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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 피운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도전 

“통달해보지 못하고 물러남이 야구선수의 숙명” 

글·사진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95년 데뷔, 올해로 23시즌째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편해져”… 지도자·방송해설 중 진로 정할 듯, 후배들 돕는 공익재단도 만들 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2월 13일 일본 오키나와 온나손 구장 내 선수단 식당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캠프 초반임에도 팔뚝이 진한 구릿빛으로 변했을 만큼 훈련에 신명을 다하고 있다.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을 타석에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1976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둘인 이승엽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경북고 시절의 이승엽. 차세대 왼손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이승엽은 투수로 입단했으나 팔꿈치 부상 때문에 공을 놓고 방망이를 잡았다.
이승엽은 드라마를 만들었고, 대기록을 남겼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말 동점 스리런 홈런, 2003년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56개) 공을 잡겠다고 외야에 등장한 잠자리채, 2008 베이징올림픽 일본전 역전 결승 투런 홈런…. 그는 8년(2004~2011년) 동안 한국을 비웠음에도 KBO 리그 최다 홈런(443개)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통산 602개의 홈런을 날렸다.

마지막 스프링캠프에서 담금질이 한창인 이승엽을 만나러 일본 오키나와(沖繩)로 건너갔다. 온나손(恩納村) 체육공원 식당에서 마주앉은 이승엽의 온몸은 새카맣게 그을렸고,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얼룩덜룩했다. 그는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야구가 더 재미있고 사랑스러워졌다”고 고백했다.

프로야구에서 23년째, 선수로서 마지막 스프링캠프를 보내는 느낌은?

“굉장히 편안하다. 최고의 경기력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하는 건 똑같지만 이번엔 왜 그런지 더 편하다. 지난해에는 ‘2년 후에는 은퇴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마지막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니 그런 마음마저 내려놓은 것 같다.”

올해로 23번째 스프링캠프다. 올 시즌은 어떻겠다는 느낌이 오지 않나?

“캠프 때는 항상 감이 좋았다. 부상만 없으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마음을 가졌다. 요즘 기분은 상쾌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좋은 일은 물론 성적이다. 프로에게는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나쁜 결과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홈런을 더 많이 치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내리면서 힘을 싣는 타격 폼으로 바꾼다고 들었다.

“아니다. 다시 지난해의 폼으로 돌아왔다. 괌에서 특타(특별 타격훈련) 동작을 비디오로 보니 폼이 엉망이었다. 크게 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이 들어가다 보니 정작 힘을 써야 할 임팩트 순간에 힘을 싣지 못하더라. 야구는 힘 빼는 데 몇 년 걸린다는데 프로 23년차인데도 아직 힘이 안 빠진다.”

천하의 이승엽이 은퇴를 앞두고 “아직 힘을 못 뺐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그래서 야구가 어렵다는 거다. 볼링은 퍼펙트(300점 만점)가 있지만 야구는 완벽이라는 게 없다. 한 번 통달해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게 야구선수의 숙명이다. 실패를 어느 정도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나는 2014년부터 3년간 썼던 타격 폼을 좀더 간결하고 내구성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지명타자보다 1루수로 더 많이 출전하고 싶다고 했고, 수비훈련도 열심인데, 어떤 각오인가?

“최대한 나를 많이 보여주고 싶고, 수비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지명타자는 한 경기에 네 번 정도 타석에 들어서는 게 전부다. 수비를 하면 상대 선수나 코치와 짧게나마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팬들과 ‘아이 콘택트(눈맞춤)’도 할 수 있다. 물론 팀의 밸런스가 우선이고, 포지션은 코칭스태프에서 결정하는 거다. 하지만 되도록 많은 경기에 1루수로 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 오래한 것 같아 후배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하나?

