 실시할 수 있다.

경기방식: 1~2라운드는 조별리그전,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단판승부다. 단 준결승전은 2라운드 성적에 의해 크로스 토너먼트를 치른다.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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