“삼성에서만 15시즌째이고 중간에 8년간 일본에 갔다 돌아왔다. 그 사이에 ‘이쯤이면 내가 주전으로 올라설 수 있겠구나’ 하고 희망을 품었던 선수 중 최소한 한 명은 나 때문에 도태됐을 거다. 그 선수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야구는 나이로 하는 게 아니다. 스물이든 마흔이든 잘하는 선수가 나가는 거다. 선배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과 별개로 야구장 안에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프로가 아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목표 아닌 사명감”


▎2003년 10월 2일 프로야구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시즌 56호 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삼성 이승엽이 불펜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토스 배팅’은 한 선수가 공을 살짝 띄워주면 다른 선수가 배팅을 하는 훈련이다. 이승엽은 토스를 해주며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해주고, 때로는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묻자 “아주 기본적인 것, 타자로서 해야 할 것, 하면 타격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타격을 잘하려면 공을 끝까지 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동작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승엽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욕심이 생기면 기본을 잊어버린다. 타격은 다리·눈·손·팔 등 워낙 많은 근육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한꺼번에 다 생각하고 칠 수는 없다. 하체와 상체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자세가 무너진다. 내가 코치는 아니니 기회 있을 때 원포인트로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수(46) 삼성 감독은 이승엽보다 다섯 살이 많다. 김 감독은 “말없이 자기 할 일만 해도 모범이 되는 선수가 이승엽이다. 누구보다 일찍 나와 자기 몫의 운동량을 채우는 대선배를 보면서 후배들은 느끼는 게 많다. 이승엽이 지난 3년간 거의 지명타자로 출전했는데, 스스로 1루 수비를 맡겠다니 다른 선수들의 활용 폭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해 프로야구 10개 팀 중 9위를 했다. 창단 후 최악의 성적이다. 정규 리그 5연패(2011~2015), 한국시리즈 4연패(2011~2014)를 이룬 류중일 감독은 지난시즌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대대적인 팀 개혁과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김 감독은 “변화의 시기이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 주위에서 올해 삼성의 전력을 꼴찌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이 ‘나도 주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독하게 훈련하고 있다. 가을야구(포스트시즌)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명가’ 삼성이 가을야구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삼성도, 김한수 감독도 이승엽이 마지막 불꽃을 태워줄 것을 기대한다. 이승엽 스스로도 남다른 각오를 비쳤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상상해보았나?

“그것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그런데 한국시리즈에는 올라가고 싶다. 분명히 힘들 거다. 우리 전력은 약해졌고 다른 팀들은 보강을 잘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의외성과 변수가 워낙 많다. 대구의 새 야구장(지난해 개장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반드시 플레이오프를 해야 한다. 이건 목표가 아니라 내 사명감이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한국시리즈다. 프로는 목표를 크게 가져야 한다.”

등번호 36번은 혹시 ‘36세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나?

“하하, 그건 아니다. 사실 내가 원했던 번호도 아니었다. 다만 ‘36세까지 뛴다면 성공한 야구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40세 넘게 야구를 하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바짝 열심히 하고 그만두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야구는 빠질수록 재미있고, 지금도 야구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 25세 때 마음과 42세 때 마음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5타수 무안타 그친 어버이날 ‘접을 때 됐구나’ 생각 어떤 차이인가?


▎2006년 정규시즌 중 1루에서 만난 요미우리 이승엽과 주니치 타이론 우즈. 한국에서도 홈런왕 경쟁을 벌였던 둘은 그해 1위 자리를 놓고 뜨거운 레이스를 펼쳤다. 47방을 넘긴 우즈가 41방에 그친 이승엽에 판정승을 거뒀다.
생각 어떤 차이인가?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다. 전에는 ‘올해 못하면 내년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정년퇴임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신중하기보다 과감하게,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은퇴 투어’를 하게 될 것 같은데.

“KBO(한국야구위원회) 양해영 사무총장님이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더라.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처음이라 나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미국처럼 성대하게 할 것까지는 없고, 경기 끝난 뒤 홈플레이트 옆 배터박스에서 관중들께 인사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 ‘특급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등이 은퇴 투어를 했다. 원정경기에 가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선물도 받았다. 리베라는 자신의 강속구를 때리다 부러진 배트를 모아 만든 의자를 선물로 받았다.

삼성 캠프에서 만난 이종범(47) MBC 해설위원은 “은퇴 투어 경기에서 다른 팀 투수들은 이승엽을 상대로 전력투구해야 한다. 진정한 승부를 펼치는 것이 떠나는 영웅에 대한 예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 팬들은 이승엽만이 만들 수 있었던 영화 같은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이라이트는 어떤 장면인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다. 일본과 준결승전 8회에 터뜨린 결승 홈런은 나의 ‘인생타’였다. 그날 내가 못 쳐서 졌더라면 난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너무 부진했고, 베이징에서 팬들에게서 ‘이승엽 빼라’는 욕도 먹었다. 그때 못 쳤더라면 평생 ‘큰 경기에 약한 선수’라는 시달림을 받았을 것이다.”

야구 하면서 가장 화가 났을 때가 언제였나?

“지난해 5월 SK와 일요일 대구경기였다. 구자욱이 끝내기 안타를 쳐 이기긴 했는데 내가 찬스를 너무 많이 놓쳤다. 5타수 무안타. 그날만큼 초라하고 비참한 적이 없었다. ‘아, 이제는 야구를 접을 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후 타격이 살아났지만 그날은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이승엽의 홈런 기록을 깰 선수가 나올까?

“KBO리그에서는 박병호라고 봤는데 미국으로 갔다. 이제 다시 나와야 하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타고투저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요즘 타자들은 연습을 워낙 많이 한다. 타격기술은 연습을 많이 하면 향상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투수의 연습량에는 한계가 있다. 공 반발력, 배트 성능 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한 시즌 (홈런을) 40개 치는 선수가 나오고, 내 기록(56개)을 깰 선수도 나와야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이 된다.”

혹시 그 선수가 이은혁(12)은 아닐까?

“내 아들? 크하하…. 리틀야구에서 타격 재능은 좀 있다고 하는데, 헝그리 정신이 없다. 스포츠는 누가 뭐래도 ‘악바리’ 정신이 있어야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몰입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굉장히 엄격하게 야구를 배웠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선수, 단 투수 아닌 타자


▎8년간의 일본생활을 마치고 2012년 시즌에 국내에 복귀한 이승엽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팀 우승을 이끈 뒤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동료들에게 샴페인 세례를 받는 이승엽.
‘은퇴 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하는 모델이 있나?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이승엽다운 제2인생을 살자,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자주 고민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뭔가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는데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있다.”

스타 출신은 지도자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지도자·해외연수·방송해설 중에서 결정될 것 같다. 다만 23년간 쉼 없이 달려왔는데 나도 좀 쉬고 가족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두 아들에게도 부자간이라기보다 고민도 상담해주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은퇴 설계 중에는 ‘그동안 번 돈을 어떻게 잘 쓸까’도 포함될 것 같다.

“맞다.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재계약하면서 3억원은 재단을 만들기 위해 따로 떼어놓았다. 야구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재단, 남에게 부담 지우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 공익재단은 정말 잘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내 돈 내면서 욕먹고 싶지는 않다.”

프로야구가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선수들이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프로야구의 입지가 높아졌다. 인터뷰할 때도, 커피숍에 있을 때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고급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인정한다.”

선수들의 일탈 중 금지약물 복용이 심각한 문제다. 혹시 약물의 유혹을 느낀 적이 있나?

“없었다. 내가 약에 무척 민감하다. 손가락 부상 당했을 때 의사가 합법적인 약과 주사를 권했음에도 썩 내키지 않았다. 이걸 하면 선수 생명이 짧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는 분이 ‘스테로이드는 절대 하지 마라. 심장 쇼크로 빨리 죽는다’고 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거 안 하고도 야구가 잘됐으니까.”(웃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야구를 할 거고, 타자를 할 거다. 류현진이나 오타니 쇼헤이(일본) 정도의 투수가 못 된다면 타자 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전에는 야구가 너무 힘들고 부상도 많아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야구를 안 하겠다고 했다. 그만둘 때가 되니 야구가 더 사랑스러워졌다”고 했다.

내친김에 “그럼 이송정이라는 분과 다시 결혼할 겁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한 이승엽이 “글쎄요. 와∼ 이거…”하며 뜸을 들이더니 “인연이 되면…, 한다고 해야죠. 큰일납니다”라며 큰소리로 웃었다.

- 글·사진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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